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s Medicine Sucking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1
11화 성문을 열어라
“막내, 너는 놀라운 모습을 연달아 보여 주는구나.”
깃발을 내려놓으니 브란이 말을 걸었다.
‘그냥 안 넘어갈 줄 알았지.’
힘으로 오거를 단박에 해치웠으니 관심을 보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럴 줄 알았어! 역시 괴력을 가지고 있었지? 다른 사람들은 무기가 잘못된 거라고 했지만 나는 안 믿었어!”
막시마가 신이 나서 떠들어 댔다.
“그래. 어떻게 된 거냐. 그것도 신성력 덕분이냐?”
“모르겠습니다. 병이 낫고 나니 힘이 좀 세졌습니다. 무리하면 몸 상태가 나빠질 때도 있지만요.”
“전에 갑자기 쓰러진 것도 그것 때문이겠구나. 당분간은 주의해야겠어. 지금은 괜찮으냐?”
“…네.”
카엘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변명에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브란의 모습에 양심의 가책을 느낀 거였다.
그때 옆에서 막시마가 쥐어짜는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그때도 무리해서 쓰러진 거였다니…….”
“……?”
인제 와서 무슨 소린가 싶었는데, 막시마가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다. 다 내 탓이야. 내가 괜히 졸라서 널 힘들게 했구나.”
‘이 사람이 갑자기 왜 그래? 원래 이런 성격이 아니었는데.’
심지어 이게 끝이 아니었다.
“사실 그동안 너를 괴롭힌 건… 질투해서였어.”
‘뭐? 질투?’
카엘은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의 카엘이 여러모로 활약한 탓에 칭찬도 받고 인기도 있으니 시기할 만하다면 할 만했다.
그러나 막시마는 과거에 카엘이 아파서 누워 있을 때도 괴롭혔었다.
당황해하고 있는데 막시마가 울먹이며 말을 쏟아 냈다.
“못난 짓이지만, 다들 너한테만 관심 가져서 그랬어. 어머니도 널 돌보느라 늘 바쁘셔서는 내가 아무리 열심히 검술을 배워도 칭찬은커녕 봐 주지도 않았단 말이야!”
그 말에 카엘은 맥이 탁 풀렸다.
‘하긴 나랑 한 살 차이지.’
막시마가 동생을 마냥 귀엽게 여기기에는 나이 차이가 거의 안 났다.
그런데 늘 누워만 있는 동생이 주위의 관심을 독차지했으니 원망스러워할 만했다.
심지어 어머니는 가장 아끼는 시녀 소피아마저 카엘에게 전속으로 붙였으니까.
물론, 고통 속에 하루하루를 보냈던 카엘이 보기에는 배부른 투정이었지만.
‘어쨌든 어린 마음에 질투했던 것뿐인가?’
지금 돌이켜 보면 시비 걸었다고 해도 막말을 하거나 눈치 주는 정도.
그마저도 어렸을 때고 커서 기사가 된 후에는 시비는커녕 얼굴을 보기도 힘들었다.
몬스터 대침공 때는 오히려 몬스터에 용감하게 맞서 싸우기까지 했다.
아마 막시마가 막아 주지 않았다면 카엘은 탈출 못 했을 수도 있었다.
“…그래도 다치게 할 생각까지는 없었어. 기껏 나았는데 이 속 좁은 형 때문에 쓰러진 거였다니. 미안하다.”
“…….”
갑작스러운 사과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난감해하고 있을 때, 브란이 입을 열었다.
“셋째야,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그런가요?”
“사과해도 말뿐이라면 상대방에게 달라지는 게 거의 없잖아. 기분이 나아지는 게 다겠지.”
“…아!”
이해가 안 가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던 막시마는 이내 깨달음을 얻은 듯 탄성을 내질렀다.
그러고는 카엘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막내야! 당장 용서 안 해 줘도 돼. 앞으로 잘할 테니까 지켜봐 줘!”
“아, 네…….”
어찌나 결연한 표정이던지 차마 괜찮다고 말하지 못했다.
그리고 직감했다.
‘이거 왠지 귀찮아질 거 같은데.’
아쉽게도 그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막시마가 매일매일 찾아오기 시작한 거였다.
* * *
“막내야, 오늘 날씨도 좋은데 나랑 같이 훈련하자꾸나.”
“당분간은 안정을 취해야 할 거 같아서요. 다음을 기약하지요.”
“막내야! 이게 수도에서 유행하는 옷이란다. 네게 딱 어울릴 거 같아서 사 왔는데 어떠냐!”
“화려한 것이 제 취향이 아니네요.”
“카엘! 내가 잡은 사냥감인데 어떠냐? 이 가죽으로 갑옷을 만들어 주마.”
“제 갑옷은 이미 공방에서 만들고 있습니다. 일전에 잡은 오거로요.”
“아. 그랬지.”
