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s Medicine Sucking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69
69화 항구도시 아말레이 (4)
카엘의 의문에 레오폴드가 쐐기를 박았다.
“왜 그런 얼굴인가? 내 이름은 걸어 두겠지만, 실질적으로는 네 소유로 해 줄 생각이다. 내가 아무리 망나니라고 불린다고 해도 친구의 공을 가로채는 파렴치한은 아니거든.”
‘친구라…….’
아무리 친해졌다고 해도 1왕자인 레오폴드가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
“호의에 감사합니다.”
“그래야지. 그리고 딱 좋은 기회 아니야? 언젠가는 공작가에서 나와야 할 텐데, 여기에 자리를 잡으면 되잖아. 여기에서 제국으로 움직이기도 좋고.”
“아.”
레오폴드가 왜 저러는지 알 것 같았다.
이곳에 카엘이 자리 잡아 세력을 이뤄 제국을 칠 때 힘이 되어 줬으면 하는 거였다.
‘그것도 나쁘지 않지.’
어차피 그 시점은 몬스터 대침공 이후일 테니까.
“그래서 앞으로 어쩔 계획인가? 이 도시에서 이 고생을 한 이유가 있을 게 아닌가?”
“계획이 없는 건 아닙니다만, 전염병이 돈다는 소식에 나선 것뿐입니다.”
“그런가? 안 그래도 마을 몇 개가 완전히 날아가 왕국 전역에서 난리야. 그나마 네가 알려 준 대로 조치한 덕분에 확산세는 줄었지만, 여전히 불안불안하지.”
“그렇군요.”
그래도 내심 다행이다 싶었다.
회귀 전에 받았던 피해에 비하면 새 발의 피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여기가 내성인가? 초라한데?”
성 앞에 도착한 레오폴드가 혹평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항구도시임에도 가난한 편이라 축성에 쓸 돈이 없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달라질 예정이었다.
안으로 들어간 카엘은 레오폴드에게 앞으로의 구상을 설명했다.
항구를 정비해서 정박할 수 있는 선박의 크기를 늘리고, 내륙으로 물류를 옮기기 쉽게 길을 닦고.
그걸 바탕으로 제국뿐만 아니라 여러 왕국과 본격적으로 무역을 재개할 계획이라고 말이다.
“역시 자네한테 다 생각이 있었군. 내가 괜한 걱정을 했군.”
그때 잠자코 있던 프리츠가 조용히 말했다.
“송구하오나, 말씀처럼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래? 그대라면 뭐가 문제인지 잘 알겠지. 어서 말해 보게.”
“카엘 님의 구상대로라면 어마어마한 자금이 필요한데, 현재 도시 내 그 정도 여력이 없습니다. 사망한 영주와 귀족들의 재산을 모두 압수해도 모자랄 테고요. 아무리 왕자 저하라고 하시더라도…….”
“아, 그건 걱정하지 마.”
“……?”
“카엘이 제국에서 약 팔아서 벌어 온 자금만 해도 어마어마하니까.”
“네?! 약을 팔았다고요?! 이곳에서는 한 푼도 안 받으셨는데.”
놀라는 프리츠에게 레오폴드가 으스대며 말했다.
“제국의 돼지들이 살 빼는 약을 준다니까 얼마나 많은 황금을 들고 찾아오던지.”
“오!”
그제야 어떤 상황인지 깨달은 프리츠가 감탄했다.
‘부자들에게는 돈을 받고 없이 사는 자들에게는 안 받으시는 거구나. 아직 어린 청년이 그런 자비로운 마음을 가지다니.’
애들의 코 묻은 돈도 노리는 성직자들은 못 할 일이었다.
감탄하던 프리츠는 이어지는 카엘의 말에 기절초풍할 뻔했다.
“그건 나중에 물건 매입 대금으로 쓰는 게 나을 거 같으니, 수도에서 보관하고 계시죠. 지금 있는 거로도 충분합니다.”
‘돈이 얼마나 많길래. 저런 소리를 하다니.’
레오폴드도 놀라 물었다.
“아니, 또 돈이 어디서 났어?”
“심해왕의 병을 고쳐 주고 꽤 받았습니다.”
