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s Medicine Sucking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20
120화 아크 리치 (3)
오랜만에 느껴 보는 불길한 느낌.
오랜 전장을 겪으며 발달한 육감이 죽음의 경계에 서 있다는 경고하는 거였다.
“흥, 어디 한번 해보자고.”
파이슨은 개의치 않았다.
느낌만으로 파이슨을 멈추기에는 자부심 넘치는 실력이 용납하지 않았다.
일견 타당한 이유였다.
그동안 숱한 위기를 극복하고, 사선을 넘지 않았다면 지금의 소드 마스터 파이슨은 없었을 테니까.
그동안 파이슨의 앞에 닥친 위기와 적은 모조리 불태우는 거로 극복해 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뿐이다.’
화르륵.
파이슨의 주위로 불길이 위협적으로 치솟았다.
언데드 몬스터 군단을 앞두고 겁을 집어먹었던 키슬링 황자군은 그걸 보고 사기충천했다.
“이야! 멋진데!”
“역시 파이슨 님이야!”
“파이슨 님과 함께라면 두려울 거 하나 없다!”
아조트도 그 모습을 보며 긴장했다.
-이야, 보통이 아닌데?
-그래 봐야 나한테 이제 안 돼!
메라자이드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괜히 자만하지 말고 계획대로 해.”
-아, 알았어.
카엘의 말에 메라자이드가 고개를 끄덕이고 지팡이를 들었다.
순식간에 주변에 마기의 연무가 넓게 펼쳐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키슬링군 전면에만 있던 언데드 몬스터들이 사방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헉! 갑자기 이건 뭐야? 앞이 잘 안 보여.”
“그보다 조심해, 옆에도 몬스터가 나타났다. 포위당했나 봐.”
“괘, 괜찮아. 파이슨 님을 봐.”
마기의 연무가 파이슨의 근처에는 없었다.
파이슨의 화염에 소멸된 거였다.
“저것도 없앨 수 있는 거다. 겁먹지 말고 싸워!”
키슬링군이 전의를 다지고 서서히 다가오는 언데드 몬스터와 전투를 시작했다.
정작 파이슨은 주위에서 어떻게 싸우는지 상관하지 않았다.
오직 리치와 카엘, 엘프 쪽을 바라보며 다가갔다.
‘리치를 해치우고, 저 녀석과 엘프만 잡아가면 그간의 실수를 만회할 수 있다!’
어림도 없다는 듯 사방에서 언데드 몬스터들이 파이슨을 향해 덤벼들었지만 소용없었다.
화염의 오러를 두른 파이슨에게 닿자마자 순식간에 불타 버린 거였다.
그때 거침없이 전진하던 파이슨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언데드 몬스터가 하나 나타났다.
“흥, 렘브란트인가. 역시 이렇게 될 줄 알았지.”
자신의 제자 렘브란트가 데스 나이트가 된 거였다.
정작 인간일 때의 기억이 없는 렘브란트는 별말 없이 전투태세를 취했다.
그러자 데스 나이트의 검은 마기가 검신을 휘감았다.
우웅.
“크음.”
그걸 보는 파이슨은 마음이 아팠다.
빛의 오러를 깨우친 녀석이, 마기를 쓰다니.
‘이렇게 된 이상, 내 손으로 거둬 주마.’
파이슨이 다짐하는 것과 동시에 검에 붙은 불길이 더욱 거세졌다.
탓.
동시에 데스 나이트 렘브란트가 뛰어왔다.
암흑과 화염이 부딪쳤다.
거센 불길은 금방이라도 암흑을 집어삼킬 것만 같았지만, 암흑은 쉽게 밀리지 않고 버텨 냈다.
렘브란트의 순수한 힘이 아니었다.
‘렘브란트를 데스 나이트로 만든 네크로맨서의 힘인가? 생각보다 할 만한데?’
상대의 힘을 짐작한 파이슨은 이 기회에 더 밀어붙이기로 했다.
‘이 녀석부터 단번에 없애 버리자.’
화르르륵.
기운을 끌어올리자 파이슨의 치켜뜬 눈썹에서 불길이 이는 듯하더니, 전신이 희미하게 타올랐다.
그 순간.
촤악.
검은 연기 속에 숨어 있던 가는 마력이 파이슨의 뒤를 노리고 날아오기 시작했다.
“칫.”
파이슨은 렘브란트를 몰아붙이는 걸 멈추고 돌아보며 화염을 일으켰다.
공격은 막아 냈지만, 공격을 펼친 이를 확인한 파이슨은 큰 충격을 받았다.
“허어. 올리버 너마저. 그래 네가 당할 정도니 렘브란트도 당할 수밖에 없지.”
파이슨은 왜 불길한 예감이 들었는지 깨달았다.
파이슨이 당황하는 걸 본 리치 메라자이드가 사악한 웃음을 흘리며 조롱했다.
-호호호홋. 얌전히 죽는 게 어때? 너도 내 장난감으로 만들어 셋이서 사이좋게 놀게 해 줄게.
