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s Lazy Martial Arts Genius RAW novel - chapter (95)
공작가의 게으른 무공천재-95화(95/300)
공작가의 게으른 무공천재 (95)
인재를 얻다 (5)
“주군을 뵙습니다.”
“오랜만이야, 크리스. 얼굴이 더 좋아졌는데?”
베니오가 가져갈 짐은 단출했다. 토니가 든 커다란 여행용 가방 하나가 전부였다. 어차피 가문으로 돌아갈 거, 베니오는 가지고 있던 짐의 90% 이상을 처분했다.
가기 전에 좋은 일 한번 한다고 생각하고 아카데미 생도들 중 형편이 어려운 이들에게 베니오가 쓰던 것들의 상당 부분을 무상으로 나눠 준 것이다.
개중에는 중고로 팔아도 수십 골드가 할 것들이 즐비했지만 아카데미 생도가 아니라면 다시는 쓸 일이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어차피 원래의 베니오가 사다 놓은 것이기 때문에 그 물건들에 애정이 없는 베니오는 무상으로 나눠 주는 게 전혀 아깝지 않았다.
토니는 뒤에서 그럴 때마다 아이고 소리를 내며 아까워했지만 말이다.
“주군 덕분입니다.”
크리스의 얼굴은 예전보다 훨씬 더 좋아졌다. 인상이 부드러워졌고 얼굴에 살이 올랐기 때문이다. 주니오르가의 재건에 대한 꿈이 이뤄졌기에 요새 사는 게 행복한 모양이다.
“암시장은?”
“믿을 만한 심복에게 맡겨 두었습니다.”
“굳이 동행할 필요는 없는데 말이야.”
크리스는 자신이 직접 베니오를 수행하겠다고 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그가 바쁜 것을 알기에 베니오가 몇 번이나 마다했지만 크리스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제가 주군의 첫 가신이라는 것을 보여 줄 생각입니다.”
“흐으, 왜. 셋째가 날 이길 수도 있을 텐데.”
“평생을 그림자로 살아왔지만 그럴수록 제게 필요했던 게 바로 이 눈입니다.”
크리스는 자신의 눈을 툭툭 건드렸다. 몰락한 주니오르 가의 핏줄로 아마 암시장을 장악하는 데까지 어려움이 적었을 리 없을 것이다.
다른 가신 가문들이 보나 마나 뻔질나게 견제해댔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크리스는 어린 나이에 그 모든 견제를 물리치고 암시장의 지배자가 되었다.
능력이 있다면 그게 반역자라고 할지라도 기용하는 케플러 공작의 성정 때문에 크리스 주니오르는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여 암시장의 주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크리스의 휘하에는 능력이 제법 뛰어난 인재들이 많았다.
그들 모두를 발탁한 것이 바로 크리스였다.
가문의 위세도, 명예도 없이 바닥부터 시작한 크리스가 그 자리에까지 오른 건 뛰어난 능력을 갖춘 인재들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 눈에 주군께서는 돌아가신 대공자님보다도 빛이 나십니다. 눈이 부실 정도로요.”
“그간 아부가 늘었군.”
“주군의 기분을 맞춰 주는 것 역시 유능한 가신의 소양이니까요.”
베니오는 키득거리며 웃었다. 케플러 공작의 명령으로 주니오르 가의 부활이 확실시되면서 마음속에 드리워졌던 그림자를 걷어 낸 크리스는 꽤나 유쾌한 성격이었다.
평생을 암흑가에서, 뒷골목에서 긴장 상태로 보낸 그이니 순간순간마다 그런 유쾌함으로 긴장을 풀며 살아온 것이리라.
“나를 수행하겠다는 건 다른 가문들에게 선전포고를 하겠다는 뜻이군?”
“선전포고할 가문도 없습니다. 사실상 모든 가문이 제 적이니까요.”
“그것도 그렇군. 외면당한 이들의 모임인가, 우리는?”
“본래 그런 복수가 더 짜릿한 법이지요.”
토니의 표정이 이상했다. 웃어도 될지 가늠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는 말을 들으면 가벼워 농담처럼 들리다가도, 그 내용을 곱씹으면 의미심장했기 때문이다.
크리스가 토니를 슬쩍 쳐다봤다.
“저 아이군요? 검을 수련한다는 그 시종이.”
“그래. 엄밀히 말하면 네가 아니라 토니가 네 첫 번째 수하이지.”
“이런, 처음을 빼앗기다니요.”
베니오의 말에 토니가 감동한 표정을 지었다. 베니오가 직접 자신을 첫 번째 수하라고 인정을 해 주었기 때문이다.
어깨가 으쓱해진 토니를 크리스가 말 몇 마디로 하늘로 보내 버렸다. 베니오는 그런 크리스에게 손을 내밀었다.
“가지고 왔으면 내놔 봐.”
“눈치도 빠르시구요. 아마 좋은 공작이 되실 겁니다.”
