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s Medicine Sucking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79
179화 황금의 비밀 (1)
카엘 일행은 니제르 왕국의 수도, 니아메이의 입구를 통과하지도 못하고 수많은 인파에 가로막혔다.
사람이 사막의 모래알처럼 가득했다.
소피아는 질린 눈으로 그 광경을 바라봤다.
“으아. 아무리 수도라고 해도 사람이 너무 많은 거 아닌가요?”
“원래 이 정도로 많진 않아.”
“이게 다 카엘을 보러 온 사람이다. 저것 봐.”
마하마네와 디오리의 말에 고개를 돌려 보니 어느덧 사람들의 시선이 다 카엘 일행 쪽으로 향해 있었다.
하나같이 눈에 불을 켜고 이쪽을 훑어보는 게 누가 카엘인지 찾는 듯했다.
일부는 높은 짐마차 위에 올라가서 내려다보기도 했다.
“이대로는 수도 안에 들어가지도 못하겠는걸.”
“그나저나 세이비는 어디 간 거야?”
마하마네와 디오리가 난감해하고 있을 때였다.
저 앞에서 황금빛이 번쩍한다 싶더니, 주변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큰 소리가 들렸다.
“왕실 근위대가 나간다. 다들 길을 비켜라!”
그 위용이 어찌나 대단한지 꼼짝 않던 사람들이 조금씩 물러나더니 길을 내기 시작했다.
그 길을 따라 황금 갑옷을 입은 병사들이 카엘 일행을 향해 도착했다.
“왕실 근위대장 완케입니다. 니제르 왕국의 왕실 근위대가 브레프니 왕국의 제일 검이자, 몬스터로부터 브레프니 왕국을 지키는 왕국의 방패인 클리페우스성의 주인 티겔 브리운 공작님의 적장자인 카엘 브리운 님을 모시러 왔습니다.”
거창하게 말한 완케는 기대 어린 눈빛으로 카엘을 바라봤다.
원래 니제르 왕국은 상하 관계가 확실해도 사막 너머의 제국이나 왕국처럼 격식을 차리지는 않는다고 알고 있었다.
아마 모처럼 사막 너머에서 사절이 왔으니 격식을 차려서 대접해 보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여기서는 맞춰 줘야겠지.’
카엘은 감명받은 얼굴로 대꾸했다.
“왕실 근위대가 이리 환대해 주시다니 정말 영광입니다!”
“하핫. 편하게 모시겠습니다. 자 다들 뭣들 하느냐 어서 길을 열지 않고.”
완케는 아주 기뻐했다.
그걸 본 마하마네가 놀란 눈을 했다.
“뭐야 비위를 잘 맞춰 줄 줄도 알잖아. 더 마음에 들었어.”
“상대가 호기심과 선의를 가지고 나오는데, 굳이 기분 나쁘게 굴 필요는 없죠. 조금 맞춰 주는 것만으로 서로 기분 좋지 않습니까.”
“으음. 그런가?”
아무래도 삭막한 가운데서 번성한 부족의 후계자로 태어나 멋대로 살아온 만큼 잘 이해가 안 가는 듯했다.
수도 안도 마찬가지로 카엘을 보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 때문에 카엘은 별다른 구경도 못 하고 그대로 성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그러다 문득 브로칸이 떠올랐다.
여장까지 하고 오겠다는 루크와 별개로 브로칸도 따라오겠다고 한번 말하긴 했다.
‘자신은 남자가 아니라 수컷이라나?’
그래도 안 된다는 말에 포기했지만, 정말 안 와서 다행이었다.
구경하면서 새로운 냄새를 맡기는커녕 구경거리가 됐을 테니까.
카엘은 근위대장 완케를 따라 성으로 들어와서도 한참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다 완케가 발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여기서부터는 카엘 님만 들어오시고, 나머지 손님들은 편히 쉬시고 계시지요.”
“카엘 님?”
“괜찮으니까, 먼저 가서 쉬고 있어.”
