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s Medicine Sucking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24
124화 드래곤 라 키레아스 (4)
그 시각 회색산맥에서 클리페우스성을 바라보는 한 오크가 있었다.
오른팔이 사라진 자리에 도끼를 장착한 그 오크는 전 오크 로드였던 트팍이었다.
“너무 잠잠한데? 그 카엘이라는 인간이 안 죽은 게 분명해.”
오크다 보니 인간의 풍습에 대해서 자세히 아는 건 아니지만. 인간들은 중요한 인물이 사망하면, 한동안 어두운 옷을 입고 슬픈 얼굴로 지낸다는 것 정도는 알았다.
어떨 때는 통곡하는 소리가 회색산맥까지 들릴 때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우는 소리가 들리거나 분위기가 무겁기는커녕, 너무나도 평화로워 보였다.
심지어 드래곤이 왔다 갔는데도.
“그렇다는 건 라 키레아스 님의 드래곤 브레스를 맞고도 살아남은 건가?”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그 인간도 보통은 아니라서 충분히 가능한 일이긴 했다.
중요한 건 자신의 복수가 이뤄지지 못했다는 거였다.
“큭!”
카엘이라는 인간이 살아 있다고 생각하자 잘린 오른팔이 저렸다.
“이대로 가만둘 수 없어.”
그때였다.
“여기 있었군, 전 오크 로드.”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돌아보니, 새로운 오크 로드인지 화려한 이빨 목걸이를 건 오크가 보였다.
그 오크 로드 말고도 여러 오크 워리어가 어느새 트팍을 둘러싸고 있었다.
사실 트팍은 자신이 포위당했다는 걸 진작에 눈치채고 있었다. 그들이 왜 자신을 찾아왔는지도.
“흥. 내가 살아 있으니 곤란했나 보지?”
트팍은 자신을 둘러싼 오크 로드와 오크 워리어들을 찬찬히 둘러보며 비웃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외팔이가 됐지만, 이들 중 누구보다 자신이 강했으니까.
그리고.
오직 힘을 숭상하는 강자존인 오크 무리에서 가장 강한 자신이 오크 로드가 되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겨우 작전상 후퇴한 걸 가지고, 오크의 수치라며 오크 워리어들이 자신을 몰아낸 거였다.
그래 봐야 자신이 살아 있는 이상, 누구를 오크 로드라고 내세워도 다른 오크들에게 권위가 서지 않을 게 뻔했다.
“잘 아는군. 놀들을 피해 용케도 살아남은 건 대단하긴 하나 여기서 죽어 줘야겠다.”
오크 로드의 말과 동시에 오크 워리어들이 투기를 두른 채 한꺼번에 덤비기 시작했다.
오크 로드의 자리에서 우격다짐으로 끌어내려졌을 때와 달리 살기 어린 공격이 트팍을 노렸다.
“흥! 어리석은 것들.”
트팍은 오크 워리어들을 나무라면서도 정작 투기를 끌어올리지도 않은 채, 공격을 막고 피해 냈다.
아무리 봐도 트팍이 봐주는 게 분명한 상황.
만약 본격적으로 투기를 쓰면 여기 있는 오크 워리어 모두가 당할지도 몰랐다.
“젠장! 안 되겠다. 오크 워리어들을 더 불러와! 자기가 아무리 강해도 언젠가는 지치겠지.”
다급하게 소리치는 새 오크 로드에게 트팍이 비웃으며 물었다.
“어떻게 불러오려고?”
“음?”
“어, 저기 봐!”
“헉!”
오크 워리어의 말에 주변을 둘러본 새 오크 로드는 깜짝 놀랐다.
어느새 숲 곳곳에서 뭔가가 트팍을 포위한 자신들을 에워싸고 있는 게 아닌가?
고블린부터 놀과 오크는 물론, 오거와 트롤에 라이칸스로프 같은 각종 야수와 엘프와 드워프류의 아인종까지.
몬스터도 각양각색이었는데, 그 숫자도 얼마나 많은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저, 저것들이 갑자기 어디서 나타난 거지?”
“위대한 드래곤 라 키레아스 님의 품 안에 있던 녀석들이지.”
“금지에 있던 몬스터들인가? 그런데 저것들이 왜 너한테… 설마?!”
새 오크 로드가 뭔가 깨달은 듯한 모습에 트팍이 입꼬리를 올리며 대꾸했다.
