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s Lazy Martial Arts Genius RAW novel - chapter (49)
공작가의 게으른 무공천재-49화(49/300)
공작가의 게으른 무공천재 (49)
좋다는 것만 빼먹는 게 뭐 어때서 (4)
2구역의 낮과 밤은 확연하게 달랐다.
낮의 활기가 줄어드는 대신 밤의 열락이 살아나며 낮에는 식당이나 카페로 영업을 하던 곳들이 술집과 바로 바뀌면서 묘하게 들뜬 듯한 분위기가 거리 전체에서 느껴졌다.
곳곳에서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음유시인이 연주하는 미니 하프 소리가 섞여서 저녁 공기를 달궜다.
또한, 낮 못지않은 활기를 띤 곳도 물론 있었다.
“싸다 싸! 두덱 자작령에서 세 시간 전에 도착한 오크의 머리카락이 단돈….”
“애들은 가라! 이것 하나만 먹으면 사랑받는 남편이….”
야시장.
낮과는 또 다른 분위기의 야시장이 낮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작지 않은 규모로 열려 있었다. 사실상 거의 불이 꺼지는 시간 없이 24시간 돌아가는 셈이다.
그만큼 유동 인구가 많다는 뜻이다.
아카데미에 필요한 자재들이 그만큼 많고, 귀족가 자제들이 많다 보니 필요한 물건들이 많아 낮이고 밤이고 수시로 용병들과 상인들이 드나들기 때문이다.
스윽.
베니오는 후드를 푹 눌러쓴 채 사람들 사이로 섞여 들었다. 다행히 후드를 쓰고 다니는 건 베니오 혼자만이 아니었다.
예상보다 많은 용병이나 상인들이 후드를 쓰고 돌아다녔기 때문에 쉬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이 다행인 셈.
하지만 그건 베니오의 오판이었다.
“경비병이다.”
“아카데미 경비병? 그자들이 왜?”
삐이익―!
호루라기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상인들과 방문객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베니오는 상인 둘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며 발걸음을 빨리했다.
“모두 동작 그만!”
그때 시장 중앙의 단상에 갑옷을 입은 기사가 오러를 이용해 목청을 돋워 소리쳤다. 오러가 물씬 담긴 그 기세에 사람들이 자신들도 모르게 멈춰 섰다.
‘이렇게 빨리.’
베니오는 한숨을 작게 내쉬었다. 자신의 예상보다 아카데미 기사와 경비병들은 탈출한 생도들을 잡는 데 매우 적극적이었다.
“모두에게 양해를 구하겠소! 현재 아카데미에서 생도 셋이 탈출한 바, 이에 따라 모두가 협조를 해 주셔야만 하오.”
웅성웅성.
생도가 아카데미를 탈출했고, 그걸 아카데미 기사들이 잡지 못했다는 말에 상인들이 웅성거렸다.
이곳은 철저히 아카데미에서 필요하기 때문에 만들어진 구역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영지가 영주를 위주로 돌아간다면, 이곳은 아카데미를 위주로 돌아간다.
지금처럼 생도가 정해진 시간 외에 탈출을 했을 때 기사들에게 협조하는 것 역시 이곳에 기거하는 이들이 지켜야 하는 규율이다.
‘다들 재밌어하는 얼굴들인데.’
베니오는 상인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걱정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탈출? 이번에는 세 명이나?”
“이야, 얼마나 갈까?”
“난 세 시간.”
“세 시간? 난 두 시간.”
“오케이, 콜!”
어떤 상인들은 심지어 수군거리면서 돈을 걸고 내기까지 했다. 베니오는 이게 마치 작은 쇼처럼 됐다는 것에 쓰게 웃었다.
‘이전에도 탈출한 생도들이 없지는 않았던 모양이군.’
하긴 혈기 왕성한 생도들이 10시 땡하면 기숙사에만 있어야 하는데 탈출 시도를 안 했을 리 없다.
‘대부분 세 시간 이내에 잡힌 건가?’