카엘은 걱정하는 소피아와 엘프 자매들에게 말했다.
그러고 다시 안으로 한참 들어갔다.
거기에는 함께 얇은 천으로 중요 부위만 가린 반쯤 헐벗은 하녀들이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닌가?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이 많으셨을 텐데, 씻고 옷을 갈아입으시죠.”
말은 곱게 했으나 깨끗하게 하고 와서 국왕 앞에 나서라는 거였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무장도 해제할 테고 말이지.’
하지만 카엘은 이번에도 순순히 받아들였다.
다만 한 가지 조건을 달았다.
“제가 직접 씻겠습니다. 남이 씻겨 주는 데는 익숙지 않아서요.”
“…알겠습니다.”
완케는 순순히 허락했다.
원래 방문객을 씻기면서 독이나 암기를 숨겨 놓은 걸 찾는 것도 목적이었기에 허용하면 안 되지만.
앞서 카엘이 맞장구쳐 준 것 때문에 기분이 좋았다.
“그래도 자리를 비워 드릴 순 없습니다. 깨끗이 씻는지 확인해야 하니까요.”
“알겠습니다.”
카엘은 고개를 끄덕인 후 옷을 벗고 호수처럼 커다란 욕조에 들어갔다.
‘이 삭막한 가운데서도 깨끗한 물이 흐르는 게 여간 호사스러운 게 아니군.’
카엘이 그렇게 생각하면서 몸을 닦고 있으니, 하녀들이 수군거렸다.
“어머나, 몸 좀 봐.”
“옷을 벗으니까 보기보다 아주 몸이 단단한데?”
“어쩜 이렇게 몸매가 조각 같을 수가 있지.”
하녀들은 자기네들끼리 속삭이다가 카엘이 다 씻고 욕조 밖으로 나오자 움찔하면서 입을 다물었다.
“수건 좀 주세요.”
“아, 네.”
카엘은 하녀가 황급히 건네주는 수건으로 몸을 닦았다.
“옷은 입혀 드리겠습니다.”
“그러죠.”
이번에는 얌전히 몸을 맡겼다.
카엘이 회귀까지 했어도 이곳의 전통 복장을 입는 방법까지 꿰고 있진 않아서였다.
품이 넉넉하고 바람이 잘 통하는 소재라 이곳 환경에 딱 맞는 옷이기에 아주 편했다.
한편 하녀들이 옷을 입히며 슬쩍슬쩍 카엘의 몸을 만지는 바람에 완케가 헛기침으로 제지해야 했다.
그 과정을 마치고 다시 안내를 받아 화려한 양탄자가 깔린 길 위를 걸어 들어가니 넓은 방이 나왔다.
마치 야외에 나온 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넓은 방 안에는 푹신하고 기다란 의자가 모두 일곱 개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비어 있었다.
그리고 기다란 의자에 느긋하게 누워 있던 중년의 여인들은 카엘이 오자 하나같이 흥미로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카엘은 그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중앙의 여인에게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카엘 브리운이 니제르 왕국의 주인께 인사드립니다.”
“그래, 반갑다. 오느라 고생이 많았구나.”
풍성한 붉은 머리에 세이비처럼 녹색 눈동자의 여인이 부드러운 미소로 맞아 줬다.
그것도 잠시 새초롬한 얼굴로 카엘을 나무랐다.
“여기까지 오는 데 제법 요란을 떨었다지.”
“전하께서 의도하신 바대로 했을 뿐입니다만.”
카엘의 당돌한 말에 방 안의 공기가 술렁였다.
그때 국왕이 웃음을 터트렸다.
“푸하하하핫! 내 수가 그리 뻔하더냐?”
“뻔하다기보다는 너무 장난기가 많은 수였습니다.”
카엘의 대답에 국왕은 정말 재밌다는 듯 다시 한번 폭소를 터트렸다.
그러더니 다른 부족장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확실히 재밌는 남자지 않나?”
“그렇네. 왜 다들 보러 가겠다고 난리인 줄 알겠어.”
