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s Lazy Martial Arts Genius RAW novel - chapter (287)
공작가의 게으른 무공천재-287화(287/300)
공작가의 게으른 무공천재 (287)
헛발질 (2)
“그분의 재림을 위한 준비가 진행되고 있으니.”
도철과 옵세시오 국왕 사이에는 언제 터져도 이상할 것 없는 긴장감이 흘렀다. 도철은 옵세시오 국왕을 변절자로 보고 있었고, 옵세시오 국왕은 그에 분노한 상태에서 계속해서 평행선이 이어져 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뒤가 시끄럽다고 하던데. 아무런 차질 없이 준비해 주십시오, 전하.”
“이쪽 일은 그대가 상관할 여력이 없을 터.”
옵세시오 국왕이 입가에 비웃음을 매달았다.
“그분의 수족이라 자부하던 사흉 중 삼흉이 꺾였으니, 아니 그런가?”
“…….”
우드득.
도철이 손에 쥔 검게 물든 뒤틀린 고목의 지팡이가 부서지는 소리를 냈다. 하지만 잠시 뒤 손아귀에 준 힘을 스르르 푼 도철이 옵세시오를 향해 말했다.
“그분께서 강림하시는 날, 과오가 모두 가려질 터이니 그리 아시지요.”
“그런가? 과연 위대하신 문두스께서 무능을 어찌 처벌하실지, 내 그날을 고대하겠네.”
날 선 혀가 서로에게 향했다. 남은 건 마음에 남은 앙심뿐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신뢰가 베니오가 불어넣은 아주 작은 바람에 의해 균열이 간 이상 그 균열이 다시 붙을 길은 요원하다.
도철이 찬 바람을 일으키며 나가자 어전에 옵세시오 국왕 홀로 남았다. 그는 옥좌의 팔걸이를 내려치면서 이를 뿌득 갈았다.
“감히. 인간이 되다만 괴물 놈이.”
도철을 비롯한 사흉은 외형만 보더라도 인간이 아니다. 그런데 오만하게 구는 꼴이 슬슬 인내심을 간당간당하게 만들고 있었다.
“게 없느냐!”
국왕이 소리치자 밖에 대기하고 있던 시종장이 들었다.
“페더릭 로스와 66대는?”
“기별이 없었나이다, 전하.”
“이상하다. 호베르투 부족은?”
“그들 역시 울프라이더 다수가 실종되어 찾고 있다 합니다.”
페더릭 로스와 66대, 그리고 뱀파이어의 독립 잔당을 제멋대로 추격한 호베르투 부족의 울프라이더가 연락이 끊긴 지 일주일이 넘었다.
추격전이란 것이 그보다 더 걸리는 경우도 있기에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은 국왕이지만, 로스가와 66대가 이리 오래 연락이 끊겼다는 것이 영 마음에 걸렸다.
“마적 놈들은 어찌 되었느냐?”
“켄타로우스족이 추격에 나섰다 합니다.”
“아무런 소득이 없는지고!”
게다가 후방을 어지럽게 만드는 마적단이 나타나 골치를 썩이고 있었다. 하필이면 전선이 제국령 쪽으로 기울어진 이 시점에 나타난 마적단이라 제대로 토벌할 만한 이들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일개 마적단을 전선에 나선 부대나 각 가문이 보유한 사병으로 토벌하기에는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쓰는 격이다.
그래서 쓸모없는 수인족에게 명령을 내렸건만, 그마저도 원활하지 않았다.
“튀농이라 하였나? 사신은?”
베니오에게 복수심을 품고 찾아온 제국의 사신, 튀농에 대한 뒷조사도 이미 끝낸 상태다. 튀농 훈작의 주군이던 갈턴이 베니오에게 목이 달아났다고 했던가.
야심이 큰 사내 같아 보였으니 베니오의 복수심을 위해 움직일 만한 동기가 충분했다.
