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s Lazy Martial Arts Genius RAW novel - chapter (75)
공작가의 게으른 무공천재-75화(75/300)
공작가의 게으른 무공천재 (75)
남의 잔치에 재 뿌리는 소리 (5)
발레리 아모리아.
그녀는 황제에게서 엄명을 받고는 고소를 금치 못했다.
“오라버니, 제정신이세요? 베니오 케플러요?”
발레리의 말에 아모리아 제국의 황제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만인지상이라는 황제의 자리에 오른 자신이지만 형제 중 유일하게 발레리만큼은 자신을 이전과 다름없이 대했기 때문이다.
“발레리, 말을 조심하거라. 도미니언 백작이 들으면 어떻게 하려고.”
도미니언 백작은 황실의 대소사를 책임지는 시종장이자 어릴 적 황제를 보필했던 오래된 시종이다. 황제는 황자이던 시절부터 그를 형이자 아버지처럼 따랐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도미니언 백작은 엄했다.
특히 황실의 예법에 특히 깐깐했으니, 만약 발레리가 그런 식으로 황제에게 말을 했다는 걸 안다면 아마 노발대발할지 모른다.
“됐어요. 도미니언 아저씨는 내 한마디면 꼼짝도 못 해요.”
“하아, 발레리.”
올해 서른다섯이 된 발레리는 황실 내에서 무서운 사람이 없었다. 어릴 적에는 당돌함으로 만인의 사랑과 특히 선황의 총애를 받았다.
도미니언 백작 역시 마찬가지다.
어릴 적부터 발레리를 봐 왔던 도미니언 백작은 발레리에게만은 엄하게 하지 못했다. 어쨌거나 발레리는 말 돌리지 말라는 듯 허리에 손을 척 얹었다.
“왜 베니오 케플러에요?”
“발레리.”
“케플러 공작가의 영향력을 줄이려 한다는 오라버니의 생각은 저도 동의해요. 이 나라는 알게 모르게 많은 것이 케플러에 의해서 좌지우지되고 있으니까요.”
“….”
“케플러 공작가의 후계 구도를 뒤흔든다는 발상은 좋아요. 결국 그 혼란이 차기 가주로 이어지면 케플러 공작가의 힘은 줄어들 테니까. 하지만 베니오 케플러는 아니죠. 오빠 딸이잖아요. 내 조카이기도 하고.”
황제는 케플러 가문을 경계했다.
40대로 젊은 황제인 현 아모리아 황제는 황태자 시절부터 귀족 가문의 성세가 강성해지는 것을 경계했다.
신하여야 하는 귀족 가문의 성세가 강성해지면 결국 황실의 권위가 줄어들게 되는 법이기 때문이다.
권력의 총량은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황제는 귀족 가문 중 케플러 가문을 가장 경계했다.
만금가의 케플러.
케플러 가문은 공식적으로 전 대륙에 유통망을 가진 대상단을 보유하고 있었다. 상행에 나서는 상단의 수만 오십이 넘었고 행수의 수가 수백 명에 달했다.
그들이 한 해 동안 벌어들이는 수익은 아모리아 제국의 1년 예산의 절반에 달하는 정도.
아모리아 제국의 그 드넓은 땅을 통치하고 수백 명의 귀족을 다스리는 데 들어가는 예산의 절반을 일개 한 개의 가문이 벌어들인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그것뿐이냐?
아니다.
케플러 가문의 신용으로 돈을 맡아 주는 금융기관인 케플러 전장이 동원할 수 있는 자금은 아모리아 제국 전체를 사고도 남을 정도라 알려져 있었다.
물론 그건 케플러 가문의 돈이 아니지만 전장이 그 정도의 신용으로 그 큰돈을 맡아 주고, 대신 굴려 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케플러 가문에게 있어서는 어마어마한 무기다.
그 막대한 자금으로 케플러 가문은 제국이나 타국의 각종 이권 사업에 가담하고 있었고 심지어 대금업으로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붙여 받아 내는 방식으로 수백 개 가문의 재정 상태를 파악하고 있었다.
거기에 암시장과 여러 다른 케플러 가문의 사업들까지.
케플러 가문은 자체적으로 광산 지분을 가지고 있었고, 대장장이 여럿이 속한 길드의 지분도 있었으며 축산, 낙농, 농업 등 모든 산업 분야에 케플러 가문의 돈을 넣어 놓았다.
심지어는 정보 길드와 용병 길드, 교단에까지 케플러 가문의 돈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그런 케플러 가문의 영향력은 이미 일개 가문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을 정도.
오죽하면 타국에서 케플러 가문에게 직접 사신을 보낼 정도로 케플러 가문의 위세는 어마어마했다.
