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s Lazy Martial Arts Genius RAW novel - chapter (280)
공작가의 게으른 무공천재-280화(280/300)
공작가의 게으른 무공천재 (280)
딱 걸렸네 (5)
한때 케플러 공작의 정실이자 대공자인 크리토의 친모라는 영향력으로 항시 방문객으로 들끓었던 조세핀 부인의 별궁 같은 대저택은 사람의 발길이 뚝 끊긴 지 오래였다.
항상 사람들로 게이트의 손잡이 칠이 벗겨질 정도로 사람들로 가득했던 곳이다.
그랬던 곳은 이제 소수의 사용인만이 오갈 뿐, 더 이상 외부인이 찾아오지 않았다.
꾸욱.
조세핀 부인은 창문에 서서 창밖을 내려다보며 입술을 꾸욱 깨물었다.
‘이게 전부 베니오 케플러, 그놈 때문이다.’
늘 우아하고 기품있던 조세핀 부인은 그 전의 모습을 떠올릴 수 없을 정도로 수척해졌다. 그녀가 그렇게 변하기 시작한 건 영원한 숙적일 것 같았던 삼부인, 수잔나 부인이 모든 것을 잃고 낙향하면서부터다.
‘설마, 그이가 수잔나를 버릴 줄이야.’
케플러 공작과 수잔나 부인 사이에 이성 간의 사랑은 없었다. 애초에 수잔나 부인도 그것을 바라진 않았다.
정략결혼.
케플러 공작은 팔신가의 가문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대대로 여느 케플러 공작이 그래 왔듯 팔신가의 여식을 받아들였을 뿐이다.
하지만 그 관례를 케플러 공작이 수잔나 부인과 이혼함으로써 깼다.
대신 갈턴 가문을 반역의 고삐를 채워 대공자가 된 베니오가 그 고삐를 손아귀에 쥠으로써 정략결혼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갈턴 가문을 손에 넣었다.
오랫동안 유지해 온 전통이 깨진 것이다.
자연히, 베니오의 대척점에 섰던 조세핀 부인은 초조해질 수밖에 없다.
특히 그녀의 동생이자 토비아 가문의 가주인 매닉이 그녀의 줄어든 영향력을 빌미 삼아 발언권을 축소하려는 움직임이 보이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매닉. 어찌 네가 나에게.’
토비아 가문이 지금의 성세를 누리게 된 데에는 조세핀 부인의 공이 크다. 그녀가 케플러 가문의 정실이고, 크리토가 공작이 되는 것이 거의 기정사실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귀스 왕국이 크리토를 살해하면서 모든 비극이 시작됐다.
조세핀 부인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아.”
주륵.
모르고 이에 힘이 들어간 것인지 입술에서 붉은 피가 흘렀다. 조세핀 부인은 그것을 조심히 손등으로 닦아 냈다.
손등에 묻어 나오는 새빨간 피. 그 피를 보자 조세핀 부인의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러고 있어서는 안 돼.”
다시 영광을 되찾아 와야 한다. 그걸 동생에게서 찾아와야 하는지, 베니오에게서 찾아와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확실하다.
딸랑딸랑.
옆에 놓인 종을 흔들자 시녀가 들어왔다. 조세핀 부인이 시녀에게 말했다.
“그라허 자작이 지금쯤 집무실에 도착했으렷다?”
“예, 마님.”
“이번에는 제아무리 베니오, 그놈이라고 해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니라.”
조세핀 부인의 눈이 반짝하고 빛났다. 지금 제국 황실에 의해 역적으로 지목된 검공 미하일을 베니오가 숨겨 주고, 치료해 주었다는 것을 공작성 내부에 심어 놓은 그녀의 심복을 통해 전해 들었고, 그것을 제국 황실에 신고한 것이다.
스스로 공작가 내부를 뒤흔든 셈이지만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처럼 줄어드는 권력에 정신을 못 차린 조세핀 부인은 그걸 전혀 자각하지 못했다.
