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s Medicine Sucking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40
40화 제국으로 (1)
‘혼내는 게 아니라, 작위를 내려 준다고?’
무슨 속셈인지 몰라 입을 다물고 있으니 국왕이 다시 입을 열었다.
“능력이 없다 거절하진 말게. 그대에 대한 소문은 많이 들었다. 수없이 많은 몬스터를 쓰러트렸을 뿐만 아니라, 신성력으로 주민들을 도왔다지. 무엇보다 트롤에게 살해당할 뻔한 왕자를 구해 주기도 하고.”
“송구스럽습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해야 했을 뿐입니다.”
카엘이 고개를 숙이며 겸손하게 대꾸하자 국왕이 마음에 드는지 미소를 지었다.
“지금까진 호사가들의 소문과 왕자의 허풍일 뿐이라고 생각했네만, 어제 제국 기사들은 물론, 파프닐 경까지 쓰러트렸다니 그 실력을 의심할 여지는 없겠지.”
‘내 실력을 높이 사서 영입하려는 건가?’
그런 이유라면 이해는 갔다.
카엘이 공작의 아들이라고 해도 어디까지나 사남 중에 막내.
대부분은 유산을 물려받지 못하고 기사나 관료가 되거나 성직자나 상인이 되는 등 살길을 알아서 마련하는 게 보통이었다.
그런 처지를 빤히 아는 국왕이니 인재를 얻기 위해 손을 내미는 건 이상할 게 없었다.
다만.
‘그것만은 아닌 거 같단 말이지.’
“한 가지 이해가 안 가는 건, 자네 같은 인물이 왜 왕자와 어울리나?”
예상대로 국왕이 대놓고 자신의 자식을 폄하하며 물어 왔다.
카엘은 슬쩍 고개를 들어 왕의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 애썼다.
얼굴에 경멸의 빛이 보이는 게, 아무래도 왕자가 거짓으로 망나니짓을 하고 있다고 아는 거 같지 않았다.
‘그게 아니라도 겉으로는 적당히 거리를 두는 게 낫겠지.’
“왜 대답이 없나?”
“말씀드리기 송구하여서…….”
“하긴.”
국왕은 손짓해서 주변을 물려 몇몇 호위 기사만 남긴 뒤, 다시 카엘에게 말했다.
“편하게 말하라.”
“감사합니다. 먼저 어울린다는 말은 다소 어폐가 있습니다.”
“흠?”
“전 아버지처럼 클리페우스성을 지키기 위해 일생을 바칠 작정입니다. 그 뜻을 이야기했더니 아버지께서 먼저 견문을 넓히고 오라고 하시더군요.”
“하긴 브리운 공작도 젊었을 적에는 대륙을 여행하며 그 이름을 떨쳤지. 그 여정 중에 소드 마스터로서의 성취도 이뤘고.”
국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브리운 공작이 왕년에 펼쳤던 모험담은 귀에 못 박히도록 들었던 바였다.
“그럼, 왕자와는 어디까지나 우연히 엮인 것뿐이다?”
“네. 저에 대한 소문을 듣고 재미있겠다고 찾아오신 듯합니다. 그러다 운 좋게 저하를 구명하여 친근하게 대해 주시고 계십니다.”
“그렇군. 이제 이해가 가는구나. 음.”
국왕은 납득이 간 듯 하면서도 어느새 자신의 제안이 완곡히 거절당한 걸 깨달았다.
“…견문을 넓힌다 했지. 옳거니! 그렇다면 제국에 한번 가 보는 건 어떤가? 조만간에 사절단이 출발할 테니.”
“크나큰 성은, 감사히 받들겠습니다.”
‘안 그래도 갈 생각이었는데, 국왕이 먼저 제안하다니.’
물론, 왕국의 사절단에 낄 생각은 없었다.
카엘이 곧장 승낙하니 국왕이 흐뭇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제국은 크고 강대한 곳이니 가서 배울 것이 많을 것이야.”
틀린 말은 아니지만, 태도를 보니 레오폴드가 왜 국왕에게까지 위장하는지 알 법했다.
“근데 레오폴드 저하도 갈 거라는 말을 들었습니다만.”
“그 골칫덩이가? 왕국의 대소사에는 관심도 없더니만.”
“북쪽 끝을 구경했으니, 이제 남쪽을 구경할 차례라고 하시더군요.”
카엘의 말을 들은 국왕이 머리가 아픈지 이마를 짚었다.
“끙. 그래도 그대가 따라가서 큰 문제만은 일으키지 않도록 좀 말려 주게나.”
‘큰 문제는 내가 일으킬 건데.’
카엘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시치미를 떼며 말했다.
“근데 구경 간다고 먼저 몰래 출발하실 거라고도 했습니다.”
“그렇지? 말린다고 들을 녀석도 아니고, 그대가 좀 번거롭더라도 따라가 줄 수 있겠나?”
“명을 받들겠습니다.”
카엘은 고개를 숙이고 대답하면서도 이상함을 느꼈다.
