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s Lazy Martial Arts Genius RAW novel - chapter (206)
공작가의 게으른 무공천재-206화(206/300)
공작가의 게으른 무공천재 (206)
프리마돈나 (1)
여난이다.
베니오는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을 장난기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는 루텐과 지오반니, 루멘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그들을 째려보거나 할 시간도 없었다.
베니오의 옆에 비앙카와 세실이 한 자리씩 차지했다. 이 둘에 비해 집안도, 작위도 제일 떨어지는 코코는 세실의 옆에 앉았다.
꿀꺽.
베니오는 침을 꿀꺽 삼켰다. 기이한 침묵 때문이다. 비앙카 황녀도 세실 공녀도 베니오를 찾아왔다. 마침 데숑 극단의 연극을 보러 갈 예정에 예기치 못한 일행이 더 추가된 것이다.
‘불편하다.’
엉덩이에 가시가 돋은 것 같았다. 앉은 자리가 그렇게 불편할 수가 없었다. 혹시 의자에 가시가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 확인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황녀, 공녀, 그리고 천재 마법 소녀.
꼼지락꼼지락.
베니오가 그사이에 껴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발가락만 간신히 움직이는 것 정도였다. 하지만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지오반니는 베니오의 유명세를 빌려 관심을 받고 싶어 했는데, 황녀와 공녀까지 더해진 덕분에 그들을 알아본 이들이 다들 알은체를 했다는 것이다.
‘차라리 검을 줘. 에반이란 놈과 한 번 더 싸우는 게 낫겠어.’
꼬물꼬물.
에반 크뤄르에 의해 자칫하면 죽을 뻔했다. 스승인 아르마다가 조금만 늦게 나타났더라면 아마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차라리 피를 흘리면서 싸우는 것이 더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왜 혼인도 한 양반들이 그렇게 집에 가기 싫어했는지 알겠어.’
베니오, 아니 육항은 화화공자로 살 시절 기루에서 많은 이들과 술잔을 나눴다. 그중에는 단연 유부남들도 있었는데 집에 가야 하지 않냐고 물으면 다들 약속이라도 한 듯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집에 가기 싫어 죽겠다는 표정들이었다.
육항은 이해하지 못했다. 아리따운 안사람이 나만 보며 기다리는 집에 왜 들어가기 싫어했는지 말이다.
하지만 여난을 겪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다. 여인은 연약한 존재이지만, 상상 이상으로 남자를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는 존재다. 베니오는 숨조차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소곤소곤.
킥킥.
코코를 에스코트했던 루멘은 재빨리 상대를 갈아탔다. 귀족으로서 의무적으로 에스코트를 하겠다 한 것이지만, 베니오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이 노골적으로 보이는 코코를 에스코트하는 건 루멘에게도 고역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앙카 황녀가 언니인 일황녀 사마리아와 함께 나타났다. 루멘은 냅다 그녀에게 에스코트 제안을 했고 그 뒤로 둘이 붙어 다니면서 베니오와 비앙카를 보며 소곤거리고 킥킥거렸다.
‘저러다 바람나는 거 아닌지 몰라?’
타국의 왕자와 혼인을 올릴 예정인 사마리아다. 저러다 정분날지, 남녀 간의 일은 아무도 모르는 법이다. 하지만 베니오는 자신이 다른 사람 걱정할 처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대공자님. 연극을 본 다음에 저랑 대련 한번 해 주시겠어요?”
“예? 그건 좀.”
“왜요? 역시, 드레스 차림이라서 그런가요? 걱정하지 마세요. 숙소에 검이랑 편한 옷이랑 다 준비해 놨어요.”
세실은 베니오에게 대련 신청을 했다. 베니오가 마이어 후작과 검을 겨뤘고 마이어 후작이 패배를 인정한 것을 그녀도 보았다.
상급 익스퍼트.
아카데미 대항전만 하더라도 자신보다 강하기는 했어도 그 정도로 압도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베니오가 아예 다른 경지의 고수가 된 것이다.