그리고 상인들의 말을 들어 보면 그렇게 탈출을 감행한 생도 중 기사들의 손을 무사히 피해 간 이들은 없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성공한 생도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리가 없으니.’
실패자의 이야기들만 들은 셈이다. 그래도 탈출을 했는데도 세 시간 만에 붙잡혔다는 건 그만큼 이 바닥이 아카데미 기사들의 손바닥 위나 마찬가지란 뜻이다.
‘그런데 셋이라고?’
베니오는 고개를 갸웃했다. 기사는 분명 탈출한 생도가 셋이라고 했다. 그 때문에 베니오는 당연히 지오반니만 빠져나오는 데 성공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세베루스도 탈출에 성공한 셈이다.
‘어떻게?’
이곳 어딘가에 그 둘이 있으리라.
‘암시장에서 만나게 되겠지.’
만일 잡히지 않는다면 그 둘과 암시장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베니오는 서둘러 3구역으로 넘어가야만 할 필요를 느끼고는 주변을 살폈다.
‘저쪽.’
단상에 오른 기사의 눈에 띄지 않게 베니오는 움직임을 조심하면서 시장 중앙에서 멀어졌다. 생도들의 탈출이 좋은 흥밋거리가 됐는지 야시장 곳곳에서 술과 돈이 오가며 길거리 음식이 오갔다.
‘노고가 많겠어.’
이런 분위기에서 생도들을 찾아야 한다니. 기사들과 경비병에게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베니오는 골목길을 돌아 들어갔다.
‘3구역은 남쪽.’
뒷골목이라고는 하지만 으레 뒷골목 하면 생각하는 것처럼 냄새나고 더러운 곳은 아니었다.
순전히 아카데미만을 위해 존재하는 2구역에 그러한 환경이 조성될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 자연스럽게 난 작은 골목이었다.
그런 골목이 거미줄처럼 나 있었는데, 베니오는 그곳을 통해 남쪽으로 내려가다가 흠칫하고는 제자리에서 뛰어올랐다.
텁.
건물 2층의 난간을 붙잡고 위태롭게 매달린 베니오는 마치 곡예를 하듯 몸을 뒤집어 난간에 매달렸는데 그런 베니오의 바로 아래로 경비병들이 다섯 명이나 짝을 지어 지나갔다.
“흔적도 없어.”
“어디로 간 거지?”
베니오는 그들이 지나간 다음 아래로 뛰어내렸다. 그러고는 자신도 모르게 솟은 식은땀을 손등으로 닦아 내면서 혀를 내둘렀다.
“천라지망인가.”
마치 주변에 천라지망이 펼쳐진 것만 같았다. 거기에 얼마나 생도들을 잡고자 하는 열의가 가득한 것인지 경비병들이 무려 다섯 명이나 짝지어 돌아다니고 있었다.
제아무리 검술 학부의 생도라고 하더라도 다섯이나 되는 경비병을 단시간에 상대할 수는 없었다. 그 사이에 신호탄을 터뜨려 기사를 불러 모으려는 계획인 것이다.
새삼 살벌함을 느낀 베니오는 더욱더 조심스럽게 남쪽으로 내려갔다.
그렇게 골목이 끝나고 대로가 나올 무렵, 베니오는 숨을 죽이며 벽에 바짝 달라붙어 어둠이 만들어 낸 그림자 속에 자신의 기척을 숨겼다.
화르륵.
대로에는 쥐새끼 하나 놓치지 않겠다는 듯 커다란 화로에서 나오는 불꽃이 주변의 어둠을 몰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아카데미 게이트를 방불케 하는 철저한 경계 체계가 이미 구축이 된 상태였다. 기사들을 비롯해 경비병들이 그곳에서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전부 붙잡아 후드를 벗기며 일일이 얼굴을 확인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하지?’
베니오는 지붕을 올려다봤지만 고개를 가로저었다. 기사들이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지붕도 경계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 골목을 나가지 않으면 남쪽으로 더 이상 내려갈 수가 없었다.
