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s Medicine Sucking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77
77화 두 백작가의 골칫덩이들 (4)
제국의 기사 벤은 어두운 안색으로 문 앞을 지키고 있는 기사 볼리오에게 물었다.
“듀리프 후작님은 안에 계신가?”
“계십니다만, 무슨 일이오?”
“보고드릴 게 있어서 왔네. 그보다 기분은 어떤 거 같던가?”
“좋으실 리가 있겠소?”
볼리오의 반문에 벤은 쓴웃음을 지었다.
듀리프 후작은 클리페우스성에 도착하고부터 지금까지 계속 저기압이었다.
브리운 공작가의 막내가 비범하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확인차 왔는데, 이미 여행을 떠나 버렸다는 거였다.
브레프니 왕국에 제국의 대사 자격으로 와서 바람맞은 일은 처음이었다.
방문하겠다는 연락을 늦게 한 탓에 화를 낼 수도 없었다.
게다가 클리페우스성에 머무는 내내 오크가 쳐들어왔다.
어찌나 시끄럽고 혼란스러운지 기사들도 불안할 정도였는데 듀리프 후작도 마찬가지였다.
신경질적이 된 듀리프 후작은 만약의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며 기사들과 호위병들을 달달 볶았다.
덕분에 며칠 동안 제대로 잔 적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분명 몬스터가 공격해 올 시기가 아니라고 들었는데. 하긴 몬스터가 그런 사정 봐 가면서 오진 않을 테니…….’
덕분에 호화로운 대접은커녕 며칠 동안 벌벌 떨다 아무런 소득 없이 돌아가는 와중이었다.
‘그런데, 또 안 좋은 소식을 전해 드려야 한다니.’
벤은 손에 든 노란색 서신을 보며 목이 탔다.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지만, 위기 상황이라 빠르게 전달하라는 색이었다.
“밖에서 수군거리지 말고 들어오너라.”
듀리프 후작이었다.
벤은 얼른 문을 열고 서신을 전달했다.
“여기 서신이 왔습니다.”
“음…….”
서신의 색을 확인한 듀리프 후작이 미간을 모았다.
정작 서신을 펼쳐 읽더니 인상이 펴졌다. 심지어 기분이 풀린 듯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리는 게 아닌가?
“별거 아니군.”
“무슨 일입니까?”
“이고르, 올렉. 이 두 잡배가 배꼽을 맞출 거 같다는구나.”
“네?!”
벤은 화들짝 놀랐다.
배꼽을 맞춘다는 건, 사이 나쁜 두 가문이 다툼을 멈추고 결혼한다는 소리였다.
심지어 그 두 백작가는 왕국에서 몇 안 되는 제대로 된 병력을 갖춘 곳이었다.
“거긴 분명 서로 다투는 데 정신이 팔려 제국에 일말의 위험도 안 되는 곳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놀라서 물었지만, 듀리프 후작은 조금도 동요한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다툼에도 동력이 필요한 법. 언젠가는 그 힘이 다해 멈추리라 생각하긴 했다.”
“그럼 어떻게 합니까?”
“오히려 기회다.”
듀리프 휴작이 입을 길게 찢으며 웃었다.
“이렇게 가까워지려 할 때, 싸울 동력을 만들어 주면 또 수십 년은 격렬히 증오하고 서로 싸울 테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무슨 수로?’
그런 벤의 의문 가득한 얼굴을 읽었는지 듀리프 후작이 입을 열었다.
“이미 준비는 다 해 뒀으니 신호만 주면 된다.”
그 말에 벤은 감탄했다.
‘이미 다 꿰뚫어 보고 계신 건가? 역시 후작님이시군.’
* * *
고로드성에서 연회가 개최됐다.
갑작스레 준비한 연회였지만, 이웃의 닐바성에서 도와준 끝에 이제까지 성에서 열린 연회 중 가장 컸다.
실내는 물론, 실외 곳곳까지 탁자 위에 술과 음식이 잔뜩 가져다 놓이고, 누구든 와서 먹고 마시라고 했다.
덕분에 사람들은 더욱 열광했다.
그런 흥겨운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너 나 할 거 없이 이번에 승전한 젊은 남녀를 칭송했다.
동시에 소문대로 두 사람의 혼담이 성사되면 좋겠다며 떠들었다.
