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s Medicine Sucking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29
129화 7공주 (3)
카엘은 심해성에서 사절이 왔다는 소식에 마중 나갔다.
성문을 나서자마자 풍성한 붉은 머리의 미녀가 카엘에게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앗! 카엘 님이시죠! 전 델라라고 해요!”
“…아, 네, 제가 카엘입니다. 델라 님,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카엘은 얼떨떨한 얼굴로 인사를 받았다.
그보다 놀라운 건 사절단에 수호병이 포함되어 있다는 거였다.
“여기서 뵙다니 놀랍군요. 물 밖으로는 안 나오시는 줄 알았는데.”
-왕족의 경호 때문에 나왔다.
왕족과 함께라면 수호병도 활동할 수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
어쨌든 왕족의 경호 때문이라는 건…….
카엘은 다시 델라를 쳐다보자 수호병이 설명했다.
-델라는, 메르 8세의 딸이다.
예상대로 공주였다.
카엘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왜 공주님을 이곳까지 보내셨습니까?”
그 대답은 델라가 했다.
“휴, 저보고 카엘 님께 시집가라지 뭐예요. 아빠가 카엘 님과 친하게 지내고 싶다고요.”
‘윽, 역시나.’
아무래도 타모라국의 공주가 부마로 삼겠다는 소문을 듣고 나선 게 틀림없었다.
다행히 델라의 반응을 본 카엘은 조금 안심이 됐다.
‘한숨을 내쉬는 거 봐서는 이 혼담이 마음에 안 드는 게 틀림없어.’
심해성에서 인연이 있던 것도 아닌데, 생면부지의 남자와 결혼하는 게 내킬 리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냥 놀러 오셨다고 생각하시고 편하게 지내다 돌아가세요. 메르 8세께는 제가 잘 말씀드리겠습니다.”
“앗! 정말요? 감사합니다. 사실 여기저기 구경하는 거 좋아하는데 뭍은 위험하다고 못 올라가게 하거든요. 그것만 아니었으면 안 왔죠.”
격식이 없이 천진난만하게 말하는 것도 이해가 됐다.
뭍으로 못 올라가게 한다는 거로 봐서는 심해성에서만 자랐을 테니까.
‘적어도 골치 아픈 것보다는 낫지.’
수호병은 그런 카엘의 마음을 눈치채기라도 한 듯 넌지시 말했다.
-참고로 공주는 모두 일곱. 델라는 그중 셋째다.
“…….”
만약 델라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하면 메르 8세가 다른 공주를 보낼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그만 들어가지.”
카엘은 심해성의 사절단을 안내해 티겔 공작에게 소개했다.
인사를 주고받고 델라가 돌아가자 티겔도 당황한 듯 어안이 벙벙한 얼굴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하피 왕국에 이어서 심해성의 주인까지 딸을 보내다니…….”
“저도 어떻게 된 영문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카엘이 그만큼 잘나서 그런 거죠.”
그렇게 말하는 어머니 마리안은 신난 얼굴이었다.
아무래도 아들에게 시집오겠다고 여러 공주가 찾아올 정도로 인기가 많아진 게 기쁜 모양이었다.
그 모습을 보니 새삼 지금 상황도 골치 아픈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귀 전 어머니가 기뻐하는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카엘 앞에서는 애써 웃긴 하셨지만 카엘이 아프지 않고 오래 살기만을 기도하는 모습이 우울해 보였다.
‘적어도 지금 상황을 엎겠다고 굳이 나설 필요까지는 없겠어.’
* * *
카엘이 연구실로 가니 드래곤 라 키레아스가 이미 소문을 들었는지 히죽히죽 웃었다.
“이야, 카엘. 너 인기 많더라. 결혼하겠다고 오는 공주가 벌써 몇 명이야? 넷이지?”
“그래 봐야 저희 왕국과 심해성의 공주는 딱히 내켜서 오는 것도 아닌 거 같더군요. 잘 달래서 보내면 순순히 돌아갈 거 같습니다.”
“그러면 끝이야? 이곳에도 공주가 셋이나 더 있는데?”
“셋이요?!”
“그럼. 이렇게 된 거, 드워프 왕국에서도 왕족이 있으면 결혼시키려고 할지도 모르잖아. 엘프나 라이칸스로프는 부족이지만 대표로 내세울 수 있고.”
‘아, 무슨 소린가 했네.’
“특히 노아나인가 자매들이랑도 친하다면서.”
“다들 친구고 동료죠. 그렇게 생각해 본 적 없어요. 관심도 없고요.”
회귀 후 인연을 맺게 된 이들이 여럿 있었지만 다들 믿음직한 동료나 친한 이웃이라고만 여겼지 결혼은커녕 이성으로 여긴 적도 없었다.
