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s Lazy Martial Arts Genius RAW novel - chapter (269)
공작가의 게으른 무공천재-269화(269/300)
공작가의 게으른 무공천재 (269)
살려면 뭘 못 하겠어 (4)
도철의 전신에서 흉측한 혈기가 일어났다. 도철의 털이 올올히 거꾸로 치솟은 것이, 도철의 분노가 그만큼 대단하다는 것의 반증이었다.
“지금 무어라 하였느냐?”
“베, 베니오 케플러가 감찰대신으로 부임한 후 황궁으로 들어가는 철광석에 대한 전수조사 과정에서.”
“그 과정에서?”
“사, 산공석이….”
도철에게서 혈광이 번뜩였다. 그 순간 벌벌 떨면서 도철에게 아모리아 제국에서 올라온 소식을 보고하던 묘인족 하나가 꺼억하는 소리를 내더니 온몸의 피를 빼앗긴 것처럼 바싹 마른 채 이마를 그대로 바닥에 쿵하고 박았다.
푸스스.
온몸의 수분을 잃어버린 묘인족의 시체는 땅에 부딪힌 충격으로 인해 가루가 되어 바스러졌다.
“크아아악! 베니오, 베니오 케플러!!!”
콰과과과광!
도철의 주변으로 혈무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도철의 폭주에 혈무가 날뛰기 시작하자 그에 스친 모든 생명체가 고목처럼 생기를 빼앗기며 축 늘어졌다.
“꺼, 꺼흑….”
“사흉이시여…. 제, 제발 자비를…. 꺼흑.”
“컥!”
부르르
도철의 시중을 들어주기 위해 같은 공간 안에 있던 수인족 시종과 뱀파이어 하녀가 피 끓는 소리를 내면서 쓰러졌다.
한 번 눈깔이 돌아간 도철의 주변에 존재하는 것이라고는 죽음뿐이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서른 명이 넘는 생명을 앗아 가고 그들의 몸에 있는 혈액을 흡수하고서야 도철의 눈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후.”
쌓인 분노는 이렇게 한 번씩 폭발시켜야 한다. 도철은 얼굴을 쓸어내리며 심호흡을 깊게 했다. 그런 도철의 주변에 비쩍 마른 미라가 되어 시체가 널려 있었지만 도철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베니오 케플러. 생강시부터 시작해서 간자를 색출한 것도 모자라 이제는 산공석까지.”
상귀스 왕국과 아모리아 제국의 국력은 단순 비교를 하면 100배 가까이 차이 난다. 지난 천 년간 가장 부유한 땅을 차지하고 힘을 비축해 온 아모리아 제국의 저력은 만만히 볼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귀스 왕국에게는 다 계획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제법 그럴듯했다. 그것을 베니오 케플러라는 방해꾼이 나타나 하나씩 수포로 만들기 전까지는 분명 그러했다.
‘일찍 처리를 했어야 했는가.’
아직 아모리아 제국의 주의를 끌 때는 아니었기에, 그 와중에 삼대 공작가의 후계자에 더 이상 손을 댈 수는 없었기에 인내했던 것이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미 지난 일이다.
어차피 베니오 케플러, 그놈은 죽을 것이다.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놈을 산 채로 잡아다가 자신이 보는 앞에서 갈기갈기 찢고 싶었다. 죽어 가면서 내는 끔찍한 비명을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미친놈들이 나섰으니 그걸로 만족해야지.”
도철이 자신의 양 뿔을 매만졌다.
퉁퉁.
그때 밖에서 창문을 퉁퉁 두들기는 소리가 났다. 커튼을 걷자 그곳에 빨간 눈을 한 채 앉은 까마귀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도철의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가 맺혔다.
“벌써? 빠르군.”
그러면서 창문을 열자 털을 고르고 있던 까마귀가 마치 방의 주인이라도 된 것처럼 창틀을 뛰어넘더니 도철의 어깨 위로 올라갔다.
“그래. 베니오 케플러. 어디 이번에도 무사할 수 있나 한 번 볼까?”
* * *
산공석은 황실 마탑의 손에 넘어갔다. 황실 마탑의 마탑주는 제국 삼대 공작이자 진리의 대마법사의 후예인 혜룡가의 가주인 위스미아 베룸이었다.
그녀는 산공석을 보고는 눈을 빛냈다.
“기이하네요. 흑마법과 연금술. 그리고 다른 기이한 것이 섞였어요.”
“기이하다?”
“사술. 네크로맨서의 그것처럼 끈적한 무언가. 아마 산 사람에게서 뽑아낸 고통의 정수인 듯싶군요.”
고통의 정수라는 소리에 황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 자리에서 유일하게 그걸 알아듣지 못하는 건 베니오뿐이다.
‘고통의 정수?’
하지만 이내 베룸 공작의 추가 설명이 이어졌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죠. 아무리 심한 고문을 해도 그에 적응할 정도니까요. 그런 인간의 적응력을 넘어선 고통을 100일 이상 가했을 때 흐르는 눈물을 모은 것이 바로 이 고통의 정수죠.”
