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s Medicine Sucking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90
190화 다섯 개의 탑 (1)
카엘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지만, 한편으로는 이상하긴 했다.
‘왜 탈프 황자가 지휘관인 거지?’
황제의 후계자 중 가장 큰 세력인 키슬링 황자야 본인이 토벌대를 이끌고 오는 게 당연했다.
다만 탈프 황자는 그럴 처지가 아니었다.
현재 탈프 황자는 키슬링 황자에 대항하기 위해 1황자 제라드와 12황자의 후견인인 헤이든 공작과 연합한 상황.
말이 연합이지 탈프 황자는 따로 세력이라고 할 게 없다 보니 꼽사리로 낀 수준이었다.
그걸 아는 카엘이다 보니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은인? 카엘 님?] [아, 죄송합니다.]잠깐 고민하던 카엘은 부아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정신 차렸다.
당장 카엘의 앞에는 제국의 대군이 밀려온다는 소리에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한 리저드맨 부족장들이 있었다.
게다가 다들 카엘이 뭔가 말하길 기다리는 눈초리였다.
앤트라이온도 해치울 만큼 대단한 영웅이니 이 난관을 타개할 방법이 있을까 하고 기대하는 듯했다.
‘너무 기대는 건 안 좋아하지만, 이번에는 황금 금속기도 만들어 준다고 하니까…….’
앞으로의 일을 생각해서라도 적극적으로 도와주리라 마음먹은 카엘은 부족장들을 안심시켰다.
[니제르 왕국이 못 도와주는 만큼, 제가 도와드릴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오옷! 감사합니다.] [말씀만으로 정말 든든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금세 부족장들의 눈빛이 희망차졌다.
[적이 여기까지 오는 데는 아직 시일이 걸릴 테니, 그전에 제가 적진에 가서 염탐을 좀 하고 오려고 합니다만.]망나니 황자가 상대인 건 희소식이었지만, 정확한 상황을 파악할 필요는 있었다.
‘그래야 어떻게 말아먹을 건지, 말아먹도록 할 건지 알지.’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소드 마스터나 마법사라면 아무리 은밀히 접근해도 힘들 텐데…….] [괜찮습니다. 다 방법이 있으니까요.]그렇게 말한 카엘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 * *
카엘은 현재 탈프 황자군 근처로 가기 위해 사막 지하에서 이동 중이었다.
복잡한 미로처럼 엮인 동굴 속을 거닐다 보면 간혹 사다리가 놓여 있는 게 보였다.
부아는 그중 하나 앞에서 멈춰 서서 말했다.
[여기로 올라가시면 됩니다.] [네.]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자 얼마 지나지 않아 황금색 판이 가로막았다.
[여기 막혀 있습니다만.] [거기에 손을 대고 금속기를 쓰듯 기운을 내보내시면 됩니다.] [아, 네.]카엘이 황금 판에 손을 대고 기운을 불어넣자 펑! 하는 소리와 함께 황금 판이 사라지고 위로 올라가는 통로가 생겼다.
[아, 이렇게 올라가는 거군요.] [그래도 내려오는 길을 찾는 건 어려우실 테니, 바닥에 대고 소리치면 제가 기다리고 있다가 모시러 나오겠습니다.] [오래 걸릴 수도 있습니다만.] [괜찮습니다. 교대로 기다리면 되니까요.] [알겠습니다.]카엘은 고개를 끄덕인 뒤 사다리를 타고 사막 위로 올라갔다.
완전히 올라가니 순식간에 구멍이 막히고 모래가 그 위를 메웠다.
‘어디 보자, 저쪽에 있네.’
카엘은 아주 멀리에 있는 탈프 황자군의 깃발을 발견했다.
실제로는 몇 시간은 더 가야지 도착할 정도로 거리가 멀어 저쪽에서 이쪽을 발견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그래도 지금부터 쓰는 게 낫겠지.’
카엘은 품에서 특이한 모양의 모자를 꺼냈다.
타모라국의 도채비 두억시니에게 받은 도채비 감투였다.
그걸 쓰자 카엘은 투명해져서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대신 사막의 모래 위로 탈프 황자군 진영으로 가는 발자국이 새겨지기 시작했다.
* * *
털컥.
가마에 느긋하게 앉아 있던 탈프 황자는 행렬이 멈추자 짜증을 냈다.
“뭐야? 왜 멈췄나? 더우니까 어서 가자니까!”
그 짜증에 옆에서 부채질하던 하녀가 더욱 빠르게 부채질했다.
“무슨 일인지 알아보고 오겠습니다.”
탈프 황자 곁에서 말을 타고 가던 기사 블리오가 행렬의 앞으로 갔다가 인상을 구긴 채 돌아왔다.
