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s Lazy Martial Arts Genius RAW novel - chapter (232)
공작가의 게으른 무공천재-232화(232/300)
공작가의 게으른 무공천재 (232)
잊힌 여인 (2)
단촐한 일행이다.
베니오는 덜렁 자신과 토니만 대동한 채 카사케플러에 돌아왔기 때문에, 갈 때도 덜렁 두 명이 전부였다.
루텐이나 디아토, 앰블란이 기를 쓰고 따라가겠다고 했지만 그들은 자리를 비울 수 없었다.
“날이 갈수록 오는 사람이 늘어날 거야.”
“정신없이 바쁘시겠군요.”
“맞아.”
핑귀스 시는 불과 4개월 만에 인구 500에서 15,000으로 늘어났다. 물론 그 안에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상인이나 용병이 포함되어 있으니 허수가 상당하다 할 수 있지만, 핑귀스의 특산품이 된 발모수와 밤의 귀족, 꽃의 귀부인이 있는 한 그들이 핑귀스 시를 떠날 이유는 없다.
단 세 가지의 특산품만으로도 핑귀스 시는 어느덧 상계에서 모든 상인들이 거쳐 가야만 하는 곳으로 인식이 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딜 가든 그 세 물품을 거래하기를 원하는 귀족들이 넘쳐나는데,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있듯 상인들은 물품의 수량을 확보하는 데 열을 올릴 수밖에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날마다 핑귀스 시에 들어오려는 사람이 늘어났다.
그러니 자연스레 기사 세 명이 바빠질 수밖에 없다.
“용병왕이 와 준다면 큰 도움이 될 거야.”
“근데 도련님, 용병왕의 소문에 대해 들으셨습니까?”
“싸움을 좋아한다는 거?”
토니가 눈을 크게 떴다.
“그걸 아시고도 부르셨어요?”
“싸우자고 부른 것도 아닌데.”
“루키 브레이커. 아시잖아요.”
베니오는 피식 웃었다. 용병왕 프로이드는 다른 말로 루키 브레이커로 불리기도 했다. 그건 그가 말 그대로 대륙에서 이름 좀 날린다는 이들을 찾아가 모조리 꺾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중에는 신성으로 불리며 막 이름을 날린 이들도 있었는데 용병왕은 그들을 상대로 결투를 신청하여 조금도 봐주지 않고 압도적으로 이겼다.
이제 막 검으로 이름을 날리던 이들이 용병왕이란 거대한 적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용병왕과의 결투가 트라우마가 된 몇은 그대로 검을 꺾었다. 도저히 오를 수 없을 것 같은 산을 보고 난 그들의 마음이 완전히 꺾인 것이다.
그래서 용병왕을 다른 말로 루키 브레이커라 불렀다.
“그를 부르는 다른 말도 있지 않아?”
“마스터 메이커 말씀이십니까?”
“그래.”
하지만 루키 브레이커란 별호가 나쁜 건 아니다. 검을 쥐고 이름을 날린 이상 강자와의 결투는 바라마지 않는 일이다.
그리고 오르지 못할 산을 발견하여 오르기를 포기했다는 이들도 비난받아서는 안 된다. 모든 이들의 마음에 그들이 손에 쥔 검처럼 단단하고 굳건하진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 그들 중에는 꺾이지 않고 오히려 절치부심하여 검을 갈고 닦은 이들이 있다.
‘조슈아 벤켄.’
그들 중 가장 유명한 기사가 바로 조슈아 벤켄, 월광의 기사인 그다. 아모리아 황제를 보호하는 로열나이트의 세 번째 검이자 황제가 자랑하는 세 번째 마스터이기도 한 그가 용병왕과 결투한 뒤 절차탁마하여 찬란한 마스터에 경지에 도달한 기사다.
용병왕이란 시련 앞에 누군가는 꺾인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그 시련이 반드시 넘어야 할 목표가 되기도 한다.
그렇게 시련을 이겨 내는 순간 월광의 기사 같은 기사가 탄생한다.
그래서 붙은 별호가 마스터 메이커다.
용병왕과 결투를 벌여 마음이 꺾이지 않은 이들은 대부분 대성하여 유명한 기사가 됐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몇몇 루키 중에는 용병왕과 한 번이라도 검을 섞고 싶어 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도련님. 도련님은 공작가의 대공자란 것을 잊으셔서는 안 됩니다.”
“나도 알고 있어.”
그래도 베니오를 평생 보좌하겠다 마음먹은 토니 입장에서는 용병왕의 주의를 끌었다는 것이 마음에 걸릴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게 바로 토니가 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베니오는 허투루 한 귀로 흘려 넘기듯 대답하지 않고 진심을 담았다.
“마스터에 오를지도 모르는 일이잖아.”
“그러셨으면 좋겠습니다. 스물도 되기 전에 마스터에 오르신 건 역사상 도련님이 처음이실 테니까요.”
