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s Lazy Martial Arts Genius RAW novel - chapter (298)
공작가의 게으른 무공천재-298화(298/300)
공작가의 게으른 무공천재 (298)
지긋지긋한 악연의 종지부 (3)
태양교 본단에서 신화의 한 장면을 재현한 것 같은 거대한 전투가 끝난 후.
전쟁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상귀스 국왕의 명에 따라 전쟁에 참여하고 있던 다섯 아니무스 중 죽은 둘을 제외한 나머지 전원이 검을 거꾸로 쥐고는 제국 측에 항복 의사를 밝혀 온 것이다.
그리고 상귀스 국왕이 참살당하고 수도 전체가 함락당했다는 소식이 연합 측에 전달되면서 제국은 귀의한 세 가주를 전장의 최전선에 내세워 전공을 세우면 그간의 죄를 사하여 주고 귀족으로 인정해 준다고 약속했다.
그 결과 세 아니무스는 적극적으로 검 끝을 상귀스를 향해 돌렸다.
어차피 그들에게 관심사는 어디까지나 자신과 가문의 존속이다. 그렇기에 그들의 배신은 빨랐고, 가차 없었다.
카이데스 가문, 넥스 가문, 그리고 에마 가문의 병력이 기수를 돌려 상귀스 왕국을 향했다.
애당초 그들이 상귀스 왕국에 투신했던 건 힘을 얻어 척박한 몬스테리아로부터 벗어나기 위함이었다.
“하! 이대로 수도로 달린다!”
“예!”
두두둑!
말발굽이 대지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카이데스 가문의 가주, 로스의 명령에 118대, 전원 혈투술인 캄피오를 익힌 이들이 우렁차게 소리쳤다.
그런 카이데스 가문의 뒤를 에마 가문과 넥스 가문이 지원했다.
그런데 그때 척후병이 돌아와 이상 징후를 보고했다.
“전방에 거대한 크레이터가 형성됐습니다.”
“크레이터?”
“마치 고위급 마법이 직격한 것 같은 모양이었습니다.”
로만은 고개를 갸웃했다. 고위급 마법이 터질 일이 있었나, 싶었기 때문이다. 최소한 로만이 아는 한 그런 보고는 받은 적이 없다.
“무시하고 진격한다!”
“예!”
수도를 향해 진격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로만은 그러한 명령을 내렸고 카이데스 가문의 병력은 척후병이 보고한 지형으로 빠르게 접어들었다.
“하! 진격한다!”
“예!”
척후병의 말대로 거대한 운석이 떨어진 것처럼 흉측하게 패인 흔적이 로만의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로만은 말의 엉덩이를 두드리며 속도를 줄이지 않고 그대로 진격했다.
‘이만한 규모의 마법이 떨어졌다면 흔적이 남아야 한다. 하지만 마법은 아니야.’
고위급 마법은 반드시 현장에 흔적이 남는다. 거대한 마력이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에 마나가 엉켜 있거나 하는 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현상이 현장에서 느껴지지 않았다.
‘마법이 아니라 이만한 질량을 가진 무언가가 떨어진 것이다.’
로만은 감각을 돋워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특별한 것이 그의 감각에 느껴지진 않았다. 그러나 그 순간 로만은 익숙한 실루엣이 저 앞으로 두두둑 하고 달려 나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저건, 내 등인데.’
거기까지가 마지막이다.
목이 잘린 로만이 말과 함께 그대로 고꾸라졌다. 마스터 급의 강자인 카이데스 가문의 가주, 로만이 허탈할 정도로 쉽게 목이 잘린 것이다.
그 모습은 마치 허공에 보이지 않는 칼이 있고 그곳으로 로만이 목을 내밀고 달린 듯한 모양새다.
그러나 참극은 시작일 뿐이었다.
“가주님이!”
“무엇이 대….”
푸화아악!
큭!
크아아악!
로만이 죽은 것에 놀라기도 전에 그 뒤를 따르던 이들이 피를 뿜어내면서 말 위에서 떨어졌다. 삽시간에 피가 강을 이루며 흐르기 시작했다.
전멸.
카이데스 가문이 자랑하던 118대가 적의 모습 한 번 보지 못하고 그대로 전멸해 버린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딱 한 명을 제외한 118대 전원이 전멸했다.
덜덜덜.
“대, 대체 뭐가, 무엇이….”
118대 대원 하나가 제 목이 잘리면서도 자신의 몸을 던져 말에서 떨어뜨린 덕분에 레돈은 간신히 살아남을 수 있었다.
로만의 수제자인 레돈은 어린 나이에 오러를 깨우쳤고 그 재능을 인정받아 최연소 118대의 대원이 되었다.
하지만 그런 레돈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에게 아버지나 다름없는 존재인 로만이 허무하게 죽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레돈은 손끝 하나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형용할 수 없는 공포 때문이다.