“우리 애는 완전히 빠졌는지 내가 돌아오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더라고.”
“나도 한창때면 나서 볼 텐데.”
다른 부족장들이 모두 웃으며 동감했다.
의미심장한 농담을 던지는 족장들도 있었다.
“장난인 줄 알았으면 적당히 할 것이지, 일이 너무 커졌어. 이대로라면 왕국 인구의 절반 이상이 수도로 몰릴 판이야.”
그건 카엘도 예상 못 한 바였다.
부족의 후계자들을 적당히 쓰러트리다 보면 주목받을 거라고는 예상했지만, 다들 자신을 보겠다고 찾아올 줄이야.
“그래서 한 가지 제안하려고 하는데.”
“거절합니다.”
국왕의 말에 카엘이 단호히 말했다.
“뭔지 들어 보지도 않고 거절해?”
“분명 저를 상품으로 걸고 뭔가를 하려는 거 아닙니까?”
“우와!”
“대체 어떻게 알았대?”
“우리가 이야기하는 걸 들었나?”
감탄하는 부족장들을 국왕이 째려봤다.
“야! 조용히 좀 해. 그렇게 말하면 간파당한 걸 인정하는 셈이잖아. 어떻게 더 이야기를 끌어가라고.”
“뭘, 이미 다 알고 있는 거 같은데. 솔직히 말하는 게 나을 거 같은데.”
“휴. 내가 말을 말아야지.”
머리가 아픈 듯 이마를 짚은 국왕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근데 보통 씨를 달라고 하면 남자들이 좋아 죽는데, 넌 왜 그리 비싸게 굴어?”
그러면서 미심쩍은 눈으로 카엘을 바라봤다.
“아니면, 혹시 남자로서 기능하는 데 문제 있어?”
그 말에 부족장들이 수군거렸다.
“맞다. 그 생각을 못 했네.”
“그럴 수도 있어? 그걸 못 하면 남자가 어디 쓸데 있다고.”
“나도 들어 본 적 있어.”
“그렇게 생각하셔도 상관없습니다.”
카엘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꾸하자 국왕이 한숨을 내쉬었다.
“저 자신 넘치는 거 봐라. 사실 하녀들한테 아주 실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아마 문제없을 거야.”
“그렇군.”
“근데 왜 저래?”
“도통 이해가 안 가네.”
“조용, 조용! 조용히 좀 해 줘!”
겨우 부족장을 진정시킨 국왕이 잠깐 고민하다가 말했다.
“황금 금속기를 하나 줄게, 어때?”
그 말에 금방 조용했던 부족장들이 술렁거렸다.
아주 파격적인 제안이었기 때문이다.
니제르 왕국에는 아주 거대한 황금산맥이 있는데, 왕실 근위병이 황금으로 갑옷을 만들어 입을 정도로 황금이 넘쳐났다.
그 때문에 사막에 고립되어 다른 나라와 교역이 어려워도 문제없었다.
황금에 눈이 먼 상인들이 온갖 물건을 들고 죽을 고생을 하며 찾아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황금이 많아도 황금 금속기를 만들기는 어려웠다.
니제르 왕국의 광산에서 나오는 황금 중에는 아주 드물게 신비로운 힘, 마기를 띠고 있는 게 나와 그거로 금속기를 제조했다.
다만 제대로 위력을 발휘하려면 마기를 띤 덩어리도 커야 했다.
게다가 황금 금속기는 그중에서도 강한 마기를 품고 있어야 했는데, 그 기준을 충족하는 덩어리 재료를 구하는 건 아주 어려웠다.
수십 년을 캐야 한 덩어리를 발견할 수 있을까 말까 하는 데다가, 그나마 최근 백 년간은 한 번도 발견된 적이 없었다.
그 때문에 부족에서도 족장과 그 후계자가 무기와 방어구 한 쌍씩.
왕국 내에도 국왕과 공주, 수도를 지키는 왕실 근위대장의 것까지 세 쌍뿐이었다.