언제 걱정했냐는 듯 토니가 눈을 반짝거리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 모습에 베니오가 풀썩 웃었다.
“이제는 또 바라냐?”
“사실 도련님이면 해내실 것 같아서요.”
토니의 믿음이 썩 부담스럽지만은 않다. 베니오도 막연하게 느끼고 있었다.
무너지기 시작한 벽.
공간을 깨달으면서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그 벽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작은 실금이라도 해도 균열이 일어났다는 것이 중요한 법이다.
두드리고 또 두드리다 보면 언젠가는 무너질 테니까.
용병왕이 그 시기를 앞당겨 주기만을 기다릴 따름이다.
‘상귀스 왕국이 조용한 것이 마음에 걸리니까.’
혈교와 천 년 전 추방당한 데빌하트의 잔당이 만든 상귀스 왕국이 조용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물론 제국이 본격적으로 나서고, 오랑주 공왕이 친정에 나섰기에 전선이 유리한 것은 객관적으로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혈교에 대한 경계는 주관적이다.
이 세상에서 혈교와 마교, 그것들의 끔찍함에 대해 아는 건 단 한 명, 베니오뿐이었으니 말이다.
‘상귀스 왕국의 혈교가 노리고 있는 건 하나밖에 없겠지.’
천마강림(天魔降臨).
극작가 베토랑은 한자로 된 천마를 팔에 새기고 다녔다. 마녀의 꼭두각시가 된 프리마돈나 역시 추방당한 데빌하트의 잔당이었다.
‘정보가 적어.’
베니오는 끄응하며 목덜미를 벅벅 긁었다. 눈이 필요했다. 상귀스 왕국을 들여다볼 수 있는 눈이면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마교와 혈교의 폐쇄성을 생각해 보면 어려운 일이다. 지독하리만치 마교와 혈교는 외부에 배타적이었으니까.
그건 여기서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쨌거나 베니오는 방법을 강구해 봐야겠다고 생각하며 토니를 쳐다봤다. 토니는 등에 커다란 봇짐을 메고 있었다.
“안 무거워?”
“무겁긴요. 앰블란 경의 훈련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죠.”
익스퍼트에 발을 들일 시기가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오러 유저로서는 최고의 경지에 오른 토니다.
물론 토니는 실전 경험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앰블란의 가르침과 금강검으로 인해 성취는 높았지만, 실전을 겪어 본 적이 한 번도 없기에 익스퍼트의 경지는 요원했다.
그래도 저렇게 짐꾼으로서는 발군이다. 오러 덕분에 쉬이 지치지 않는 체력을 지니게 되었기 때문이다.
“갈턴홈이라.”
“하필이면 갈턴 자작령이네요.”
“한두 번 지나다닌 게 아니잖아?”
핑귀스 시에 가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 바로 갈턴 자작령이다. 그러나 베니오는 그간 갈턴 자작령을 오가면서도 갈턴 자작령의 주도(主都)인 갈턴홈에 들른 적은 없었다.
애초에 들를 생각도 하지 않았다. 갈턴 자작과의 관계 때문이다.
하지만 수잔나 부인의 부탁 때문에 이번에는 거쳐 가야만 한다. 베니오가 말을 몰았다.
“저기 보인다. 서두르자.”
“예, 도련님.”
서신과 약재만 넘기고 그냥 갈 생각이다. 원래 께름칙한 곳에는 오래 머무르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베니오와 토니를 태운 말이 푸르릉거리며 힘차게 땅을 박찼다.
* * *
“어서 오십시오, 대공자님. 전 자작성의 집사, 길베른이라고 합니다.”
“반갑소.”
베니오가 도착하자 집사인 길베른이 베니오를 기다리고 있었다. 갈턴홈의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차분했다. 사치스럽고 허영심 가득한 수잔나 부인이나 갈턴 자작과는 다른 분위기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건 차분함이 아니었다.
끼익.
‘무서워하는군.’
베니오와 눈이 마주친 이가 얼른 창문을 끼익하고 닫았다. 귀족이 나타나자 집으로 숨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저잣거리임에도 불구하고 귀족을 본 이들은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고개를 숙인 채 들지 못했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이 뚜렷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가시지요. 안내하겠습니다.”
“알겠소.”
집사와 갈턴 자작의 사병대가 베니오를 호위했다. 그리고는 혀를 쯧하고 찼다.
‘건물은 낡았고, 도로는 패인 곳이 많다. 사람들의 표정은 어둡고 차림새는 남루하군. 영지에는 돈을 쓰지 않는 건가.’
갈턴 자작과 수잔나 부인의 성격을 떠올려 보면 이해가 간다. 그들은 철저히 선민의식에 사로잡힌 이들이다.
아마 자작령의 백성들이 그 정도 먹고 살 수 있게 해 준 것만 해도 큰 은혜를 내린 것이라 생각할 위인들이다.
‘규모는 이곳보다 작아도, 역시 핑귀스 시가 훨씬 낫군.’