그 때문에 국왕은 의심을 거두고 그를 거둬 그가 내민 정보에 대해 꽤 후한 값을 치러 주고 있었다.
“오늘도 파티에 빠져 정신이 없다 하옵니다.”
“쯧. 그릇이 작은 놈이군. 쓸 만한 놈이길 바랐는데. 시종장, 이만하면 되었다. 값은 치러 주었으니.”
국왕의 눈이 호선을 그렸다.
“이만 보내 주거라.”
“예, 전하.”
* * *
“으핫핫핫. 너, 꽤 어여쁘구나. 응?”
“아잉, 부끄럽게 왜 그런 말씀을 하셔요.”
“오늘 밤에 들거라! 내 너와 즐거운 밤을 보내고 싶으니.”
오홋홋홋.
비음이 잔뜩 섞인 웃음소리와 분내 사이로 의복을 풀어헤친 채 얼굴이 불콰하게 달아오른 튀농이 도수가 높은 와인으로 가득 찬 잔을 들어 올렸다.
“크으으으. 어질어질한 것이 좋구나.”
“조금씩 드셔요. 이러다 픽 쓰러지시면 소녀를 외롭게 하실 거잖아요.”
“흐흐흣. 오냐, 그러마.”
튀농은 완벽한 한량이 되었다. 튀농은 매일 같이 파티를 벌이고 수인족을 불러들여 방탕함의 극치를 보여 주었다. 국왕이 그러라 허락하였기 때문에 튀농에게 아양을 떨기 위해 찾은 수인족 여인들의 간드러진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꺼흑. 취한다. 자. 이만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 너, 너만 빼고.”
“아잉, 튀농 훈작님.”
튀농이 고양이 귀를 가진 수인의 어깨를 확 끌어안았다. 그러자 수인도 나쁘지 않은지 꼬리를 살랑거리며 아양을 떨었다.
오늘의 선택은 고양이 수인이다.
튀농은 파티를 파한 뒤 자신의 방으로 고양이 수인의 어깨를 끌어안은 채 반쯤 취해서는 기댄 채로 비틀거리며 걸었다.
“꺼흑. 어흐. 좋구나. 응? 참으로 좋은 곳이야, 이 상귀스.”
그런 튀농을 조용히 따라다니던 시종의 눈빛이 한심함으로 물들었다. 외부에서 들어온 인물이기에 상귀스 정보부에서 은밀히 붙인 시종이지만 튀농은 완벽한 한량이었다.
매일 같이 술과 여자에 빠져 사니, 계속해서 따라다니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찍찍찍―!
그때 쥐 한 마리가 시종의 귀에만 들릴 정도로 울었다. 시종은 못 들은 척 손을 내밀자 쥐가 시종의 손을 타고 올라왔고, 시종이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해방인가.’
쥐는 일종의 연락책이다. 혈교의 주술을 이용해 쥐를 길들인 것이다. 시종은 이 한량에 대한 윗선에서의 처분이 정해졌음을 전해 듣고는 속으로 환호성을 터뜨렸다.
살(殺).
상귀스는 제국인을 살려 두지 않는다.
그건 설령 이쪽에 호의를 베푼 제국인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방에 도착한 시종이 튀농을 향해 짐짓 정중하게 인사하고는 등을 훽하고 돌렸다.
아마 저 한량은 모르리라.
이것이 자신의 마지막 밤이 되리라는 것을 말이다.
달칵.
문이 닫혔다.
그리고 고양이 수인의 부축을 받고 있던 튀농의 비틀거리던 걸음걸이가 꼿꼿해졌다. 몸을 가누지 못해 흐느적거리던 허리에 힘이 들어갔고 이내 튀농은 수인의 부축을 받지 않고도 똑바로 걷기 시작했다.
꿀꺽꿀꺽꿀꺽.
“후우.”