“짐작한 대로 나더러 통제하라고 맡기셨다. 이제 라 키레아스 님께서 잠에서 깨어나셨으니 대륙을 불태우실 터. 그 선봉에 우리가 서는 거다. 어떠냐?”
“갑자기 그런 말을 해도…….”
“맞아. 지금까지 싸웠는데.”
“괜찮다. 내게 공격한 건 잊어 주마!”
트팍이 너그럽게 이야기하자 오크 워리어들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음, 나쁘지 않은 제안 같은데.”
“맞아. 드래곤이 믿고 말길 정도면, 우리도 인정할 수밖에 없지.”
“죽이려고까지 했는데, 배포 크게 용서하는 것도 오크답다.”
“그럼, 다시 오크 로드가 되는 건가?”
그 말에 새 오크 로드가 목소리를 높였다.
“누구 맘대로 네가 오크 로드가 된단 말이냐!”
이대로 가면 자신의 자리를 뺏길까 겁먹은 거였다.
퍽!
새 오크 로드는 이제 더 겁먹을 필요도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트팍이 도끼를 휘둘러 새 오크 로드의 머리통을 쪼개 버린 거였다.
“하지만 이 이후로 날 공격하거나 비난하면 이 꼴이 될 것이다!”
그 압도적인 폭력에 오크 워리어들은 겁먹기는커녕 열광하기 시작했다.
“우오오오오오! 멋져!”
“역시 오크 로드라면 저래야지!”
“오크 로드 만세!”
오랜만에 들리는 환호를 느끼던 트팍은 환호가 가라앉자 저 멀리 클리페우스성을 가리켰다.
“그럼 이번에야말로 저곳을 함락시킨다! 저거로 우리의 충성심을 드래곤님께 증명하겠다!”
* * *
드래곤이 깨어난 것 때문에 안 그래도 어수선했던 클리페우스성은 난리가 났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최근 그렇게 큰 전투를 치렀는데도 몬스터들이 또 침공해 온 거였다.
‘레인저들을 미리 철수시켜 놔서 다행이지.’
카엘은 귀환하자마자 드래곤이 깨면 그 여파에 휘말릴까 봐 레인저들을 모조리 철수시켜 둔 참이었다.
“어, 그런데 오크 말고도 다른 몬스터들이 많이 보입니다.”
“놀에 고블린에… 저건 뭐지?”
레인저의 보고대로 이번에는 오크 외의 각종 몬스터들도 함께였다.
심지어 회색산맥에서 한 번도 못 봤던 몬스터도 많았는데, 하피나 대형 박쥐 등 비행형 몬스터까지 있었다.
막시마가 투덜댔다.
“저것들은 다 어디서 온 거야?”
“드래곤 둥지에서 왔겠지요.”
카엘의 대답에 브란이 심각한 얼굴이 됐다.
“설마 드래곤이 깨어났다고 둥지 안의 몬스터들의 봉인이 풀린 건가.”
“큰일이로군.”
“너무 걱정하실 거 없습니다. 저희 전력으로 충분히 상대할 만합니다.”
카엘은 걱정하는 아버지와 브란에게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 말대로 현재 클리페우스성의 전력은 막강했다.
먼저 어지간한 몬스터들은 드워프들이 만들어 둔 다연장 쇠뇌가 가동하면 그대로 쓸려 나갔다.
그게 통하지 않는 오거와 트롤도 철포로 큰 타격을 줬다.
그걸 뚫고 오는 적들은 정령을 다루는 엘프들과 거대화한 라이칸스로프를 상대해야 했다.
문제는 저 몬스터들 중에 가능한 죽이기 싫은 몬스터가 있다는 거였다.
얼마 전 도움을 받은 하피는 물론, 이제 같은 식구나 다름없는 라이칸스로프에 드워프, 엘프까지 있었다.
드래곤 둥지에 갇혀 있던 몬스터들은 모두 드래곤이 공포와 저주로 지배하던 것.
드래곤이 잠들어 있을 때는, 미궁과 둥지 속에서 만큼은 어느 정도 자유롭게 지냈지만.
지금은 눈이 뒤집힌 채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무작정 덤비고 있었다.
아예 싸움을 피할 순 없으니 최대한 죽이지 않도록 지시했지만, 싸우는 라이칸스로프를 비롯해 엘프와 드워프들의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다.
‘드래곤은 여기 없으니, 분명 저 몬스터를 선동하는 녀석이 있을 텐데…….’
그 몬스터를 해치우면 저들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카엘은 이 무리를 지휘하는 몬스터를 찾기 위해 전투에 참여하지 않고, 장벽 위에서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장벽 가까이에서 자신에게 소리치는 오크가 있었다.