말 그대로 사면초가의 상황에 처한 것이다.
그런데 그때 딸랑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베니오가 발견하지 못했던 뒷문 하나가 달칵하고 열렸다.
“흡.”
기척을 미처 느끼지 못한 베니오가 기겁하며 숨소리조차도 죽였다. 그런데 그 안에서 나온 노파 하나가 베니오가 있는 곳을 정확히 바라보며 손짓했다.
살랑살랑.
베니오는 자신의 기척을 최대한 죽이며 없는 척을 했다. 하지만 노파는 또렷이 베니오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뭐지?’
[저쪽에서 소리가 났는데. 확인해 보고 오지.] [예!]그런데 그때 대로 쪽에서 기사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오러를 단련한 예리한 감각이 문이 열리면서 낸 작은 방울 소리를 들은 것이다.
기사가 골목 안으로 들어오면 꼼짝없이 들키게 된다.
그 때문에 베니오는 하는 수 없이 노파를 향해 잰걸음으로 걸었고 베니오가 다가오자 노파가 몸을 비켜섰다.
안으로 들어가라는 뜻이었다.
‘내가 오는 걸 알고 있었어?’
노파는 마치 베니오가 그곳에 있는 것을 안다는 듯 손을 까닥였다. 그러고는 자연스레 안으로 베니오를 들어가게 하는 걸 보니 마치 베니오가 올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만 같았다.
달칵.
딸랑.
그때 베니오가 들어온 문이 닫히고 딸랑거리는 방울 소리가 재차 울려 퍼졌다. 그 순간 베니오는 자신이 왜 노파의 기척을 느끼지 못했는지 깨달았다.
“마법?”
“그렇네.”
베니오가 중얼거렸다. 이 문 안쪽은 마법으로 보호를 받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베니오가 노파의 기척을 느끼지 못한 것이다.
그런 베니오의 혼잣말에 노파가 대답하자 베니오가 흠칫하고 놀랐다.
“볼품없지만 마법으로 외부의 기척을 차단하고 있는 곳이지.”
노파는 허리가 반쯤 굽었다. 하얗게 센 머리를 검은 천으로 두른 노파의 얼굴을 본 베니오는 어깨를 파르르 떨었다.
‘맹인?’
노파의 두 눈은 동공까지 하얗게 물들어 있었다. 그렇다는 건 노파가 앞을 보지 못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노파는 분명 베니오가 있는 곳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누구냐?”
베니오의 목소리가 절로 날카로워졌다. 범상치 않은 노파에 범상치 않은 장소다. 건물의 반지하쯤으로 예상되는 곳은 하얀 연기가 반쯤 들어차 있었고 주변에 각종 기물이 널려져 있었다.
기하학적인 문양을 그린 종이, 박제된 동물의 머리, 그리고 어디에 쓰는지 알 수 없는 쇠붙이들까지.
‘도사? 술사?’
베니오는 이런 비슷한 분위기의 장소를 본 적이 있었다. 무당파나 화산파 같은 정식 도문의 도사가 아니라 혹세무민하는 도사나 사술을 부리는 술사가 자리 잡은 곳이 이러한 느낌이었다.
개중에는 미래를 예지한다든가 하는 허언을 내뱉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런 사짜 도사들과 술사들은 생각보다 평민들에게 인기가 아주 좋았다.
자신의 미래를 궁금해하는 건 그들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노파가 베니오의 물음에 대답했다.
“그저 죽을 날을 기다리는 노인일 뿐이오.”
“그런데 내가 올 것을 알고 있었다?”
“늙으면 보지 못하던 것을 보기 시작하고 듣지 못하는 것을 듣기 시작하지. 그저 그뿐이고.”
“…좋아.”
베니오는 선문답만 하는 노파에게 질문을 바꿔 하기로 마음먹었다.
“넌 누구지?”
“포츈텔러.”
“점성술사?”