튀농은 물을 연거푸 석 잔을 들이켰다. 그러자 술로 인해 붉게 달아올랐던 튀농의 안색이 언제 취했었냐는 듯 원래대로 돌아왔다.
“언제 봐도 그렇지만 감탄이 나오는 연기예요.”
그런 튀농의 모습에 고양이 수인이 감탄하며 혀를 내둘렀다. 튀농은 아리따운 고양이 수인을 향해 씩 웃어 보였다.
“어땠습니까?”
“오늘이 마지막이에요.”
“역시, 그렇습니까?”
튀농은 사실 어마어마한 말술이다. 주량으로만 따지면 오러로 주정을 정화하여 내보낼 수 있는 기사들보다도 더 잘 마실 정도의 술고래다.
거기에 튀농은 약간의 연기를 추가했을 뿐이다.
자신을 향한 상귀스의 감시의 눈길이 떨어져 나갈 수 있도록.
“쥐가 왔었어요.”
“쥐요?”
“이래 봬도 고양이인지라. 쥐 냄새는 기가 막히게 맡거든요.”
고양이 수인, 헬레나가 코를 킁킁거리며 아핫핫, 하고 웃었다. 이 고양이 수인도 그냥 평범한 고양이 수인이 아니다.
반(反) 상귀스 해방 전선의 주요 수뇌부로 상귀스의 탄압 아래 술집 접대부 등으로 위장한 반군이었다.
튀농은 암계와 권모술수에 능한 책사답게 상귀스의 감시를 농락하고 기만했다. 그러고는 그들에게 접근했다. 상귀스의 건국에 주요한 역할을 한 뱀파이어 일족이 탄압을 받고 있다는 헤일리의 말에서 힌트를 얻어 현지의 조력자를 구한 것이다.
별로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수인족을 비롯한 인간이 아닌 많은 이종족은 상귀스의 통치 아래에서 그들에게 차별을 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원래 쥐는 꽤 예민한 동물이거든요. 내가 있는 곳으로는 얼씬도 하지 않죠. 그런데 쥐가 나타났잖아요.”
헬레나가 귀를 쫑긋했다.
“이제 감시의 눈길을 걷겠다는 뜻이에요. 그리고 당신의 처분이 정해졌다는 뜻이죠. 살처분으로.”
“잘됐네요.”
고양이 수인, 헬레나는 적진에 혈혈단신으로 침투한 튀농의 대범함에 새삼 놀라곤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죽음이 목전에 도달했음에도 튀농에게서는 두려움이 보이지 않았다.
“제가 어떤 분을 모시고 있는지 궁금하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반(反) 상귀스 해방 전선은 상귀스를 통치하며 이종족을 압제하고 있는 이들을 몰아내고 다시 원래의 상귀스로 돌아가기 위해 투쟁하는 이들이다.
그리고 튀농은 그들과 접선하며 약속했다.
상귀스를 다시 당신들의 손에 돌려주겠다고. 자신들의 관심이 있는 건 상귀스의 통치 계층뿐이라고. 그것으로 튀농은 이들의 협조를 끌어냈다.
“맞아요. 당신이 그렇게 철석같이 믿고 있는 주군이란 자가 궁금했으니까.”
헬레나가 보기에 튀농이 홀로 이리 뛰어든 건 그만큼 그의 주군이란 자를 믿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소문은 헬레나도 들어 보긴 했다. 하지만 알음알음 퍼진 소문이고, 먼 제국에서부터 시작된 소문이기 때문에 전부 믿지는 않았다.
그래도 궁금한 건 사실이다.
“스무 살도 되지 않은 소년이라고 하던데.”
“맞습니다.”
튀농은 창가에 서서는 바깥을 힐끗거리며 쳐다봤다. 그러더니 이내 튀농이 창문을 열며 활짝 웃었다.
“저기 오시는군요.”
“네? 여긴 무려 8층….”
투콰아아악!
