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s Medicine Sucking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58
58화 황위 계승 내전 (3)
카엘이 짐작한 대로 이번에는 도리스가 나섰다.
“파프닐 경을 꺾었다지? 겉보기와 달리 제법 실력이 있나 보군.”
“칭찬해도 안 봐드립니다.”
카엘이 너스레를 떨었지만, 도리스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다.
“도발해서 상대의 심기를 흩트리는 게 장기 같다만, 나한테는 통하지 않는다.”
도리스가 여유 있게 대답하는데, 아조트가 나직이 말했다.
-방심하지 마. 저번에 상대했던 소드 엑스퍼트보다 강해.
‘파프닐보다 강하다라…….’
확실히 자세만 봐도 실력이 다른 게 느껴지긴 했다.
“시답잖은 소리는 이쯤 하고 이제 시작해 볼까?”
화악!
도리스의 말과 동시에 그가 든 검에 오러가 맺혔다.
파이슨처럼 화염검이라 하기에는 모자라지만, 검 끝에 살짝 불길이 일었다.
그걸 본 양쪽 진영에서 술렁거렸다.
“저것 봐! 도리스 경이 진심으로 상대할 작정인가 봐.”
“저 사람도 두 번이나 기사를 쓰러트렸으면 그만 돌아오지. 욕심이 화를 불렀군.”
“첫날에도 저 검에 죽은 기사가 있었지? 오늘 불탄 시체 하나 나오겠구나.”
정작 도리스는 자신의 검을 보고도 카엘이 동요하지 않자 내심 놀랐다.
‘이 정도는 충분히 상대할 자신이 있다는 건가?’
그러고 보니 카엘이 들고 있는 검이 범상치 않았다.
‘오러를 막을 정도의 명검인가 보군. 오러만 막으면 검술로 승부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하나 본데, 나도 검술로는 지지 않는다.’
그래도 도리스는 방심하지 않고, 선제공격으로 주도권을 쥘 작정이었다.
“나부터 가지.”
도리스가 타오르는 검을 앞세우며 달려들었다.
캉!
검이 맞부딪쳤다.
도리스의 오러가 카엘의 검을 찢어발기지 못하고 막혔다.
‘이럴 줄 알았지. 그럼 이건 어떨까?’
화륵.
도리스의 오러가 불타올랐다.
이대로 화염 오러가 상대의 검신에 옮겨붙으면 대부분 화들짝 놀라 검을 놓친다.
계속 쥐고 있더라도 손잡이가 뜨겁게 달궈지기에 이내 검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쪽이든 빈틈을 보이기만 하면 목을 날려 주마.’
그런데.
픽!
오러가 꺼져 버린 게 아닌가?
“어?”
놀라는 사이에 푹 하고 뭔가가 깊숙이 파고드는 소리가 들렸다.
카엘의 검이 도리스의 갑옷을 뚫고 가슴에 박힌 거였다.
‘이런 실수를…….’
빈틈을 만들기 위한 술수를 부리다가, 일이 틀어지자 당황해, 오히려 빈틈이 생긴 거였다.
더욱 놀라운 건, 오러로 강화한 자신의 신체마저 꿰뚫린 거였다.
‘대체, 얼마나 예리한 검이길래.’
“오, 화염도 안 통하네? 빙한목의 열매를 쓰려고 했는데.”
-기본적으로 마력과 비슷하거든, 일정 수준 이상은 못 막아 내겠지만.
아조트가 내뱉은 울리는 듯한 목소리에 도리스는 아차 싶었다.
“큭, 보통 검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마검이었나?”
-그래. 그럼 잘 가.
아조트가 매혹적인 목소리로 이별을 고하자 도리스는 전신의 힘이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적당히 해.”
카엘이 그렇게 말하면서 도리스의 가슴팍에 꽂혀 있던 아조트를 회수했다.
“커억!”
도리스가 피를 토하며 쓰러지더니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대로 목숨을 잃은 거였다.
“…….”
“…….”
그 광경을 보며 양쪽 진영 모두 침묵을 지켰다.
