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s Lazy Martial Arts Genius RAW novel - chapter (289)
공작가의 게으른 무공천재-289화(289/300)
공작가의 게으른 무공천재 (289)
헛발질 (4)
거대한 폭풍이 전조도 없이 상귀스 왕국의 왕궁에서 노도처럼 일어난 다음 날.
해방전선의 간부인 헬레나는 그녀를 따르는 수인족들을 급히 왕성에서 대피시키고 난 뒤 몰래 왕궁에 잠입했다가 하마터면 폭풍에 휘말려 죽을 뻔했다.
하지만 동물 특유의 초감각으로 폭풍의 전조를 읽고 피해 낸 헬레나는 다음 날 마주한 베니오 앞에서 고개조차도 제대로 들지 못한 채 흠칫거리며 떨었다.
“고맙네. 튀농을 많이 도와준 덕분에 어제 수월히 마무리할 수 있었으니.”
베니오와 튀농은 왕궁 한복판에 폭풍을 불러놓고는 재빨리 튀었다. 빌리의 도움 덕분에 폭풍이 만들어 낸 와류가 주변을 할퀴고 있었어도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 왕궁은 폭삭 무너졌다.
옵세시오 상귀노 국왕을 포함한 상귀스 왕국의 수반 중 상당수가 폭풍에 휘말려 생사가 불투명했고 베니오는 재빨리 몸을 빼내 해방전선과 접촉했다.
“아, 아니에요. 대공자님.”
“헬레나. 뭐라도 잘못 먹은 겐가? 왜 그리 우물쭈물 대는지.”
튀농이 가벼운 목소리로 헬레나를 놀려댔다. 헬레나가 움찔했지만 베니오와 눈이 마주치자 꼬리를 스르륵 내렸다.
“앞으로 해방전선은 어찌할 생각인가?”
헬레나가 베니오를 찾아온 것도 그 때문이다. 상귀스의 압제에 대항하기 위해 해방전선이 음지에서 차근차근 힘을 모으고 있던 찰나 상귀스의 권력에 큰 공백이 생겨난 셈이기 때문이다.
“양지로 나올 생각이에요.”
“친왕파가 문제겠군.”
“언제든 문제는 있었어요. 우리 상귀스는 그것을 이겨 냈고.”
상귀스에 대한 헬레나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비록 혈교에 의해 탄압과 박해를 받았지만 원래 상귀스는 추방자들이 모여 만든 국가였다.
그렇기에 헬레나는 자신감을 보였다.
“해방전선의 힘은 약하지 않아요. 친왕파라고 해도 우리가 양지로 나오는 순간 섣불리 움직일 수는 없을 거예요.”
“그렇다면 남은 문제는 하나군.”
앞으로의 일은 상귀스 내부에서 알아서 할 일이다. 베니오가 간섭하는 건 내정 간섭이 된다. 애초에 베니오는 상귀스가 어떻게 돌아가든 큰 관심이 없었다.
“전쟁.”
문제는 전쟁이다.
아모리아 제국을 비롯해 오랑주 공국까지 참전한 전쟁의 책임은 상귀스에 있었기 때문이다.
“해방전선과 뜻을 같이하는 제후가 전선에 있나?”
베니오는 헬레나에게 물었지만 헬레나의 대답은 부정적이었다.
“전쟁의 주도권은 다섯 아니무스에게 있어요.”
“다섯 아니무스. 다섯 가문을 말하는 건가?”
“네.”
하지만 그 다섯 가문 중 두 가문의 가주는 생사불명이다. 정확히는 에반 크뤄르는 제국의 중죄인으로 복역 중이고 페더릭 로스는 검공에 의해 죽었다.
“사흉은.”
“수도를 빠져나갔다고 해요. 어제 그 일이 일어나기 몇 시간 전에.”
“엇갈렸군.”
베니오는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만일 국왕이 죽었다고 하면 다섯 가문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지?”
혈교의 진전을 이어받은 옵세시오 국왕은 다섯 명을 뽑아 혈교의 무공과 사술을 하나씩을 전수했다.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가문을 만들게 하고, 그 기반을 바탕으로 강력한 무력으로 상귀스 왕국의 실권을 손에 쥐었다.
그 구심점은 국왕이다.
“모르겠어요. 권력의 중심에 다가가는 건 어려웠어서.”
헬레나도 모른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베니오가 아는 그 혈교처럼 대단히 폐쇄적이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혈마가 죽었을 때를 떠올려 보면 된다.
‘천마대제란 절대고수 앞에 고개를 숙였지. 그들이 기리는 혈마라는 신이 죽었는데도.’
혈교는 광신도가 모인 집단이다. 하지만 천마대제가 혈마를 격살한 후 혈교도는 마교 앞에 고개를 숙였다. 그들이 광신도라면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자신들의 신을 죽인 천마대제에게 고개를 숙인다?
진짜 미쳤다면 게거품을 물고 죽더라도 천마대제에게 들이박았어야 정상이다.