“병사가 탈진해서 쓰러졌답니다.”
“뭐야, 또? 저런 나약한 녀석들을 봤나!”
탈프 황자는 혀를 차더니 이마에서 땀이 흐르는 걸 느끼고는 하녀에게 소리쳤다.
“아 씨, 더워! 얼음!”
하녀는 아무 말 없이 탈프 황자의 입에 얼음 한 조각을 쏙 집어넣었다.
와그작와그작.
탈프 황자는 얼음 조각을 씹어 먹으며 배를 긁었다.
카엘의 약 덕분에 체격도 커지고 근육질의 멋진 몸매였던 탈프는 전처럼 방만한 생활 끝에 조금씩 살이 오르고 있었다.
카엘이 말했던 그대로였다.
얼음 조각 하나를 다 씹어 삼킨 탈프 황자가 명령을 내렸다.
“쓰러진 녀석은 옆으로 치워 버리고 간다! 방해야.”
“…….”
“왜, 불만 있어? 명령 불복종으로 처형당하고 싶어?”
“…아닙니다.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마지못해 대답한 블리오는 탈프 황자의 가마에서 벌어졌다.
그러고는 다른 기사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한탄했다.
“후! 정말 큰일이다! 큰일이야!”
그러자 다른 젊은 기사들이 걱정하며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저 망나니가 뭐라고 했습니까?”
“쉿! 말조심해.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블리오가 놀라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저희끼리인데 뭐 어떻습니까.”
“하긴.”
그제야 안심한 블리오가 인상을 쓰며 내뱉듯이 말했다.
“그 망나니 자식이 쓰러진 병사는 방해라며 치워 버리라는군.”
“허. 정말입니까? 안 그래도 다들 쓰러지기 일보 직전인데.”
“미쳤네요. 지금 사기가 바닥이라 제대로 싸울 수 있는지도 의문인데 말이죠.”
그 말에 다른 기사들도 분통을 터트렸다.
“제라드 저하가 있었으면 이런 일까지는 없었을 텐데.”
“맞습니다. 하다못해 헤이든 공작님이라도 있으셨으면 사막에서 이런 강행군을 못 하도록 막아 주셨을 겁니다.”
이렇게 말하는 기사들은 각각 제라드 황자와 12황자의 후견인인 헤이든 공작의 기사였다.
“참으로 공교롭게 됐단 말이죠. 하필이면 제라드 저하께서 앓아눕다니.”
“헤이든 공작님도 영지에 일이 생겨서 잠깐 돌아간 사이에 황제 폐하의 어명이 떨어지다니. 운이 나쁘네요.”
기사들의 말에 블리오가 검지를 까딱거리며 한마디 했다.
“쯔쯧. 운이 나쁘다니. 다들 뭘 모르는군.”
“네?”
“그럼 뭔가 있습니까?”
“두 분을 다 기다렸다가 출발해도 문제없는데, 저 망나니가 자기 혼자 공을 독식하려고 이렇게 난리 치는 거야.”
“아.”
“그래도 일찍 가야 하지 않습니까?”
“알 쿠브라 사막에 있는 리저드맨의 다섯 개 탑 중 가장 많은 탑을 정복한 쪽이 승자라고 황제 폐하께서 말씀하셨다면서요.”
기사들의 반박에 블리오가 지지 않고 대꾸했다.
“일찍 가도 다들 지쳐서 탑을 공격할 힘이 없으면 의미가 없지. 무엇보다 키슬링 황자군은 무리하지 않고 천천히 이동 중이라고 들었다. 아마 탈프 황자가 무리해서 먼저 움직여서 탑을 공략 못 할 거라고 판단 내려서가 아닐까?”
“오,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과연.”
기사들이 공감하는데,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건 그냥 듣고 있을 수가 없겠는데.”
“헉!”
“죄, 죄송합니다! 탈프 저하께만은 이르지 말아 주십시오.”
“포를난도 님, 제발요. 저희 목이 달아날 겁니다.”
기사들이 깜짝 놀라며 금방 나타난 기사에게 애원했다.
그는 이번 토벌대에 황제가 붙여 준 제국의 소드 마스터 포를난도였다.
다행히 탈프 황자처럼 난폭하거나 꽉 막힌 기사는 아니었다.
오히려 털털해서 아랫사람들의 말도 잘 들어 주는 호인으로, 겁먹은 기사들에게 빙긋 웃으며 말했다.
“내가 왜 말해? 어쨌거나 이 내가 있는데 공략 못 할 일은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
그때 블리오가 하소연했다.
“그보다 좀 말려 주십시오. 이대로 가면 다른 병사들이 지쳐 나가떨어지겠습니다.”
