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s Medicine Sucking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61
61화 엘프 구출 (3)
황급히 그룬트산맥으로 돌아온 파이슨은 경비대장의 보고를 듣고 기함했다.
“뭐?! 엘프들이 탈출한 게 또 다른 엘프들이 습격해 와서라고?”
“살아남은 병사의 말로는 귀도 길고 정령술까지 썼다고 합니다.”
카엘이 엘프 자매들로만 추격대를 상대해 엘프들이 구하러 온 것처럼 착각하도록 위장한 게 먹힌 거였다.
덕분에 파이슨은 완전히 착각했다.
‘설마? 저번에 왔던 엘프들은 선발대였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구출대가 너무 소수였다. 같이 온 라이칸스로프도 선발대가 동족을 찾기 위해 이용한 게 분명했다.
‘아무리 고문해도 입을 다물기만 하더니, 믿는 구석이 있어서였군.’
그 엘프들의 믿음만큼 구출대는 보통 실력이 아니었다.
자신 대신 이곳을 지키라고 불렀던 소드 엑스퍼트 덴과 헤프너까지 해치웠으니까.
‘내가 이런 실수를 하다니…….’
“어떡하면 좋습니까? 황제 폐하께서 아시면…….”
경비대장이 걱정하는 목소리에 파이슨도 속이 답답했다.
소드 마스터인 만큼 실수했다고 목이 달아나지는 않겠지만, 황제 폐하에게 문책당하는 것만으로도 큰 망신이었다.
무엇보다 제국의 암행부에서 데려간 엘프들도 이 사실을 알면 배신할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면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지도 몰랐다.
‘아니, 아직 만회할 수 있어. 내가 있을 때 엘프들이 탈출한 것도 아니잖아.’
오히려 도망친 엘프들을 되찾고, 새로운 엘프들 잡아들이면 공을 세운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래서 황제께서 식량도 최소한으로 공급하라고 하셨나?’
이미 정령과 소통 못 하게 귀를 다 자른 상태였지만, 황제는 식량도 최소한으로만 공급하라고 했다.
이해가 안 가는 건 처음에는 관리를 잘 못해 엘프 몇 명이 굶어 죽었는데도, 보고를 올렸지만, 황제는 딱히 화내지 않았다.
‘그저 죽을 때 남긴 말이 없냐고 물을 뿐이었지.’
어쨌거나 도망칠 힘도 없게 만드는 게 목적인가 하고 짐작했는데, 딱 들어맞은 거였다.
그렇게 비쩍 곯은 엘프들이 도망쳐 봤자 얼마나 도망쳤겠는가?
파이슨은 자신감을 되찾고 지시를 내렸다.
“아직 멀리 못 갔을 거다! 수색대를 꾸려서 찾아라!”
“이미 찾고 있습니다만, 어찌나 교묘한지 아무런 흔적이 안 보여서…….”
“흔적이 안 보여? 그야 뻔하지.”
경비대장의 말에 파이슨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멀리 도망치지 않고, 이 근처에 숨어 있을 거다.”
“앗! 그렇습니까?”
“어떻게 그 병자들을 이끌고 도망치면서 흔적도 하나 안 남겼겠나? 숨어서 안 움직인 게 분명하다.”
“화, 확실히 그렇겠군요.”
파이슨의 짐작과 달리 카엘은 현재 엘프들을 데리고, 한창 동쪽 바다를 향해 이동 중이었다.
흔적이 안 보이는 건, 레인저 훈련을 받은 카엘이 엘프 자매들이 부리는 정령들의 도움을 받아 최대한 흔적을 지워서였다.
“그러니 어서 모든 병력을 동원해 샅샅이 수색하라! 이 일대를 다 뒤집어엎어서라도 엘프를 찾아야 한다!”
“알겠습니다. 근데 이 큰 산맥을 저희만으로 찾는 건 힘듭니다만…….”
“걱정하지 마라. 내가 지원을 요청할 테니까.”
자신 있게 말한 파이슨은 바로 인간의 영주와 귀족들에게 서신을 보냈다.
제국의 소드 마스터에게 빚을 지울 절호의 기회기에 서신을 받은 자들은 모두 병력을 보내왔다.
그렇게 달려온 기사만 수백, 병사는 오륙천에 달했다.
“엘프들이 내가 없는 틈에 노예들을 탈취했다! 그것들을 찾아 주게.”
“맡겨 주십시오!”
“저희만 믿으십시오!”
파이슨의 부탁에 기사들이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러고 경비대장과 수색 구역을 상의하고는 병력을 움직이기 위해 흩어졌다.
“저기부터 저기까지 훑으면 되겠군.”
“우리 병력은 남쪽 늪지를 탐색하겠다.”
“그럼 나는 동쪽으로 가지.”
그 말에 지켜보고 있던 파이슨이 끼어들었다.
“동쪽으로 간다고?”