“카엘! 나와라, 카엘! 나와 대결하자!”
분명 저번에 오른팔을 잘랐던 오크 로드였다. 지금은 오른팔에 도끼를 달고 의기양양하게 소리쳤다.
‘저 녀석이 드래곤이 지배하던 몬스터들을 움직인 건가?’
드래곤의 둥지로 들어간 것도 목격했으니 카엘이 예상한 대로, 드래곤을 깨운 것도 저 오크 로드일 가능성이 컸다.
그렇다면 저 몬스터들을 움직이는 것도 이해가 됐다.
한편 옆에 있던 막시마가 고개를 갸웃했다.
“뭐야? 저 오크가 왜 널 불러?”
“저를 이곳의 우두머리로 여기는 거 같더군요.”
“흠, 하긴. 그런 착각 해도 이상하지 않지.”
막시마는 카엘의 활약을 떠올리며 수긍했다.
그때 티겔 공작이 말했다.
“어쨌든, 저 요청에 굳이 응할 필요는 없다. 유리한 전장에서 장수가 괜히 싸우다가 다치거나 죽기라도 하면 역전의 빌미를 줄 뿐이니까.”
그 말대로 현재의 전세는 클리페우스성 쪽이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몬스터가 많다고 해도 제대로 공성을 하는 것도 아니고, 두껍고 높은 장벽에 가로막혀서 일방적으로 이쪽이 공격하는 상황이었다.
“아버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몬스터들이 잔뜩 나온 이상 최대한 격멸해야지, 적의 지휘관을 꺾고 후퇴하게 만들어 봤자 회색산맥으로 숨어들어 가서 후환이 될 뿐입니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카엘은 한창 열심히 싸우고 있는 라이칸스로프와 엘프, 드워프들을 쳐다봤다.
“이곳에서 함께 지내고 있는 이종족들의 동족을 구하려면 저 오크 로드를 해치워야 합니다.”
그 말에 티겔이 기특하단 눈빛으로 카엘을 바라봤다.
“네 결심은 이미 확고한 거 같구나. 그래, 알겠다. 가서 결투에 응하거라.”
“감사합니다.”
브란과 막시마도 옆에서 한마디 했다.
“몸조심하거라. 저번에는 목숨을 건 연극에 하는 수 없이 동의했다만 이번에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맞아. 무조건 이겨야 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렇게 말한 카엘은 아조트를 뽑아 들었다.
“이번에는 나름 준비한 게 있으니까요.”
그러고는 모르타를 쳐다봤다.
모르타가 고개를 끄덕인 걸 확인하고는 장벽 위에서 뛰어내렸다.
모르타가 부른 바람의 정령이 카엘을 안전히 착지하도록 도왔다.
한편 고래고래 소리치던 트팍은 카엘이 나타난 걸 보고 놀라더니, 입꼬리를 비틀며 비아냥댔다.
“웬일로 비겁하지 않게 혼자 상대할 작정인가?”
“같이 나오면 전처럼 도망칠 거 같아서 말이지.”
카엘도 지지 않고 대꾸했다.
전투에서 등을 보이고 도망친다니, 오크로서는 참기 힘든 굴욕적인 말이었지만, 트팍은 대수롭지 않게 받아넘겼다.
“당연히 그래야지. 난 불리한 싸움을 할 생각이 없거든.”
“그렇다는 건 나 하나쯤은 충분히 이길 수 있다는 건가?”
“물론이지. 죽어라!”
트팍이 달려 나오면서 도끼를 휘둘렀다.
그러자 맹렬한 화염이 뿜어져 나오면서 카엘을 덮쳤다.
드래곤이 준 마법 도끼였던 거였다.
“이거로는 어림없지.”
카엘은 빙한목의 냉기로 가볍게 막았다.
“그래 어디 한번 끝까지 해보자!”
투기를 끌어올려 붉게 변한 트팍이 맹렬하게 카엘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아조트가 이리저리 틈을 노렸지만, 전신이 고양된 트팍은 자잘한 견제는 무시하고 계속해서 공격을 퍼부었다.
힘도 어찌나 세졌는지 카엘도 간신히 버틸 정도였다.
심지어 트팍이 맞은 공격도 금세 회복되는 게 보였다.
‘이런, 역시 보통이 아니군.’
결국.
“커억!”
버티지 못한 카엘은 도끼의 옆면에 퍽 하고 얻어맞고 나뒹굴었다.