‘암브로시아 때문인가?’
암브로시아는 기사와 마법사에게 좋은 영약이다. 하지만 모든 기사와 마법사가 암브로시아를 복용한다고 해서 베니오처럼 성장하지 않는다.
그렇다는 건 역시 베니오가 천재이기 때문이다. 강해지고 싶은 세실은 자신을 꺾은 것도 모자라 더 높이 날아가고 있는 베니오를 흠모의 눈으로 쳐다봤다.
“그런 게 아니라 아마 공녀와 제가 대련을 했다가는 공왕께서 가만두시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우리 아빠가 좀 그렇죠?”
“그, 뭐.”
베니오는 어깨를 으쓱했다. 둘이서 그렇게 대화를 나누고 있자 비앙카의 눈썹이 씰룩 치솟았다. 둘이서만 아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앙카가 끼어들었다.
“베니오 대공자.”
“예, 황녀마마.”
“화령은 잘 있나요?”
“예.”
황제가 하사한 검은 황제 앞에서도 차고 있을 수 있었다. 황제가 있는 앞에서 화령을 찰 수 있다는 건 어딜 가든 베니오가 화령을 가지고 다녀도 된다는 증명서를 준 셈이다.
비앙카가 싱긋 웃었다.
“앤빌 족장이 재밌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황실 야장의 스승인 그 드워프 말씀하시는 겁니까?”
황실 대장간의 수석인 토리노와 그의 스승인 드워프 앤빌이 두드리고 베니오가 자신의 피와 구양신공을 불어넣어 완성한 것이 바로 화령이다.
그리고 화령이 에고 소드라는 것을 알려 준 장본인이기도 했다.
“화령의 자아가 깨어났다고 하더군요.”
“음. 그게 자아가 깨어났다고 하긴 뭐합니다만.”
정확히는 화령에 자아가 깃든 것이 아니다. 물론 화령이 영성은 품고 있었다. 그것이 시간이 오래 지나면 자아가 생겼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그 영성이 깨어나기 전에 화령에 샐리가 깃들었다.
화륵!
샐리가 뿅하고 튀어나왔다. 정령이란 것이 어떻게 자라는지는 모르지만 맨 처음 봤을 때보다 조금 더 커진 모양이었다.
우우웅!
구양신공이 샐리의 등장과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베니오는 구양신공이 샐리에게로 흘러드는 것을 느끼면서 샐리의 성장의 이유를 찾았다.
‘맛있니?’
[웅, 주인. 마싰써.]우물우물.
샐리는 음식물을 먹지 않아도 된다. 정령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언가를 잔뜩 우물거리고 있어 봤더니 구양신공이었다.
정확히는 구양신공이 베니오의 혈도에 흐르며 매일 쌓이는 탁기의 찌꺼기였다. 그것이 샐리의 주식이었던 것이다.
어쨌거나 갑자기 불똥 하나가 팍 피어오르자 비앙카의 눈이 커졌다.
“정령이 검에 깃들었습니다.”
“그럼…. 정령 검인가요?”
“뭐, 정령도 자아가 있으니 에고 소드라고 해도 무방합니다만.”
검에 정령이 깃들었다는 소리에 비앙카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뚱하니 둘이 하는 이야기를 듣던 세실도 마찬가지다. 검과 정령이라는 주제 때문이었다.
“그게 정말인가요, 베니오 대공자?”
“네. 정령이 느껴지십니까, 코코 양?”
그때 코코가 끼어들었다. 나름 마법 천재 소리를 듣고 있는 코코다. 그런 코코다 검에 깃든 정령이라는 주제에 흥미를 보이는 건 당연하다.
“안 느껴져요. 정말 정령이군요.”
불똥은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불똥에서 마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자연 상태의 불이라는 뜻이다.
“신기하네요. 스승님께도 이런 경우가 있다는 건 들어 본 적이 없어요.”