베니오의 재촉에 크리스는 품에서 서류를 꺼냈다. 베니오가 첫 장을 넘기자 크리스가 옆에서 말했다.
“현재 케플러 공작가 내부의 세력 구도입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거의 8, 90% 정도는 맞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나머지 1, 20%는 상황이 급박하게 변하고 있어 확답을 내릴 수 없는 부분들입니다.”
“충분해.”
케플러 공작가의 은밀한 사업 중 하나이자 전 대륙에 뿌리를 내린 암시장의 정보력은 웬만한 정보 길드 이상이다.
암시장 자체가 정보망이 되고, 불법으로 운영되는 암시장은 불법적인 정보들이 많이 모여드는 곳이기 때문이다.
물론 정보의 질이 아주 좋다고는 할 수 없으나 크리스는 베니오가 요청한 정보를 거의 완벽하게 구해 왔다.
“갈턴 쪽에 짐자크와 유펄이 붙었다고.”
“쉬베르 가문이 숙청당한 후 쉬베르 가문의 이권 사업을 상당수 갈턴 쪽에서 흡수한 영향으로 보입니다.”
“재밌네. 미리 짐작하고 있었던 모양이야, 갈턴 자작은.”
쉬베르 자작의 이름을 어찌 잊을까. 쟈비에란 집사 겸 암살자를 붙여 베니오에게 독을 먹여 베니오를 인간 망종으로 만든 자인데.
그리고 그런 쉬베르 자작과 손을 잡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바로 갈턴 자작이다.
그러나 유능하긴 한 것인지 쉬베르 자작과 손을 잡고 그런 일을 벌였다는 증거는 단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 그 때문에 케플러 공작도 쉬베르 자작의 목을 베고 그 일가를 멸족시키는 선에서 일을 마무리 지은 것이다.
그런데 발 빠르게 움직여 노른자 같은 이권 사업들을 다 빼내 갔다니.
“그럼 남은 가문들 중 가장 세가 큰 건 갈턴인가?”
팔신가 중 가장 성세가 크던 건 토비아 가문과 갈턴 가문이다. 그런데 현재 상황으로 봐서는 갈턴 쪽으로 균형이 많이 기운 것으로 보였다.
“예, 그렇습니다.”
“공작 각하께서 모르시진 않으실 텐데.”
“그분께서는 케플러 가문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 이상 팔신가 간의 분쟁에는 끼어들지 않으시지 않습니까.”
그래서 유페르 가문이 몰락했고 주니오르 가문도 몰락했다. 그건 일종의 자신감이었다. 팔신가가 아무리 세력이 커져봤자 절대로 케플러 가문을 넘을 수 없다는 그런 자신감.
“형님께서 돌아가셨다면 토비아와 게셍은 완전히 공중분해 된 상황이겠군.”
“예, 그렇습니다.”
대공자를 지지하던 가문이 토비아와 게셍이다. 하지만 대공자가 죽음으로써 두 가문은 실 끊어진 연 신세가 됐다.
“아마 후계 경쟁이 어떻게 흘러가느냐에 따라 스탠스를 바꿀 것 같습니다만.”
크리스는 말끝을 흐렸다. 그러나 그 생략된 행간을 베니오는 읽어 내고는 픽 웃었다.
“마지아가 유리한 형국이라는 뜻이군.”
“그러나 전 믿습니다. 주군께서 이 역경을 헤쳐 나가실 유일한 분이시라는 것을요.”
“그래야지.”
베니오가 씩 웃었다. 다음 대 공작이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원래의 베니오가 바라는 목표에 부합하는 것이리라.
대공자가 있을 때라면 모르지만 확고한 후계자가 사라졌으니 후계 구도를 뒤집고 공작이 된다면 원래의 베니오가 바라던 가문의 인정을 받게 되는 셈이다.
“주군께서는 이미 훌륭한 무기까지 준비해 두셨으니까요.”
“불경하지만 그런 셈이지.”
그때 크리스가 말한 그 무기가 조촐한 봇짐을 등에 멘 채 모습을 드러냈다. 베니오는 그에게 다가가 깍듯하게 고개를 숙였다.
“나오셨습니까, 아르마다 님.”
“베니오 생도, 아니 이제 졸업했으니 생도라 부를 수도 없겠군요. 베니오 군도 잘 잤습니까?”
박살의 아르마다가 베니오를 보며 인자하게 웃었다.
* * *
“오늘은 여기까지.”
털썩.
“가, 감사합니다, 아르마다 님.”
베니오가 화령을 납검하고는 후들거리는 다리 때문에 한 번 휘청거렸다. 베니오의 전신에서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반면 아르마다는 법복이 티끌 하나 없이 깨끗했고 호흡도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아카데미에서 떠난 지 닷새째.
공적인 일이 아닌 이상 귀족이 아닌 자가 함부로 포털을 이용하는 것은 불법이었다. 설령 귀족이 된다고 하더라도 한 번의 비용이 어마어마하여 웬만한 귀족가가 아니라면 포털을 이용하는 건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이나 어려웠다.