그저 눈엣가시 같은 베니오 케플러를 어서 치워 버릴 생각밖에 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일은 그녀가 바라는 대로 흐르지 않는다.
꽝!!!
와아아아!!
창밖에서 폭발 마법이 터진 것 같은 굉음과 함께 군홧발이 부서진 철문을 짓밟고 넘어오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그녀는 창밖을 내다본 뒤 믿을 수 없다는 듯 눈가에 작게 경련을 일으켰다.
“역적 조세핀 토비아를 포박하여 공작성으로 압송하라!!!”
손에 기다란 창을 든 디아토의 명령 아래 오메가 부대가 조세핀 부인의 저택을 거칠게 휩쓸었다.
* * *
“그라허 자작님을 뵙습니다.”
“베니오 대공자.”
베니오가 손을 모아 그라허 자작에게 공손하게 인사했다. 그라허 자작은 규율성의 감찰국장으로 모든 귀족에게 공포의 대상이었으나 베니오를 보는 그의 시선은 여느 감찰대상을 보는 것과는 달랐다.
“내 그대 덕분에 기적을 경험하였소이다.”
수북해진 정수리를 쓰다듬는 자작의 손길이 조심스러웠다. 발모수의 효능을 톡톡히 본 사람 중의 하나였다.
베니오는 빙긋 웃으며 그를 안쪽으로 안내했다.
“필요하신 모든 자료는 제 가신들에게 일러 놓았으니 감찰원을 보내시어 살펴보시면 됩니다.”
“음.”
그라허 자작은 베니오에게 호의적이었다. 그라허 자작은 전혀 놀라지 않은 베니오를 보고는 풀썩 웃었다.
“미리 알았나 보구려.”
“누가 보냈는지는 알고 있었습니다만.”
“공작성을 벌써 그리 장악하시었소? 역시 알칸트라의 영웅이외다.”
감찰국장은 정치적인 중립을 표방한다. 그렇기에 그들은 그 어떠한 정치적 견해를 가지지 않는다.
하지만 많은 후계 구도란 전쟁터 위에 선 귀족들은 그런 감찰국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칼로 써먹기 위해 휘두르는 경우가 많았다.
조세핀 부인의 투서 같은 경우가 딱 그러하다.
“역적 미하일이 공작성에 숨어들 리가. 그게 말이 되는 이야기요? 검공령에서 예까지 거리가 얼마라고. 쯧쯧.”
그라허 자작은 베니오에게 힘들겠다는 듯 위로의 눈길을 보냈다.
“굳건히 버티시오. 원래 후계 구도라는 것이 그리 치사하고 더러운 법이오.”
그라허 자작은 알아서 머릿속으로 결론을 내려놓았다. 전 대공자인 크리토의 죽음으로 삼대 공작가 중 하나인 케플러 가문의 후계 구도에 대해 관심 있는 귀족이 많았다.
그런데 그 후계 구도에서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베니오가 두각을 보이고, 그런 베니오가 제국 전체에 명성을 드높이자 베니오가 차기 공작이 되는 것을 기정사실로 생각하는 이들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그라허 자작도 그중 한 명이다. 그는 조세핀 부인의 투서가 제 권력을 되찾기 위해 새롭게 대공자가 된 베니오를 저격한 저열한 수작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베니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자작님.”
“음? 아니라니?”
“검공께서 제 영지를 찾아오신 것이 사실이다, 이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베니오의 인정에 그라허 자작의 턱이 덜컥 소리를 내면서 벌어졌다.
“베, 베니오 대공자! 그게 지금 무슨 뜻인지 알고 말씀하시는 거요?”
베니오가 대면하고 있는 건 그냥 옆 영지의 귀족이 아니다. 무려 감찰국의 국장인 그라허 자작이다. 그런데 그런 그의 앞에서 베니오는 지금 역적을 감싸 주었다 실토한 셈이다.