“베아트리체 교수님은 잘 계십니까?”
“무척이요. 여전히 활달하신 분이죠.”
베니오가 반지를 매만지며 빙긋 웃었다. 그녀를 만난 덕분에 램블도어 스승님을 만났다. 코코가 손을 뻗어 불똥을 슥 만졌다.
[따뜻한 느낌이야.]“샐리가 코코 양에게서 따스한 느낌이 든다고 하는군요.”
“그런가요?”
코코가 빙긋 웃었다. 불똥으로밖에 보이지 않지만 불꽃이 뜨겁지 않으니 신기한 모양이었다. 어쨌거나 검과 정령 때문에 세 여자와 베니오 간의 어색한 침묵이 줄어들었다.
그때 뒤에 앉은 지오반니와 티타니아가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거 봐. 베니오, 의외로 선수라니까. 분위기가 좋아졌잖아.”
“그러게. 의외네. 그런데 코코, 경쟁자가 너무 강하다. 황녀마마와 공녀라니.”
베니오는 지오반니가 괘씸했다. 그래서 속으로 지오반니에게 받아야 할 대금을 아주 1 쿠퍼까지 낭비 없이 싹싹 받기로 했다.
팟!
그때 극장의 불이 꺼졌다. 극장은 이미 만석이었다. 데숑 극단이 온다는 말에 티켓이 동이 나 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극장이 조용해졌다. 비앙카 황녀와 세실 공녀, 코코도 입을 다물었다. 이내 천장에 박힌 조명이 팟하고 커졌다.
라이트 마법이 새겨진 조명 위를 색을 넣은 유리를 덮어 만든 조명이었다.
그리고 조명 아래 한 여인이 섰다. 여인의 입이 벌어지더니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극을 여는 노래였다. 노래를 듣던 베니오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연극이란 것. 온갖 마법이 축약된 축소판이군.’
데숑 극단의 연극에는 수많은 마법적인 장치가 쓰였다. 무대 위 배우의 음성을 증폭시켜 주는 마법과 빛을 조절하는 조명은 물론, 장이 넘어갈 때마다 바뀌는 무대 위 설치물이라던가 극적인 효과를 주기 위한 여러 장치가 전부 마법에 의해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랑극단이라더니. 페라라 공국의 대표 극단이라 투자를 많이 받은 건가?’
유랑극단이란 건 본래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떠돌아다닌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기에 유랑극단에 훌륭한 퀄리티의 연극을 기대하진 않는다.
하지만 데숑 극단은 공연의 퀄리티 자체가 매우 탁월했다.
와우―!
곡예를 부리는 장면이 나올 때마다 관람객들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남자 주인공의 결투 장면에서는 손에 땀을 쥐고 주인공을 응원했다. 그리고 여주인공이 나와 사랑의 노래를 부르며 슬퍼할 때는 눈물을 함께 흘렸다.
베니오는 무대 위의 설치물이 바뀌고 등장인물들이 나왔다가 무대 뒤로 사라지고 할 때마다 무대 뒤에서 느껴지는 무수한 인기척을 느꼈다.
연극을 무대 위에 올리기 위해 무대 뒤에서 뛰는 인기척만 해도 기백이 넘었다. 베니오는 열심히 사는 이들을 보며 무대 위에 더욱 집중하겠다고 다짐했다.
자꾸만 눈에 거슬리는 것만 없었다면 말이다.
“아아아아아~~~!”
무대 위에서는 여주인공, 그러니까 프리마돈나가 고음으로 쭈욱 이어지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옆을 슬쩍 보니 비앙카와 세실, 코코 모두 여주인공에게 깊숙이 몰두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확실히 여주인공은 프리마돈나를 할 만큼 실력과 재색을 겸비하고 있었다. 페라라 공국 출신으로 각국의 귀족과 왕자들이 한 번이라도 만나고 싶어 한다는 유타에가 그녀의 이름이었다.