“심해왕…….”
프리츠가 중얼거렸다.
어쩐지 인간들 속에 숨어 살면서도 별다른 간섭을 안 하던 어인족들이 여러모로 도움을 준다 했다.
“어때, 프리츠 경. 또 무슨 할 말이 있나?”
“어, 없습니다. 대규모로 무역하기에는 해적들이 많아 어렵다고 말씀드리려 했는데, 어인족이 도와줄 정도면 걱정 없겠군요.”
“그럼 바로 추진하면 되겠네.”
“네, 기왕 이렇게 된 거 항구도시가 자리 잡고 제대로 돌아가게 한 다음에, 클리페우스성으로 돌아가려고요.”
“어, 클리페우스성으로 돌아가게? 하긴 몬스터 침공이 걱정된다고 했지.”
“네.”
몬스터 대침공을 막으려면 돌아가야 했다.
그걸 못 막으면 항구도시를 아무리 발전시켜도 의미가 없으니까.
* * *
한편 왕국의 수도에서는 난리가 났다.
제국에서 귀환하던 망나니 왕자가 뜬금없이 역병에 시달리던 항구도시를 차지했다는 소식이 전해져서였다.
고위 귀족들은 곧바로 회합을 가졌다.
“이게 또 무슨 사달인지. 안 그래도 역병이 돌아 정신이 없는데.”
“제국에서 돌아왔으면 한동안 푹 쉬면서 조용히 지낼 것이지.”
“사고 치지 않고 돌아온 것만 해도 다행 아닙니까?”
“모르죠. 급하게 제국에서 귀환한 걸 보니 무슨 사고를 쳤을 수도 있죠.”
한 귀족의 말에 다들 수긍했다.
“그보다 어떻게 하죠? 저대로 내버려 둡니까?”
귀족들에게는 심각한 문제였다.
영주가 무슨 사유로든 부재한 상황에서 왕족이 땅을 차지하고 앉은 선례를 만들어 두면 앞으로도 뺏길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저희끼리 뜻을 모아서 국왕께 말씀드려야죠.”
“그러려면 누구라도 대신 영주로 앉혀야 하는데…….”
“음, 거기 원래 영주가 누구였죠?”
항구도시 아말레이는 워낙 외진 곳인 데다가 영주도 중앙에 줄을 댈 만한 능력이 없어서 대부분 몰랐다.
“그거야 사망했으니 됐다 치더라도, 물려받을 만한 귀족은 하나쯤 있지 않겠습니까? 그자를 내세워서 항구도시를 돌려받으면 저희에게 성의 표시라도 좀 하겠지요.”
“글쎄. 먼 친척이 있다고 들었긴 한데, 영 시원찮은 가문이라 힘들지 않겠습니까?”
“그도 그렇군요. 어지간해서야 저 망나니가 깔고 앉은 자리를 뺏을 수 없을 테니.”
“…….”
뾰족한 수가 없자 귀족들은 다들 입을 다물고 끙끙댔다.
그때 한 귀족이 제안했다.
“차라리 망나니 왕자가 차지하도록 내버려 두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거기서 지내느라 왕성에서 안 보이는 것만 해도 우리한테는 이득인데.”
“하긴 일리가 있소.”
“그 성미에 병마에 시달린 항구도시를 잘 운영할 리도 만무하고, 질려서 포기하면 그때 가서 생각해도 되겠군요.”
“뭐, 그곳을 차지해 봐야 뭘 크게 얻겠습니까? 큰돈도 안 될 텐데.”
별의별 억측이 다 나왔지만, 중요한 건 카엘이 예상한 대로 결론이 나온 거였다.
* * *
그 시각.
항구도시 아말레이는 매우 바빴다.
도로를 마차가 빨리 달릴 수 있게 정비하고, 항구 쪽에서는 항만시설 전체의 대대적인 공사에 나선 거였다.
주변의 일꾼과 자재를 비싼 값에 사들여도 부족해.
어인족들이 바다 건너에서 자재를 구해 오고, 주민들이 두 팔 걷어붙이고 일손을 보태겠다고 나섰다.
