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s Lazy Martial Arts Genius RAW novel - chapter (299)
공작가의 게으른 무공천재-299화(299/300)
공작가의 게으른 무공천재 (299)
지긋지긋한 악연의 종지부 (4)
연합군의 진격이 멈췄다.
연합군을 이끄는 총사령관, 아모리아 제국의 국방대신인 마이어 후작은 심각한 표정으로 자신을 찾아온 병참총괄인 케플러 공작을 바라봤다.
“그 말씀이 사실이십니까?”
“예. 살아남은 자가 있었습니다. 로만 카이데스. 항복한 세 귀족의 수제자라고 하더군요.”
“그럼 저곳에 있는 게 그놈이란 말입니까?”
마이어 후작을 비롯한 제국의 삼십만 병력의 발을 묶은 건 상귀스 왕국으로 들어가는 길목, 검공령이 있던 자리에 자욱하게 깔린 검은 운무 때문이다.
그 안으로 척후조 열 개를 파견했지만 단 한 명도 돌아오지 못했다.
삼십만이나 되는 병력이 진격하기 위해 필요한 길목에 검공령이 있었기 때문인데 저곳을 우회한다면 육 개월을 돌아가야 한다.
“예. 총사령관.”
“그리고 그놈이 베니오 군을 찾는다는 말이구요.”
“이름 없는 신이라 하더군요.”
케플러 공작의 말에 마이어 후작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태양교 본단에 일어난 사고는 이미 최전선의 마이어 후작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그 과정에 수천 년 전 신화가 재현되었고, 이름 없는 신은 다시 날개를 잃고 베니오에 의해 패퇴 당했다는 소문이 이미 전군에 널리 퍼진 지 오래다.
“그래서 불렀습니다.”
“베니오 군을요?”
“예.”
케플러 공작은 어찌 보면 냉혹할 수도 있는 결정을 내린 셈이다.
“공작 각하.”
“총사령관님. 사사로이 제 아들이나 공적으로는 이 제국의 기사입니다.”
“제국의 인재이지요.”
“지금 꼭 필요한 아이이기도 합니다.”
케플러 공작의 말에 마이어 후작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총사령관께서도 병사를 아끼시기에 무리해서 들어가지 않으시는 것이 아니십니까.”
“…….”
“병사들의 큰 피해 없이 베니오, 그 아이만 오면 해결될 수 있으니 응당 그리해야 하는 일입니다.”
옛 검공령이 있던 곳. 몬스터의 땅인 몬스테리아로 가는 길목이자 상귀스로 난 길목에 있는 검공령의 중앙에 검은 운무가 불길하게 피어오르며 주변 지역을 까맣게 집어삼켰다.
이미 척후조 수십이 돌아오지 못했다.
마이어 후작은 저 운무에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불길함을 느끼고 있었는데, 그것이 그를 주저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냥 무시하고 운무를 돌파하기에는 너무 많은 희생이 나올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때 부관 중 하나가 들어와 마이어 후작에게 고했다.
“총사령관 각하. 케플러 가문의 베니오 케플러가 도착하였사옵니다.”
“벌써 말이냐?”
“예.”
마이어 후작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케플러 공작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이동소를 이용하면 무리는 아닙니다.”
“하지만 거리가 멀 테니 비용이….”
“총사령관. 케플러입니다.”
케플러 가문 앞에서 돈을 논하는 건 의미가 없는 일이다. 하지만 부관은 그런 예상을 깨겠다는 듯 덧붙여 말했다.
“그뿐만 아니라 삼천 병력이 함께 도착하여 합류를 청하고 있사옵니다.”
삼천.
그 말에 케플러 공작의 눈빛이 살짝 변했다.
삼천이나 되는 인원이 저 멀리 태양교 본단에서 이곳까지 도착하려면 대체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들었을까.
“공작.”
“잘…된 일일 겁니다, 아마도.”
“험. 나가시겠습니까.”
아마 가문의 내탕금의 대부분을 썼을지도 모른다. 살짝 눈물이 나오려 했지만 케플러 공작은 마이어 후작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 * *
“주군.”
“세 분께서는 각자 한 방위를 부탁드립니다.”
“저도 함께하겠습니다.”
용병왕이 베니오와 함께하겠다 했지만 베니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조금 전 순간이동소를 거의 여덟 곳을 거쳐 막 도착한 참이지만 쉴 시간 따위는 없었다.
“놈은 제가 혼자 상대합니다.”
“주군.”
“걱정 마십시오. 여러분들이 제힘을 가장 잘 아시지 않으십니까.”
그랜드 마스터.
천 년 전 여덟 용사를 제외하면 단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던 경지의 기사다. 그리고 그런 베니오의 저력을 가장 뼈저리게 체험한 건 세 명의 오러 마스터들이다.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베니오는 지난번처럼 천마대제를 놓칠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뭉클뭉클.
“저 소름 끼치는 기운을 아예 이 세상에서 없애 버려야겠어요.”
베니오는 검공령이 있던 곳에 자욱하게 내려앉은 마기 덩어리를 보고는 잇새로 굳은 각오를 중얼거렸다.