역적을 돕는 자, 역적이다.
그라허 자작의 눈이 흔들렸다. 어떻게 해야 할지 갈등하는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그냥 귀족이 아니다.
삼대 공작가.
그리고 일약 신성으로 떠오른 알칸트라의 영웅, 베니오 케플러.
“압니다. 역모죄로 끌려가 형장에서 목이 떨어져도 하등 이상하지 않은 일이란 걸 말입니다.”
하지만 베니오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의뭉스러운 웃음을 입가에 매단 채 그라허 자작을 바라봤다.
“그러니 해야지요.”
“무엇을 말이오?”
“이 베니오 케플러가, 역적이 아니라는 것을. 그렇다면 검공이 역적이 아니라는 것을 밝히면 되는 일이지. 아니 그렇소?”
“그건 그렇소만.”
그라허 자작의 눈이 흔들렸다. 검공이 역적이 된 이유는 간단하다. 검공의 장남, 에스크로가 상귀스의 기사가 되어 전장에 출격했기 때문이다.
장남이 상귀스로 투신했다면 검공 역시 그러리라 예측한 셈이다. 실제로 검공령은 상귀스의 침공에 오래 버티지 않고 순순히 상귀스의 깃발을 내걸었다.
“알려진 사실이 사실이 아니란 말이오?”
“그렇습니다.”
“그게 지금 대공자의 말뿐이란 것도 아시오?”
그라허 자작의 어깨가 뻣뻣해졌다. 긴장한 것이다. 베니오는 그라허 자작을 보며 빙긋 웃었다.
“세 치 혀로 그것을 입증하려 하는 것이 아닙니다.”
“증좌가 필요하오. 그것도 아주 명확한 증좌가.”
역모가 아니라는 것을 밝혀내는 건 안타깝지만 역모죄에 연루된 자가 밝혀내야 하는 일이다. 감찰국은 그저 나온 증거를 모아다가 황제에게 보고할 뿐이고, 결정은 결국 황제가 하는 법이다.
“있습니다. 그 증좌가.”
베니오가 손을 뻗어 종을 흔들었다. 그러자 토니가 문을 열더니 그곳으로 로브를 길에 늘어뜨린 마법사 하나가 사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들어왔다.
“소서러 하비.”
“주군을 뵙습니다.”
새하얀 머리에 새하얀 눈썹까지, 마치 눈을 빚어 만든 듯한 남자가 베니오를 주군이라 부르며 허리를 숙였다.
그러자 그라허 자작의 눈이 커졌다.
“소서러 반스? 젤루 마탑의 그 하비 반스 경을 말하는 것이오?”
“예, 맞습니다, 자작님.”
베니오가 빙긋 웃었다.
“하비 반스 경이 검공께서 역적이 아니라는 것을 밝혀 줄 증좌입니다.”
* * *
하비 반스.
그는 올해 서른다섯으로 젊은 나이에 소서러인 5서클을 달성한 젤루 마탑의 촉망받는 인재였다.
하지만 하비 반스의 젤루 마탑은 알칸트라의 비극으로 인해 완전히 무너졌다. 7서클의 마탑주를 비롯하여 그들의 본거지라 부를 수 있는 빙지 글래시어의 마탑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 당시 하비 반스는 아카데미의 요청으로 주피터에 파견 교수로 나가 있던 터라 화를 면했다. 하지만 고향과도 같은 탑주가 사라졌다는 것에 하비는 깊이 절망했다.
천애 고아로 고향이랄 것도 없는 그에게 젤루 마탑은 고향이자 부모, 형제와도 같은 이들이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하비는 복수를 결심했다.
하지만 모든 마탑의 자산을 잃은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그러던 찰나 그는 알칸트라의 비사를 막은 영웅, 베니오 케플러를 알게 되었고 베니오에게 서신을 보냈다.