그리고 막시마는 카엘이 거절하고, 사양할 때마다 무척 실망한 얼굴로 어깨를 늘어트리고 돌아갔다.
그러기를 며칠, 소피아가 넌지시 나무라는 게 아닌가?
“카엘 님, 이런 말씀 드리기 죄송합니다만, 막시마 님께 너무 매정하신 거 같습니다.”
“내가 그랬나?”
“찾아와 함께 어울리자고 권하고 선물도 몇 번이나 들고 오셨는데, 죄다 거절하고 돌려보내지 않으셨습니까?”
“귀찮아서 그러지. 선물도 취향에 안 맞거나 필요 없는 것들이고.”
“그래도 막시마 님의 성의를 생각하셔야죠.”
‘성의라…….’
생각해 보니 조금 미안하긴 했다.
그래도 저런 막시마가 어색해서 어떻게 대해야 할지 난감했다.
“그러면 어떡하면 좋을까?”
“선물을 가져오면 기쁘게 받으세요. 받기만 해도 부담스러우시면…….”
“받는 게 부담스럽진 않은데.”
필요하냐 안 하냐의 문제지.
“어쨌든 선물을 받으시고 답례해 주면 됩니다.”
“답례라… 그렇군.”
카엘은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날에도 어김없이 막시마가 들이닥쳤다.
“막내야! 지나가다 맛있어 보이길래 따 왔다. 하브로스 말로는 건강에도 좋다는구나.”
“오! 이건 루부스 열매!”
카엘은 막시마가 내미는 바구니를 보며 드물게 감탄했다.
알알이 붉고 작은 열매 끝에 솜털이 나 있는 모양인 루부스 열매는 달고 상큼한 맛이 일품이었다. 거기다가 추울 때 몸을 따뜻하게 만드는 약재로도 쓰였다.
“네가 관심을 가지니 내가 다 기분이 좋구나. 여기 받거라.”
“감사합니다.”
카엘이 인사하자 소피아가 건네받았다. 그걸 본 카엘은 어제 소피아가 한 말을 떠올렸다.
“참. 남는 오거 가죽으로 형님 갑옷도 만들라 지시했습니다.”
오거를 단번에 해치운 탓에 가죽으로 쓸 부분이 많았다.
여분이 많이 남는다길래 막시마가 쓸 갑옷도 만들라고 지시해 놓은 참이었다.
“이야. 정말이냐?! 고맙다! 고마워! 아니, 당장 보러 가야겠다.”
입이 귀에 걸린 막시마는 잔뜩 흥분해서는 밖으로 나갔다.
“…이렇게 하면 되는 건가?”
“아, 아마도요.”
소피아도 막시마의 반응에 놀랐는지 더듬더듬 대답했다.
‘그래도 저리 기뻐하는 걸 보니 기분은 나쁘지 않네.’
근데 아무래도 형이 아니라 동생이 생긴 것만 같았다.
‘하긴. 회귀 전까지 살아온 세월을 생각하면 당연한가?’
* * *
막시마는 신났는지 형제들이 모인 만찬장에서도 오거 갑옷 이야기를 꺼냈다.
심지어 제작 중인 오거 갑옷의 일부를 들고 와서 자랑했다.
“큰형님, 이게 막내가 제게 선물해 준 오거 가죽으로 만든 갑옷입니다. 질기고 어지간한 철판 갑옷보다 튼튼하고 가볍다네요.”
“오! 부럽구나.”
흐뭇하게 웃던 브란이 돌아봤다.
“내 선물은 없느냐.”
“안 그래도 준비했습니다.”
카엘은 작은 나무 상자를 꺼냈다. 그 안에는 엄지손가락만 한 붉은 약환이 들어 있었다.
“이건 오거의 피로 만든 건데, 순간적으로 생명력을 높여 줍니다. 치명상을 치료하지는 못하지만, 위급 시에 먹으면 절명하는 건 막아 줄 겁니다.”
“이런. 막내가 곤란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농담한 건데, 이리 귀한 걸 주다니.”
“와! 부럽다. 역시 막내가 세심하네.”
“아직 정제 중인데 두세 병은 더 나올 테니, 셋째 형 것도 챙겨 드리겠습니다.”
“오, 정말? 고마워!”
그 모습을 보고 브란이 미소를 지었다.
“둘이 우애가 깊어진 거 같아 기분이 좋구나.”
그때였다.
댕! 댕! 댕! 댕! 댕! 댕! 댕!
몬스터 습격을 알리는 다급한 종소리가 들렸다.
“큰형님! 또 몬스터가 쳐들어온 거 같습니다.”
“그래. 나가자. 이거 우리가 식사할 때마다 쳐들어오는구나.”
브란은 혀를 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도 최근의 대승 덕인지 한결 여유로워 보였다.
그런데 막상 바깥으로 나오니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오가는 병사들은 전보다 굳은 얼굴로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왜 저러지?’