하지만 그 덕분에 베니오는 아르마다에게 밀린 수업을 받을 수 있었다.
“성력의 사용이 많이 부드러워졌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성력을 오러처럼 사용하려 하고 있어요. 성력은 무조건 많이, 강하게 배출하는 게 효율적인 방법입니다.”
“기억하겠습니다. 허억, 허억.”
박살의 아르마다.
10인의 성호 중 하나인 아르마다의 교육 방법은 단순했다. 베니오는 그의 앞에서 옷자락 하나라도 건들기 위해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쏟아 내야만 했다.
그러면 그가 그 모든 공격을 받아 내고, 가르침을 내려 주는 형식이다.
기사로 치면 마스터급, 마법사로 치면 7서클에서 8서클을 이룩한 위자드급인 아르마다는 베니오가 백일 밤낮을 때려도 금이 가지 않을 정도로 단단한 방패였기에 그게 가능했다.
‘일류에 도달하면 무얼 하나, 더 큰 산이 기다리고 있는데.’
중원 기준으로 베니오의 실력은 이제 일류에 도달한 정도. 여기서 오러의 수발이 더 자유로워지며 제대로 된 형태의 검기가 형성된다면 그때 익스퍼트 중급, 절정에 오르게 된다.
일류고수가 된 것만 해도 베니오의 나이에 비해서는 큰 성과다. 하지만 주변에 괴물들이 하도 많아서 그걸 제대로 체감할 수가 없었다.
“힐.”
화악!
베니오의 손에서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왔다. 구양신공을 성력으로 치환하여 아르마다에게 배운 대로 펼친 법술이다.
가장 기초적인 치료 마법.
그러나 지난 며칠간 집중 교육을 받은 덕분에 힐의 효율이 좋아졌다. 베니오는 금세 호흡이 고르게 변하는 것을 느끼며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충분히 빠르게 습득하고 있으니 너무 실망치 마시길.”
아르마다가 베니오에게 가르치는 건 몽크의 수련 방식이었다. 검술 측면에서는 아르마다가 베니오에게 가르쳐 줄 것이 없었다.
그 때문에 베니오는 그에게서 체술을 배우고 있었다.
몸을 움직이는 방법, 그리고 검이 아니더라도 신체의 각 부분을 사용해서 싸우는 방법.
몽크는 자신의 신체를 극한으로 단련함으로써 신께 다가갈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이다. 그들의 목적은 극한의 신체를 통한 자기 수양인데, 그들의 수련법은 천년이 넘는 시간 동안 발전하여 체술에 있어서는 태양교를 따라올 것이 없을 정도로 발전했다.
그리고 태양신을 믿는 모든 사제들은 수습 시절에 의무적으로 이 몽크의 수련법을 배워야만 한다.
신을 모시고 불쌍한 이들을 긍휼히 보살피는 건 강한 체력과 단단한 신체가 있어야만 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박살의 아르마다의 주 무기는 바로 온몸이다.
방패와 메이스는 심문관의 상징 같은 것이기에 쓰긴 하지만 몽크로서 성호의 칭호를 받은 아르마다는 베니오가 품은 성력에 관심을 보였다.
오러 유저이던 시절에도 자신의 성력보다 더 순수한 태양의 힘을 품은 베니오였기 때문이다.
‘벌써 내 움직임을 따라오는군.’
아르마다는 베니오를 가르치며 가르친다는 것의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다. 고작 닷새를 가르쳤으나 베니오가 학습하는 속도가 매우 빨랐기 때문이다.
그거야 베니오가 하늘이 내린 무재를 지녔기도 했지만 태양교 몽크의 수련법이 베니오가 아는 것과 매우 비슷했기 때문이다.
‘소림의 나한권과 무당의 태극권을 합쳐 놓은 것 같은데.’
정파의 두 기둥인 소림과 무당. 놀랍게도 태양교 몽크의 수련법은 그 두 곳의 기본 권공과 비슷한 체술을 지니고 있었다.
‘무당의 부드러운 유술과 나한권의 강직한 각법을 섞어 놓은 것 같군.’
상체는 무당을 하체는 소림의 것을 가져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오러가 아니라 성력이 필요했는데, 베니오는 구양신공으로 그게 가능했다.
베니오는 아르마다의 가르침이 확연히 변화를 일으키는 것을 보며 만족했고 아르마다는 자신이 전인으로 삼은 베니오의 재능이 뛰어나다는 것에 둘 다 만족했다.
낮에는 이동하고, 저녁에는 수련하는 것을 이틀 더 반복하자 마침내 베니오의 눈에 저 멀리 카사케플러의 전경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도련님! 도착했습니다!”
토니가 기뻐서 폴짝거리며 뛰는 것을 본 베니오가 싱긋 웃었다.
“그래, 드디어 왔구나. 내 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