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s Lazy Martial Arts Genius RAW novel - chapter (234)
공작가의 게으른 무공천재-234화(234/300)
공작가의 게으른 무공천재 (234)
잊힌 여인 (4)
“할머님.”
헬라 갈턴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마지막 기억 속에는 베니오 같은 장성한 손주는 없었기 때문이다.
“할머님이라니. 제, 제 손주는 마지아, 그 아이인데. 그 아이는 어린데, 왜 제게 할머님이라고….”
베니오는 쓰게 웃었다. 헬라 갈턴의 기억은 아마 10년 전쯤 멈춘 모양이다. 그렇다는 건 그녀가 이 감옥 같은 골방에서 무려 10년이나 되는 긴 세월을 보냈다는 뜻이다.
“베니오 케플러입니다.”
“케, 케플러? 케플러면 수잔나 그 아이…. 아!”
헬라 부인의 눈이 커졌다. 잊힌 기억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서서히 자리를 잡아 가고 있는 모양이다. 베니오는 손가락을 딱하고 튕겼다.
화아악!!
신성력이 헬라 부인의 몸을 투과했다. 헬라 부인은 자신의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끼며 베니오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베니오 케플러라면. 유페르 가문의….”
“예. 클로에 유페르가 제 어머님 되십니다.”
유페르 가문이 멸문당했다는 것을 헬라 부인은 기억했다. 괜한 이야기를 했다는 표정을 짓는 헬라 부인에게 베니오가 고개를 가로저어 보였다.
“괜찮습니다. 이미 지난 일입니다, 할머님.”
“할머님이라. 솔직히 제가 베니오 공자에게 그런 소리를 들을 처지는 되지 않지요. 그렇지 않나요?”
헬라 부인은 베니오를 적대하지 않았다. 그녀는 평생을 제 자식을 자신의 초라한 신분으로 인해 무시 받지 않도록 만드는 것으로 모든 정력을 쏟아부으며 살았던 여인이다.
게다가 그녀의 기억 속 마지아는 아직 어리다.
그런 마지아를 케플러 가문의 후계자로 만들려는 건, 아마 헬라 부인이 쓰러진 다음에 추진한 일이었으리라.
“근데 여기는 어딘가요? 내가 왜 이런….”
“잠시만요.”
베니오는 일단 그녀에게 현실감을 일깨워 줄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행히 방 안에는 먼지가 켜켜이 쌓인 거울이 있었다. 베니오는 그 거울을 질질 끌고 와 소매로 먼지를 스윽 닦아 냈다.
그러자 잿빛이 내려앉은 것 같은 골방이 거울에 비췄다. 헬라 부인은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잠시간 헬라 부인은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언제고 단정함을 추구하던 자신의 모습과는 다르게 거울 속 10년이 지난 자신의 모습은 추레한 노인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어코 그녀는 그것이 자신임을 인지했다.
“아, 아, 아?”
베니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녀에게 시간을 주었다. 헬라 부인은 자신의 얼굴을 매만졌다. 주름지고 푸석한 얼굴. 제멋대로 자라 뒤엉킨 머리. 목이 다 늘어나고 이상한 자국이 들러붙은 옷에 움푹 팬 볼과 앙상한 뼈만 남은 몸.
헬라 부인은 이상한 소리를 내며 그것이 자신임을 인지하는 데 한참이 걸렸다.
“그랬군요.”
스르륵.
헬라 부인은 한참이 지나서야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헬라 부인의 얼굴이 수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베니오는 그녀에게 말했다.
“혹시 기억이 나십니까.”
“나요. 언젠가 이렇게 되리라 예상은 했으니까요. 기억을 잃는다는 거, 참 무섭군요.”
베니오는 쓸쓸한 표정을 짓는 그녀에게 말했다.
“말씀 편히 해 주십시오, 할머님.”
“그래도, 될까요?”
“예.”
베니오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헬라 부인이 따뜻한 눈으로 베니오를 쳐다봤다.
“잘 컸구나. 사돈의 걱정이 컸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10년 전, 베니오는 불과 8살이었다. 그러나 일찍이 유페르 가문이 멸문당하면서 가문에서 내놓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베니오는 이미 그때부터 골칫덩어리였다.
“많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들어야 할 말이 많겠구나.”
“그 전에 한 가지 여쭙고 싶습니다.”
어쩌면 헬라 부인이 기억하지 못하고 있거나, 기억하고 있더라도 꺼내기 힘든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베니오보다 한발 먼저 헬라 부인이 선수 쳤다.
“기억이 하나씩 돌아오고 있구나.”
베니오가 물으려던 것이 무엇인지 미리 짐작한 헬라 부인이다. 그녀의 표정이 슬픈 이유는 그래서다. 10년간 금치산자가 되어 사실상 방치되었다고는 하나 그렇다고 해서 중간중간 기억이 돌아오지 않았던 건 아니기 때문이다.