상귀스 왕국이 얼마나 무식한 짓을 저질렀는지 안 봐도 뻔하다는 듯 베룸 공작은 혀를 찼다.
“태양교에서 이 사실을 알면 가만히 있을 리 없어요, 폐하.”
“태양교를 끌어들이자는 소리인가.”
“아군은 하나라도 더 많을수록 좋겠지요.”
베룸 공작은 할 말을 다 했다는 듯 황제가 가라고 허락하지 않았는데도 인사를 꾸벅하고는 알현실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그녀에게 무례하다 지적하는 이는 없다.
당대의 황제와 현 베룸 가주가 오랜 벗이라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황제도 베룸 공작이라면 웬만해서는 다 눈감아 주는 편이었다.
“베니오 감찰대신.”
“예, 폐하.”
“그대의 공이 무척 컸다. 그대의 말대로 감찰관의 노고를 내 기억하도록 하지.”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감찰관들은 지난 닷새간 말 그대로 몸이 부서져라 하루에 자는 시간도 거의 한두 시간 정도로 줄인 채 일에 매달렸다.
그 결과.
산공석과 관련된 수많은 귀족과 상인들이 황도의 감옥을 가득 채웠다. 황제는 자신의 그늘에 이렇게 많은 버러지들이 있었다는 것에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그보다 산공석에 대한 분석이 먼저였다. 그래서 그것을 베룸 공작을 불러 그녀에게 맡겼고, 황제의 예상대로 제국 최고의 마법사인 그녀는 수월히 결론을 내놓은 것이다.
“아니. 겸양할 필요 없다. 감찰대신이 아니었다면 최전선의 전력이 크게 깎일 뻔했으니까. 오러와 마력을 제한하는 광물이라니. 상귀스 이놈들….”
황제의 분노가 서릿발처럼 뻗어져 나왔다.
“하여 감찰대신의 공을 치하하려 한다.”
“폐하. 감당키 어렵사옵니다.”
“겸양하는 척하지 말라.”
황제가 피식 웃었다.
“이미 그대가 내 여식과 연애를 한다고 했을 때부터 그대를 잘 안다 자부하니.”
“엄….”
비앙카 황녀와의 연애 사실이 황제의 귀에까지 들어간 모양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비앙카 황녀는 그 사실을 숨기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황녀의 연애!
이건 베니오가 벌인 일이나, 전쟁과는 다르게 황도와 사교계를 술렁이게 만든 초특급 스캔들이다.
‘코를 제대로 꿰어 놨구먼.’
황영이 그걸 막지 않았다는 건 황제의 묵인이 있었다는 뜻이다. 즉 황제 역시 베니오를 사윗감으로 점찍었다는 소리다.
“그대는 짐에게서 가장 중요한 것을 이미 가져갔느니라. 그리하여 더 내려 줄 것이 없다 생각하지만, 또 제국 정무라는 것이 그렇지 않으니 통탄할 따름이다.”
황제의 말투가 짓궂었다. 베니오는 그저 황은이 망극하다며 고개를 납작 숙이는 것 외에는 따로 대처할 방법이 없었다.
“감찰대신은 알현실에서 나가는 즉시 나이트 조슈아를 따라 그가 안내하는 곳으로 가라. 그것이 짐이 감찰대신에게 내리는 상이니라.”
베니오는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누구 말이라고 앞에서 반문하겠는가. 베니오가 읍을 길게 하자 황제는 축객령을 내렸다.
“이로써 감찰대신 직 역시 회수한다. 케플러 가문의 베니오에게 드레이크 킬러를 내어줄 터이니 편히 영지로 돌아가도 좋다.”
황제가 베니오를 황도로 호출한 목적이 다 끝났다는 소리다. 베니오는 알현실에서 나왔다. 그런 베니오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베니오 대공자.”
“월광 경.”
“폐하께 이야기는 들으셨지요? 따라오시지요.”
제국 보고나 어떤 물질적인 상을 내려 준 것이 아니다. 베니오는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조슈아는 앞장서 걸어가기 시작했고 베니오는 그 뒤를 쫄래쫄래 따랐다.
“베니오 대공자.”
“예, 월광 경.”
“폐하께서 베니오 대공자에게 거는 기대가 크십니다.”
“황은이 망극할 따름이지요.”
베니오는 겸손한 척 의뭉을 떨었다. 조슈아는 그런 베니오를 보고는 설핏 웃었다.
“들어가십시오.”
“여긴….”
“로열나이트의 숙소입니다.”
조슈아가 베니오를 데려간 곳은 로열나이트의 숙소다. 말이 숙소지 제국 최고 기사단인 로열나이트는 황궁 한 켠에 그들이 지낼 수 있는 별궁이 따로 있었다.
그곳에 들어간 베니오를 조슈아는 연무장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베니오는 낯익은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철벽 경?”
황제의 첫 번째 검, 철벽의 크리스토퍼 존슨이 무릎 위에 자신의 대검을 올려놓은 채 베니오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안색은 창백했다. 하지만 철벽 경에게서는 지난번에 느껴진 끈적한 혈기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무사하신 듯하여 다행입니다.”