[환상을 구현하는 프리마돈나, 유타에!]데숑 극단은 프리마돈나인 유타에와 희대의 천재 극작가인 베토랑 브란스피어가 지분의 80%를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베니오의 눈에 거슬리는 건 다른 게 아니었다.
무대 위, 극 중 신을 묘사하기 위해 놓인 기물 중 공중에 매달린 육중한 샹들리에. 마법으로 띄워 놓은 샹들리에는 데숑 극단의 역량을 보여 주듯 화려하고 묵직했다.
그냥 극의 소품으로 쓰기 위해 대충 만든 것이 아니라 실제 귀족가에서 구매할 법한 퀄리티의 샹들리에를 소품으로 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무게 때문인지 완벽하게 마법으로 지탱하지는 못하고 눈에 보이지 않은 가는 끈이 샹들리에의 무게를 여러 방향으로 분산시키고 있었다.
그런데 베니오의 눈에 그 끈을 향해 구조물을 타고 올라가 기어가고 있는 사람이 들어왔다.
‘나밖에 보지 못한 건가?’
극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귀족들이 대동한 수행원과 기사는 외부에서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 그 때문에 비앙카도, 세실도 몸만 들어왔다.
그러다 보니 이런 문제가 벌어진다. 무대 위를 밝히기 위해 조명을 집중하면 상대적으로 조명이 비추지 못하는 곳이 어두워진다.
극을 위해 조도를 떨어뜨려 놓은 실내에서, 조명이 무대 위로만 집중되니 더욱 눈에 띄지 않는 것이다.
그걸 보기 위해서는 오러가 필요하다.
하지만 무대와 관객석의 거리를 계산해 보면 보통 수준으로는 그 정도 어둠을 보는 데 무리가 있다. 그러나 귀족 중에 기사 가문이거나 특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익스퍼트 기사가 아무 데나 굴러다니는 경우는 없다.
익스퍼트급의 기사는 그 수가 매우 희귀해 한 번 나타나면 주변 귀족가에서 재물을 싸 들고 찾아가 모시려고 하는 고급 인재이기 때문이다.
‘루멘이 모르는 걸 보니 초급 수준으로는 안 보이는 모양이군.’
바로 뒤에 초급 익스퍼트인 루멘이 앉아 있었지만 루멘은 별말 하지 않았다. 안 보인다는 뜻이다. 즉, 지금 멀리 떨어진 무대 위 어둠 속에서 벌어지는 일은 베니오의 눈에만 보인다는 뜻이다.
“흐음.”
“베니오 대공자. 뭐 불편한가요?”
베니오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표정을 짓자 비앙카가 귀신같이 눈치채고 물어왔다. 눈치로 베니오의 변화를 알아챈 것이다. 베니오가 비앙카에게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연극이 생각보다 재밌어서 연극을 중단시키지 않고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나, 고민 중입니다.”
“문제요?”
비앙카의 눈이 반짝였다. 그녀의 눈에 호기심이 차올랐다. 안전한 황궁에서만 평생을 산 그녀에게 외유는 모험과 신비를 체험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현재 비앙카에게 모험과 신비의 중심은 베니오다. 베니오가 그녀의 호기심을 마구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런 베니오가 하는 말에 비앙카는 관심을 보였다.
“예를 들자면 저기, 무대 위의 프리마돈나에게 일어날 사고를 막는다든가 하는 것 말입니다.”
“네에?”
흑복을 입은 괴한이 야금야금 샹들리에를 향해 기어가고 있었다. 날카로운 칼로 줄을 끊으면 샹들리에 아래서 노래의 클라이맥스를 부르고 있는 프리마돈나는 끝이다.
그리고 데숑 극단도 끝이고, 연극을 보러 온 수많은 귀족들은 트라우마를 가지고 돌아가게 될 것이다.
베니오가 손가락을 딱 튕겼다.
“샐리. 좀 도와줄래?”
파르륵!
작은 불똥 하나가 둥실하고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