회귀 전에는 아파서 딱히 이성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던 게 익숙해져서인지 회귀 후에도 별생각이 안 들었다.
그나마 가족 외에도 그리워했던 이성을 굳이 꼽자면 스승인 디오네뿐이랄까.
참고로 카엘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사이, 디오네는 모험을 떠났다고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돌아오겠다고 쪽지를 남겨 놓은 거지만.’
한편 라 키레아스는 카엘의 말에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언제부터 결혼을 관심 가지고 했다고. 주변 세력과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서 하는 거지.”
“아.”
틀린 말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정략결혼이 그러했고, 그게 대뜸 공주를 보내는 쪽에서도 그게 보통이니까 저러는 거였다.
‘그나저나 그 셋까지 합치면… 모두 7공주가 되는 건가?’
카엘이 어이없다고 생각하는데, 라 키레아스가 순간 그윽한 눈빛으로 다가왔다.
“설마 나도 노리는 거야? 이거, 기분 나쁘지만은 않은데?”
아무래도 라 키레아스 쪽을 보고 멍하니 있던 걸 자신을 바라본다고 착각한 모양이었다.
“…아닙니다.”
아무리 아름답다고 해도 무지막지하고 제멋대로인 드래곤을 노릴 리가 있나?
“…아니야?”
“네!”
카엘이 단호하게 대답하자 라 키레아스는 얼굴이 굳었다.
아차 싶었던 카엘이 말했다.
“라 키레아스 님은 공주가 아니라 여왕님이시니까요.”
“아, 그렇지. 난 공주는 아니긴 하지. 그런 의미였구나.”
라 키레아스는 그제야 얼굴을 풀고 크게 웃더니 연구실을 나갔다.
“휴우, 겨우 한숨 돌렸네.”
그러고 있으려니 얼마 후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쿤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아, 물론입니다. 들어오세요.”
카엘은 쿤에게 자리를 권했다.
“혹시 하피가 원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약은 어떻게 됐는지 궁금해서요. 아버님께서 확인하라고 하셔서…….”
“아, 이미 완성했습니다.”
카엘은 찬장에서 포션 한 병을 꺼냈다.
“이걸 가지고 가서 칸 님께 설명해 드리고 실험 후에 대량 생산할 예정입니다.”
“아, 그거 제게 실험해 주세요. 제가 첫 실험 대상이 되겠습니다.”
전에도 그러더니 또 위험한 소리를 하네.
쿤의 결심은 굳은 듯 결연한 표정을 지었지만 카엘로서는 허락하기 힘들었다.
약에 자신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공주를 상대로 실험했다가 부작용이 생기면 곤란했다.
“아버님께서도 이미 허락하셨습니다. 만약 약이 만들어졌다고 하면 먼저 먹으라고요.”
“…그렇습니까?”
그건 뜻밖이었다.
보통 신약은 위급한 환자가 아닌 이상, 노예나 범죄자들한테 먼저 실험하는 게 보통이었다.
그런데 아끼는 딸로 실험하도록 허락하다니.
“이런 일에는 왕족이 솔선수범해야 한다고요. 여기 서신도 받아 왔습니다.”
그 말에 카엘의 마음이 흔들렸다.
이 나라 왕만 해도 책임지기는커녕 방해만 하는데, 솔선수범한다니.
서신에는 쿤이 말한 그대로 쓰여 있는 데다가, 칸의 인장까지 찍혀 있었다.
그렇다면 더 미룰 것도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복용해서 효과를 보도록 하죠.”
“네.”
“걱정하지 마세요.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제가 책임질 테니까요.”
“…아, 네.”
쿤이 얼굴을 붉히며 날개로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카엘 님이 책임을 지신다니! 감격이야.’
자신이 잘못되었을 경우를 상상하며 포션을 보니 온갖 망상이 떠올랐다.
‘차라리 이 약이 실패해서 카엘 님이 나를 책임져 줬으면……. 그럼 결혼하게 되는 건가? 꺄!’
쿤은 상상만으로도 기쁜지 고개를 저으며 몸을 비비 꼬았다.
카엘이 생각하는 책임은 전혀 다른 의미였지만.
‘부작용이 생기면 무슨 일이 있어도 제대로 고쳐 드려야지.’
엘릭서까지 만들 수 있는 이상.
부작용이 생기더라도 최소한 원래 상태로 돌아가게 할 자신은 있었다.
그러다 쿤이 고개를 젓는 걸 본 카엘은 혹시 마음이 바뀌었나 싶어 물었다.
“아, 혹시 안 내키시면 좀 더 고민하셔도 괜찮습니다.”
아무래도 처음 사용하는 약이다 보니 겁을 먹어도 이해했다.
“아, 아니에요! 바로 마실게요!”
쿤은 행여나 카엘이 다시 마음을 돌릴까 다급하게 목소리를 높였다.