그럼 이 성대한 연회를 또 한 번 즐길 수 있을 테니까.
정작 연회의 주인공, 리온과 프리지는 다소 긴장한 기색이었다.
카엘에게 암살 시도가 있을지 모른다는 이야기들을 들어서였다.
올렉 백작과 이고르 백작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내내 붙어서 웃으며 대화를 나눴다.
그러는 사이 해가 떨어지고, 연회장 곳곳에 불이 밝혀졌다.
연회의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경비도 느슨해졌다.
‘지금부터는 더욱 경계해야겠지.’
카엘이 슬쩍 주위를 둘러보고 있을 때였다.
“잠깐!”
프리지가 큰 소리를 내며 하인의 손목을 잡았다.
주위의 이목이 순식간에 프리지와 하인에게로 쏠렸다.
잔뜩 겁을 집어먹은 하인은 벌벌 떨면서 물었다.
“왜, 왜 그러십니까?”
“네가 방금 준 술, 맛이 좀 이상한 거 같은데?”
“네? 그럴 리가요?”
“그래? 그럼 그대가 먼저 마셔 봐.”
프리지는 하인의 입가에 술잔을 가져갔다.
하인은 옴짝달싹 못 하고 술을 억지로 마실 상황이었다.
그런데.
“에잇!”
하인이 코앞까지 온 술잔을 쳐 내더니 번개처럼 소매에서 단검을 꺼내 찌르려고 하는 게 아닌가?
“엇!”
“꺄악!”
“앗!”
무슨 소란인가? 하고 지켜보던 이들이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프리지는 가볍게 단검을 피하며 하인을 제압했다.
하인은 놀란 눈으로 프리지를 쳐다봤다.
“어, 어떻게 멀쩡한 거지?”
“그거 알아서 뭐 하게. 여기 묶을 거 좀 갖다 줘.”
프리지의 말에 병사들이 밧줄을 들고 달려왔다.
‘저쪽은 무사히 막아 냈고, 일이 틀어진 이상, 혼란을 틈타 리온이라도 암살하려 하겠지?’
예상대로 리온의 뒤에 하인이 서 있었는데, 손끝에 칼날이 보였다.
프리지 쪽을 보고 놀란 리온이 몸을 일으키자 암살자는 목을 노리고 단검을 찔렀다.
“브로칸!”
진작에 카엘과 눈빛을 교환한 브로칸이 리온의 앞을 막아섰다.
푹.
브로칸은 어깨를 찔렸지만, 그 단검을 잡고 버티면서 다른 손으로 상대의 가슴팍을 할퀴었다.
“윽.”
암살자는 어마어마한 고통이 엄습했겠지만, 용케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대신 근처에서 그 광경을 본 여인이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아아!”
“뭐, 뭣들 하느냐! 리, 리온 님을 보호하라!”
뒤늦게 정신 차린 기사의 외침에 병사들이 우르르 달려왔다.
그런데.
제일 먼저 달려온 병사가 리온에게 달려들며 단검을 찔렀다.
‘아뿔싸! 하나 더 있었나.’
“큭.”
리온은 괴로워하며 뒤로 쓰러졌지만, 피가 보이지는 않았다.
카엘이 미리 준 오거 가죽 갑옷이 단검을 막아 낸 거였다.
병사로 위장한 암살자도 눈치챘는지 다시 리온에게 덤벼들었다.
카엘은 손에 쥔 컵을 던져 암살자의 손을 쳐 냈다.
“윽!”
암살자가 괴로워하며 단검을 떨어트리는 사이, 어느새 뛰어온 카엘이 암살자의 다리를 걷어찼다.
콰직!
“으아악!”
무력화된 암살자가 비명을 지르자 병사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묶었다.
“앗!”
“꺄아아아아악!”
그때 프리지 쪽에서 또 비명이 들리는 게 아닌가?
‘설마 다른 암살자가 더 있었나?’
놀라서 보니, 프리지가 잡아 놓은 암살자가 눈을 까뒤집고 입에 거품을 물고 있었다.
“아무것도 안 했는데, 갑자기 저래요.”
“입안에 숨겨 둔 독으로 자살한 겁니다.”
당황한 프리지에게 대꾸한 카엘은 브로칸이 잡은 암살자를 찾았다.
마찬가지로 독극물을 먹고 자살한 상태였다.
‘지독한 놈들.’