“그럴 여유가 있어?”
“국왕이 가진 걸 내줄 생각은 아니지?”
“우리더러 달라고 해도 곤란해.”
“그럴 리가.”
부족장들이 상상 이상의 제안에 걱정하자 국왕이 자신 있게 웃었다.
“마침 최근 작긴 하지만 황금 금속기를 만들 만한 걸 발견해서 단검을 만들었거든.”
“단검이라.”
“그 정도면 괜찮네.”
“상징성도 있고.”
부족장들도 납득하자 국왕은 어느새 뒤에서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세이비를 불렀다.
“공주, 네게 맡긴 단검을 다오.”
그러자 세이비가 떨리는 목소리로 국왕을 불렀다.
“아, 엄마…….”
아무리 가벼운 분위기라도 이런 공식적인 자리에서 엄마라고 부르면 화를 냈지만, 최대한 다정하게 대해 줬으면 해서였다.
“내가 분명……. 응?”
국왕은 왜 또 여기서 엄마라고 부르냐고 세이비를 다그치려다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무슨 일이라도 있느냐?”
“…그게. 그 금속기 말인데요.”
“그래, 네게 그 황금 금속기를 맡기지 않았느냐. 어서 꺼내 봐라.”
“그게… 부서졌어요.”
“뭐?!”
국왕은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까무러칠 뻔했다.
세이비도 이 일을 어떻게 말하나 걱정돼서 수도에 오자마자 자취를 감춘 거였다.
‘가능한 분위기 좋을 때 말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빨리 말할 줄이야…….’
놀란 건 부족장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황금 금속기가 부서져?”
“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대체 어쩌다가 부서졌어?”
그때 카엘이 나섰다.
“그거 제가 부쉈습니다.”
“……?!”
다들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와중에 담담히 설명했다.
“그걸로 제게 공격하길래 맞받아쳤더니 부서지더군요.”
“…….”
아무리 그래도 황금 금속기가 부서진다는 말은 금시초문이었다.
“일반 금속기의 마력도 없애는 이상한 능력도 있고, 괴력도 있는 탓 같아요…….”
“그, 그래?”
세이비에게 추가로 설명을 들은 국왕은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저 말괄량이 공주를 혼내기 이전에 자신이 난감한 상황에 빠진 거라는 걸 깨달아서였다.
그걸 정확히 간파한 카엘이 웃으며 말했다.
“어쨌든 저를 상품으로 거는 전하의 제안을 받아들이면 황금 금속기를 주신다는 말씀은 변함없으신 거죠?”
“어, 음…….”
국왕은 곧바로 대답 못 하고 말꼬리를 흐렸다.
국왕 체면상 돌이킬 수도 없는데, 지금 가진 황금 금속기는 왕가의 상징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때 카엘이 한 발짝 물러선 제안을 하는 게 아닌가?
“황금 금속기를 주는 게 곤란하면, 황금 금속기로는 만들기 어려운 부스러기 있지 않습니까? 그거 모아 두신 거로 아는데, 그걸 있는 대로 주십시오. 거기다 저를 걸되 마지막에 저를 이겨야 차지한다는 조건을 달아 주시고요.”
“그건 상관없다만, 부스러기는 쓸데가 없을 텐데…….”
마기를 띤 황금 부스러기는 제법 나오는 편이었다.
무슨 연유에서인지 선조들도 그걸 모아 뒀기에, 지금까지 모아 두고 일부는 선조께 제사를 올릴 때 썼다.
‘혹시 약재로 쓰려고 하는 건가?’
카엘의 활약을 안 국왕은 그렇게 짐작했다.
‘어찌 됐든 우리한테는 별로 쓸모없는 거, 그거로 대신할 수 있으면 남는 장사지.’
잠깐 고민하던 국왕이 얼른 제안을 받아들였다.
“자네 말대로 하지.”
그 말에 카엘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미 세이비가 쓰던 황금 금속기의 파편을 모아 원래대로는 아니었지만, 쓸 수 있게 복구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