그러나 파이슨은 거기에 대꾸할 여유가 없었다.
올리버를 제압할 정도면 저 리치도 보통 실력이 아닐 게 분명했다.
‘금방은 힘을 일부러 감추고 있었던 건가?’
거기다가 저 카엘이라는 자와 엘프까지 가세한다면?!
명백히 불리한 상황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최후의 한 수를 펼칠 수밖에.”
파이슨은 데스 나이트 올리버와 렘브란트의 협공을 막아 내면서 힘을 서서히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전신의 불꽃이 강렬해지고, 눈동자에까지 불꽃이 맺히는 순간.
“죽어라!”
파이슨이 대지를 박차고 달렸다.
그러다가 육신이 불꽃으로 변하더니 날아가기 시작한 거였다.
목표는 바로 자신을 조롱하던 리치.
이 언데드 몬스터들은 저 리치가 조종하는 거니, 리치만 제거할 수 있다면 일발 역전을 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어, 막아라, 막아!
리치 메라자이드도 상대의 공격이 심상치 않았는지 당황하며 소리쳤다.
그 앞을 언데드 몬스터들이 몸을 날려 가로막았지만, 불꽃은 아무렇지 않게 꿰뚫으며 일직선으로 날아갔다.
이대로라면 메라자이드도 순식간에 시커멓게 타 버린 다른 언데드 몬스터와 같은 꼴이 될지도 몰랐다.
“그렇게 놔둘 순 없지. 소피아! 모르타! 브로칸!”
카엘이 소리치자 각자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람의 정령을 소환한 모르타는 거센 바람으로 파이슨의 불꽃을 흐트러트리려 했고,
거인화한 브로칸은 대형 월도를 파이슨의 불꽃을 향해 휘둘렀다.
하지만.
매서운 불꽃에 바람의 정령은 비명을 지르고 흩어졌고, 대형 월도도 저지하는 데 실패하고 튕겨 나갔다.
“아악!”
“크윽.”
“내게 맡겨요!”
둘이 나가떨어지는 걸 보고 소피아가 뛰어들며 검을 휘둘렀다.
콰쾅!
엄청난 폭발음과 검은 흙먼지가 휘몰아쳤다. 겨우 가라앉은 자리에는 소피아만이 서 있는 게 아닌가?
“어, 소피아 님이 이긴 건가?”
브로칸의 물음에 카엘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막아 내긴 했지만. 이긴 건 아니야.”
“그러면요?”
카엘은 재차 묻는 브로칸의 물음에 대답하는 대신, 메라자이드를 보며 소리쳤다.
“지금이야!”
-아, 알았어.
메라자이드가 지팡이를 높이 들었다.
그 시각 파이슨은 불꽃을 날린 반대편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그것도 많이 소진해 약해진 오러도 완전히 없애고 기운을 감춘 채 은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역시 막혔나? 도망치길 잘했지.’
자신이 아무리 소드 마스터라도 적의 전력을 생각하면 혼자서 싸울 만한 전력이 아니었다.
오히려 잘됐다 싶었다.
이 정도로 강력한 적이 나타났다는 걸 파악했다는 것만으로 나름대로 공을 세웠다고 할 수 있을 테니까.
그 순간.
파이슨의 머리 위에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덥썩.
마기의 연무 속에 모습을 감추고 있던 본 드래곤이 파이슨을 집어삼킨 거였다.
비록 속은 비어 있었지만, 내부에서 들끓는 마기에 순식간에 녹아내리더니 뼈만 남아 버렸다.
소드 마스터치고는 비참한 최후라고 할 수 있었다.
그 광경을 보며 아조트가 혀를 찼다.
-쯔쯧, 소드 마스터란 녀석이 한심하군. 목숨을 걸고 공격했으면 목표물 하나는 어떻게든 제거할 수 있었을 것을.
카엘도 거기에 동의했다.
‘도망칠 생각을 하고 싸우니 공격이 약할 수밖에 없지.’
-그래도 덕분에 쉽게 이겼잖아? 난 소드 마스터를 하나 더 얻었고.
신난 메라자이드가 그렇게 외치더니 지팡이를 들었다.
그러자 사악한 마력이 뿜어져 나오더니 파이슨의 뼈다귀를 휘감기 시작했다.
그 상태로 주문을 외워 파이슨의 생명력을 흡수하던 메라자이드가 눈을 번쩍 떴다.
-우오옷. 이 힘은?!
* * *
“어떠냐? 스승께서 무슨 연락이라도 보내 왔느냐?”
키슬링이 초조한 듯 막사 안을 돌아다니더니, 밖에서 지키고 있던 병사에게 물었다.
“아 아직입니다. 아직 아무런 연락이 없습니다.”
“에잇, 아직이더냐.”
병사의 말에 실망한 듯 투덜거리던 키슬링은 병사의 얼굴을 보고는 이내 평정을 찾았다.
‘그래, 그래. 황제가 될 사람이 겨우 이런 일로 초조해해서야 안 되지.’
