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s Medicine Sucking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231
231화 제국의 몰락 (11)
“헛소리? 감히 내게 헛소리를 했다고 했느냐!”
무시당했다고 생각했는지 황제가 소리를 쳤다.
수십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인간이 강대한 마력을 담아 외치자 하늘이 뒤흔들리는 듯했다.
“함께 마왕과 싸우자는 내 말을 헛소리라 여기는 건 이 뿔 때문이겠지?”
잔뜩 흥분한 황제는 자신의 이마에 붙은 뿔을 잡았다.
솔국 대왕의 뿔과 비교하면 단순하고 작은 뿔이었다.
카엘은 몰랐지만, 황제의 뿔은 원래부터 작았다. 체형이 커지면서 뿔도 맞춰서 커진 거였다.
“확실히 이게 있으면 부활한 마왕에게 조종당할지도 모르지. 안 그래, 위자르샤?”
그러자 뒤편에 숨어 있던 위자르샤가 튀어나왔다.
-…부정은 못 하겠군요. 하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마왕님의 마석이 당신의 이마 깊숙한 곳에 박혔으니까요.
“늦었다고? 하지만 마왕이 부활하기 전에 이렇게 해 버리면 어떨까?”
그러면서 자신의 손에 힘을 주더니, 그대로 뿔을 박살 내 버리는 게 아닌가?
-……?!
“아니, 저걸 힘으로 부수다니.”
위자르샤뿐만 아니라, 카엘도 깜짝 놀랐다.
“마왕의 힘은 이 마법진을 완성하기 위해 잠깐 빌린 것뿐이다. 오랜 시간 마법사와 함께 연구하고 갖은 방법을 다 동원했지만, 완성하려면 이 수밖에 없더군.”
여유롭게 설명하는 황제의 이마는 엄청난 재생력으로 깔끔이 회복되어 뿔을 뽑아낸 흉터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진정한 마왕이 되겠다더니 그런 의미였나.’
황제는 강력한 신체를 만드는 마법진으로 강한 인간이 되어 마왕의 마석을 견딜 계획이라고만 했다.
그 이후 마왕의 통제를 받지 않기 위해 뿔을 부수고, 곧 부활할 마왕을 해치우려고 할 거라고는 위자르샤도 몰랐다.
-음…….
위자르샤는 잠자코 조금이나마 조심스럽게 황제가 깨 버린 마왕의 마석을 챙겼다.
그러든 말든 황제는 카엘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이제 나와 손잡을 마음이 생겼나? 마지막으로 제안하겠다. 나와 함께 마왕과 싸우자! 그리고 이 세상을 구하는 거다!”
카엘은 단호히 대꾸했다.
“헛소리하지 말라니까.”
“이 자식이 계속…….”
“뿔 이전에 제국의 몰락을 막겠다고 수백만 명을 희생시키는 녀석을 뭘 믿고 손을 잡을 수 있겠어? 이미 제국은 몰락한 거나 마찬가지가 됐는데.”
그런 카엘의 말에 황제가 냉소를 지었다.
“뭔가 착각하는군.”
“……?”
“내가 곧 제국이고, 제국이 곧 나인데. 제국에 사는 백성들을 희생시킨 게 잘못인가? 전부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들인데?”
“…….”
카엘은 기가 차서 할 말을 잃었다.
그러든 말든 황제는 자신의 말에 도취한 듯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살아 있는 한, 제국은 몰락하지 않는다. 이번 계획을 성공시킴으로써 제국은 영원할 것이다!”
“…그럼 순전히 강해지려고 사람들을 해친 거냐? 더더욱 용서가 안 되는데.”
분노한 카엘이 기세를 끌어올리자 황제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카엘, 바보 같은 선택 하지 마라. 나를 쓰러트려도 어차피 마왕이 부활한다. 함께 마왕과 싸우는 게 합리적 아닌가? 나를 심판하려면 그 이후에 하면 되지 않겠나?”
그때, 라 키레아스가 끼어들었다.
“잠깐, 카엘. 열받는 건 알겠지만, 저 녀석이 틀린 말 하는 건 아니야. 지금 우리 전력만으로는 마왕을 못 이긴다.”
“역시 드래곤 정도의 지능이라면 이해해 줄 줄 알았지.”
“그래도…….”
“잠깐, 내 말 좀 끝까지 들어 봐.”
카엘이 항변하려는 걸 라 키레아스가 막고 말을 이어 갔다.
“그렇다고 해서 마왕보다 더한 녀석을 내버려 둘 수는 없지. 야! 이 자식아! 마왕보다 네가 더 사람들을 많이 해쳤겠다!”
라 키레아스가 시원하게 소리치자, 카엘도 가슴이 뻥 뚫리는 것만 같았다.
“바보 같은 녀석들. 거절한다면 너희를 쓰러트리고 마왕도 쓰러트릴 뿐이다.”