그런 위세를 가진 케플러 가문을 황제는 가장 경계했다. 만일 케플러 가문이 나쁜 마음을 먹는다면 단박에 제국의 유통과 물류, 그리고 금융과 경제가 마비될 것임은 두말할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케플러 가문에서 독립하기 위해 황실 자체로, 그리고 다른 귀족 가문에도 경제 활동을 장려해 그들의 영향력을 점차적으로 줄여 나가는 쪽으로 안건을 고안해 내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리고 황제는 그것을 넘어서 더 근본적인 문제에까지 손을 대려고 하고 있었다.
케플러 가문 내부의 일까지 간섭하려고 한 것이다.
베니오 케플러를 통해서 말이다.
“네 조카이고, 내 딸이기 전에 이 나라의 황녀다, 발레리. 너가 그랬듯 그 아이도 국가를 위해 혼인을 올려야 한다는 뜻이고.”
“그게 베니오 케플러라고요? ‘그’ 베니오 케플러?”
황제는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오라버니! 그 베니오 케플러라고! 케플러 가문의 차남, 그 망종의 소문을 오라버니가 모르는 것도 아니잖아?”
발레리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황제는 비정했다. 그러나 모든 역대 황제들은 비정했다. 그리고 그들 스스로도 그런 비정함에 희생을 해야 한다.
발레리는 그것에 대해서 반발을 하는 건 아니다. 누리는 것이 큰 만큼, 의무 또한 거대한 법이니까. 하지만 적어도 자신의 딸이 그런 망종과 이어지는 것만큼은 꺼려야 하는 것이 황제 이전에 아버지가 아니겠는가.
“잘 알고 있지. 천년 아카데미의 수치라 불리던가. 혹은 최악의 둔재? 듣자 하니 할 수 있는 건 쥐뿔도 없으면서 자존심만 세다고 하더군. 더군다나 최근에는 다섯 살이나 어린 검공의 차남에게 머리통이 터졌고.”
황제는 그게 뭐 어떻냐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발레리는 인상을 팍 찌푸렸다. 이건 자신이 알던 오라버니가 아니었다.
“오라버니, 뭐가 있는 거지?”
그러자 황제가 씩 웃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집무실 서랍에서 서류철 하나를 꺼냈다. 꽤나 두꺼운 서류철이었는데 그걸 황제가 발레리에게 건넸다.
“베니오 케플러에 대한 보고서?”
“황영 보고서다.”
발레리의 눈이 커졌다. 황영(皇影)은 말 그대로 황제의 그림자다. 황제만이 부릴 수 있는 그림자들로 정보 수집에 있어서는 제국 최고를 자부하는 곳이다.
그들이 만든 보고서는 오로지 황제만이 열람할 수 있었다. 그걸 황제가 발레리에게 건넨 것이다.
“표시된 부분만 봐도 된다.”
“알고 있어.”
보고서가 수백 페이지에 달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당장 전부 읽는 건 무리다. 황제는 친절하게 발레리가 봐야 할 곳을 표시해 놓았다.
그렇다는 건 발레리에게 이걸 보여 주기 위해 미리 이런 표식을 해 놨다는 뜻이다.
“루멘? 루멘 마이어를 말하는 거지?”
“그래.”
베니오가 라드릿슈에게 시비를 걸었다가 머리통이 터진 뒤 일어난 시점부터 작성된 보고서다. 처음에는 루멘 마이어를 꺾은 것부터 시작하더니 오러를 깨우치고, 마력을 깨우쳐 학부장들의 공동전인이 된 내용이 쓰여 있었다.
“라치오 학부장과 램블도어 학부장의 공동전인이 되었다고?”
검과 마법.
발레리는 검과 마법을 둘 다 익히지 않았지만 기본적인 소양으로 그것이 하나만 평생을 익혀도 경지에 오르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베니오는 무려 두 가지를 깨우쳤고, 프레드릭 전대 백작과 혜룡가 베룸 공작가의 일원인 램블도어의 공동전인이 되었다.
펄럭.
“뭐야, 두덱령? 이 일을 이 아이가 처리했다고?”
끄덕.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황영의 보고지만 발레리는 순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공식적으로 두덱령은 태양교에서 나선 것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보증인이 솜누스 백작가의 나이트 앰블란, 그리고… 박살의 아르마다? 10인의 성호?”
“더 놀랄 건 다음이다.”
황제의 말에 발레리는 서둘러 뒤를 넘겼다. 그리고는 두 눈이 찢어질 것처럼 커졌다.
“팔신가 중 하나인 크리스 주니오르를 제 사람으로 만들었고, 아르마다의 제자가 되었다고? 이게 사람이야? 오라버니. 나한테 거짓말하는 거 아니지?”
“황영이 거짓말을 했을 리 없잖느냐.”
“아, 그렇지.”
발레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마지막 장을 넘겼다. 그곳에는 인사성 휘하의 신상국 국장인 티그레 남작이 남긴 메모가 남겨져 있었다.
