The Duke's Lazy Martial Arts Genius RAW novel - chapter (195)
공작가의 게으른 무공천재-195화(195/300)
공작가의 게으른 무공천재 (195)
날개 돋친 듯 (5)
켄달 부인은 조심스레 하루 종일 쓰고 있었던 가발을 벗었다. 마법사의 도움으로 흘러내리거나 하진 않았지만, 사실 혹시나 하는 상황에 노심초사하느라 종일 가슴을 졸인 것도 맞았다.
‘다 알고 있었어.’
그런 자신을 적대적으로 노려보던 덴스 부인이 떠올랐다. 하마터면 그때 무너질 뻔했는데 새롭게 얻은 아들인 베니오가 시기적절하게 나타난 덕분에 켄달 부인은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날 싫어하긴 했지만 다쳤다니 안타깝네.’
그 이후 덴스 부인이 끼고 있던 마나석 반지가 깨져 그녀가 뒤로 실려 나갔다. 인과응보이지만 켄달 부인은 그런 덴스 부인의 비극마저도 안타깝게 생각했다.
“후우.”
팔락팔락.
켄달 부인은 온종일 고생한 자신의 두피에 손부채를 부쳤다. 가발이 내려가자 화상 흉터가 흉하게 남아 땀에 젖은 머리 몇 가닥이 붙은 흉측한 자신의 모습이 드러났다.
켄달 부인은 눈을 질끈 감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당당해져야 해, 켄달.”
켄달 부인은 거울 속 자신을 향해 말했다. 그녀가 홀로 이것을 이겨 내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도와줄 수 없다. 더 이상은, 남편과 아들을 위해서라도 안방만 지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스윽.
그녀는 조심스레 품에서 작은 병 하나를 꺼냈다. 베니오가 새롭게 어머니가 생긴 기념이라면서 건네준 작은 병에는 찰랑거리는 투명한 액체가 들어 있었다.
“이게 그거라고? 레길론 백작님의 머리도 풍성하게 만들어 준 약.”
레길론 백작의 소문이 켄달 부인이라고 모를 리 없었다. 그 때문에 켄달 부인도 혹시나 하는 희망을 품기는 했다. 하지만 그 약을 쉽게 손에 쥘 것이라 생각하진 않았다. 마이어 후작가는 삼대 공작가 못지않은 유구한 명문가이지만, 켄달 부인은 그런 곳에 허투루 돈을 쓰지 않는 성격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마이어 후작가의 예산 대부분은 가문의 기사단이나 고용인들, 그리고 시설의 유지 보수에 대부분 편성되어 있었다.
후작가 내외의 품위 유지를 위한 돈이나 생활에 필요한 예산은 다른 귀족들에 비하면 1/10 수준이었다. 국방대신인 마이어 후작도, 켄달 부인도 사치하는 성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발모수란 것을 사기 위해서는 시간이 꽤 필요할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전혀 예상치 못하게, 베니오에게 발모수를 선물 받았다.
‘고맙기도 해라.’
누가 베니오에게 자신의 흉측한 트라우마에 대해 말해 주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미 베니오의 도움을 한 번 받았던 켄달 부인은 그것을 의심하기보다는 베니오에게 고마워했다.
“정말 효과가 있을까?”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은 흉측하기 짝이 없었다. 두피에는 흉한 화상 자국이 선명했다. 기름등이 쏟아지는 걸 막았다가 어릴 적 머리에 불이 붙었고, 그것이 평생의 천형으로 남은 탓이다.
동생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한 바람직한 누이였지만, 그 이후로 그녀의 인생은 바뀌었다. 사람마다 흉측한 켄달의 머리를 가리키며 수군거리곤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켄달 부인은 사람을 피하기 시작했다. 만약 자신의 흉측한 모습에도 개의치 않고 다가와 주었던 마이어 후작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아마 평생을 홀로 외로이 살다 죽었을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가족이 생겼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다시 아름다워지고픈 욕구가 없다는 건 아니다. 켄달 부인은 베니오가 준 약병을 조심스레 열었다.
“바르면 된다고 했어. 이걸 바르면 나도, 나도 다시 머리가 날 수 있어.”
켄달 부인은 조심스레 솜에 그 약을 적셔 흉터가 남은 곳에 바르기 시작했다. 흉터가 난 곳에는 머리가 자라지 않았다. 하지만 이 약이 기적을 일으켜 주길 그녀는 간절히 바랐다.
슥슥슥.
거울을 보며 홀로 약을 바르는 켄달 부인의 손길이 점점 더 조심스러워졌다.
* * *
베니오는 로쉐 축제의 개막식부터 충격적인 모습을 여러 번 보여 준 덕분에 베니오의 주변에는 늘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그중에는 처음 보는 사람도, 익숙한 얼굴도 있었지만 베니오는 그들 하나하나를 소홀함 없이 최선을 다해 응대했다.