포츈텔러는 말 그대로 하늘의 별을 보고 사람들의 운명을 이야기해 준다는 길거리의 점쟁이다. 베니오가 인상을 찌푸리자 노파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름을 잊은 지 오래요. 그러니 포츈텔러라고 할 수밖에.”
“이름을 잊었다….”
노파에게서는 마치 아미파의 고승이 보일 법한 그런 기운이 느껴졌다. 모든 것을 초탈하고 속세를 등지고 등선하기 직전의 그런 고승의 초연함에 느껴진 것이다.
베니오의 목소리가 누그러졌다. 적어도 자신의 적은 아니다.
“무엇을 기다리고 있었지?”
“사람 하나를 기다리고 있었소. 별이 나에게 이야기를 해 주더이다. 사연 많은 자가 올 것이라고.”
사연 많은 자. 그리고 사람 하나.
베니오다.
별이 그녀에게 베니오가 이곳에 올 것임을 점지해 주었다 한다.
“그래서 문을 열었소. 그리고 별이 이끄는 대로 손을 들었지. 그러니 당신이 들어왔소.”
노파는 맹인이다. 앞을 보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별이 말하는 대로 했더니 그곳에 베니오가 있었다는 소리다.
당최 믿을 수가 없는 이야기의 연속.
하지만 베니오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경솔한 짓은 하지 않았다.
“내게 사연이 많다?”
“그렇지. 두 개의 이야기가 있다고 하더군.”
“두 개의 이야기.”
베니오와 육항. 두 영혼의 삶을 말하는 것이다. 베니오의 안색이 슬쩍 굳었다. 이 정도 되니 노파를 그저 점쟁이라고만 얕잡아 볼 수 없다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고자 하는 말은 무엇이오?”
그렇기에 베니오는 말투를 바꿨다. 그러자 노파가 흐릿하게 웃었다.
“두 개의 이야기는 결국 한 개의 줄기로 합쳐지기 마련이지. 그대가 원하는 것을 찾고 싶거든 거대한 바다의 어머니와 거대한 선박이 춤추는 곳에서 그대에게 보이는 것을 찾으시면 되오.”
“그게….”
“가장 큰 별이 말해 주더이다. 그대를 밝히는 것은 자신이라고. 그러니 그대는 가장 큰 별을 따라 쭉 가시면 그 길에 원하는 것이 있을 것이오.”
노파에게서 현기가 느껴졌다. 뜬구름 잡는 말들뿐이지만 적어도 그것이 허무맹랑한 것이 아니란 것 정도는 느낄 수 있었다.
“내게 보이는 것을 찾으라니. 내가 보이는 것이 무엇이오?”
“이미 그대는 알고 있소.”
노파는 자신이 할 말만을 마친 채 손으로 베니오가 들어온 문이 아니라 다른 쪽의 문을 가리켰다.
“가시오.”
“….”
베니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노파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게 느껴졌기에 베니오는 자리에서 일어서는 수밖에 없었다.
점쟁이가 아니라 마치 고승과 대화를 나눈 것 같았다.
부처님이나 도교의 오묘한 경구를 읊는 고승이나 도사들과의 대화가 딱 이러했다.
“무슨 소리인지 도통 모르겠군. 아무래도.”
베니오는 이곳을 머리에 새겼다.
“다시 오겠소. 그대와는 대화가 더 필요할 듯하니.”
노파는 베니오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베니오는 노파가 가리킨 곳의 문을 열었다. 그러자 퀴퀴한 냄새가 콧속을 파고들었다.
“3구역?”
베니오가 놀라 뒤를 돌아봤다. 하지만 베니오는 노파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치 모든 것이 착각이었다는 듯 베니오가 열고 나온 건 3구역의 물류창고 중 한 곳이었다.
“대체….”
“베니오!”
그런데 그때 저쪽에서 지오반니와 세베루스가 뛰어왔다. 둘 다 멀쩡한 모습으로 3구역까지 도달한 것이다. 그 둘을 보고 베니오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