[비앙카 황녀 마마와 어울리는 배필로 사료됨]“오라버니, 티그레 남작을 아카데미로 보낸 이유가 그것 때문이었어?”
“그래. 어떠냐? 막내의 배필로 베니오 케플러가 아직도 적합하지 않다고 보느냐?”
“음….”
발레리는 할 말을 잃었다. 베니오는 목검에 머리를 맞아 쓰러지고 난 이후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행보를 보였다.
가끔 작은 계기가 사람의 미래를 확 바꿔 버린다고 하지만 베니오는 그 정도가 좀 심했다.
“이거, 같은 사람 맞아?”
“황영의 조사로는 그렇다. 다른 특이점을 찾지 못했다고 하더군.”
“영혼이나 흑마법 같은 건?”
“박살의 아르마다가 그것을 못 느꼈을까.”
“….”
그렇다면 정말 사람이 한순간에 바뀌었다는 뜻이다. 황제가 그런 발레리에게 말했다.
“그래서 베니오 케플러인 것이다. 베니오 케플러는 제 형이나 동생과는 달리 가문의 지지 기반이 전혀 없지. 주니오르 가문은 이제 막 다시 일어서기 시작한 곳이니까. 그러니 만약 황실이 그의 배경이 되어 주면 어찌 되겠느냐?”
“가문의 후계 구도에 파란이 일겠지.”
“첫째 위주이던 것이 바뀔 것이다. 황실이니까. 그렇게 균열이 일어나면 그 틈에 삼남도 움직일 것이고.”
그렇게 되면 케플러 가문은 혼란스러워진다.
“그러다 베니오 케플러가 가주가 되면 최상의 시나리오이지. 우리 황실에 케플러 가문의 금력이 더해지는 것이니.”
아마 아모리아 황실은 유례없는 황금기를 누리게 될지도 모른다. 가장 경계하던 적이 아군이 되는 것만큼 든든한 일은 없기 때문이다.
케플러 가문을 가장 경계하였기에 그들이 우군이 되면 얼마나 든든한 아군이 될지 아모리아 황제는 정확하게 예상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발레리, 네가 직접 가서 네 눈으로 보고 결정하려무나. 내명대신인 너의 의견 역시 내 반영할 터이니.”
“좋아. 내가 직접 갈게요, 오라버니.”
그렇게 발레리는 직접 필레우스에 왕림했다. 그리고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보고서로만 보았던 베니오 케플러의 진면목을 자신의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합격.’
마스터인 오랑주 공왕의 기세에 눌리지 않고 검을 휘두르는 용기만 해도 대단한 일이다. 그런데 심지어 오랑주 공왕으로 하여금 검을 들게 만들었다.
마스터인 오랑주 공왕이 미래의 마스터라고 베니오 케플러를 인정해 준 셈이다.
저 나이에 오러를 개화한 것만 해도 역사가 새로 쓰일 일이다. 물론 이번 연도에는 그런 일이 비단 주피터뿐만 아니라 다른 아카데미에서도 일어났지만 가장 먼저 개화한 것은 베니오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그런데 그런 베니오 케플러를 아모리아 제국이 아닌 오랑주 공국에 넘긴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오, 아모리아 옹주?”
“베니오 케플러 군. 오랑주 공국의 공녀보다는 아모리아 제국의 황녀가 더 낫지 않겠어요?”
“뭐요?”
벌떡!
오랑주 공왕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발레리의 말이 마치 자신의 딸보다 제국 황녀가 낫다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맞잖습니까? 이미 소문이 자자하게 난 것을 가지고 공왕께서 모르신다고 하지 않으시겠고.”
발레리의 눈이 반짝였다. 세실이 자신을 이기는 남자, 그리고 공왕의 인정을 받는 남자와 혼인을 올리겠다는 것을 꼬집는 것이다.
그러자 오랑주 공왕의 얼굴이 붉어졌다.
‘아무도 모른다 생각했거늘.’
역시 비밀은 없는 모양이다. 오랑주 공왕이 얼굴을 붉히자 발레리가 목소리를 더욱 높였다.
“베니오 군은 우리 아모리아 제국의 귀족, 그러니 응당 황녀와 배필이 되는 것이 옳습니다. 아니 그렇습니까, 케플러 공작?”
발레리가 공작을 끌어들였다. 영악한 공작이라면 자신의 편을 들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케플러 공작은 슬쩍 고개를 돌렸다.
“글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발레리의 얼굴에 당황이 깃들었다. 설마하니 케플러 공작이 이 모든 공을 자신의 아들에게 떠넘길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발레리와 오랑주 공왕은 베니오를 바라봤다. 그리고 뚱하니 서 있던 베니오가 둘을 보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대체 무슨 신박한 소리들을 하고 계신 겁니까? 혼인이라니. 누가, 제가요?”
베니오는 발레리와 오랑주 공왕의 두 눈을 번갈아 보면서 또박또박 말했다.
“전 둘 다 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