“베니오 대공자. 내 약속함세. 발모수가 나오면 내 반드시 첫 번째로 사지.”
“그래 주시면 감사하지요. 핑귀스 마을로 사람을 보내 주십시오.”
“내 그러겠네.”
나이가 지긋한 귀족이 반짝거리는 머리를 손으로 슥 가리며 베니오와 인사를 한 뒤 멀어졌다. 그제야 조금 숨통이 트인 베니오가 이마에 맺힌 땀을 손등으로 슥 닦아 내며 헛헛하게 웃었다.
“땀이 난다고?”
절정에 오른 베니오는 한서불침까지는 아니지만 웬만한 더위와 추위는 맨몸으로 너끈히 견딜 수 있을 정도의 육체를 만들었다.
하지만 귀족들을 응대하는 것이 이토록 힘들 줄 누가 알았을까. 베니오는 입에서 단내가 나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루멘, 지오반니, 세베루스. 날 혼자 두고 도망가다니.”
베니오와 함께 있던 루멘, 지오반니, 세베루스는 귀족들이 하도 몰려들자 기겁하면서 베니오만 홀로 두고 축제를 즐기겠다며 사라졌다.
그들에게서 배신감을 느낀 베니오가 구양신공을 움직여 자신의 존재감을 슥 지웠다.
“이 정도면 할만큼은 했다.”
귀족들을 항상 웃는 낯으로 성실히 응대한다는 것 쉬운 일이 아니다. 베니오가 케플러 가문의 대공자라서 망정이지 만약 그런 배경이 없었다면 민머리인 귀족들은 베니오에게서 발모수의 비법을 강탈할 기세였다.
그만큼 머리카락이 그들에게 있어서는 중요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 때문에 베니오는 실물이 없이도 구두로 이미 상당한 액수의 계약을 체결했다.
짤랑짤랑.
“대략 10만 골드 정도인가?”
베니오가 히죽 웃었다. 볼리토 선생이 책정한 발모수의 가격은 무시무시했다. 10ml가 들어가는 원액 한 병의 가격이 무려 1만 골드.
그것을 사지 못하는 귀족들에게는 비율별로 희석시켜 가장 저렴한 발모수가 500골드로 다양한 제품 라인업을 구성해 놓았다.
“레길론 백작님이 아주 훌륭한 광고가 되었군.”
레길론 백작은 베니오가 부탁하지 않았는데 여러 귀족을 만나면서 자신의 풍성한 머릿결을 자랑했다.
확실히 효과를 본 레길론 백작이 있기 때문에 머리에 고민이 많은 귀족들은 주저하지 않고 지갑을 열었다. 게다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케플러 가문의 대공자가 천 년 전의 영웅인 약성의 비전을 이용해 직접 제조한 발모수란 것이 그들에게 신뢰를 듬뿍 안겨 주었기 때문이다.
“10만 골드.”
베니오는 불과 2시간도 안 되는 시간 만에 구두 계약으로만 10만 골드를 달성했다. 게다가 발모수의 효과는 영구적인 것이 아니다, 머릿결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발모수가 필요했다.
한 번 풍성한 머릿결을 맛본 이들은 그것이 다시 사라진다는 것에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니 그들은 고정 구매자가 될 것이다.
“지금이야 10만 골드지 발모수 사업은 점점 더 커질 수밖에 없는 규모지.”
베니오가 장밋빛 미래를 상상하며 빙긋 웃었다. 자신의 존재감을 적절히 죽이고 잠행술을 이용해 사람들 시야에서 벗어난 베니오는 뒷짐을 진 채 천천히 대로를 거닐었다.
가는 도중에도 길거리 연극이나 공연이 이곳저곳에서 열렸고, 평범한 여관이나 식당에서도 음유시인이 노래하고 방랑 댄서가 춤을 췄다.
생전 처음 보는 것도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선보였고 귀족들이나 향유했던 예술도 이날만은 일반인들이 체험할 수 있도록 개량하여 선보였다.
축제의 도시.
베니오는 그것을 찬찬히 구경하며 어딘가에 도착했다.
거대하게 우뚝 솟은 원형 극장이 있었다. 바넨카에는 이런 원형 극장과 공연장이 다섯 개가 넘었는데 원형 극장 하나가 거의 천 명에 가까운 관객을 수용했다.
두두둥!
“오! 그대여! 사랑의 이름이란 하늘에 빛나는 별과도 같아서 닿을 수 없는 법이노니.”
베니오는 극장의 입구를 지나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어둠이 베니오를 덮쳤다. 바깥에서 들어오는 빛을 차단하여 관객들로 하여금 무대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마법이 작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대에서는 배우의 연기가 한창이었다. 극장 안은 만석은 아니지만 그래도 수백 명의 관객이 숨소리도 내지 않고 연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슥.
베니오는 비어 있는 좌석에 앉았다. 그러자 베니오의 옆에 앉은 관객이 움찔하며 조금 거리를 벌렸다. 목례를 한 뒤 그 자리에 앉은 베니오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연극을 좋아하셨습니까, 숙부님.”