카엘은 어인족들에게는 어인족 내 인기 상품이 된 회복 포션을 약속하고, 공사에 참여한 주민들에게는 넉넉하게 품삯을 챙겨 줄 뿐만 아니라, 아낌없이 먹고 마시고, 쉴 수 있도록 배려해 줬다.
덕분에 아말레이는 유례가 없을 정도로 활기찼다.
심지어 심해성의 왕 메르 8세는 직접 여러 국가의 항구에 영업을 해 주기까지 했다.
아말레이로 향하는 배는 해상에서의 안전을 자신의 이름으로 보장한다는 거였다.
그러자 계산에 밝은 상인들은 아말레이에서 제국으로 내려가는 게 더 이득이라며 호의적인 대답을 보내왔다.
‘레오폴드가 제국에 반기를 들고 일어서면 그마저도 쉽지 않겠지만.’
카엘로서는 몬스터 대침공을 막기 전까지만 원활하게 돌아가기만 해도 이득이었다.
어쩌면 이 루트로 타국의 모험가나 용병들도 모집할 수 있을 테니까.
카엘은 프리츠 경이 부두 공사 현장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걸 발견하고 다가갔다.
“프리츠 경, 아말레이가 바뀌는 모습을 보니 어때?”
“고향이 번영하는 걸 보기 좋긴 합니다만. 너무 부산스러워질 거 같군요.”
“전보다 치안에 힘써야 할 거야.”
“전에도 말씀하셨죠. 안 그래도 경비병을 대폭 늘리고 있습니다.”
“어, 잘하고 있다고 들었어.”
보고받기로는 프리츠가 엄선해서 경비병을 선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충성도 높은 주민들을 뽑아서 훈련까지 시키는 중이라고 했다.
프리츠와 헤어진 카엘은 내성의 은밀한 곳으로 들어갔다.
원래 엘프들은 숲에 숨어 지냈는데, 레오폴드까지 온 뒤에 아말레이에 별다른 위험이 없는데도 가능한 숲에 머물고 싶다고 했다.
그만큼 숲이 편하다나.
‘그런 엘프들을 지하에 가둬 놨으니…….’
황제의 악행만 생각하면 치가 떨렸다.
현재는 카엘이 진료 보기 편하게 성안에서 머무는 중이었다.
괜히 오가다가 사람들의 눈에 띄면 곤란해서였다. 어인족이야 어쩔 수 없지만, 엘프들이 눈에 띄면 난리가 날 테니까.
카엘이 들어서자 엘프들을 살피고 있던 노아나가 다가와서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어때?”
“아직 차도가 없습니다.”
노아나가 슬픈 눈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 조금만 더 고생해. 새로운 약을 연구하는 중이니까.”
엘프 자매들을 제외한, 나머지 엘프들은 아무리 회복 포션을 마시게 해도 멍한 상태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특별한 상처가 있는 건 아니니 정신이 천천히 회복하기를 기다리거나 다른 방법을 써야 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엘릭서를 만들어 먹이는 거겠지만.’
엘릭서!
바로 모든 병을 고치고 불로불사로 만들어 준다는 전설의 약.
불로불사까지는 아니지만, 새 생명을 얻을 정도로 강력한 회복력을 발휘한다고 했다.
필요한 재료는 드래곤 하트와 히드라의 가운데 머리, 세계수의 씨앗과 이것들을 조합하는 데 필요한 현자의 돌.
그중 드래곤 하트와 현자의 돌. 두 개는 이미 들고 있는 셈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까진 필요 없겠지만’.
카엘은 당장 가지고 있는 드래곤 하트로 엘프들을 치료할 약을 만들기 위해 연구 중이었다.
드래곤 하트만 해도 수백 년을 산 스승도 다뤄 본 적 없는 신비한 약재.
‘이게 약재라는 건 어디까지나 내 입장이지만.’
“카엘 님 계셔? 카엘 님! 어서 와 보세요!”
그때 엘프 자매 중 막내 모르타가 옆방에서 뛰쳐나왔다.
거긴 카엘이 따로 마련해 둔 연구실이었다.
카엘은 호들갑을 떠는 모르타의 안내로 연구실로 향했다.