“…네, 아나톨레 항구를 통해 동해로 도망칠 수도 있을 테니, 그쪽도 찾아는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얼빠진 기사의 대답에 파이슨이 혀를 찼다.
“엘프가 바다로 가? 숨기 좋은 숲을 따라 남서쪽이나 북서쪽으로 갔을 가능성이 크지.”
“아!”
“거기다 동쪽으로는 평야밖에 없는데 수상쩍은 이들이 있으면 진작에 보고가 들어왔을 거다.”
“아, 그렇겠네요…….”
납득하는 기사에게 파이슨이 쐐기를 박았다.
“만약을 대비해 아나톨레 항구에 배가 출항하기 전에는 무조건 수색을 하라 했으니 걱정할 거 없다.”
“오옷! 역시 파이슨 경! 철저하시군요.”
“대단하십니다.”
“존경스럽습니다.”
“이 정도쯤이야.”
다른 기사들의 칭찬에 파이슨의 어깨가 올라갔다.
카엘도 이들의 생각처럼 배를 타고 왕국으로 귀환할 생각은 없었다.
다만, 바닷가에서 어인족을 불러 제국에서 벗어날 작정이었다.
그걸 모르는 파이슨이 소리쳤다.
“자! 다들 어서 가서 엘프를 찾도록! 제일 먼저 찾는 자에게 큰 상을 내리겠다!”
“오옷!”
“어떤 상을 주실지 기대되는군.”
“내가 반드시 찾아야지.”
의욕이 넘치는 기사들의 모습을 보니, 금방이라도 도망친 엘프들을 찾을 거 같았다.
‘찾기만 하면 내 이것들을 도륙을 내 주마.’
파이슨은 이를 갈았다.
* * *
그 시각.
카엘은 한창 대륙 동쪽으로 이동 중이었다.
정신적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엘프를 수십 명이나 데리고 움직이는 건 매우 힘든 일이었다.
낮에는 숨어서 엘프들을 돌보고, 밤에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움직였다.
덕분에 속도는 느렸지만, 다행히 들키진 않았다.
엘프 자매들이 부리는 정령들이 주변에 사람이 지나가는 걸 미리 파악해 준 덕분이었다.
만약을 위해 지나온 흔적은 카엘이 꼼꼼하게 지웠다.
참고로 데비하이드가 부리던 엘프 스켈레톤은 진작에 해제해서 땅에 묻어 뒀다.
그렇게 며칠을 이동하는데, 브로칸이 킁킁대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음? 진한 소금 냄새가 나네요. 비린내도 어렴풋이 나는 거 같기도 하고…….”
“벌써 냄새가 나? 그거 바다 냄새야.”
“앗! 정말입니까? 저 바다는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어서요! 어서 가죠!”
카엘의 말에 브로칸이 들뜬 얼굴로 앞장섰다.
몇 시간을 더 걸어가서 작은 언덕 위로 올라가자 더 멀리 바다가 보였다.
그걸 본 브로칸이 흥분했다.
“와! 끝이 안 보여요. 어떻게 이럴 수가 있죠?”
“그만큼 넓어서 그래, 수면 위의 땅보다 바다가 더 넓거든. 수면 아래까지 하면 어마어마하지.”
“헉! 정말인가요?”
“그럼. 곧 경험할 기회가 생길 거야. 어서 가자.”
카엘은 그렇게 말하며 바다 쪽으로 걸어갔다.
해가 지기 전에 간신히 해변가에 도착한 카엘은 가방에서 하얀 막대기를 꺼냈다.
어인족이 준, 초롱아귀의 머리 촉수였다.
“어, 그건 뭔가요? 거기에서 희미하게 바다 냄새가 나긴 하는데.”
“이걸로 어인족을 부를 거야.”
카엘은 브로칸의 물음에 대답하며 초롱아귀의 머리 촉수를 바닷속에 집어넣었다.
그러자 머리 촉수 끝에서 하얀빛이 터져 나오는 게 아닌가?
그 빛은 바닷속 깊은 곳으로 쭉 뻗어 나갔는데, 심해성까지 닿아 카엘이 호출한다는 걸 알려 줄 터였다.
‘그러면 메르 8세가 어인족을 보내겠지. 약속을 안 지키면 본인 손해고.’
.
.
.
그런데, 한참을 기다려도 바다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어? 어떻게 된 건가요?”
“아무도 안 나타나는데요?”
“…언제 와?”
“바람맞은 거 아니야?”
브로칸에 이어 엘프 자매들까지 한마디씩 했다.
카엘은 바다를 보며 이를 악물었다.
“이것들이 나를 엿 먹이다니…….”
혹시 약속을 어기는 거 아닌가 했는데, 정말로 약속을 저버린 거였다.
‘이럴 때를 대비해 제대로 된 약을 안 주긴 했는데, 입맛이 쓰군.’
“카엘 님, 어떡할까요?”
“조금 더 기다려 보자. 일단 이 인원이 숨어 지낼 만한 곳을 찾아야겠네.”
“네! 제가 찾아보겠습니다.”