그러자 숙부라 불린 이가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매달고는 무대를 응시하는 채로 작게 말했다.
“그렇습니다, 대공자.”
“저를 여기로 부르신 게 연극이나 보자는 건 아니실 테고.”
숙부라 불린 이, 케플러 상단의 보닌 케플러가 눈을 빛냈다. 그는 케플러의 성을 썼다. 보닌은 케플러 가문의 방계로, 베니오의 먼 삼촌뻘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니 베니오가 숙부라 부르는 것이 이치에 맞았다.
단지 직계와 방계의 차이가 크기에 직계가 방계에게 그리 부르는 경우는 없었다. 베니오의 뼈 있는 말에 보닌이 도톰하게 기른 수염을 손가락으로 슥 훑었다.
“대공자께서는 말을 돌리는 것을 싫어하시는 모양입니다.”
“서로가 필요한 것을 서로가 잘 알고 있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우리가 남도 아니고.”
“후훗. 그렇지요.”
남도 아니다.
직계와 방계의 대우가 확연하게 다르지만 보닌은 자신의 상재를 케플러 공작에게 인정받아 가문의 직속 상단 중 하나인 케플러 상단의 상단주가 된 방계다.
나중에 베니오가 공작이 된다면 그는 케플러이기 이전에 상단주로서 베니오를 주군으로 모셔야 한다.
“발모수, 원하십니까?”
베니오가 직설적으로 그에게 물었다. 그러자 보닌의 눈이 어두운 극장 안에서도 순간 광채를 발한다 할 정도로 빛났다.
“예, 대공자.”
베니오는 케플러 공작과 발모수를 독점하지 않을 것이라 약속했다. 유통을 가문 직속 상단 중 한 곳에 맡겨 그 이익을 나누겠다고 약속했다.
베니오는 상단의 유통망과 판매처를 수고 없이 얻을 수 있고, 상단으로서는 확실한 수입원 하나를 확보하는 셈이니 서로 윈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칼자루는 베니오에게 있었다.
가문 직속 상단은 케플러 상단을 포함해 세 곳이었기에, 그 세 곳이 경쟁해야만 한다.
“조건을 말씀해 보세요.”
거대한 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조건을 조율하는 장소로 극장은 좋은 곳이 아니었다. 하지만 베니오는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그 이유를 보닌도 잘 알고 있었다.
베니오가 바라는 것은 조율이 아니라 상단의 양보다. 발모수가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삼대 상단이지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협상은 필요 없다. 처음부터 최대의 패를 까지 않으면 그냥 일어나겠다는 뜻이다.
협상 결렬.
보닌은 협상을 결렬할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하지만 협상의 여지를 전혀 주지 않겠다는 베니오를 보며 대견하면서도 곤란한 듯 웃었다.
‘외통수구나. 역시 만만치 않으신 분이었군.’
베니오의 뜻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다. 여기서 베니오가 어리다고 수작을 부릴 여지를 드러내는 순간 끝장이다.
“저희 케플러 상단에서는 대공자님의 혜안을 믿겠습니다.”
“그렇다는 말은?”
“백지.”
보닌의 눈이 빛났다.
“원하는 것을 적어서 주시면 그대로 따르겠습니다.”
케플러 상단이 베니오의 발모수를 얻기 위해 도박을 걸었다.
“백지요?”
“예. 백지 계약서.”
“그러다 후회하십니다.”
베니오가 낮게 웃었다. 둘은 거의 속삭이듯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조용하기에 속삭이듯 말해도 서로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귀에 꽂혔다.
“발모수는 그럴 만한 가치가 있지요.”
“케플러 상단을 핑귀스 마을의 전속 상단으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 역시 발모수라면 그럴 가치가 있습니다.”
전속 상단이 된다는 건 케플러 상단이라는 거대 상단이 핑귀스 마을에 종속된다는 뜻이다. 그렇게 되면 본점부터 시작해 케플러 상단의 모든 인프라를 핑귀스 마을로 옮겨야 한다.
그러나 보닌은 흔들리지 않았다. 상인으로서의 그의 감각이 발모수에는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또한 이건 대공자님에 대한 저의 결단이기도 합니다.”
“저요?”
“왠지 발모수가 끝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거기서 돈 냄새도 나구요.”
“흐으.”
베니오는 자신의 촌수상 먼 숙부인 보닌이 마음에 들려고 했다. 과감한 그의 결단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베니오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에게 말했다.
“축제가 끝나기 전 계약서를 보내 드리죠.”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숙부님.”
보닌이 어둠 속에서 주먹을 움켜쥐었다. 극장이 아니었다면 보닌은 괴성을 지르며 환호했을 것이다.
‘이제는 날개 돋친 듯 발모수를 팔 일만 남았나.’
보닌의 기운이 요동치는 것을 느끼며 히죽 웃은 베니오가 속으로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