그 강렬한 음파에 연구실의 집기가 살짝 흔들릴 정도였다.
“아, 죄송해요…….”
“괜찮습니다. 이대로 마시면 됩니다.”
카엘은 하피 맞춤 포션을 건네줬다.
“네, 그럼.”
쿤은 기다렸다는 듯 꿀꺽꿀꺽 포션을 삼켰다.
‘천천히 드셔도 되는데…….’
카엘이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약효가 발휘되는 듯 쿤의 날개와 새 다리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빛이 사그라지자마자 자신의 날개와 다리를 확인한 쿤이 말했다.
“어. 카엘 님, 아무런 변화가 없는데요?”
설마 실패란 말인가?
그것도 아무런 변화가 없는 채로?
‘카엘 님이 책임이라도 지려면 차라리 뭔가 잘못되는 게 나은데……. 그러면 안 되겠지만.’
쿤은 내심 기대하는 것과 별개로, 어떤 문제가 생겨도 카엘에게 책임을 물을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자신이 자처한 실험인 데다가, 카엘이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그런데 카엘이 이렇게 말하는 거 아닌가?
“그게 하피의 본모습이니 변화가 없는 게 당연하죠.”
“아! 그렇겠네요…….”
한 방 먹은 듯한 얼굴이 된 쿤이 물었다.
“그러면 어떻게…….”
“저는 잘 모르겠지만 라이칸스로프인 브로칸이 요령을 알려 줬습니다. 가슴을 진정시켜 심장 박동을 늦춘 뒤, 인간 모습으로 변한다고 상상하면 된다는군요.”
“아, 네. 해 볼게요.”
쿤은 그렇게 말하고 자신의 두 날개를 보며 집중하는 듯 미간을 모았다.
그러나.
한참을 그러는데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음, 잘 안 되나요?”
“…네.”
“눈을 감고 한번 해 보세요.”
“네!”
쿤은 다시 눈을 감고 집중했지만 여전히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음, 아무래도 실패인가 봅니다. 죄송합니다. 다시 처음부터 검토해 봐야겠네요.”
그러는 카엘에게 쿤이 조심스레 말했다.
“죄송한데, 잠시만 혼자만 있게 해 주시겠어요? 다시 한번 시도해 볼게요.”
“아, 알겠습니다. 바로 앞에 나가 있겠습니다.”
곧바로 수긍한 카엘은 나가서 문을 닫았다.
‘아무래도 신체가 처음 변화하는데 타인의 시선이 신경 쓰이겠지.’
정작 쿤은 카엘이 옆에 있으니 심장이 두근거려서 진정시키기 어려워서 말한 거였지만.
그리고 잠시 뒤.
문 안에서 쿤의 기쁜 외침이 들렸다.
“카, 카엘 님, 성공했어요!”
카엘이 안으로 들어가 보니 정말로 쿤의 날개 대신 손이, 새 다리 대신 다리로 변해 있었다.
카엘이 만든 약이 성공한 거였다.
카엘은 변화한 쿤의 모습을 살펴봤다.
“손이 정말 곱고 보드랍게 변했네요. 원래 쿤 님의 날개가 아름다워서인가 봅니다.”
“…감사합니다.”
카엘의 칭찬에 쿤이 얼굴을 붉혔다.
이제 인간의 팔다리를 가질 수 있게 된 건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아쉬웠다.
‘카엘 님이 책임지실 일이 없어졌으니……. 아니야, 아니야!’
금세 부정적인 생각을 지운 쿤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팔다리도 생겼겠다, 마음 놓고 유혹하면 되잖아.’
그러다가 문득 자신이 한 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인간들은 유혹할 때 어떤 구애의 춤을 추지?’
* * *
그러는 사이.
이번에야말로 타모라 왕국의 공주가 클리페우스성에 도착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하지만 주민들의 관심은 전보다 덜했다.
브레프니 왕국에 도착해 어딜 가도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타모라국의 사절단이 의아해할 정도였다.
실은 이미 온다는 소문은 한참 전에 돌았고, 그사이 하피의 공주와 심해성의 공주가 온 상황이라 화제가 안 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타모라 왕국의 공주는 이미 도착한 거로 아는 주민들도 있었다.
그런 와중에 타모라국의 공주가 왔다는 소식에 놀라면서도 기뻐하는 건 따로 있었다.
바로 심해성의 공주, 델라였다.
“카엘 님을 차지하기 위해 여기에 공주들이 모이고 있다니, 내가 왜 몰랐지?!”
실은 델라는 뭍에서 쓴 비극적인 사랑과 치정극에 대한 책을 읽고 푹 빠졌었다.
그게 눈앞에 재현될 상황이다 보니 흥분 안 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자신도 그 한가운데에 놓인 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