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s Lazy Martial Arts Genius RAW novel - chapter (209)
공작가의 게으른 무공천재-209화(209/300)
공작가의 게으른 무공천재 (209)
프리마돈나 (4)
비단 베토랑뿐만 그런 것 아니다. 유타에도, 비앙카 황녀도, 세실도, 코코도 베니오의 뜬금없는 말에 고개를 들어 베니오를 쳐다봤다.
“예? 대공자님.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멈칫했던 베토랑이 짐짓 불쾌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도박 빚이라니. 금시초문입니다. 도박은 둘째치고 그런 곳에 갈 시간도 없습니다.”
“그건 맞아요. 베토랑은 상시 방에 틀어박혀 글만 쓰거든요. 이번 건 아무래도 베니오 대공자님께서 무언가 오해하신 듯해요.”
유타에도 베토랑의 편을 들었다. 하지만 베니오는 고기를 갈아서 만든 테린을 칼로 떠서 바삭한 크래커에 듬뿍 바른 다음 태연히 입에 넣었다.
와작와작.
공중 식당은 바넨카에 온 귀족들이 전부 한 번씩 간다고 해도 좋은 레스토랑이다. 그 때문에 음식의 퀄리티가 상당히 뛰어났다. 이곳의 요리사가 한 공국의 공작가에서 전속 요리사로 있었던 사람이라더니, 그게 사실인 모양이다.
“글쎄. 과연 그럴까요?”
“베니오 대공자님.”
베니오가 확답하지 않자 베토랑의 표정이 확연히 굳었다.
“비록 몰락한 가문 출신이라고는 하나, 저 역시 귀족의 긍지를 잊지 않고 있습니다. 헌데 대공자께서는 제 명예를 자꾸 폄훼하려 드시니,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불쾌하다는 뜻이다. 만약 베토랑의 말이 맞다면 이건 큰 실례고 무례다. 하지만 베니오는 어깨를 으쓱했다.
“검은 다이아몬드.”
사사삭!
칼이 마른 크래커 위에 부딪히는 소리가 베니오가 한 말 뒤에 따라온 공백을 메꿨다.
“언더그라운드 썬라잇. 스타 오버스카이.”
베니오는 유타에나 다른 이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명사를 의미 없이 늘어놓았다. 하지만 베토랑에게는 그게 단순히 무의미한 단어의 배열이 아니었다. 베토랑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익숙하지 않습니까, 베토랑 작가?”
베니오가 언급한 것들은 전부 다 도박장의 이름이다. 도박장이 대놓고 도박장이라고 이름을 써 놓고 영업하는 경우는 없다. 대부분 숙박과 주점을 같이 하기 때문에 이름이 저렇게 화려하다.
“손꼽히는 유명한 도박장이죠.”
“베니오 대공자님.”
“하신 말씀이랑 상충하는데, 이래도 내가 베토랑 작가를 모욕하는 것 같습니까?”
베토랑의 말은 거짓이다. 베토랑이 얼굴을 붉혔다. 그의 치부가 만천하에 드러난 셈이기 때문이다. 베니오는 태연하게 접시를 포크로 땅땅 두드렸다.
다음 코스를 내도 좋다는 뜻이다.
웨이터가 나와 접시를 가져갔고, 그다음 코스를 깔았다. 코끝을 자극하는 향긋한 냄새가 절로 입안에 침이 고이게 만들었다.
베니오는 곧바로 포크를 들었지만 베토랑은 들지 못했다. 웨이터가 다 나갈 때까지 입을 다물고 있던 베토랑이 입을 열었다.
“제가 도박 빚이 있는 게 문제가 됩니까?”
“베토랑?”
유타에가 놀란 눈으로 베토랑을 쳐다봤다. 베토랑이 도박한 것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베토랑이 유타에에게 변명하듯 말했다.
“그냥 기분 전환하러 간 거였어. 거기 다녀오면 왠지 영감이 오는 것 같기도 했고. 그래서.”