그 궁금증은 성벽 위로 올라가자마자 풀렸다.
저 멀리서 놀의 대부대가 몰려오고 있었다.
어림잡아도 전보다 두 배 이상의 병력.
오거도 전처럼 숨기지 않고 당당히 함께 나타났는데 그 수가 무려 여덟이나 됐다.
‘일전의 패배를 반드시 설욕할 작정으로 왔나 보군.’
“이런 대규모는 나도 처음 보는군.”
브란이 굳은 얼굴로 투덜댔다.
아까 전의 여유는 어디에도 없어 보였다.
“그 정도로 위험합니까?”
“그래… 이번에는 버티기 힘들지도 모르겠는걸. 아버님이 계시면 모르겠지만.”
뜻밖이었다.
놀의 부대가 예상외로 대규모긴 해도 그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라니.
대침공 때의 규모에는 아직 한참 못 미치는데 말이다.
‘회귀 전에는 어떻게 넘긴 거지? 분명 막긴 막았을 텐데.’
“큰형님, 괜찮습니다. 막내가 저번처럼 오거만 해치우면 충분히 막아 낼 겁니다. 어때? 창만 넉넉히 준비하면 해치울 수 있겠지?”
“막내야, 괜찮겠느냐?”
막시마에 이어 브란도 기대하는 얼굴로 물었다.
“해 보는 데까지 해 봐야죠.”
“그래. 내가 창을 모조리 모아 올 테니까 막내는 쉬고 있어!”
비장하게 말한 막시마는 부리나케 성벽 위를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브란도 부관과 병력 배치를 논의했다.
카엘은 저 멀리 다가오는 몬스터 대부대를 바라봤다.
놀의 숫자도 숫자지만, 오거가 여덟 마리나 동원된 게 걸렸다.
‘내가 저걸 막을 수 있을까?’
이동하는 오거를 멀리서 창으로 맞히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저번처럼 가까이 오기를 기다리기에는 성벽이 위험했다.
심지어 오거끼리 떨어져 있어 한두 녀석을 해치우는 사이에 반대편의 오거들이 마음 놓고 성벽을 공격할 판이었다.
그러는 사이 브란의 명령이 떨어졌다.
“발사!”
어느새 놀들이 사거리에 들어온 거였다.
레인저들이 화살을 쏴 대기 시작했다.
놀들에게 날아간 화살들은 제 몫을 다했지만, 오거에게는 생채기도 내지 못했다.
“카엘! 이거면 됐어?”
마침 성벽 위를 바삐 움직이던 막시마가 창을 한 아름 안고 돌아왔다.
“네, 수고하셨습니다.”
카엘은 그리 말하며 창을 하나 집어 들었다.
목표는 바로 앞쪽에서 다가오고 있는 오거.
빈손을 뻗어 오거를 겨누고 투척 자세를 취했다.
“그래! 해치워 버려!”
막시마의 응원을 받으며 창을 던지려는 순간.
“우와아아아아아!”
“와아아아!”
갑자기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것도 저 멀리 성벽 안쪽 편에서.
‘뭐지?’
창을 내리고 뒤를 돌아보는데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티겔 브리운 공작.
몬스터로부터 브레프니 왕국을 지켜 내는 방패인 이곳 클리페우스성의 주인이 귀환한 거였다.
거기다가 왕국에 셋밖에 없다는 소드 마스터이기도 했다.
‘회귀 전에도 이 시점에 아버지가 나타나 막았었나 보군.’
“우와아아아!”
“성주님이 오셨다!”
“이 자식들아! 너희 이제 다 뒈졌어!”
병사들의 사기가 하늘로 치솟았다.
한 사람의 존재가 이렇게 군기를 확 바꿔 버리다니.
감탄하고 있을 때, 브란이 카엘의 창끝을 아래로 내렸다.
“막내야, 이제 무리할 필요 없다, 아버지가 오셨으니.”
그렇게 말하는 브란은 여유를 되찾은 듯 보였다.
막시마도 신났는지 으스대며 자랑했다.
“막내는 아직 아버지가 싸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지? 얼마나 대단하신데.”
안 그래도 기대됐다.
소드 마스터는 검술의 극한에 다다른 자.
혼자서 한 개 군단을 능히 상대할 정도의 강자라고 항간에 알려져 있다.
아쉽게도 그런 소드 마스터가 싸우는 모습은 회귀 전에도 볼 기회가 없었는데, 직접 볼 기회가 생긴 거였다.
그것도 이렇게 가까이에서.
“너도 본 적 없으면서 잘난 체하기는.”
“교관한테 들었단 말이에요. 엄청 세다고.”
브란의 핀잔에 막시마가 얼굴을 붉히며 투덜댔다.
그때 아래에서 중후한 목소리가 들렸다.
“성문을 열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