헬레나의 귀가 파르르 떨렸다. 튀농의 침실은 무려 8층 높이에 있었다. 탑의 높이가 12층인데, 8층에 튀농을 두고 그가 도망가거나 다른 수작을 부리지 못하게 할 의도로 그리 배정한 것이다.
그런데 저 아래서 백금발을 휘날리는 남자가 고양이 수인인 그녀의 귀에도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기척을 내지 않으며 솟구쳐서는 창틀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처억.
“주군을 뵙습니다.”
“튀농.”
베니오.
제국 내부에서 소요를 일으키고 있는 상귀스를 막고 있어야 할 베니오가 상귀스 왕국에 느닷없이 등장한 셈이다.
“오는 길이 어렵진 않으셨습니까.”
“라드릿슈가 있었으니, 어렵지 않았네. 헤일리의 도움도 있었고.”
“다행입니다.”
그때 베니오는 자신을 보며 입을 떡 벌린 채 꼬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있는 헬레나를 발견했다.
“좋은 시간을 방해했나?”
“아, 아닙니다, 주군. 지난번 서신으로 말씀드린 헬레나라는 해방 전선의 수뇌부이옵니다.”
“장난일세. 장난.”
베니오가 창틀에서 내려오자 등까지 내려오는 기다란 백금발이 찰랑거렸다. 베니오는 그런 헬레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만나서 반갑네. 베니오 케플러라고 하네.”
“어, 어어….”
“많이 놀란 듯싶은데. 말을 미리 해 주지 않은 겐가?”
“기밀인지라.”
베니오가 자신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하는 헬레나를 보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헌데 주군. 제국 내 동향이 심상치 않다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렇긴 하지. 그런데 말이야.”
베니오는 어깨를 으쓱했다.
“꼭 그 깽판이란 걸 상귀스 놈들만 치게 놔둬야 하는지 이해가 가질 않아서 말이야.”
“그래서 직접 오신 겁니까?”
“그래.”
중원무림에서 혈교는 꼭 예상치 못한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정파를 당황하게 만든 다음 진격전을 펼쳐 혼을 빼놓았다.
그런데 그게 혈교만의 전유물은 아니지 않은가.
“오늘, 국왕을 암살할 생각이야.”
“암살이요? 주군, 언제 암살도….”
“튀농 훈작. 아마추어같이 왜 그래?”
베니오가 씨익 웃었다.
“목격자가 없으면 암살이네. 적의 후방을 헤집고 다닌 검공과 프로이드 경이 한 것처럼. 아니 그런가?”
“그, 그렇긴 하지만, 주군.”
너무 위험하다, 란 말은 입으로 꿀꺽 삼켰다. 여긴 적진 한복판이다. 하지만 주군인 베니오가 정말 아무런 생각 없이 왔을 리는 없다.
“그럼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어떻게 하긴.”
베니오는 허리춤을 퉁퉁 쳤다. 그곳에 매달린 폭풍검이 달랑거렸다.
“한 방에 날려버릴 생각이지.”
“한 방이요?”
“역시 최고의 수련은 실전이라 하더군. 덕분에.”
베니오는 자신감이 흘러넘쳤다. 폭풍검이 사용하기 대단히 어려운 것임에는 맞지만 결국 끊임없는 수련은 실력의 증진을 부르는 법이다.
베니오가 익힌 초식 중 가장 늦게 익힌 사신문의 풍검. 그 풍검의 성취가 폭풍검을 지속적으로 사용하려 한 탓에 순식간에 8성에 도달했다.
아마 사신문도 이런 건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덕에 베니오는 홀로 상귀스의 왕국에 뛰어드는 미친 짓을 감행할 수 있었다.
“거기, 헬레나?”
“네, 네!”
“죄 없는 이들이 다치지 않게 대피를 부탁하네.”
베니오가 하얗게 이를 드러냈다.
“오늘 밤, 달이 지기 전에 끝내려 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