베토랑의 변명은 어딘가 궁색했다. 그건 그가 거짓말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의 항변에도 일리는 있었다. 베토랑이 도박 빚이 있다는 걸 베니오가 굳이 이런 자리에서 공론화할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앉은 여섯 명 중 태연하게 식사를 하는 건 베니오밖에 없다. 베니오가 기품 있게 포크와 나이프로 음식을 썰어 입에 넣고는 꿀꺽 삼킨 다음 냅킨으로 입가를 찍었다.
“왜 문제가 되는지 듣고 싶습니까?”
“예?”
“듣고 싶냐 물었습니다.”
베니오의 말에는 앞뒤가 없고 중간도 없었다. 하지만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만 그 말의 저의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베토랑은 알아들었다.
“베니오 대공자님.”
“우리 가문에는 그물이라는 정보조직이 있습니다.”
모든 가문이 그 가문 만의 정보조직을 가지고 있다. 만약 가문의 세가 미미하여 정보조직을 운영할 깜냥이 안 된다면 정보 길드라도 부리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케플러 가문 정도 되는 가문이라면 그 가문의 정보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굳이 알아보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을 정도다.
“공작 각하께서 제게 선물로 그중 하나를 주셨지요. 버냉키라고. 아주 유능한 정보원입니다. 베토랑 작가님의 도박 빚? 알아 오는 데 30분도 걸리지 않더군요.”
음지에는 음지만의 방법이 있는 법이다. 버냉키는 그곳이 케플러 공작령도 아니지만 음지의 룰에 따라 제 안방 드나들 듯 베토랑에 대한 정보를 30분 만에 구해 왔다.
“….”
“왜 그러셨습니까?”
베니오가 할 말을 잃은 베토랑에게 말했다.
“유타에 씨를. 왜 무대 위에서 그렇게 살인하려고 한 겁니까?”
“…!!!!!!”
베니오의 말에 비앙카는 물론 세실과 코코, 유타에까지 경악했다. 베토랑이 유타에를 죽이려 했었다는 충격적인 사실 때문이다.
“그게 도통 이해가 되지 않더군요. 데숑은 유타에와 베토랑 작가, 두 분에 의해서 존재하는 극단인데, 그중 한 명이 사라지면 데숑의 존재 의의가 사라지는 것이지 않습니까?”
최고의 프리마돈나와 천재적인 극작가.
이 둘의 조합 때문에 데숑이 그리 이름을 날릴 수 있었던 것이다. 둘 중 한 명이라도 없다면 그들의 명성은 크게 반감한다.
하지만 베토랑은 유타에를 암살하려 했다. 그것도 무대 위에서, 그녀가 가장 빛나는 순간에 그녀를 죽이려 했던 것이다.
유타에가 베토랑을 쳐다봤다. 그녀의 눈은 상처받은 듯 흔들리고 있었다.
“이게 정말이에요, 베토랑?”
“유타에. 그게.”
“정말이냐구요!”
쾅!!
유타에가 테이블을 내려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도저히 식사를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하지만 베니오는 그 둘을 보며 태연히 음식을 썰고, 먹었다.
“황녀마마. 이걸 좀 드셔 보시지요. 맛이 꽤 괜찮습니다.”
“베니오 대공자. 지금 음식이 넘어가요?”
“아니 될 건 또 뭐겠습니까?”
비앙카가 황당하다는 듯 베니오를 쳐다봤다. 하지만 베니오는 씩 웃기만 했다. 유타에와 베토랑 사이의 분위기가 점점 험악해지는 것을 보며 비앙카는 머리를 굴렸다.
“일부러 이런 건가요?”
“예?”
“식사하자고 둘을 불러낸 거. 순수히 궁금해서 그러신 거냐구요.”
베니오는 유타에와 베토랑을 쳐다봤다. 사실 그냥 거기서 그렇게 일단락 지어 버리고, 그냥 모른 척 지나쳤어도 되는 일이다.
하지만 베니오는 굳이 유타에와 베토랑을 따로 식사에 초대했다. 케플러 가문 대공자의 초대라면 거부할 수가 없을 것이라는 판단도 그 아래 깔려 있었다.