‘근데 국왕은 왜 저리 레오폴드한테 쩔쩔매지?’
1왕자의 망나니짓이 위장이 아니라, 정말이라도 어찌해 볼 엄두를 못 낼 듯했다.
‘사람은 좋아 보이는데, 너무 유약한가?’
어쩌면 이러한 성정이 제국에 부합하기에 순조롭게 왕위에 오른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 * *
가게로 돌아오니 레오폴드가 기다리고 있었다.
“왕성에 들어갔다며 어떻게 됐어?”
“견문을 넓히기 위해 여행 중이라 하니 제국에 보낼 사절단에 참가하라 하시더군요.”
카엘의 말에 레오폴드가 황당하단 얼굴이 됐다.
“아니, 어떻게 아버지를 그리 쉽게 구워삶았지?”
“구워삶은 게 아니라 먼저 제안해 주시더군요.”
“…그래?”
‘음, 뭐지, 이 반응은?’
금방 국왕이 레오폴드를 어찌할 바 몰라 했던 것과 비슷하게, 레오폴드도 국왕을 어려워하는 것만 같았다.
“근데 사절단보다 먼저 움직인다고 한 거 아니었어?”
“네. 국왕 폐하께도 그리 말씀드렸습니다. 저하께서 왕국의 사절단이 출발하기 전에 먼저 출발할 거라고요. 그러니 아무 때나 출발하면 됩니다.”
“정말 그래도 되나? 이 친구 얌전해 보이더니만, 나보다 더 약삭빠르군.”
의미심장하게 웃던 레오폴드가 머리를 긁었다.
“그나저나 먼저 출발하려면 가볍게 움직인다고 해도 따로 준비가 필요하겠는걸.”
“호위는 제가 구해 오겠습니다. 마침 첫날에 괜찮은 인재들을 봐 뒀거든요.”
카엘은 그렇게 말하며 밖으로 나갔다.
* * *
카엘은 킹스콧에 도착한 날, 레오폴드가 술내기를 하던 술집으로 향했다.
거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전세를 냈는지 그때 봤던 발렌을 비롯한 어인족밖에 없었다.
“다행히 아직 여기 있군.”
“뭐야? 어, 너는!”
불청객의 등장에 발렌이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가 카엘을 보고는 걸걸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사이 저번에 대답했던 어인족이 다가와서 날 선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배짱으로 여기 온 거지?”
“어인족한테 도움을 좀 받을까 해서.”
그 말에 가게 안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변했다.
하지만 카엘은 예상한 바였다.
‘이런 분위기가 한두 번도 아니고.’
“우리가 어인족이라는 걸 어떻게 안 거지?”
“르캥!”
“왜? 이미 다 아는 거 같은데.”
카엘은 순순히 설명했다.
“그때 봤던 내 친구 중에 라이칸스로프가 있거든, 냄새로 파악했지.”
“라이칸스로프 친구라고? 특이한 인간이군. 그래서 무슨 용무인가?”
“제국으로 갈 건데 거기서 안내해 줄 사람이 필요해. 제국에서 돌아올 때도 도와주고.”
“우리는 인간의 일에는 간섭하지 않는다.”
“너희 왕을 구하기 위해 인간의 신전을 털려는 건 괜찮고? 그럴 필요 없이 내가…….”
카엘이 말하는 와중에 발렌이 소리치며 달려왔다.
“잡아!”
“어이, 사람 말은 좀 끝까지 들으라고.”
“해치워라!”
르캥도 소리치며 덤벼들었다.
날카로운 상어 이빨을 드러내면서 으르릉거리는 모습이 무시무시했다.
주위 어인족들도 흉포한 기세로 덤볐다.
그리고.
카엘에게 차례로 얻어맞고 쓰러졌다.
“악!”
“크억!”
“으으으.”
“인간이 어떻게 이런 괴물 같은 힘을…….”
순식간에 가게 안이 신음으로 가득 찼다.
모두 쓰러진 가운데 유일하게 멀쩡히 선 카엘이 말했다.
“이제 들을 자세가 됐나?”
“…우릴 어쩔 생각이냐.”
“아까 말했잖아. 제국을 오갈 때 도와달라고. 대신 너희 왕을 치료할 약을 주지.”
“치료제를?!”
“그래, 치료제. 신전을 털어서 성직자를 데려가 봤자 인간이 아니라 치유의 기도도 안 통해. 못 미더우면 너희가 가서 치유의 기도를 받아 보든가.”
어인족은 바다에 둥지를 튼 해룡 제피슈가 자신의 손발이 될 종족이 필요해 만들었다.
그중 왕족은 그런 해룡의 피를 이어받아 반인반용이었지만, 드래곤 하트를 감당하기에는 그 신체가 나약해 항상 심장병으로 단명한다고 했다.
‘그래도 삼백 년은 족히 살지만…….’
어쨌든 이들은 왕인 메르 8세가 심장병을 앓는 걸 보고 어떻게든 낫게 하려고 이곳까지 온 거였다.