우상이던 로만이 그리 죽고, 자신보다 강한 118대의 대원들이 주먹 한번 휘둘러 보지 못하고 전멸했다. 레돈은 간신히 목숨은 구했으나 누가, 대체 무슨 이유로 그들을 죽였는지도 알지 못했다.
주르륵.
바지춤이 뜨뜻해졌지만 레돈은 그조차도 알아채지 못했다. 그때 레돈의 눈이 커졌다.
피가 콸콸 흘러 강을 이루고 있는 그곳에, 분명 아무것도 없던 그곳에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처럼 피를 흘리는 한 사내가 서 있었기 때문이다.
찢어지고 부러진 날개를 단 남자는 전신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는데, 전신에서 검은 기운을 줄기줄기 흘려대고 있었다.
그 남자를 본 순간 레돈은 숨이 턱하고 막히는 것을 느꼈다. 격을 넘어선 거대한 존재가 자신을 짓누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남자가 레돈을 보았다.
“운이 좋구나. 살려 둘 생각이 없었거늘.”
남자의 목소리는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것처럼 소름 끼치고 차가웠다. 레돈은 무의식적으로 엉덩방아를 찧은 뒤 엉덩이로 바닥을 밀어내며 남자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뒤로 물러났다.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저 살기 위해서는 저 남자로부터 멀어져야 한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을 뿐이다.
“한 놈쯤은 살려 두어야 내 말을 전할 수 있겠지.”
그때 뒤에서 거대한 군세가 다가오는 소리가 시끄럽게 울려 퍼졌다. 전방의 카이데스 가문이 전멸했음을 한 넥스 가문과 에마 가문이 병력을 몰아 달려오며 내는 소음이었다.
남자, 천마대제는 주저앉은 레돈의 곁을 슥 지나쳤다. 레돈은 턱을 딱딱거리며 떨었다. 천마대제는 그런 레돈에게 말했다.
“잘 보고 그놈에게 가서 전해 다오.”
천마대제의 목소리가 레돈의 머릿속에서 메아리치듯 울려 퍼졌다. 그리고 천마대제의 손에서 시커먼 마기가 뭉클거리며 솟아나더니 천마대제의 앞에 모여들었다.
“내가, 놈을 기다릴 것임을.”
쿠웅―!!!!
땅이 흔들리고 하늘이 울었다. 그날, 그 자리에서 살아남은 건 딱 두 명뿐이었다.
레돈은 반쯤 혼이 나간 채로 아모리아 제국이 있는 방향을 향해 나아가다가 정찰을 나온 기사에게 발견되었다.
“누구냐!!!”
“제국, 제국에, 제국에…. 괴, 괴물이, 괴물이….”
기사는 헛소리를 해대는 레돈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전방 척후조의 심상치 않은 보고와 레돈이 제정신이 아니란 것을 알아챈 기사가 소리쳤다.
“공작 각하께 데려가라!”
벼락 기사단의 단장인 레반테의 명령에 기사들이 고개를 숙였다.
* * *
쿵!!
“졌습니다.”
“저도.”
“애송이.”
베니오의 앞에 용병왕과 철벽 경, 검공이 차례대로 검을 떨구고는 패배를 선언했다. 세 오러 마스터를 동시에 상대한 베니오가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슥 손등으로 훔쳤다.
“고생하셨습니다.”
“이제는 상대도 안 되는군요.”
“이 정도일 줄이야.”
첫날 검공을 상대로 대련을 벌인 베니오는 그다음 날 용병왕, 철벽 경과 차례대로 했고 그다음 날은 두 명, 그리고 오늘은 세 명의 오러 마스터를 상대했다.
하지만 첫날보다 두 번째 날이 더 빨랐고, 두 번째 날보다 세 번째 날에 승리하는 속도가 더 빨랐다.
동시에 상대하는 오러 마스터가 하나에서 둘로, 둘에서 셋이 되었지만 베니오는 오히려 수월하게 그들을 상대했다.
그랜드 마스터.
그 경지에 걸맞은 감각을 점차 찾아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깨달은 세 명의 마스터는 베니오를 보면서 푸념했다.
“하. 좋은 일인데 왜 이렇게 우울한지.”
“경도 그러십니까?”
“크, 크흠.”
베니오는 아이처럼 투덜대는 세 명의 마스터를 보면서 빙긋 웃었다. 저 셋 덕분에 베니오는 자신의 힘을 완벽하게 제어할 정도의 수준이 되었다.
아니 사실 그 이상이다.
‘신의 힘을 다뤄 본 것. 내게 허락된 것 이상을 한 번 겪어 본 셈이니까. 그게 큰 도움이 되었어.’
베니오가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베니오의 손가락 끝에서 오러도, 마력도, 정령력도, 신성력도 아닌 기운이 피어올랐다.
오색찬란하게 피어오른 그 기운은 오러와 마력, 정령력, 신성력을 모두 품고 있었다. 그랜드 마스터에 오른 베니오가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로 뭉쳐 내는 데 성공했다는 뜻이다.