죽을 뿐만이 아니라, 매우 고통스러울 텐데 거리낌 없이 자신의 목숨을 포기한 거였다.
자신의 배후를 들키지 않기 위해서가 분명했다.
‘허튼짓을…….’
“크윽.”
바로 옆에서 괴로워하는 소리가 들렸다.
카엘이 붙잡은 암살자도 입안에 숨겨 둔 독을 먹은 거였다.
심지어 독이 퍼져서 괴로운 와중에도 카엘이 당황할 거로 생각했는지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네 녀석한테 쓰긴 귀한 거지만, 이대로 죽게 내버려 둘 순 없지.’
카엘은 곧바로 해독 포션을 암살자에게 부었다.
입에서 거품이 뿜어져 나오던 암살자는 난데없이 들어오는 약물에 켁켁거리며 기침했다.
그런데 어느새 고통이 사라진 게 아닌가?
마시자마자 금방 죽는 약인데 멀쩡한 거였다.
“어, 어떻게…….”
당황한 암살자는 이내 자신이 할 일을 떠올렸다. 독약으로 실패하더라도 어떻게든 자살해야 했다.
‘혀를 깨물어서라도!’
그러나.
“그럴 줄 알았지.”
암살자가 혀를 깨물기 전에 카엘의 주먹이 얼굴을 강타했다.
퍽!
혀를 깨문다고 죽진 않겠지만, 발설하려면 혀가 있는 편이 나았다.
“저자를 체포하고 철저히 감시하라!”
이고르 백작의 명령을 끝으로 그 날의 연회는 막을 내렸다.
* * *
다음 날 이른 아침.
카엘은 올렉 백작의 호출에 내성으로 갔다. 거기에는 프리지는 물론, 이고르 백작과 리온까지 와 있었다.
다들 심각한 표정이었지만, 그래도 카엘이 온 걸 보곤 웃으면서 반겼다.
특히 두 백작은 카엘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아까는 어수선해서 말을 못 했군. 자식의 목숨을 구해 줘서 정말 감사하네.”
“나도 정말 고맙네. 그간의 이야기는 리온에게 들었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카엘의 말에 두 백작은 고개를 저었다.
“그 이상을 했지. 암살을 막았을 뿐만 아니라, 자살해 증거를 인멸하려는 암살자를 살리기까지 했으니까.”
“안 그랬으면 제국의 장난질에 놀아나 또 무의미한 다툼을 이어 나갈 뻔했네.”
아무래도 연회에서 잡은 암살자를 밤새 고문할 거라더니, 암살자가 제국의 모략을 실토한 모양이었다.
‘앞으로는 무슨 불상사가 생겨도 제국 탓을 하겠지.’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두 가문이 반목하지 않고 힘을 합치기로 했네.”
올렉 백작의 말에 이고르 백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편이 두 가문을 위해서도 나았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두 가문이 단단히 결집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다면, 제국에서 오히려 손을 안 쓸 가능성이 클 겁니다.”
“그뿐만이 아니네.”
두 백작은 서로 마주 보고 씩 웃더니 카엘에게 말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있더라도, 우리 가문은 그대의 편에 서겠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은혜를 갚는 것 이상으로 그대와 함께하는 게 좋다는 생각이 드는군.”
“우리 가문도 마찬가지야.”
두 백작의 뜬금없는 동맹 선언이었다.
레오폴드 왕자를 제치고 저래도 되나 싶었지만, 든든하긴 했다.
왕국의 몇 안 되는 대규모 병력을 소유한 두 가문이 카엘의 편에 서겠다고 한 거였다.
이대로라면 레오폴드 왕자의 지시가 없더라도, 클리페우스성으로 병력을 지원해 달라고 하면 달려올 게 분명했다.
‘광물 지원보다 이쪽이 더욱 큰 성과로군.’
한편 백작의 자식들은 거기서 한술 더 떴다.
“맞습니다. 제 검은 이미 카엘 님의 것입니다.”
“전 제 모든 걸 바쳐서 모시겠습니다.”
프리지에 이어서 리온까지 그렇게 말하자, 프리지가 발끈했다.
“모든 걸 바친다니, 꼭 그렇게 날 이겨 먹어야겠어요?”
“이겨 먹으려고 한 거 아닙니다. 제 진심을 폄훼하지 마시죠!”
“둘 다 그만하거라…….”