브로칸은 부리나케 뛰어갔다.
“잘됐어요. 다들 아직 성치 않은 몸으로 강행군하느라 많이 힘들었거든요.”
“…맞아.”
“정말이에요. 오랜만에 바닷가에 왔으니까 이 기회에 좀 쉬죠.”
위로받으니 괜히 더 뼈아팠다.
‘이것들, 나중에 오기만 해 봐라.’
카엘은 바닷속을 향해 이를 갈았다.
* * *
“아무것도 못 찾았다고?”
“죄송합니다.”
파이슨 앞에 선 경비대장이 눈치를 보며 고개를 숙였다.
“끙.”
앓는 소리를 내는 파이슨도 가만히 앉아만 있진 않았다.
여기저기 쫓아다니면서 제대로 수색하는지 감시하고, 엘프들이 숨어 있을 만한 곳을 제보받으면 직접 쫓아가기도 했다.
번번이 허탕만 쳤지만.
“도저히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네요. 하늘로 솟은 건지, 아니면 땅으로 꺼진 건지.”
경비대장의 말처럼 그저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때, 한 기사가 넌지시 물었다.
“파이슨 경, 늦었을 수도 있지만, 동쪽 방면으로도 수색을 가 볼까요?”
일전에 동쪽으로 수색을 가려다 파이슨이 말렸던 기사였다.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건가.”
“전에도 파이슨 경이 헛된 짓이라 했거늘.”
“인제 와서 거길 찾자고?”
다른 기사들이 한목소리로 나무랐다.
안 그래도 성과가 없어 파이슨의 표정이 좋지 않은데, 지금 파이슨의 결정을 지적했다가는 무슨 꼴을 당할지 몰라서였다.
정작 파이슨은 그 기사의 말에 동의했다.
“아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우리의 허를 찌른다고 그쪽으로 갔을 수도 있겠군.”
“그, 그렇습니까?”
“아직 항구에서 아무 소식이 없는 거로 봐서는 탈출은 못 했을 테니 한번 찾아볼 여지는 있겠지.”
“아, 그렇군요.”
“참으로 시야가 넓으십니다.”
“저도 배우고 싶습니다.”
파이슨은 전과 달리 아부하는 소리가 귀에 거슬렸지만, 꾹 참고 지시를 내렸다.
“그럼, 나는 먼저 가 볼 테니, 다들 병력을 전개해서 수색하며 따라오도록.”
“소드 마스터시면서 이렇게 솔선수범하시다니!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파이슨은 아부에 대꾸도 하지 않고, 곧바로 동쪽을 향해 달랐다.
그런데 기사들이 속삭이는 대화가 귀에 들어왔다.
“자네 조심 좀 해. 파이슨 님이 너그럽게 봐주셔서 다행이지.”
“그, 그래야겠어.”
“빠르기도 해라. 먼저 도착해서 한참 기다리실 거 같은데? 우리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어서 쫓아가자고.”
사실 방금은 파이슨이 너그럽다기보다는 그만큼 절박해서였다.
이 정도로 소란을 피웠는데 엘프를 못 되찾았다가는 꼴이 완전 우습게 되어 버리기 때문이었다.
‘더는 망신 안 당하려면 꼭 찾아야 해.’
파이슨은 전신에 오러를 둘렀다.
그러면 신체 능력이 강화되어 말보다 빠른 속도로 달릴 수 있었다.
이대로라면 하루 이틀 안에 아나톨레 항구에 도달할 정도였다.
* * *
그 시각 카엘은 해변 절벽 쪽 커다란 동굴에서 엘프들을 돌보고 있었다.
브로칸이 찾은 이 동굴은 수십 명이 여유 있게 들어가고도 남을 정도로 컸다.
엘프들은 그사이 푹 쉰 덕에 몸 상태는 훨씬 나아졌다.
다만, 정신적인 충격은 큰지 여전히 멍했다.
‘회복하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한가?’
엘프들을 살펴본 카엘은 밖에서 신나게 물고기를 사냥해 온 브로칸에게 물었다.
“오늘도 아무도 안 왔어?”
“네.”
그때였다.
“…지금 왔어.”
물의 정령에게 이야기를 전해 들었는지 데키마가 중얼거렸다.
그 말에 동굴 밖으로 뛰쳐나가 보니 바닷가에 어인족이 잔뜩 서 있었다.
그 숫자만 무려 수십은 됐는데, 다들 갑주에 무기까지 갖춘 게 분위기가 험악했다.
그중 선두에 선 어인족이 소리쳤다.
“카엘이라는 인간은 나와라! 이 이쿤 님이 거짓 약으로 국왕 폐하를 능멸한 대가를 치르게 해 주겠다.”
‘약속을 지키러 온 게 아니라, 나를 잡으러 왔다고? 이것들이.’
기가 찬 카엘이 어인족에게 달려들었다.
수십 명의 어인족이 카엘에 얻어맞고 쓰러지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