“글쎄요.”
베니오는 유타에를 구하기 위해 베토랑이 무대 위에 올라온 순간 이상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 이상함은 무대에서 내려온 다음 의구심이 되었고, 확신이 들었다.
‘베토랑의 의지로 벌인 일이 아니다.’
무대 위 멀쩡한 유타에를 보는 순간 베토랑의 눈에 스쳐 지나간 찰나의 혈광을 베니오는 놓치지 않았다. 아주 순간이었지만 혈광을 베니오가 놓치거나 잊을 리 없다.
‘도철.’
혈기를 심어 사람의 의지를 장악하고 조종하는 건 도철의 장기다. 혈마의 네 호법이라 불린 사흉의 일인인 도철은 사람의 마음에 생겨난 빈틈을 파고든다.
그렇다면 왜, 도철은 베토랑 같은 일개 극작가에게 혈기를 심은 것일까.
그때 비앙카가 유타에를 눈에 담으며 베니오에게 말했다.
“나도 하나 이상한 게 있기는 해요.”
“예?”
“유타에 씨. 분노와 슬픔을 연기했거든요.”
베니오의 눈이 커졌다. 베니오가 유타에를 보지 않았을 리 없다. 하지만 베니오는 유타에에게서 특별한 것을 느끼지 못했다.
“지금 저게 연기란 말씀이십니까?”
“네. 확실해요.”
황실에서 자란 비앙카다. 황실이 복마전이란 건 모르는 이가 없다. 제국 최고 존엄이 있는 황실이나 그 안에서 오고 가는 치열한 암수는 바깥사람들이 상상하는 것 그 이상이다.
그 때문에 비앙카의 눈치는 비상하게 발달했다. 그녀 역시 그 암투에 노출이 될 수밖에 없기에 비앙카는 진실과 거짓을 판별하는 본능적인 육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 육감이 말해 주었다.
유타에는 연기 중이라고.
베니오는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은 전혀 느끼지 못한 걸 비앙카만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는 건 여자만이 느낄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소리다.
‘한 명은 살인 미수고, 한 명은 연기 중이라?’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베니오는 말다툼을 벌이는 유타에와 베토랑을 빤히 쳐다봤다. 둘의 말다툼은 점점 심해지더니 베토랑이 참지 못하고 일어섰다.
“뭐? 지금 말 다 했어?”
“데숑은 내가 살린 거예요. 당신의 거지 같은 극 때문이 아니라, 내 능력이라구요.”
“내 대사가 없었다면 넌 그 자리에 있지도 못해. 네가 아니라 다른 여자를 데려다 놓아도 프리마돈나 소리를 들었을 거야.”
“뭐예요?”
베토랑이 두 눈을 부릅떴다.
“내가 모를 줄 알아? 유타에. 작가인 나를 빼고 너, 다른 극단을 세우려고 했지? 빌리쿡에게 극작 의뢰를 넣었다는 거, 내가 모를 줄 알았어?”
유타에가 멈칫했다. 베니오의 눈이 가늘어졌다. 비앙카는 유타에가 연기 중이라고 했지만 베니오는 도통 알 수 없었다.
어쨌거나 베토랑이 유타에를 죽이려 했던 건, 유타에가 베토랑을 배신하려 했기 때문이다. 유타에의 흔들리는 눈을 보니 베토랑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래도 사람을 죽이려고 해요?”
“한 달 전.”
베토랑이 이를 뿌득 갈았다.
“내가 살던 집에 큰 화재가 났지. 마침 내가 그 안에 없어서 다행이야. 그런데 그 화재를 조사한 조사관이 내게 와서 이르더군. 누군가 화재 전에 방을 뒤진 흔적이 있다고. 그리고 그게 빌리쿡이고.”
“베토랑. 당신!”
베토랑만 유타에를 죽이려 한 것이 아니다. 유타에도 베토랑을 죽이려 했다. 베토랑을 죽이고 베토랑의 극을 빼앗을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게 베토랑에게 알려졌다는 뜻이다.