한쪽에 놓인 거대한 탁자 위에는 거대한 보석이 놓여 있었다.
내부에 무언가가 살아 있는 듯 꿈틀거리고 있는 그건 바로 드래곤 하트였다.
드래곤 하트 주위에는 슬라임이 붙어 있었는데, 카엘이 실험한다고 붙여 둔 거였다.
“스, 슬라임이. 슬라임이…….”
“그래, 커졌네.”
분명 붙여 놓을 때는 작게 잘라 뒀는데, 원래 모습보다 더 커져 있었다.
“너무 커지기 전에 떼 내려고 했는데 도저히 안 떨어져요.”
아무래도 드래곤 하트의 힘에 취한 슬라임이 무의식적으로 집착하는 모양이었다.
“잠시만.”
카엘은 장갑을 끼고 슬라임을 잡고는 힘을 줬다. 뚜 뚝. 슬라임이 거친 소리를 내며 뜯겨 나왔다.
그러자 슬라임이 후루룩 무너져 내리더니, 언제 커졌었냐는 듯 처음에 잘라 낸 작은 조각으로 돌아왔다.
‘역시나.’
“어? 어떻게 된 거예요?”
“드래곤 하트의 힘으로 거대화하면서 힘도 세지는 거야.”
예전에 책으로 읽어 알았지만, 실제로 효과가 나타나는 건 처음 봤다.
‘그래도 엘프들이 의식을 차리게 하는 데는 도움이 안 되겠군. 역시 히드라의 가운데 머리나, 세계수의 씨앗이 있어야겠어.’
극한의 재생력을 갖게 하는 히드라의 가운데 머리로, 머릿속을 재생하든지.
생명력을 충만하게 하는 세계수의 씨앗에 접촉해 머릿속을 깨끗이 하는 수밖에 없었다.
드래곤 하트는 신체를 순간적으로 크게 해 그 둘의 힘을 신체가 최대한 받아들이게 하고, 원래대로 돌아왔을 때 체내에 응축되게 하는 역할이었다.
그래도 나름대로 쓸 데가 있었다.
“모르타, 대야에 성수 좀 떠 줘.”
“아, 네!”
모르타가 곧바로 커다란 나무통에서 물을 떠서 커다란 대야에 담아 왔다.
이건 데키마의 도움을 받아 티끌도 없는 깨끗한 물로 만든 성수로 사악한 기운을 제외한 어떤 기운도 쉽게 반응했다.
카엘은 드래곤 하트를 집어 대야 안에 집어넣었다.
대야 안의 성수가 금방 드래곤 하트의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역시 기운을 흡수 잘하는군, 그럼 어디 한번.’
카엘은 붉은 약물을 얇은 유리관으로 조금 들어 슬라임 조각 위에 한 방울 떨어트렸다.
그러자 슬라임이 순식간에 불어났다.
“앗! 커졌어요!”
하지만 이내 붉은 약물이 마르자 금방 쪼그라들었다.
“…다시 작아졌네요.”
“응. 예상한 대로야.”
카엘은 그렇게 대꾸하며 작은 포션병에 붉은 물약을 조심스레 옮겨 담았다.
“근데 이걸 어디에 쓰시려고요?”
“아무한테나 쓰진 못하고 신체 변화에 익숙하고 버틸 수 있도록 회복도 빠른 녀석에게 주려고.”
“앗! 설마 브로칸?!”
“정답이야.”
거대화 포션.
강해지고 싶어 하는 브로칸을 위한 약물 중 하나였다.
‘이걸로 소드 마스터는 이기지 못하더라도 소드 엑스퍼트와는 충분히 싸워 볼 만하겠지.’
“그럼 당장 브로칸을 부를게요.”
“아니, 그럴 필요까진 없는데.”
모르타가 신나서 뛰쳐나가려고 하는 걸 말리려고 할 때였다.
“카엘 님! 카엘 님!”
드래곤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브로칸이 연구실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무슨 일이길래 그렇게 급하게 와?”
“거, 거인이 쳐들어왔습니다.”
그 말에 카엘은 놀라기는커녕 마침 잘됐다 싶었다.
‘이번 기회에 거대화 포션을 써 봐야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