이제 베니오는 마음만 먹으면 천마대제의 날개를 자르고 줄행랑을 치게 만든 성화 폭풍을 언제든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벼려 무공을 펼칠 수도 있고, 마법으로 쏘아 보낼 수도 있으며 정령술과 법술을 펼쳐 낼 수도 있었다.
‘이것을 뭐라 불러야 할까.’
베니오는 이제 대종사다. 베니오가 걸어가는 길은 오롯이 베니오가 스스로 개척한 일이다. 그렇기에 그것을 마땅히 부를 만한 명칭이 없었다.
이것은 모든 것이며 동시에 하나인 것이다.
“모순. 그래, 모순이지.”
하나이며, 동시에 모든 것이 될 수 있는 이 힘. 베니오가 깨우친 이 힘은 모순이다.
절대로 뚫리지 않는 창과 절대로 뚫리지 않는 방패처럼.
모든 것이 될 수 있지만 동시에 베니오에게서 비롯하였기에 이처럼 하나가 될 수 있는 힘.
“모순공. 여기 말로 하면 패러독스라 할까.”
베니오가 즐겁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 말을 들은 검공이 귀를 쫑긋거리다가 참견했다.
“패러독스라 정한 것이냐, 애송이?”
“예. 그럴 생각입니다.”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네놈을 상대하면 대체 내가 무엇을 상대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으니.”
마법인 것 같으면서 검인 것 같기도 하고, 법술인 것 같으면서 정령술 같기도 하다. 그러니 한 명이 아니라 마치 네 명과 싸우는 느낌이다.
검공이 혀를 내두르자 용병왕과 철벽 경이 차례대로 고개를 끄덕이며 어울리는 이름이라 동의했다.
모순공(矛盾功).
패러독스(Paradox).
역사에 길이 남을 대종사, 그랜드 마스터의 업적이 세워지는 순간이었다. 베니오가 그렇게 정하고는 활짝 웃자 검공이 험, 하고 헛기침을 했다.
“애송이.”
“예, 검공.”
“큼, 큼.”
검공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머뭇거렸다. 그답지 않은 일이다. 베니오가 고개를 갸웃하자 옆에서 지켜보던 용병왕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휴. 검등신 아재요. 괜히 아재를 검등신이라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요.”
“시끄럽다, 네놈!”
“왜 말을 못 하십니까. 기사가 되고 싶다, 검을 받아 달라, 이렇게요!”
용병왕의 말에 베니오의 눈이 커졌다. 그리곤 검공을 쳐다보는데, 그가 베니오의 눈을 슬쩍 피했다.
“제게 기사의 맹세를 하시겠다는 겁니까?”
“왜, 그, 애송이. 그랜드 마스터면 옆에서 뭐 보고 배울 것이 있을 테니 나쁘지 않겠다 싶어….”
황제조차도 품지 못한 것이 검공이다. 검공의 목적은 하나. 더 높은 검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검공의 주군이 될 수 있는 자의 조건은 한정되어 있었다.
검공보다 높은 검의 경지에 올라 있을 것.
사실상 그랜드 마스터가 아니라면 불가능하다는 소리다. 그러니 베니오가 적격이다. 베니오는 민망한 표정을 짓는 검공을 보며 마스터끼리는 꽤 많은 이야기를 했음을 깨달았다.
그러고는 손을 까닥였다.
두둥실.
검공의 허리춤에 있던 검이 두둥실 하고 떠오르더니 베니오의 손으로 빨려 들어왔다.
그리고 검공이 결심한 듯 베니오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기사의 맹세.
고리타분한 기사도라 할지 모르지만 기사에게는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더군다나 누군가를 주군으로 삼아 본 적이 없는 검공의 첫 맹세였기에 더욱 가치가 있다.
베니오는 검공의 맹세를 받아들인다는 뜻으로 검공의 검으로 검공의 머리와 양어깨를 차례대로 살짝 두드렸다.
이로써 베니오는 검공의 주군이 된 셈이다.
세 번째 마스터.
자리에서 일어난 검공이 멋쩍게 웃었다.
“어색하군. 아니, 어색합니다그려. 이리 해 본 적이 없는지라…. 주군.”
검공이 베니오를 주군이라 부르며 쑥스럽게 웃었다. 아마 그도 어색하리라. 황제 앞에서도 꼿꼿했던 그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훈풍이 불어오려는 순간 루텐이 뛰어 들어왔다. 그러고는 손에서 흙냄새가 나는 서신을 베니오 앞에 내밀었다.
“주군. 전장에 계신 공작 각하로부터의 서신이옵니다. 급히 주군을 청하고 있사옵니다.”
“나를? 각하께서?”
케플러 공작이 베니오를 찾는다. 표정을 굳힌 베니오가 서신을 펼친 뒤 순식간에 읽고는 다시 접으며 세 명의 마스터에게 말했다.
“전장으로 가야 할 것 같습니다. 놈이 저를 기다린다고 하니 여기서 시간을 축낼 필요는 없겠지요.”
천마대제.
놈이 베니오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