소드 엑스퍼트가 단칼에 쓰러질 줄은 누구도 짐작하지 못해서였다.
그 침묵 속에서 카엘은 키슬링 황자군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파이슨은 몇 명이나 해치워야 움직이려나.’
* * *
카엘이 탈프 황자군의 진영으로 돌아가니 다들 환호하며 반겼다.
“대단하오! 카엘 경!”
“아버님이 소드 마스터 브리운 공작이라 들었습니다. 공작께서 자랑스러워하시겠구려.”
“멋진 승부였소!”
연전연패를 당하던 중이라 다들 승리가 간절했던 차였다.
그런데 카엘이 기사를 셋이나, 그것도 소드 엑스퍼트를 꺾고 온 거였다.
기뻐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잘했다! 잘했어! 반드시 이길 줄 알았다니까!”
탈프 황자도 뛰쳐나와 반겼다.
그러더니 곧바로 주변을 둘러보며 목청을 높였다.
“자! 아까 카엘을 모욕한 자는 누구냐? 어서 나오지 못할까?!”
탈프도 처음에는 못 미더워했지만, 이내 카엘을 내보내 보자고 목소리를 높인 덕에 어깨에 힘이 들어간 거였다.
어쨌든 탈프의 호통에 카엘에게 으름장을 놓았던 가신이 마지못해 나왔다.
‘린치 백작이라고 했나?’
얼굴을 잔뜩 구긴 린치 백작은 카엘의 눈치를 보며 사과했다.
“허튼소리로 그대의 명예를 더럽혀서 미안하오. 용서해 주시오.”
카엘이 이기면 카엘의 개가 되겠다고 호언장담해 버렸다.
카엘이 정말 이 많은 사람 앞에서 짖어 보라고 하면 체면도 명예도 땅에 떨어질 판이었다.
그렇다고 방금 소드 엑스퍼트를 단칼에 해치우고 돌아온 승자를 모른 체할 수도 없었다.
“뭐 해? 너도 한마디 해.”
탈프 황자가 카엘에게 눈치를 줬다.
카엘이 한소리 하면 다시 린치 백작에게 호통을 칠 기세였다.
카엘은 그 기대에 부응하지 않고, 미소 지으며 용서했다.
“괜찮습니다. 안 그래도 가라앉은 진영 내 분위기를 더욱 악화시킬까 걱정한 충정에서 하신 말씀이 아닙니까?”
“그, 그렇소. 내 선의를 알아주시니 고맙소.”
‘선의는 개뿔! 비웃는 게 명백하게 기억나는데.’
다만, 부탁할 게 있어 좋게 좋게 넘어간 거였다.
무엇보다 괜히 무안을 줬다가는 망나니 황자가 어떤 깽판을 칠지 몰랐다.
‘그럼, 이 좋은 분위기를 몰아 공격하는 것도 실패하겠지.’
그랬다가는 다른 소드 엑스퍼트가 안 나올 가능성도 있고, 그럼 파이슨을 움직이기 힘들었다.
“칫. 재미없게.”
한바탕 난리 피우려던 탈프 황자는 김이 샌 듯 투덜댔다.
헤이든 공작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지시를 내렸다.
“그보다 이제 전면전을 벌일 시간이오! 모두 이 기세를 몰아 오늘이야말로 이기고 돌아옵시다!”
“아, 맞다.”
“어서 나갑시다!”
“오늘 내 실력을 톡톡히 보여 주리다!”
결투 후에 벌어지는 대규모 백병전.
이 백병전은 말에 타고 장비를 제대로 갖춘 기사들이 병사들을 압살하며 대활약을 할 절호의 기회였다.
카엘이 한창 들떠 있는 귀족과 기사들을 지켜보고 있자, 헤이든 공작이 물었다.
“그대는 어쩔 텐가?”
“저는 휘하에 병사도 없으니 여러분들의 활약을 지켜보려고 합니다.”
“그래, 수고가 많았네. 편히 쉬고 있도록 하게.”