“일단 나가시지요.”
“그래야겠구나. 내가 창피한 꼴을 보였어.”
헬라 부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그녀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거려 베니오가 부축을 해야만 했다.
“더러운데.”
“괜찮습니다, 할머님.”
“그럼 신세 좀 지마.”
만약 베니오가 헬라 부인의 상황이었다면 베니오는 절대로 헬라 부인처럼 말하고 행동할 수 없었을 것이다.
헬라 부인은 지금 막 미몽에서 빠져나온 사람 같지 않았다. 그녀는 기품이 흘러넘치는, 그 누구보다도 귀족다운 귀족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가 평민이라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자식보다 훨씬 더 귀족다운데.’
베니오는 그녀를 조심스럽게 부축했다. 헬라 부인의 몸은 지극히 야위어 있었다. 베니오의 신성력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두 발로 서지도 못 했을 것이다.
그래도 중간중간 휴식을 취하고, 베니오의 힐 법술을 받아야만 했다. 그러나 그녀는 단 한 번도 힘든 기색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자존심.
기억을 잃고 자식들에게 버려진 헬라 부인이다. 그럼에도 그녀를 지탱하는 마지막 한 줄기의 자존심이 있었다.
갈턴 가문의 대모.
그 자리에 도달하기 위해 수년간의 치욕과 수모도 참아 냈던 그녀다. 말년이 좋다고는 할 수 없어도 헬라 부인은 여장부였다.
“많은 것이 바뀌었겠구나.”
“예. 제가 대공자가 되었으니까요.”
“베니오 네가?”
헬라 부인이 헛헛하게 웃었다.
“나를 보면 피하기만 하던 너다. 할머니라고 해도 줄곧 도망가기만 했던 너였지. 그런 네가 이리 장성하여 나를 보러 왔구나.”
헬라 부인은 그녀의 골방 앞에 죽어 나자빠진 시체도 보았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그녀는 베니오가 대공자가 되었다는 것을 금방 납득했다.
“크리토는?”
“크리토 형님은 죽었습니다.”
“죽어? 어째서?”
베니오는 그녀에게 최근에 있었던 일을 설명해 주었다. 10년간 자리만 보전하고 있었던 헬라 부인은 바깥 돌아가는 사정을 거의 알지 못했다.
그녀는 듣는 내내 안타깝다는 듯 혀를 쯧쯧하고 찼다. 그런 그녀를 데리고 나온 베니오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토니에게 말했다.
“집사를 끌고 와.”
“예, 도련님.”
집사는 끄나풀이다. 하지만 동시에 연결 고리이기도 하다. 그 모습을 헬라 부인이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안 물어보십니까.”
“무엇을 물어볼까. 내 배로 낳은 내 자식의 마음조차도 알지 못했거늘.”
헬라 부인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베니오는 그런 그녀를 재촉하거나 압박하지 않았다. 10년이란 세월을 잃은 노부인을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 삼부인께서 보내신 편지입니다.”
“편지를 보냈어?”
“예.”
나오면서 수잔나 부인의 편지를 챙긴 베니오다. 헬라 부인은 그럼에도 일말의 기대감을 품고 그 편지 봉투를 받아 들었다.
찌익.
헬라 부인은 봉투를 찢었다. 그 안에서 편지지가 나왔다. 그런데 그 편지지는 백지였다.
애초에 할머님께 전달해 달라는 서신 자체가 미끼에 불과했기에, 수잔나 부인은 아무런 글도 쓰지 않은 것이다.
헬라 부인의 표정이 참담해졌다.
“그랬구나.”
헬라 부인은 손에 쥔 편지를 스윽 내렸다. 편지를 내린 헬라 부인의 눈빛이 변했다. 헬라 부인을 부축한 베니오가 나타나자 자작성 내가 소란스러워졌다.
우르르르!
집사와 사라졌던 베니오가 홀로, 웬 노인을 데리고 나타나자 자작성 내부의 경비병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들을 보는 베니오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촤앙!!
베니오는 한 손으로 화령을 뽑아 들었다. 그러자 경비병들이 움찔했다. 그리고 화령의 붉은 검신에서 오러가 뭉클거리며 피어올랐다.
“물렀거라.”
베니오의 싸늘한 목소리가 좌중을 압도했다. 경비병은 오러를 보고는 사색이 되어 뒷걸음질을 쳤다.
“난 케플러 가문의 대공자! 베니오 케플러다!”
베니오는 일부러 자신의 도착을 알리지 않았다. 그리고 수잔나 부인은 베니오가 갈턴 자작령에 간다는 것을 철저하게 숨겼다.