“세뇌? 아니면 가짜 광신?”
어쨌거나 구심점을 잃은 혈교의 결속력과 그들에게 강력한 무기가 되어 주었던 광신이 대단히 취약해진 것만은 사실이다.
“그럼 보급로를 끊고 병참기지를 습격하는 일은 해방전선에게 맡기지.”
“고립시키시려는 건가요?”
“그래야 약해질 테니까.”
전선은 고립될 것이다.
해방전선이 수도를 차지한 이상 그들은 이제 돌아갈 곳도 없다. 국왕은 죽었고, 보급은 계속해서 끊길 것이니 사실상 장기전을 수행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렇게 되면 전장의 국면은 쉽게 풀릴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따로 있었다.
“끝까지 대항하려 할 수도 있다.”
“설마요. 죽을 것이 뻔한데 어째서….”
“왜냐면 지금.”
베니오가 제국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사흉 중에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한 놈이 미친 짓을 꾸미는 것 같으니까.”
* * *
태양은총식의 준비를 위해 태양교 본단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태양은총식의 개최를 알린 지 며칠이 되지 않았지만 그새 본단에 도착한 신도들의 수가 만 단위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그 숫자는 시간이 흐르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 뻔했다. 수십만, 수백만을 넘어갈 것이고 그들을 대접하는 건 태양교의 의무였다.
수백만을 대접하기 위해 필요한 어마어마한 물자는 대륙의 모든 상단이 나서야 할 정도의 물량이다.
그 때문에 대륙의 거의 모든 상단이 태양교 신단의 발주 물량에 총력을 기울여야만 했다. 부족하다 싶으면 다른 군소 상단에게 하청을 주어서라도 물량을 맞추려 노력하는, 말 그대로 총력을 기울인 노력이 태양은총식을 위해 더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 때문에 대부분의 일정이 뒤로 밀렸고, 상단 자체의 일정에 지장이 생길 정도였지만 그에 대해 용감하게 불평불만을 늘어놓을 수 있는 간 큰 상단주는 없었다.
태양교.
그 태양교가 가지는 위상을 고려할 때 어떤 상단이 불만을 제기했다는 소문이 퍼진다면 평판과 신용으로 장사를 해야 하는 그 상단은 곧바로 장사를 접어야 할 것이다.
대륙인의 90% 이상이 신봉하는 태양교와 척진다는 것은 그런 의미다.
그리고 계산기는 상인들만 두드리는 것이 아니다.
머릿속 계산기를 가장 열렬하게 두드리는 이들은 다름 아닌 대륙에 분포한 국가의 조정이다.
상귀스와 전선을 형성하고 있는 아모리아 제국과, 오랑주 공왕의 죽음으로 나라 전체가 상귀스를 대적으로 규정하고 전쟁에 들어간 이 두 국가를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
소극적인 관망세를 보이던 이들은 선택의 기로에 선 셈이다.
성녀의 죽음.
그리고 그 대상이 상귀스라는 것.
이 두 가지 사실은 상귀스가 감히 태양교의 가장 존귀한 여인을 죽임으로써 태양교와의 전쟁을 선포했다는 뜻이다.
이에 성기사단이 출정하면서 성전이 선포됐다. 그렇다면 태양교를 국교로 한 다른 나라들에게도 선택지가 주어진다.
성전에 동참하거나, 아니면 거부하거나.
하지만 이건 거의 선택지가 없는 셈이나 마찬가지다. 태양교가 직접적으로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 풍조를 지니고 있다고는 하나 그들의 영향력이 거대하다는 건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눈치가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결국 답은 하나다.
군사를 보내거나, 아니면 물자를 보태거나.
대부분의 국가는 전자보다는 후자다. 잘 키운 군대를 잃는다는 것은 곧 국방력의 약화로 이어지기 때문에 군대보다는 보급물자를 지원하는 것에 더 적극적으로 나선다.
그 보급물자가 어디로 모인다?
태양교다.
그 때문에 태양교 본단은 현재 태양은총식을 위한 준비와 몰려드는 신도, 그리고 각국에서 보내오는 보급물자들로 인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정지!”
와글와글
“밀지 마시게!”
“멈춰! 멈추라고! 그거 걷어!”
“신도분들은 이쪽으로!!”
도떼기시장.
본단으로 들어가는 일은 도떼기시장을 방불케 했다. 여기저기서 모인 이들과 물류로 인해 병목 현상이 벌어지면서 본단 밖으로 들어가기 위해 기다리는 이들의 줄이 끝도 없이 이어진 셈이다.
“어디서 왔지?”
“성기사 나리. 저는 서부의 밸포어 상단으로 태양은총식에 필요한 물자를 싣고 왔습니다요.”
“밸포어?”
성기사가 날카로운 눈으로 뒤를 슥 훑었다.
“들어 본 적 없다.”
“그러고 말굽쇼 나리. 서부를 벗어난 적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이번에 판테온 상단이 저희에게 운송을 대행하여….”