키슬링은 재능도 뛰어나고 노력도 여느 형제보다 많이 했다고 자부했다.
솔직히 내전 중이긴 해도 다른 형제들에게 황위를 빼앗길 거란 걱정도 하지 않았다.
형제들이 연합해야 자신과 맞설 수 있다는 건, 자신이야말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인 황제에 어울린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중요한 건 황제의 마음에 들 수 있느냐는 거였다.
그를 위해서는 다른 황자들을 이기는 걸 넘어서, 뛰어난 업적을 쌓는 것도 필요했다.
지금까지는 도탄에 빠진 다른 왕국을 구하는 데 주력했다.
하지만 키슬링이 원하는 때에 타국이 혼란하긴 힘들기에 타국의 혼란을 유도하려고 여러모로 손을 쓰는 중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제국에 위기가 닥친 게 아닌가?
이 위기를 자신이 극복한다면 제국의 모든 이가 칭송할 테고, 황제도 자신을 차기 황제로 인정해 황태자로 삼을 수밖에 없을 터였다.
‘그러려면 이번 일에 내가 최대한 활약해야지.’
그 사전 작업으로 스승인 파이슨에게 언데드 몬스터의 주요 전력만 해치우고 나머지는 내버려 두라고 말해 둔 참이었다.
그 이후 자신이 부대를 이끌고 숫자만 많은 언데드 몬스터를 쓸어 버리는 멋진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어서 빨리 돌아와야지 내가 병력을 움직일 텐데. 아니면 지금 출발할까?’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였다.
부하가 다급하게 막사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저하! 저하! 키슬링 저하!”
“그래. 파이슨 경이 소식을 전해 왔나?”
“그게 아니라, 적의 습격입니다, 습격!”
부하를 반겼던 키슬링은 예상치 못한 보고에 이해가 가지 않았다.
“습격? 누가 습격한 거냐? 연합군이 쳐들어오기라도 했나?”
“그게 아니라, 언데드 몬스터가 쳐들어왔습니다.”
“뭐라고?! 그런 말도 안 되는!”
키슬링은 깜짝 놀라 되물었다.
어떻게 여기에 언데드 몬스터가 쳐들어올 수가 있단 말인가. 분명 스승 파이슨이 상대하고 있을 텐데.
‘그렇다는 건…….’
소드 마스터인 스승이 당했다는 소린가?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소드 마스터이자 제국에서 손꼽히는 강자인 스승이 당하다니.
그때 저 멀리서 스산한 목소리가 들렸다.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는 아크 리치 메라자이드 님께 무릎을 꿇어라.
어마어마한 존재감이 담긴 목소리가 내는 위압감에 순간 몸이 떨릴 정도였다.
‘아크 리치 메라자이드?’
키슬링은 막사 밖으로 뛰쳐나갔다.
아직 한낮일 터인데 밖은 밤이 다가온 것처럼 어둑어둑한 게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본 키슬링은 움찔했다.
저 멀리서 언데드 몬스터의 대부대가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지옥이 다가오는 것만 같았다.
부관과 기사들도 그 광경을 보고 당황해하다가 마침 키슬링이 나온 걸 보고 물었다.
“키슬링 님, 어떻게 합니까?”
“적이 심상치 않으니 일단 병력을 물리시죠.”
“안 됩니다. 싸워야 합니다.”
부하들의 의견이 갈리는 와중에 키슬링이 단호하게 말했다.
“싸워야지요! 제국의 군대가 악을 두고 어찌 후퇴하겠습니까?”
그러자 단숨에 사기가 올라갔다.
“우오오오오! 싸우자!”
“옳은 말씀이야! 맞아! 싸워야지!”
“키슬링 저하와 함께라면 죽음도 두렵지 않다!”
하지만 정작 키슬링은 이들이 싸우는 동안 빠져나갈 궁리 중이었다.
‘후퇴한다고 하면 내가 도망치기 힘들잖아. 이런 하찮은 녀석들 때문에 개죽음을 할 수는 없지.’
그렇게 키슬링은 심복 일부만 데리고 전장에서 이탈했다.
안 그래도 언데드 몬스터에게 무참히 당하던 키슬링군은, 키슬링이 도망쳤다는 소식에 완전히 와해됐다.
덕분에 메라자이드는 손쉽게 자신의 세력을 두 배 넘게 늘릴 수 있었다.
왕국 하나에 비견되는 막강한 군대를 만들어 낸 거였다.
‘이 정도면 제국도 쉽게 움직이지 못하겠지.’
퇴치하려면 소드 마스터를 여럿 동원하고 대규모 언데드 몬스터와 싸우기 위한 정예병을 모아야 했기에 아무리 제국이라도 단시일 내에는 불가능했다.
‘메라자이드도 아크 리치가 됐고, 여긴 대충 준비가 끝났구나.’
카엘은 클리페우스성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그 시각.
회색산맥 지하에 있는 드래곤의 둥지로 오크 로드가 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레인저 옥스는 숨어서 그 광경을 지켜봤다.
‘오, 오크 로드?! 카엘 님께 알려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