하지만 베니오는 지금 그것을 드러냈다.
“내 앞을 가로막는 자. 용서치 않을 것이다. 대공자의 이름을 걸고.”
케플러 공작령 안에서 감히 대공자란 이름을 가벼이 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게다가 대공자라면 공작가의 수치 소리를 듣다가 귀족계를 넘어 평민들에게까지 그 이름이 서서히 알려지고 있는 기린아다.
“하녀장은 어딨는가!”
베니오는 목소리를 높였다. 웃긴 것은 주변의 하녀와 시종 중 헬라 부인의 얼굴을 알아보는 이가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이었다.
안주인이던 헬라 부인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 한 가지뿐이다. 갈턴 자작과 수잔나 부인은 헬라 부인을 방치한 후 그녀의 흔적을 철저히 지웠다는 뜻이다.
그것을 짐작한 헬라 부인의 표정이 처참했다. 그때 하녀들 사이에서 몸집이 큰 하녀장이 허둥거리며 뛰어나왔다.
“부, 부르셨습니까, 대공자님.”
“할머님. 알아보시겠습니까?”
베니오는 하녀장이 아니라 헬라 부인에게 물었다. 그러자 하녀장은 베니오의 부축을 받고 있는 헬라 부인을 쳐다봤다.
처음에는 하녀장도 알아보지 못했다. 애초에 헬라 부인에 대한 관리는 수잔나 부인의 입김으로 입이 무거운 수잔나 부인의 명에만 따르는 하녀들만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녀장이라고는 하나 수잔나 부인의 입김을 넘어설 도리는 없다. 그렇기에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하녀장의 눈가가 바르르 떨렸다.
그리고 이내 하녀장의 입에서 거의 비명과도 같은 소리가 터져 나왔다.
“대, 대모님! 헬라 대모님!!!!”
“자네, 많이 늙었어.”
헬라 부인이 처연하게 웃었다. 베니오는 헬라 부인을 알아본 하녀장에게 말했다.
“할머님을 단장해 드려라. 성내 의원을 불러 할머님을 진단케 하고 당장 기사를 불러 자작성을 봉쇄하라.”
“보, 봉쇄라 하심은.”
“집사!!!!”
베니오가 화령을 손에 든 채 눈을 희번덕거렸다.
“집사가 살수를 고용하여 나를 암살하려 하였다!! 각하께서 부재하신 이 틈을 타 그런 일이 벌어졌으니, 이는 공작가에 대한 도전이요 반역이다!!! 그물!!!”
스르륵.
경악이 자작성 내부를 휩쓸었다. 반역이라니. 그것도 대공자를 향해 봉신 가문인 갈턴 가문 내세어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뜻이다.
베니오의 호토에 그물의 요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공작가의 암중검인 그물이 모습들 드러내자 안색이 새파래졌다.
그물이 나타난 곳에는 반드시 피바람이 분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집사와 살수에 대한 모든 것을 파악하라. 그리하여 단 한 톨의 의심도 없이 모든 것을 명명백백히 공개하라.”
“예. 대공자.”
베니오는 카사케플러를 떠난 순간부터 그물이 어디선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고 예상했다.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 베니오가 곧 공작대리로 다시 카사케플러로 돌아와야 하기 때문이다.
공작대리라고는 하나 그 순간만큼은 케플러 공작이나 마찬가지이니, 그물이 보좌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안에는 그물의 수장인 시누스의 베니오에 대한 호기심도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버냉키.”
“예, 대공자.”
“시에 계신 스승님을 모셔 와라. 오메가 부대의 출정을 허하니, 말을 달려 이곳에 도착하라 이르라.”
“명을 받듭니다.”
핑귀스 시의 병력까지 동원한 베니오가 두 눈을 부릅떴다.
그런 베니오의 눈에 그를 두려운 표정으로 쳐다보는 이들의 얼굴이 날아와 박혔다, 짐짓 선량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이들은 갈턴 자작과 수잔나 부인의 수족이다.
아마 금세 그곳으로 연락이 닿을 것이다.
‘어서 와라, 갈턴 자작. 네놈의 자작성에 내 깃발이 꽂혀 휘날리는 것을 보면 복장이 꽤나 터질 것이다.’
그러나 칼자루는 베니오에게 있다. 자작성 내에서 베니오에 대한 암살 기도가 있었으니 그에 대한 첫 번째 책임은 자작성의 주인인 갈턴 자작에게 있는 셈이다.
즉 수잔나 부인의 알량한 수작이 오히려 부메랑이 되어 그들에게 돌아간 셈이다.
“나를 기만하려 한 죄. 톡톡히 치러야 할 것이다.”
멀리 카사케플러에 있을 수잔나 부인을 떠올리며 베니오가 차갑게 중얼거리고는 휙 하고 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