판테온 상단이라 하면 서부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상단이다. 성기사는 천으로 덮인 수레를 힐끗 쳐다보았다.
“수상한 건 없겠지?”
“예. 예. 그러고 말굽쇼. 예식에 쓰일 양초를 싣고 왔습니다요.”
원래라면 저 모든 수레를 하나씩 들춰 보고, 내부를 확인하는 것이 정식 절차다. 그래서 한 명이 통과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평균 30분 정도 걸린다.
하지만 지금은 이 상인의 뒤로 기다리고 있는 이들만 해도 끝이 보이질 않는다. 성기사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설마. 성호께서도 모두 있으신데 무슨 일이 벌어지려고. 들여보내자. 위에서도 그리 명령이 내려왔으니.’
성녀가 죽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그런데 상귀스가 또 수작을 부린다? 성호를 비롯하여 심문관까지 전부 모인 이 시기에 상귀스가 재차 수작을 부릴 확률은 지극히 낮다.
성기사는 피곤이 덕지덕지 묻어 나오는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통과!”
“감사합니다, 나리.”
밸포어에서 왔다는 상인은 얼른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잡부들을 재촉해 본단 입구를 통과했다.
북적북적.
태양교 본단은 본래 정숙하고 엄숙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본단이 애초에 성직자들만 사는 곳은 아니었다.
태양교 성직자들은 오갈 곳이 없는 난민이나 화전민을 발견하면 기꺼이 자신의 품에 품어 주었다. 그렇게 태양교에 감화한 이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 있었는데 오늘은 그곳이 눈코 뜰 새 없을 정도로 사람들로 북적였다.
‘좋군.’
밸포어의 상인은 성기사 앞에서 언제 비굴하게 웃었냐는 듯, 서늘하게 웃으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리고 외곽에 있는 한 낡은 창고에 도착한 밸포어의 상인은 익숙하게 창고의 문을 열고, 그 안으로 수레를 밀어 넣은 뒤 문을 닫았다.
“조심해서 내려라!”
“예! 나리!”
상인은 수레 위에 실린 것들을 조심스럽게 내렸다. 양초를 가져왔다 하였는데 수레에서 나오는 건 액체가 가득 찬 오크통이었다.
출렁, 출렁!
“윽! 거기 조심해!”
오크통에는 액체가 가득 차 있었다. 그 안에 액체가 출렁이면 잡일에 능한 잡부들도 균형을 잡지 못할 정도의 무게가 쏠리는데 그 때문에 한 잡부가 오크통을 놓쳤다.
빠직!
줄줄줄.
“이크!”
“이, 이걸 어쩌나!”
밸포어 상단에서 급히 섭외한 인부는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오크통의 귀퉁이가 깨지더니 그 안에서 무언가 콸콸거리며 새어 나왔기 때문이다.
킁킁
“응? 근데 냄새가 이상한데?”
“냄새? 킁킁.”
그런데 그 액체에서 나는 냄새가 이상했다. 코를 저릿하게 만드는 불쾌한 냄새였기 때문이다. 이내 그들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이, 이거, 이건 피, ㅍ….”
서걱―!
인부의 머리가 날아갔다. 머리를 잃은 몸뚱이가 푹하고 고꾸라지더니 파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그러자 밸포어의 상인이 서늘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목에 뒤집어쓴 가죽을 쭉 집어 당겼다.
찌지직―!
“귀한 제물을 이리 낭비하다니.”
털썩, 털썩.
얼굴의 가죽을 찢어 버리자 그 안에 있던 얼굴이 드러났다. 뿔이 솟은 얼굴에 털이 북슬거리는 팔과 다리. 도철이 혈광을 피워 내자 그곳에 있던 모든 인부의 머리가 철퍽 소리를 내면서 떨어졌다.
“일흉을 뵙습니다.”
그리고 창고의 어둠 속에서 인부를 몰살시킨 이들이 나와 무릎을 꿇고 경배하는 자세를 취했다. 익숙한 얼굴을 본 도철이 웃었다.
“율리우스. 대계의 준비는?”
율리우스 레길론. 레길론 백작의 장남이자 신생 마탑 위타폰스의 탑주인 그가 어둠 속에서 눈을 서늘하게 빛내며 대답했다.
“모든 준비는 빈틈없이 끝났나이다.”
“그분의 재림을 위한 준비가 모두 끝났다는 뜻이로다.”
“예, 일흉이시여.”
율리우스는 도철을 신처럼 모셨다. 자신보다 더 뛰어난 재능을 가진 마법사를 보고 실의 했던 그에게 혈마법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열어 준 것이 바로 도철이었기 때문이다.
도철이 어둠 속에서 섬찟하게 웃었다.
“태양교의 한복판에서 태양신을 짓밟고 그분께서 재림하실 것이니.”
“천마재림 만마앙복!!!!”
위타폰스가 바닥이 질척한 피 웅덩이가 되었음에도 개의치 않고 오체투지하며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