자작령의 주도인 갈턴홈이 이 정도라면, 자작령의 다른 도시는 이보다 심하면 심하지 덜하진 않을 것이다.
동시에 이것이 현실이다.
‘불쌍한 백성들이군.’
베니오는 자작성에 도착했다. 그리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작성의 규모가 베니오의 그것을 가볍게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공작성보다 화려하군.’
자작성의 크기는 공작성보다 첨탑 두 개 정도가 없는 크기다. 봉토를 받은 가신 가문이니 공작성보다 크게 만들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화려함은 공작성보다 위다.
‘어울리지 않아.’
자작성만 보면 크고 화려했다. 하지만 자작성은 몹시 이질적이었다. 자작성에 오면서 본 외부의 풍경과는 마치 다른 그림을 찢어다 붙인 것처럼 당최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곳이 자작성이오?”
“예, 대공자님.”
“크구려.”
“자작님의 자랑이옵니다.”
베니오의 말에 담긴 조롱을 집사는 눈치채지 못했다. 베니오는 혀를 한 번 쯧하고 찼다.
“자작님은 어디 계시오?”
“자리를 비우셨습니다.”
갈턴 자작은 영지에 붙어 있는 일이 거의 없다. 이렇게 큰 자작성을 지어 놓은 것도 자신의 권세를 자랑하기 위해서였다.
대신 갈턴 자작은 1년 중 300일 이상을 카사케플러에서 보낸다. 자작성에서 일어나는 일도 전부 카사케플러에서 처리했다.
하지만 이번에 자리를 비운 건 다른 이유 때문이다.
‘구리 광산. 결국 먹었나?’
토비아 가문의 1년 소출 중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구리 광산. 그 지분을 토비아 가문의 우호 가문이던 게셍 가문으로부터 갈턴 가문이 양도받은 것이다.
크리토 전 대공자가 죽은 후 토비아 가문의 성세는 위축됐다. 갈턴은 그 틈을 노리지 않은 것이다.
‘능력은 있네.’
과도한 야심을 가진 갈턴이지만 토비아 가문의 구리 광산의 대주주가 된 것을 보니 확실히 능력은 있다. 이로 인해 갈턴 가문은 토비아 가문의 구리 광산 운영에 간섭할 수 있게 됨으로써 명실공히 팔신가 중 수좌에 올랐다.
‘그럼 앞으로 노릴 건 나겠네.’
베니오는 피식 웃었다. 수잔나 부인이 베니오를 이곳에 보낸 것도 그 때문이리라. 토비아 가문을 꺾었으니 이제 갈턴 가문이 상대할 것은 베니오밖에 남지 않은 셈이다.
“할머님을 뵈어야겠소.”
“송구하오나 마님께서는 건강이 좋으시지 않아 바로 보실 수 없사옵니다.”
“건강이 좋지 않으시다.”
베니오가 피식 웃었다. 그 순간 베니오의 머리 위로 광채를 발하는 세 개의 헤일로가 떠올랐다.
“내 스승님이 누구인지 집사는 듣지 못한 모양이구려.”
신성력.
집사의 표정이 멍해졌다. 그러더니 얼핏 낭패했다는 기색이 그의 눈을 스쳤다.
베니오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몰랐다면 모를까 아는데 당하는 건 등신이다.
“내 갈 길이 멀어서 그러오. 할머님께 빨리 안내해 주시구려.”
베니오의 두 눈이 번쩍였다. 최상급 익스퍼트가 쏟아내는 안광 앞에 집사가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베니오는 곧 자작성의 깊숙한 곳으로 안내됐다.
“이곳에 할머님이 계신다?”
“건강이 좋지 않으신지라.”
“이런 곳에 계시면 안 좋던 건강이 좋아지기라도 하는 모양이군.”
깊숙이 안으로 들어갈수록 빛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습습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건 보호가 아니라 거의 방치다.
“저, 대공자님.”
“안내나 하시오.”
“예. 예.”
수잔나 부인이 무슨 야료를 꾸미고 있던 것인지는 몰라도 이미 어그러졌다. 베니오는 집사의 뒤를 따라 안으로 향했다. 그러고는 작은 문 앞에 도착했다.
“이 안에 계십니다.”
“편찮으시다고 하지 않으셨소?”
“예, 예.”
“알겠군.”
베니오는 픽 웃었다. 역시 갈턴 자작과 수잔나 부인답다고 해야 할까. 분명 열 달을 배 아파 그들을 낳아 준 친모인데, 문밖으로 약향 하나 나지 않았다.
“여시오.”
끼익.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 안에 삐쩍 마른 노인이 죽을 날만을 기다린 채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안에서는 오물의 악취가 풍겼다. 베니오는 멍하니 허공만을 바라보고 있는 갈턴 자작과 수잔나 부인의 친모, 헬라 갈턴을 보며 혀를 쯧하고 찼다.
“이거였나, 부인의 꿍꿍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