협상이 실패했다고 여겼는지 황제가 기운을 끌어올렸다.
‘일단 힘을 시험해 보고 후퇴해서 공략법을 찾아야겠어.’
아조트가 대왕보다 약하다고 했으니 승산이 있을 게 분명했다.
그렇게 카엘이 속으로 계획을 짜고 있을 때였다.
“컥!”
황제가 갑자기 피를 토하는 게 아닌가?
“으… 으으. 으.”
이어서 환자처럼 몸을 움찔거리며 괴로워했다.
“왜 저러지?”
“카엘, 저 녀석 이마 좀 봐.”
라 키레아스의 말에 쳐다보니 완전히 회복해 뿔의 흔적을 찾을 수 없게 된 이마에 어느덧 상처가 다시 생겨났다.
그 틈으로 피가 엄청나게 쏟아져 나왔다.
피가 빠져나온 만큼, 황제의 신체가 움츠러들며 조금씩 작아지고 있었다.
“어, 어떻게 된 거지?”
라 키레아스마저 당황하고 있을 때였다.
한낮인데도 하늘이 검보랏빛으로 어둑해지더니 사방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감히 내 마석을 부수며, 나를 모욕하다니, 내 친히 벌을 내리겠노라!
그 목소리에 라 키레아스가 몸을 떨었다.
“이, 이건 마왕의 목소리…….”
‘마왕 부활의 조건이 갖춰졌다더니 벌써 부활한 건가?!’
카엘은 마왕을 찾기 위해 주변을 둘러봤다.
하지만 마왕은 보이지 않았고, 서서히 쪼그라들던 황제는 어느새 참혹한 모습으로 죽어 있었다.
“라 키레아스님, 마왕은 어딨습니까?”
“여기에는 없어. 순전히 마왕의 마석으로 저렇게 만든 거다.”
황제는 제 딴에는 머리를 써서 마왕의 마석을 이용한다고 했지만 애꿎은 희생만 치르고 아무것도 못 하고 죽은 거였다.
그때였다.
구그그그그그그그.
지면이 엄청나게 흔들렸다.
어찌나 강력한 지진인지 수도 페르세스의 외성과 그를 둘러싼 장벽도 무너졌다.
그나마 멀쩡하던 본성도 거기에 휘말려서 곳곳이 파손됐다.
제국의 몰락이 여실히 느껴지는 모습이 된 거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라 키레아스가 중얼거렸다.
“곧바로 시작하나 보군.”
“무슨 일이죠.”
“이 지진은 곳곳에 마계와 통하는 통로를 열면서 생긴 거다. 아마 이제 그 통로에서 수많은 몬스터가 쏟아져 나오겠지. 아무리 마왕이라도 혼자서 천하를 지배할 수는 없으니까.”
라 키레아스의 말에 카엘은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것만은 어떻게든 막으려고 했는데, 황제의 말도 안 되는 농간에 어이없게 실패한 거였다.
“통로를 닫으려면 한 가지 방법밖에 없죠?”
“그래, 마왕을 해치워야 한다.”
‘만반의 준비를 해서 부딪치는 수밖에.’
결심을 굳힌 카엘이 물었다.
“그럼 부활한 마왕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습니까?”
“잠깐만.”
그렇게 말한 라 키레아스는 잠깐 집중하더니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 표정을 본 카엘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설마.’
* * *
“신님, 카엘이 무사하게 보살펴 주세요.”
카엘의 어머니, 마리안이 비어 있는 카엘의 방에 성물을 놓고 기도했다.
카엘이 강하고 지혜로워 영웅적인 일을 많이 이뤄 낸 건 알고 있다.
거기다가 죽지 않는 이상, 기적처럼 낫게 하는 약도 만들어 다녔기에 어지간해서는 무사하리라는 걸 잘 알았다.
그래도 어머니로서는 어린 나이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싸우는 자식의 안위가 걱정 안 될 수가 없었다.
특히 이번에는 무려 제국을 침공하겠다고 나선 게 아닌가.
아무리 자기 한 몸, 돌볼 힘은 있는 아이라고 해도 만에 하나 무슨 나쁜 일이 벌어지진 않을까 늘 걱정이 됐다.
기도를 마친 마리안은 자식의 방 안을 보고는 감회에 사로잡혔다.
아무것도 없던 삭막한 방 안은 여러 나라에서 가져온 기념품과 카엘이 좋아하거나 직접 관리하느라 걸어 놓은 약초 따위로 가득했다.
‘하긴 지금까지 보여 준 모습만 해도 욕심을 많이 부렸지.’
예전의 카엘은 매일 아프다고 무기력하게 누워만 있었다.
찬바람을 맞으면 금세 몸 상태가 나빠지기에 산책마저도 쉽지 않았다.