레오폴드와 술 내기를 한 것도 만만해 보이는 망나니 왕자에게 이겨 치유의 기도가 가능한 주교급 성직자를 빌릴 계획이었다.
그러나 회귀 전에도 결과적으로 잘 안돼서 신전에 침입했다.
덕분에 왕성의 경계가 심해져 왕국의 보물 창고에 잠입하지 못했다며 스승이 투덜대는 걸 들은 거였다.
이들은 성직자를 납치하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치유의 기도가 전혀 안 먹혀서 신부를 돌려 보냈다고 했다.
‘하지만 내 포션은 통하지.’
그사이 몸을 추스르고 일어난 르캥이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네 말이 사실이라면 무슨 부탁이라도 들어주겠다.”
“르캥! 저 녀석을 뭘 믿고.”
발렌의 우려에 르캥이 손을 내밀었다.
“치료제부터 넘겨라. 손해 볼 건 없잖아.”
르캥의 말을 들은 블렌이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저 녀석도 뭘 믿고, 우리한테 치료제부터 넘겨?”
“블렌!”
“흠.”
순간 자신이 말실수를 했다는걸 깨달은 블렌이 입을 막았다.
그 모습을 보며 카엘이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어인족이 의리를 저버렸다는 말은 못 들어 봤으니까.”
“음. 그건 그렇지.”
“바다는 변덕스러울지언정 정직하니까.”
‘어인족도 그렇고, 드래곤과 인간 외에는 대부분 순진하다니까.’
카엘은 자신의 말에 한결 부드러워진 어인족들의 분위기를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럼 언제까지 기다리면 되나?”
“여기 가져왔다.”
카엘은 그러면서 모르타에게 만들어 준 포션을 한 병 르캥에게 던졌다.
“앗!”
“위험하잖아!”
조심스레 받은 르캥은 부드러운 천으로 싸서 품속에 넣었다.
“그럼, 우리는 다녀올 테니 사흘 뒤에 여기로 와라.”
“그러지.”
카엘은 대답하고 사흘 뒤에 이 가게에 다시 찾아왔다.
그런데.
“은인이시여, 어서 오십시오.”
르캥이 무릎까지 꿇은 채 매우 정중한 어투로 맞이하는 게 아닌가?
심지어 옆에서 발렌도 마찬가지로 무릎을 꿇고 있었다.
“내가 불편하니 다들 일어서지. 다행히 잘 통한 모양이네.”
“하핫! 국왕께서 그토록 건강하신 모습은 처음 봤습니다. 이게 다 은인 덕분입니다.”
발렌이 일어서며 호탕하게 웃었다.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르캥이 화려한 황금과 진주가 잔뜩 박힌 상자를 내밀었다.
“국왕께서 보답으로 보내신 선물입니다. 받아 주십시오.”
열어 보니 내부에는 오래된 문장이 새겨진 은으로 된 증표와 하얀색 나무 막대기가 들어 있었다.
“레몽을 찾아가 그 증표를 보이면 제국까지 안내해 줄 겁니다.”
“레몽?”
들어 본 적 없는 이름이었다.
“원래 제국의 기사로 바다에 빠진 걸 저희가 목숨을 구해 줬습니다. 그 후로는 이곳에서 신분을 숨기고 용병단을 이끌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군.”
그런 경우라면 카엘이 알기 힘들 게 분명했다.
‘뭐 제국으로 들어가는 건 아무 용병대나 상관없었으니까.’
“바다에서 그 하얀 막대를 들면 저희가 모시러 가겠습니다.”
“어.”
카엘은 하얀 막대기를 집어 들었다.
이게 중요했다.
이 하얀 막대에는 마법이 깃들어 있어서 사용하면 바다 깊은 곳 심해까지 비췄다.
일종의 연락 수단.
‘그보다 국왕은 별로 고마워하지 않나 보네.’
카엘은 국왕이 보내온 걸 보고 그리 판단했다.
목숨을 구해 준 거나 마찬가진데, 딱 자신이 말한 것만 준비한 거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직접 나서지 않고 일을 다른 사람에게 미룬다는 느낌이 들었다.
‘스승님 말대로 짠돌인가 보군. 역시 드래곤의 핏줄은 드래곤의 핏줄인가?’
드래곤은 변덕도 심한데.
스승의 경우는 더욱 심했다고 들었다.
현자의 돌을 받기로 하고 기껏 치료해 줬더니 가짜를 내밀었다고 했던가.
‘이럴 줄 알고 대비해 뒀지만.’
모르타에게 줬던 약은 귀를 잃은 엘프들을 위한 신체 결손 회복 포션.
메르 8세의 심장 상태가 잠깐 호전되지만, 완치되는 약은 아니었다.
‘몇 달 안에 재발하면 찾아오겠지.’
제국에서 도움이 되면 제대로 된 약을 주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협상을 다시 할 작정이었다.
“그럼 다음에 보지.”
카엘은 그렇게 말하며 상자 안의 레몽 가문의 증표를 집었다.
‘이 녀석부터 찾아가야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