하비의 사정을 들은 베니오는 두말할 것 없이 하비의 충성 맹세를 받았다. 그렇게 베니오는 젤루 마탑의 5서클 마법사를 수하로 두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하비 반스에게 선물로 대륙 전역에 각자의 다른 이유로 퍼져 있어 화를 면한 젤루 마탑의 마법사 열 명을 데려와 몰락한 젤루 마탑의 뜻을 이을 수 있게 해 줌으로써 짧은 시간에 하비의 충성을 얻어 냈다.
“허, 허어. 그 하비 반스 경이라니.”
그라허 자작은 베니오의 가신이 된 하비를 보면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 하비 반스는 마법이란 것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모를 수가 없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마법사는 원소를 하나만 다룬다.
그렇기 때문에 원소별로 마탑이 하나씩 존재하는 것이다.
물론 드물게 하나 이상의 원소 적합성을 가진 이들이 나왔다. 물론 그중 가장 유명한 건 여덟 용사 중 한 명이자 혜룡가를 세운 진리의 대마법사, 캐롤 베룸으로 그녀는 모든 원소를 다뤘다고 한다.
현재 살아 있는 사람으로 한정한다면 당대의 베룸가의 가주가 두 개의 원소를 다룬다 알려져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한 명이 바로 하비 반스다.
수 속성과 대지 속성을 다루는 마법사.
그래서 유명해진 젤루 마탑의 기대주가 바로 하비 반스였던 것이다.
그라허 자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비 반스 경이라면 믿을 수 있습니다.”
빙 계열을 다룰 수 있는 하비가 증좌가 될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물과 얼음은 그에 맺히는 상(狀)을 반사한다.
그래서 물이나 얼음이 거울 대용으로 쓰이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수 속성과 빙 속성은 비단 공격이나 방어 마법뿐만 아니라 보조 마법으로도 각광 받았다. 특히 그중에서도 당시의 영상을 담을 수 있는 마법 때문에 귀족가에서 특히 인기가 높았다.
아이스 메모리즈.
매지션이라 불리는 3서클에 도달하면 사용할 수 있는 마법으로, 과거를 돌아볼 수 있는 영상을 얼음 안에 가두는 마법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마법사나 마석으로 끊임없이 마나를 공급해주고 얼음이 유지될 수 있어야 하는 몇 가지 까다로운 조건이 있는 마법이다.
그러나 과거를 다시 볼 수 있다는 것 때문에 돈 많은 부유한 귀족가에서는 특별한 날 젤루 마탑의 마법사를 초빙하기도 한다.
“토니.”
“예, 도련님.”
“그걸 가져오도록.”
베니오가 토니에게 말하자 잠시 후 덜커덩거리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얼음벽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라허 자작의 눈이 동그래졌다.
“저 귀한 마석을….”
마석 하나가 얼음벽 온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베니오가 하비에게 고개를 살짝 숙였다.
“하비 경.”
“예, 주군.”
하비 반스가 마나를 끌어올리자 얼음 결정이 맺히기 시작했다. 삽시간에 주변 온도가 내려가자 그라허 자작의 입에서 허연 입김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파아아앗―!!!
얼음벽에 상(狀)이 맺히고, 그라허 자작의 턱이 툭하고 한 번 더 빠지듯 떨어졌다.
검공의 몸에 깃든 혈기와 그것을 뽑아내기 위해 혈투를 벌이는 헤일리와 베니오, 그리고 검공이 에스크로와 검공령에 일어난 일에 대해 말하는 것까지 모두 다 그 안에 있었다.
이걸 본다면 그 누가 검공에게 손가락질을 할 수 있을까.
단 한 번도 물러서지 않은 위대한 기사의 등에 남은 유일한 상처를 보고도 말이다.
그라허 자작은 할 말을 잃었다.
완벽한 증거가 남았다. 베니오가 그런 그라허 자작을 보면서 빙긋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