그때는 우리 아이가 하루만이라도 아프지만 않도록 해 달라고 기도했다.
그런데 어느새 자신이 약을 지어 먹고 건강해져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적 같은 일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힘도 아주 많이 세졌고, 성수를 만들어 성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밖에도 온갖 약을 만들어서 활용했고, 아파서 죽을 뻔한 자신마저 구했다.
‘게다가 어쩜 그렇게 약에 대해서 박식한지.’
마리안은 놀라면서도 그게 카엘이 어렸을 때부터 앓았던 영향이라고 생각하면 가슴이 아팠다.
그 후로도 카엘은 클리페우스성을 떠나 온갖 기상천외한 모험을 하고 돌아왔다.
그뿐만 아니라, 클리페우스성을 위협하던 오크들의 대침공도 막아 냈다.
심지어 평생 하나 보기 힘든 엘프나 드워프들은 물론, 라이칸스로프들도 성실한 성의 주민으로 만들었다.
심지어 날개 달린 하피들과도 우호적으로 지내는 게 아닌가.
너무 해낸 게 많아서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였다.
‘아파서 누워 있었던 만큼 열정적으로 활동한 거겠지만, 대단하긴 대단해.’
보통이라면 수십 번의 인생을 살아도 겪기 힘든 일들투성이였다.
마치 신의 사랑을 받는 것처럼.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마리안은 왠지 모르게 가슴이 벅차오르는 듯했다.
그 마음을 담아 다시 눈을 감고 기도했다.
“신이시여, 못난 어미가 욕심부린다고 제게 벌을 내려 주셔도 괜찮습니다. 그러니 카엘만은 꼭 지켜 주세요.”
그때였다.
“당신 또 여기에 있었군.”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에 기도를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이곳 클리페우스성의 주인이자 사랑스러운 자신의 남편 티겔 브리운이었다.
“당신이야말로 여기에는 무슨 일이에요. 일이 많이 바쁘실 텐데.”
“요즘 내가 바쁠 일이 뭐 있나. 회색산맥의 몬스터도 거의 사라졌는데.”
이것도 카엘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원래라면 제국을 치러 가는 데 동행할까도 했지만, 괜히 아비가 따라가면 눈치를 볼까 봐 남아 있었다.
“카엘도 클리페우스성도 이제 평화로워졌으니, 어머니와 함께 오붓한 시간 보내라고 했잖소.”
“그 아이도 참.”
티겔의 너스레에 마리안이 배시시 웃었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카엘도 밖으로 그만 내돌려야지. 이번에 돌아오면 한동안 클리페우스성 밖으로 못 나가게 해야겠어.”
“그러세요. 꼭꼭 가둬 놔야겠어요.”
평소라면 괜히 자식이 하는 일 방해할까 봐 만류했을 마리안이었지만.
자식에 대한 그리움 때문인지 맞장구쳤다.
그걸 보며 티겔이 미소를 지었다.
“허허. 당신이 농담을 다 하다니.”
그때였다.
“……?!”
뭔가를 느낀 티겔이 창문을 열고 회색산맥 쪽을 바라봤다.
“…….”
“무슨 일 있어요?”
“아니, 기분 탓… 조심해!”
놀라서 묻는 마리안을 안심시키려던 티겔은 마리안에게 달려가 자신의 몸으로 마리안을 감쌌다.
“대체 왜…….”
마리안이 의아해하는 순간.
구그그그그그그.
거대한 지진이 밀어닥치기 시작했다.
안의 물건들이 크게 흔들리며 마구잡이로 떨어졌다.
잠시 후.
지진이 그친 걸 확인한 티겔은 마리안을 조심스레 일으켰다.
“괜찮소?”
“네, 그래도 조금 놀랐네요.”
“일단 진정하게 여기에 앉아.”
티겔은 얼른 방구석에 있는 의자를 가져와 마리안을 앉혔다.
“어떻게 됐는지 알아볼 테니까, 여기 얌전히 있어.”
“네. 조심하세요.”
티겔은 고개를 끄덕이고 밖으로 나갔다.
성안은 지진 때문에 난리였지만, 다행히 건물이 무너지진 않은 듯했다.
여느 성이라면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았지만, 클리페우스성은 끄떡없었다.
원래부터 아주 튼튼한 곳이기도 했지만, 드워프들이 이곳저곳 보강, 보수를 해 둔 덕분이었다.
그래도 문제는 있었다.
“아버님!”
티겔은 장벽 위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자신을 대신해 장벽을 지키고 있던 장남 브란이었다.
티겔은 날 듯이 뛰어 올라가서 장벽 너머를 봤다가 움찔하며 중얼거렸다.
“사악한 마기가 느껴진다 했더니 이 정도일 줄이야…….”
장벽 너머로 어마어마한 숫자의 몬스터가 나타난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