‘급한 모양이군. 일월진(日月陳)까지 꺼내 들 줄이야.’
일월진은 천마신교의 전신인 일월신교에서 보유하고 있던 진법 중 하나로, 마기를 증폭시켜 주는 기능이 있었다.
그러나 일월진을 펼치기 위해 필요한 재료가 악랄한 수준이라 천마신교 내에서도 거의 쓰이지 않고 사장된 진법이었다.
일월진을 펼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단 하나.
사기(死氣)다.
‘저 정도 규모라면 족히 일천 명은 죽였겠군.’
일월진을 위해 필요한 사기는 일천 명분이다. 그리고 그 일천 명이 죽은 지 두 시진이 지나지 않아야만 진법의 재료로 사용할 수 있었다.
죽은 사람의 사기가 두 시진 이후에 약해지기 때문에 두 시진 안에 죽은 일천 명을 재료 삼는 셈이다.
저 안에서 마기의 효율은 두 배로 높아진다. 저것을 천마대제가 꺼내 들었다는 것은 그가 그만큼 막다른 길에 몰렸다는 뜻이다.
‘저럴 놈이 아님에도 저 선택을 했다는 뜻이니까.’
천마대제는 늘 우월한 실력으로 적을 압살하는 것을 선호하던 인물이다. 그로써 자신이 다른 이들보다 탁월하다는 것을 선전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천마대제는 자존심을 포기했다.
‘죽더라도 나와 함께 가겠다는 각오겠지.’
그런 천마대제의 우월함에 균열을 일으킨 것이 바로 베니오, 육항이다. 십 년 넘게 개처럼, 노예처럼 끌고 다닌 놈에게 한순간의 방심으로 인해 천마대제의 위업에 오물이 묻은 셈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천마대제가 베니오에게 품은 살심은 양패구상도 각오하고 있을 것임이 틀림없다.
그래서 베니오는 만반의 준비를 다 했다.
“아니, 검공?”
“공작, 후작 오랜만이오.”
“어째서 검공께서.”
“내가 새로운 주군을 모시가 되었소이다.”
검공의 등장에 마이어 후작이 화들짝 놀랐고 케플러 공작 역시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그가 가리키는 주군이 베니오라고 하자 놀람은 배가 됐다.
“그, 무슨.”
“위대한 경지에 오른 기사이기에, 내가 고민할 필요가 없었소이다.”
“위, 위대한 경지요?”
마이어 후작은 베니오를 쳐다봤다. 검공이 위대한 경지라 칭할 정도면 생각나는 건 딱 하나밖에 없다.
안 그래도 베니오에게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 당황했던 마이어 후작이다. 그리고 베니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랜드 마스터가 되었습니다.”
“커헉!”
마이어 후작이 목덜미를 턱 잡았다. 그만큼 놀랐다는 뜻이다. 베니오는 자신을 놀란 눈으로 보고 있는 케플러 공작에게 고개를 숙였다.
“제가 그랜드 마스터가 되었습니다.”
“…정말이구나.”
“예, 아버지.”
베니오는 케플러 공작을 아버지라 불렀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 놀라는 건 여기까지다. 베니오는 손뼉을 짝 쳤다.
“놀라는 건 나중에 하셔야 합니다. 총사령관 각하와 공작 각하께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베니오는 본론을 꺼내 들었다. 회포를 풀고, 놀라는 건 천마대제를 잡은 뒤에 해도 늦지 않은 일이다. 베니오가 진지하게 말하자 케플러 공작과 마이어 후작도 금세 정신을 차렸다.
“총사령관 각하. 직접 나서 주셔야겠습니다.”
“내가 직접 말인가?”
“예. 마스터 급이 필요합니다.”
베니오는 그리 말하면서 케플러 공작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공작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렌 경을 내어주마.”
“한 명이 더 필요합니다.”
“…!!!”
공작의 눈이 커졌다. 이미 임플로 총관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듯한 아들의 눈빛에 케플러 공작의 눈이 좌우로 흔들렸다.
“가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 한 번입니다.”
“…내 설득해 보도록 하지.”
임플로 총관은 케플러 공작의 안위를 위해서라면 군령도 거절할 남자다. 그를 설득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케플러 공작밖에 없었다.
베니오는 고개를 까닥 숙여 보였다.
“놈은 아마 저를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대체 왜, 수천 년 전의 신화가 베니오를 기다리고 있는지에 대한 사소한 설명 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건 연합군의 발목을 잡은, 수천 년 전의 신을 최소한의 피해로 치워 버리는 것뿐이다.
“뭐, 옛 신화의 한 장면처럼 그렇게 멋들어지게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싶은 것이겠지요.”
베니오는 어깨를 으쓱했다. 놈과 자신의 악연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깊다. 그러니 뭐 대단한 신화 속에 나올 법한 대결 구도를 상상했으리라.
하지만 베니오는 그럴 생각이 손톱만치도 없었다.
“그런데 그건 그놈 생각이고, 전 놈에게 어울려 줄 생각이 조금도 없습니다.”
베니오의 입가에 잔혹한 미소가 서렸다.