그 말에 안도한 헤이든 공작이 부하들에게 편의를 봐주라고 지시했다.
헤이든 공작 입장에서도 백병전에 카엘이 나서면 병사들의 사기 진작에는 좋겠지만, 진영 내의 기사들도 공을 세울 기회가 필요했다.
“자, 돌격!”
헤이든 공작의 지시로 탈프 황자군이 전진하기 시작했으며, 그걸 신호로 키슬링 황자군도 움직였다.
두 부대는 그대로 격돌했다.
잠시 후.
예상대로 소드 엑스퍼트인 도리스를 잃은 키슬링군은 제대로 싸우지 못하고 도망치기 바빴다.
“적이 무너진다. 다들 공격!”
“이대로 몰아친다!”
“돌격이다, 돌격!”
며칠간의 부진이 만회하고도 남을 압도적인 승리!
그렇게 대승을 거두고 돌아온 탈프 황자 진영은 축제를 벌였다.
* * *
다들 한창 축제 분위기에 젖어 있을 때, 카엘은 조용히 린치 백작을 찾아갔다.
“오늘 전공을 많이 세우셨다 들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허허, 그대 덕분이지. 적들이 맹장을 잃어서인지 맥을 못 추지 뭔가?”
키슬링 황자군에도 다른 지휘관이 있을 텐데, 기세만으로 전력에 차이가 그렇게 나나 싶었는데, 정말인 모양이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찾아왔는가?”
“아, 다름이 아니라 오늘 제가 쓰러트린 도리스 경 말입니다. 소드 마스터 파이슨 경의 제자라고 들었습니다만.”
“그렇지. 근데 갑자기 그건 왜?”
“혹시 파이슨 경이 제게 앙심을 품는 게 아닐까 우려되어서요.”
“아! 그렇겠군.”
린치 백작도 카엘이 걱정하는 게 이해가 됐다.
아무리 피 튀기는 전장의 결투 중에 벌어진 일이라고 해도 소드 마스터의 제자를 죽인 거였다.
심지어 소드 엑스퍼트까지 공들여 키운 제자.
혹시 보복당하진 않을까 두려워할 만도 했다.
오늘 큰 활약을 한 전쟁 영웅의 약해진 모습에 애틋해진 린치 백작이 위로했다.
“너무 걱정하지 말게나. 전쟁 중에 벌어진 불상사를 어찌 탓하겠나. 파이슨 경도 이해할 걸세.”
“이해라…….”
“무엇보다 황제 폐하께서 소드 마스터가 내전에 참전 못 하도록 어명을 내리셨으니까, 그걸 빌미로 자네에게 결투를 신청하진 않을 걸세.”
“…….”
린치 백작의 설명에도 카엘은 여전히 걱정되는 듯 표정이 어두웠다.
‘하긴 당연한가, 제국의 대귀족을 뒷배로 둔 것도 아니니까.’
소드 마스터의 자식이라고 해도 작은 왕국의 귀족가의 막내아들에 불과했다.
파이슨이 실제로 해쳐도 어떻게 할 수 없었다.
“그리 걱정되면 그냥 떠나는 게 어떻겠나? 이미 충분히 명예를 떨치지 않았나?”
“레오폴드 저하를 두고 갈 수는 없어서 말입니다. 그랬다가는 왕국으로 돌아가 무슨 고초를 겪을지 모르니.”
“그, 그렇겠군.”
레오폴드 왕자도 망나니 왕자로 유명하다고 들었다.
막상 보니 들었던 것보다 멀쩡해 보이긴 하는데, 다들 탈프 황자 옆이라 성격을 죽이고 있는 거라 여겼다.
‘아무리 망나니라도 정신에 이상이 있지 않은 이상,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우면 조심할 테니 말이야.’
“그래서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만…….”
“뭔가? 내가 할 수 있는 한에서는 도와주겠네.”
“혹시 파이슨 경이 이쪽으로 오면 미리 언질을 주실 수 없겠습니까?”