자신이 죽을 뻔했다는 것을 안 베토랑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베토랑은 그 때문에 유타에의 살인 모의를 한 것이다.
그리고 그때 베토랑이 테이블 위에 놓인 식기 중 나이프를 들고 일어섰다.
“유타에! 네가 먼저 날 죽이려 했어. 그러니 내가 널 죽이는 건 정당방위야!”
베토랑의 두 눈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혈광!’
베니오는 긴장을 끌어올렸다. 단순히 피가 몰려 충혈된 것이 아니라 혈기가 꿈틀거리는 눈이었기 때문이다. 혈광은 곧 혈공의 발현이나 마찬가지다.
“내 손으로 널 죽이겠어!!!”
베토랑이 유타에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때 베니오가 한발 빠르게 움직였다. 무려 황녀가 포함된 이 자리에서 피를 볼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혈공을 전혀 익히지 않은 자가 어떻게 혈광을 쓸 수 있는지 봐야겠다.’
섬보를 밟은 베니오가 베토랑의 지근 거리에서 나타나 금나수를 펼쳐 베토랑의 손에 들린 나이프를 낚아채고 베토랑의 손목을 잡았다.
그 순간.
치이익!
“으, 으아아악!”
베니오의 손에 잡힌 베토랑의 손목이 지져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연기가 피어오르고 베토랑이 비명을 질렀다. 베니오가 눈을 크게 떴다.
‘신성력에 반응한다?’
베니오의 구양신공은 신성력의 근간이 될 정도로 정순한 기운이다. 극양의 기운을 품고 있기에 태양교의 신성력을 흉내 낼 수 있을 정도인데, 그에 베토랑의 신체가 반응했다.
그렇다는 건 베토랑에게 신성력에 상극인 무엇인가가 있다는 뜻이다.
슥!
베니오가 베토랑의 팔을 걷었다. 그러자 그곳에 시커멓게 새겨진 문신이 나타났다. 그것을 본 베니오의 눈이 커졌다.
“이거! 당신! 이 문신 어디서 했지?”
그 문신은 이곳 사람이 보기에는 기하학적이고 복잡한 문양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베니오는 분명히 그것을 읽을 수 있었다.
[天魔]“천마.”
그때.
“황녀마마!!!”
촤악!
“컥!”
뒤에서 세실 공녀가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유타에가 한 손에 나이프를 든 채 두 눈을 번뜩이고 있었다. 비앙카 황녀를 향해 달려들던 유타에를 막으려다가 나이프에 당해 쓰러진 것이다.
고기를 썰고 채소를 썰기 위해 만들어진 식기이지만 그것이 살아 있는 사람의 피륙을 베었다. 그것을 본 베니오의 두 눈에서 광망이 터져 나왔다.
“샐리!”
[응!]화르륵!
샐리의 화염이 화령에서 튀어나오며 유타에에게 적중했다. 그러자 유타에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살점이 새카맣게 타들어 갔지만 유타에는 비명 한 번 지르지 않았다.
대신 고장 난 인형처럼 삐걱거리더니 고개를 돌려 베니오를 쳐다봤다.
[대업에 훼방 놓는 방해자. 베니오 케플러. 기다려라. 나, 서쪽 화산의 마녀가 네놈을 친히 징벌할 것이니.]“마, 마녀!!”
기함은 코코에게서 터져 나왔다. 마녀에 대해서 들은 것이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 말을 한순간 유타에의 입에서 시커먼 연기가 뿜어져 나오더니 그녀의 몸이 실 끊어진 인형처럼 푹 고꾸라졌다.
“커, 커컥, 커헉!”
그리고 베니오에게 제압당한 베토랑도 관자놀이에 핏줄이 불룩 튀어나오더니 컥컥 소리와 함께 두개골 안에서 무언가 퍽하고 터지며 눈을 까뒤집었다.
“금제.”
베니오가 꿈틀거림을 멈춘 베토랑을 보며 딱딱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때 비앙카 황녀가 소리쳤다.
“베니오 대공자! 세실, 세실 공녀에게 힐을!”
공중 식당이 짙은 피 냄새로 뒤덮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