“카엘 님!”
저 멀리서 이쪽을 주시하던 소피아가 소리쳤다.
카엘은 괜찮다며 손을 뒤로 해 막았다.
그걸 본 트팍이 비웃었다.
“도움을 안 받은 걸 후회하게 해 주마.”
한번 주도권을 잡은 트팍은 계속해서 카엘을 밀어붙였다.
아조트가 치명상을 피하도록 조정해 줬지만, 카엘의 전신에 상처가 하나둘 쌓여 갔다.
그러다 결국.
또 걷어차인 카엘이 저 멀리 날아갔다.
“커억!”
전신에 힘이 안 들어가서 겨우 검을 짚고 일어나면서 피를 토했다.
“크흐흐, 괴롭지? 이제 괴롭지 않게 마무리해 주마.”
천천히 걸어온 트팍이 높이 든 도끼를 아래로 휘두르는 순간, 카엘이 힘차게 도끼를 쳐 내고 자세를 잡았다.
“아직이야.”
“음?”
트팍은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카엘을 쳐다봤다.
분명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는데, 저토록 멀쩡하다니.
“설마 라이칸스로프였었나?”
“그랬다면 벌써 변신했지.”
카엘은 그렇게 대꾸하며 트팍에게 덤볐다.
“그래 봐야, 나한테 안 된다!”
트팍은 어림없다는 듯 소리치며 다시 도끼를 휘둘렀다.
그러고 한참 뒤.
카엘은 선전했지만, 전과 마찬가지로 이곳저곳을 다쳐 피를 흘리며 괴로워했다.
“크으으…….”
“헉. 헉. 그래, 이제 정말 끝이다!”
그러나.
“아직인데?”
카엘은 금방 멀쩡해져서는 다시 트팍의 공격을 막아 냈다.
“젠장, 어떻게 된 거냐?”
트팍은 이를 악물고 공격을 퍼부었지만, 카엘은 다친 거 같다가도 어느새 회복되어 있었다.
‘이거면 절대 죽지 않지.’
이번에도 제법 다친 카엘은 손톱만 한 뭔가를 입에 넣었다.
회귀 전 스승이었던 디오네와 드워프 장인 블렌트, 물의 정령을 다루는 데키마의 도움을 받아 만든 초소형 회복 포션이었다.
지금껏 크게 다칠 때마다 작은 회복 포션을 먹어서 버틴 거였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했을까?
참다못한 트팍이 소리쳤다.
“헉! 헉! 이렇게 된 이상 단번에 숨통을 끊어 주마! 에잇!”
트팍이 그러면서 도끼를 휘두르는 척하면서 카엘에게 주먹을 날렸다.
덥썩.
하지만 카엘은 그 주먹을 손쉽게 낚아채는 게 아닌가?
“어?”
“이제 지친 거 같은데.”
당황하는 트팍에게 카엘이 웃으며 말했다.
그 말대로 트팍은 어느새 투기도 풀린 채였고, 다시 투기를 끌어올리려 해도 여의치 않았다.
“자, 잠깐. 쉬었다가 하자.”
“누구 마음대로?”
“싫음 이거나 먹어라!”
트팍은 매섭게 도끼를 휘둘렀지만, 아까보다 약했다.
카엘은 손쉽게 도끼를 쳐 내고는 트팍의 머리통을 잘랐다.
털썩.
몸과 머리가 분리된 트팍은 그대로 뒤로 쓰러지며 피를 쏟아 냈다.
드디어 해치운 거였다.
‘이제 됐나?’
카엘은 승리의 기쁨을 누리기 전에 주변부터 살펴봤다.
다행히 클리페우스성을 공격하던 몬스터들이 하나둘 멈추기 시작했다.
트팍이 죽자 정신을 차린 거였다.
* * *
‘음. 오크 녀석 죽었나?’
드래곤 라 키레아스는 저 멀리서 트팍의 죽음을 느꼈다.
‘나름대로 재미있는 오크였는데 아쉽군.’
그렇게 생각하며 저 멀리 회색산맥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는데, 메라자이드의 목소리가 들렸다.
-눈 하나를 잃었는데도 지금 한눈파는 거냐?
-다른 눈 하나도 날려 버려!
데비하이드도 신나서 소리쳤다.
파이슨의 일격이 성공한 뒤로 의기양양해진 참이었다.
‘귀여운 녀석들, 자기들이 이긴 줄 아는 건가?’
키레아스는 웃으며 입을 크게 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