“그러면 곤란하지. 좋아, 내가 잘 말하고 오겠다!”
“가, 감사합니다!”
“맡겨 두라고.”
기사들의 인사에 자신 있게 대답한 포를난도가 탈프 황자의 가마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다가 순간 발걸음을 멈추며 고개를 갸웃했다.
“음?”
“왜 그러십니까?”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데…….”
포를난도는 중얼거리면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내가 잘못 들었나?”
그렇게 말한 포를난도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고 나서 얼마 뒤.
카엘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 들킬 뻔했군.’
도채비 감투의 능력을 믿고, 가까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소드 마스터인 만큼 감각이 예민한 모양이었다.
한편 카엘은 탈프 황자가 왜 저리 자신 넘치는지 알 수 있었다.
원래 별다른 세력이 없는 만큼, 황제에게 소드 마스터와 마법사를 지원받아 독자적인 강력한 세력을 이뤄 자신이 안 생길 수가 없었다.
문제는.
‘전혀 성장하지 않았군.’
기껏 생긴 병사들과 자신의 명령을 들을 소드 마스터와 마법사를 소중히 하지 않고 있었다.
포를난도라는 소드 마스터가 말려도 감히 자신에게 명령을 내렸다면서 화를 낼 게 분명했다.
‘그렇게 되면 금방 자멸할 텐데 말이야.’
무엇보다 막상 탑에 도착했을 때도 소드 마스터와 마법사만 막으면 쉽게 막아 낼 수 있어 보였다.
안 그래도 사막을 횡단하느라 지치고 피곤할 거 같은데, 리저드맨에게 공격당하면 지리멸렬하게 도망치기 바쁠 게 눈에 선했다.
다만, 탈프 황자의 1만 병사가 상대해야 할 전부가 아니라는 게 문제였다.
키슬링이 이끄는 1만 대군도 있었다.
‘치사한 녀석이긴 해도 머리는 좋은 편이니 주의해야 해.’
어떻게 하면 좋을지 카엘이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저 멀리서 키슬링 황자군의 깃발이 다가왔다.
블리오가 달려오는 기사를 막았다.
“뭔가?”
“키슬링 저하께서 탈프 황자님께 서신을 보내오셨습니다.”
“뭐?”
기사의 말에 블리오는 인상을 썼다.
안 그래도 사이가 나쁘고 경쟁 상대인 키슬링 황자의 편지를 받으면 며칠 동안 무슨 트집을 잡아 패악질을 부리려고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탈프 황자에게 가는 서신을 막을 수도 없었다.
‘키슬링 황자의 서신? 잘됐네.’
옆에서 그걸 듣던 카엘은 키슬링 황자군의 기사를 따라 탈프 황자에게 다시 갔다.
그때 포를난도가 금방 돌아 나오고 있었다.
“어휴. 휴. 정말. 말이 안 통하네. 어떻게 저렇게 안하무인일 수가.”
얼굴이 벌게서 씩씩거리는 게 아무래도 탈프 황자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들었음이 틀림없었다.
잠시 후.
키슬링 황자의 서신을 읽은 탈프 황자는 서신을 내던지며 소리쳤다.
“뭐라고?! 어떻게 이런 제안을 할 수가 있나.”
그러자 키슬링 황자의 기사가 움찔했다.
카엘이 떨어진 서신을 슬쩍 보니까 딱히 모욕을 느낄 만한 제안도 아니었다.
‘함께 병력을 움직여서 두 개의 탑을 동시에 공격하자라… 합리적인데?’
어차피 두 토벌대가 경쟁해야 하는 거면, 두 개의 탑을 동시에 공격하는 게 나았다.
동시에 공격당하면 리저드맨들도 방어 병력을 분산시킬 수밖에 없으니까.
다만 먼저 공격하기 위해 쉼 없이 달려온 탈프 황자로서는 손해가 날 수밖에 없는 제안이기도 했다.
그리고 망나니답게 그 손해를 자신에 대한 모독으로 받아들이는 거였다.
‘그걸 아니 일부러 그런 거겠지만.’
카엘은 저 제안도 탈프 황자의 성미를 잘 아는 키슬링 황자가 의도적으로 한 거라고 확신했다.
“됐어. 우리가 먼저 가서 탑을 무너트리고 깃발을 꽂는다! 다들 어서 움직이라고 해!”
그 의도대로 지금 탈프 황자는 먼저 공격하러 가자고 부하들을 재촉하는 중이었다.
그 광경을 보며 카엘은 한 가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 전에 키슬링 황자군은 어떤 상황인지 확인해 봐야겠지.’
카엘은 여전히 도채비 감투를 쓴 채, 돌아가는 키슬링 황자의 기사를 쫓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