“베니오 대공자 덕분이오.”
야윈 기색이 역력한 철벽 경이 베니오에게 묵직하게 말했다. 그는 말이 거의 없는 과묵한 성격이었는데 그래서 황제가 그를 더 총애했다.
“덕분에 이리 몹쓸 몸이나마 살았으니.”
“기억하십니까?”
“기억하오. 내 몸이 몸이 아니었던 그때를. 머릿속에서 계속해서 목소리가 들리더이다.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겠더군.”
철벽 경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오러 마스터에 오를 정도로 강대한 정신력을 가진 그다. 하지만 에반 크뤄르에게 치명상을 입으며 약해진 정신의 벽이 뚫린 것이다.
“적의 간사한 사술이었습니다.”
“난 하마터면 내 검을 걸고 맹세한 주군을 해할 뻔하였소.”
“철벽 경.”
“자책이 아니오.”
철벽 경은 대검을 손에 그러쥐었다. 그런 그에게서 광폭한 기세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날 죽이시지 그러셨소.”
“철벽 경.”
“이리 못난 사내로 만들어 살게 할 바에는 말이오.”
철벽 경의 두 눈에 서린 원망을 본 베니오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는 대검을 쥔 그를 보면서 허리춤의 화령을 뽑아 들었다.
“베니오 대공자!”
그런 베니오를 보고 기함한 조슈아가 말리려고 했지만 베니오는 손을 들어 그를 막았다.
“그래서 죽으시렵니까.”
철벽 경은 죽음을 각오했다. 고결한 그의 긍지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황제에게 충성을 맹세한 기사로, 주군을 해할 뻔했다는 사실이 그를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심마다.
베니오는 철벽 경을 향해 조소를 지어 보였다.
“경의 실력이 부족하여 일어난 일을. 내 탓을 하십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이건 전부 경이 부족해서 생긴 일이란 것을.”
“베니오 대공자!!!!”
푸확!!!
철벽 경의 대검이 광풍을 휘감은 채 베니오를 향해 날아들었다.
쾅! 쾅! 쾅! 쾅!
서걱!!
파바바박!
퍽!
철벽 경의 대검이 베니오의 전신을 노리고 쇄도했다. 하지만 베니오의 화령은 한 치의 밀림도 없이 그의 대검을 옆으로 흘려내며 날카로운 반격을 날렸다.
오러 마스터 간의 대결.
하지만 그 대결은 예상외로 놀라울 정도로 싱겁게 끝났다.
타앙―!!
휘리릭!
퍽!
화령과 충돌을 견디지 못한 철벽 경의 손아귀가 찢어지면서 대검이 날아가 버렸기 때문이다. 그만큼 철벽 경의 상태가 아니라는 뜻이다. 무기를 놓친 철벽 경은 자신의 목 앞에 멈춰선 베니오의 화령을 보며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내 검에 죽으려 하십니까.”
“그러면 아니 되오? 날 살렸으니, 그대가 죽이시지 그러셨소.”
“솔직하지 못하십니다.”
베니오는 화령을 납검했다. 철벽 경은 고개를 떨궜다. 자신의 얄팍한 수를 베니오에게 훤히 드러낸 탓이다.
“죽을 자리를 찾으신다고 말씀하시면 됩니다만.”
“….”
철벽 경이 찾는 건 죽을 자리다. 상처 입은 그의 긍지는 죽음 이외로는 증명할 방도가 없었다.
베니오는 그런 그를 보면서 웃었다.
‘황제가 나에게 하사한 선물.’
그것이 무엇인지 감이 왔기 때문이다.
“철벽 경.”
“….”
“내 기사가 되지 않겠습니까?”
철벽 경의 눈이 커졌다.
“그게 무슨….”
“폐하께서는 철벽 경의 이러한 모습을 예상하신 모양입니다. 저를 이곳으로 안내하신 것을 보니 말입니다.”
황제의 이야기가 나오자 철벽 경은 고개를 푹 숙였다. 황제를 볼 면목이 없는 것이다. 철벽 경의 이런 완벽주의자적인 성향을 황제는 꿰뚫고 있었다.
“앞으로 폐하의 검은 아니 되겠지만, 저도 나름 상귀스 것들과 꽤 악연이 있습니다. 그러니 경께서는 지금 이 수모와 수치를 그들에게 푸십시오. 죽을 자리를 찾지 마시고.”
철벽 경이 죽으면 좋아할 것은 상귀스밖에 없다. 베니오의 그 말에 철벽 경의 눈에 빛이 돌아왔다.
“상귀스와 싸우게 해 준다는 것이오?”
“피할 수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스윽.
철벽 경은 베니오를 향해 무릎을 꿇고 자신의 손에 들린 대검을 내밀었다.
“상귀스를 처단하는 그 날까지 이 검을 바치겠소.”
방향을 상실하고 헤매던 오러 마스터, 철벽의 크리스토퍼 존슨이 베니오에게 조건부 충성을 맹세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