카엘이 주저하며 뭘 부탁하나 싶었는데, 뜻밖의 부탁을 했다.
린치 백작은 턱을 긁으며 곰곰이 생각했다.
“음, 파이슨 경은 황제 폐하께서 무슨 특수한 임무를 맡기셨다고 들었는데…….”
“바로 알 필요까진 없습니다. 이곳에 오기 며칠 전에만 알 수 있으면 충분합니다. 몸을 피할 시간만 벌면 되니까요.”
“아, 그거야 문제없지. 내가 손써 둘 테니 걱정하지 말게나.”
“감사합니다. 정말 은인이십니다.”
카엘의 말에 린치 백작이 헤벌쭉 웃었다.
별거 아닌 거로 카엘에게 은혜를 입혔다고 생각해서였다.
* * *
며칠 뒤.
또 다른 파이슨의 제자이자 소드 엑스퍼트인 클라크가 나타났다.
심지어 전투를 개시하기 전 진용을 갖추고 있을 때, 도리스의 복수를 하러 왔다며 카엘과의 결투를 요구했다.
카엘은 이번에도 쉽게 클라크를 꺾었을 뿐만 아니라, 아예 목을 베어 버리는 게 아닌가?
‘아니, 파이슨 경의 보복이 두려운 게 맞아?’
클라크 경의 머리통이 바닥에 나뒹구는 걸 본 린치 백작은 문득 그런 의구심이 들었다.
* * *
두 제자의 사망 소식은 파이슨의 귀에도 들어갔다.
“허, 어떻게 둘씩이나? 실력이 뛰어난 기사가 있나 보군. 키슬링 전하는?”
현재 키슬링은 제라드 황자와의 일전을 준비하느라 바빴다.
당연하게도 망나니인 탈프 황자보다 제라드 황자를 더욱 큰 장애물로 본 거였다.
‘아무래도 내가 가 봐야겠어. 침입한 엘프도 잡았겠다, 같이 나타난 라이칸스로프에게도 큰 상처를 입혔으니 당분간 자리를 비워도 안전하겠지.’
마음이 급해진 파이슨은 그룬트산맥을 벗어나 토라타만평야로 향했다.
그 소식은 린치 백작을 통해 카엘의 귀에도 들어왔다.
카엘은 곧바로 레오폴드에게 말해, 왕국으로 귀환한다며 전장에서 나왔다.
“레오폴드 저하, 이만 가 보겠습니다.”
“그래, 왕국에서 보세.”
카엘은 레오폴드와 이별하고 그룬트산맥으로 향했다.
* * *
“아니, 벌써 떠났다고?”
며칠 뒤 도착한 파이슨은 이미 제자의 원수인 카엘은 물론, 그를 데리고 있는 레오폴드 왕자까지 왕국으로 돌아갔다는 말에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아쉽군, 한 수 가르쳐 주고 싶었는데.’
분위기를 봐서 목을 취하거나 적어도 팔다리 하나 정도는 받아 낼 생각이었다.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적어도 그사이에 애지중지 키워 온 제자를 더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직 계획에 차질이 있을 정도는 아니야.’
키슬링 황자가 황제로 즉위하면 자신을 중심으로 제자들이 기존 소드 마스터의 자리를 대체하는 원대한 계획이었다.
그렇게 되면 제국의 무력은 자신의 손아귀에 들어오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려면 새로운 제자를 더 발굴해야겠군.’
파이슨은 잠시 전장에 더 머물러 인재를 탐색하기로 마음먹었다.
* * *
그 시각.
카엘은 이미 브로칸과 함께 그룬트산맥에 도착해 있었다.
그런데 소드 엑스퍼트가 둘 나타난 게 아닌가?
파이슨이 자기 대신 이곳을 지키라고 세워 둔 자들이었다.
아무리 당면한 위협이 없다고 해도 임무의 중대성을 고려하면 무방비하게 내버려 둘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편 카엘은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소드 엑스퍼트 둘을 여유 있게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거 파이슨 경의 제자를 둘이나 더 해치우게 생겼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