“전 놈을 사냥할 생각이니까요. 그러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가용할 생각입니다. 여기 계신 마스터와 제 병력, 그리고 놈에게 복수심을 가진 모든 이들을 총동원해서 말입니다.”
베니오의 말에 한기가 실렸다.
“신을 사냥할 겁니다. 다들 준비해 주세요.”
* * *
어둠 속에 앉아 천마대제는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지난 수천 년간 천마대제는 신계에 갇혀 오로지 신계를 빠져나가기 위해 전력을 다했기에 미치지 않을 수 있었다.
그 결과 경지는 더 나아가지 못했으나 일개 인간이 가질 수 없는 마기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그러한 오랜 기다림은 결국 빛을 보았고, 세상에 다시 나올 수 있었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하필이면 그곳에서 베니오, 아니 육항을 만나기 전에는.
드드드득!
천마대제의 감정에 마기가 동요하며 주변을 죽음의 대지로 물들였다, 이 일월진을 위해 천마대제는 무려 일천에 다하는 카이데스, 넥스, 에마 가문의 모든 생명의 목숨을 제 손으로 끊어 주었다.
이 안에서 천마대제는 신이나 마찬가지다.
사방에 퍼진 마기가 천마대제의 손이고, 발이었다. 그리고 천마대제는 육항이 자신을 찾아올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천마대제가 그에게 가지는 분노보다, 육항이 자신에게 가질 분노가 몇천 배는 더 크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놈만. 그놈만 없으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육항은 가장 큰 걸림돌이다. 천마대제는 놈을 이곳으로 초대했다. 놈이 가진 분노의 크기를 보건대 자신의 초대를 절대로 거절하지 않으리라 자신했다.
그리고.
화아아악!
천마대제의 날개를 자르고 그를 추락시킨 성화 폭풍이 마기를 걷어냈다. 마기를 걷어내며 홀로 모습을 드러낸 베니오를 본 천마대제가 히죽 웃었다.
기다리던 손님이다.
“육항.”
“베니오다.”
“그것이 네 새로운 이름이렷다.”
베니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육항이지만, 베니오다. 둘 다 자신일 뿐이다. 이름 따위로 베니오의 정체성을 흔들 순 없었다.
천마대제는 베니오를 바라보았다. 베니오는 화령에 손을 얹은 채 천마대제를 응시하고 있었다. 천마대제가 잔혹하게 웃으며 손을 들어 올렸다.
“말이 필요 없을 터.”
“네놈과 나 사이에 말은 무슨.”
“홀로 나타난 것을 보니 얻은 것이 있는 모양이로구나. 그 검이더냐?”
베니오는 피식 웃었다. 폭풍검은 사라졌다. 베니오는 화령을 툭툭 두드렸다.
“걱정 마라. 네 날개를 잡초 자르듯 싹둑 자른 그 검은 가져오지 않았으니까.”
“네 이놈.”
콰우우우!
마기가 파도처럼 일어나 금방이라도 베니오를 덮칠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멈춰 섰다. 베니오는 피식 웃으며 손가락을 딱하고 튕겼다.
“쓸데없는 짓은 하지 말고.”
작은 성화 폭풍이 마기를 밀어냈다. 그것을 본 천마대제의 눈이 커졌다. 자신이 일으킨 파도에는 분명 천마대제의 의지가 실려 있었다. 그런데 그것을 폭풍이 밀어낸 것이다.
의지가 의지를 밀어냈다.
그렇다는 건 베니오가 의지를 폭풍에 담아냈다는 뜻이다.
“네놈!”
“왜. 현경 처음 보나?”
베니오가 히죽 웃었다.
“그리고 뭘 착각한 것 같은데.”
베니오는 자신이 현경에 올랐다는 것에 충격에 빠진 듯한 천마대제를 힐끗 보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난 네놈의 마지막 쟁투에 어울려 주기 위해 이곳에 들어온 게 아니야.”
“뭐라?”
“네놈을 사냥하기 위해 들어온 것이지.”
베니오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러더니 어느새 화령이 일월진을 내부에서 크게 베었다. 그와 동시에 천마대제는 깨달았다.
자신을 잡기 위해 자신을 포위한 저 어마어마한 포위망을. 자신이 삼키려 했던 베니오가 먹잇감이 아니라 맹독을 품은 가시였음을 깨달은 것이다.
“일월진? 안에서 부수면 그만이고. 그리고 진법은 네놈만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니던데.”
“무슨….”
번쩍―!!!
빛이 터져 나왔다. 어마어마한 마력이 천마대제를 중심으로 일어났다. 그리고 그 위로 거대한 신성력이 분출하며 천마대제의 마기를 불태웠다.
“육항! 육항 네 이노오옴!”
저 멀리 베룸가의 가주가 마법진에 마나를 불어넣고 있었다. 그리고 살아남은 태양교의 성직자들이 일제히 신성력으로 천마대제의 마기를 불태웠다.
결국 남은 건 천마대제, 그 몸뚱어리 하나뿐이다.
“자. 사냥할 시간이다.”
베니오가 화령을 들어 천마대제를 겨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