“어이쿠.”
두 백작은 자식들이 티격태격하는 걸 보며 이마를 짚었다.
* * *
카엘은 두 백작에게 바로 떠나겠다고 작별을 고했다.
백작들은 먼저 빠른 광물 원조를 약속하면서 무사 귀환을 빌었다.
그러고 나오는데 언제 다툼을 멈췄는지 프리지와 리온이 쫓아 나왔다.
“아니, 벌써 가십니까? 앞으로 며칠은 더 연회가 열릴 텐데, 푹 쉬고 가시지.”
“프리지 양의 말대로, 이제는 마음 편히 즐길 수 있지 않겠습니까?”
“죄송합니다만, 클리페우스성에서 할 일이 많아서요.”
“그럼 저희가 따라가죠.”
“드물게 옳은 말씀이십니다. 어차피 모실 생각이었으니까.”
“드물게라뇨!”
카엘은 버럭 화를 내는 프리지를 무시하고 웃으며 말했다.
“따라오시기에는 여러분도 당분간은 아주 바쁘시지 않겠습니까?”
혼담은 미뤄 두더라도 할 일이 많았다.
두 가문이 과거의 일을 덮고 앞으로 화해하고 협력하기로 했지만, 각종 이해관계를 조율해야 했다.
그간 두 가문이 붙잡고 있던 병력도 정비해야 하고, 그사이에 데리고 있던 용병들도 정리해야 했다.
이번처럼 반란을 일으키진 않겠지만, 그냥 내쫓는다면 다른 지역으로 가면서 마을을 약탈하고 다닐 게 뻔했다.
당장은 고용을 유지하면서 조금씩 영지 바깥으로 내보내려면 다소 시간이 필요했다.
신뢰할 만한 사람이 맡아야 하는 일인데, 가문의 후계자인 두 사람이 제격이었다.
“음…….”
“…그렇지요.”
카엘이 하는 말을 알아들은 프리지와 리온이 시무룩한 얼굴이 됐다.
그런 두 사람에게 카엘이 웃으며 말했다.
“좀 한가해지면 언제든지 클리페우스성으로 오세요.”
그 말만으로 두 사람의 표정이 밝아졌다.
“하긴 다음에 가면 되죠!”
“저도 꼭 가겠습니다. 가면 오거 가죽 갑옷도 한 벌 맞춰 입고요.”
리온은 연회가 끝난 후, 오거 가죽 갑옷을 돌려줬는데, 아무래도 하나 갖고 싶은 모양이었다.
하긴 그 덕분에 목숨을 건졌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거기에 오거 가죽 여분이 있으니 리온 님 것은 물론, 프리지 님 것도 만들어 두라고 하겠습니다.”
“제, 제 것까지요? 감사합니다!”
리온이 오거 가죽 갑옷 이야기를 꺼내자 부러워하던 프리지가 카엘의 말에 곧바로 감사 인사를 건넸다.
“제 것만 만들어 주셔도 되는데……. 앗. 아프잖아요.”
리온이 투덜대자 프리지가 팔을 꼬집은 거였다.
‘언제쯤 사이가 좋아질는지.’
카엘은 두 사람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 * *
두 사람과 작별한 카엘은 브로칸을 데리고 길을 나섰다.
올렉 백작이 마련해 준 말을 타고 쉴 새 없이 달렸다.
클리페우스성으로 향하는 행렬을 최대한 빨리 쫓아가기 위해서였다.
‘아마 거기서 기다리고 있겠지.’
며칠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달린 결과, 일행이 있는 곳에 무사히 합류할 수 있었다.
일행이 있는 곳은 신전 기사 프레데릭이 머무는 신전이 있는 톨레도성이었다.
파나틱 신전 기사단이 성녀 아네스와 소드 마스터의 재능을 가진 소년 루크를 데리고 먼저 가 있는 곳이기도 했다.
‘과연 예상했던 대로 될까?’
사실 카엘이 이들을 먼저 프레데릭이 있는 곳으로 보낸 데는 이유가 있었다.
정확히는 성녀 아네스가 프레데릭 곁에 있도록 한 거였다.
풍부한 신성력을 가까이에서 느끼면 성기사가 빨리 될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도착해서 보니 예상했던 대로 프레데릭의 신성력이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그런데.
미처 예상을 못 했던 일도 벌어지고 있었다.
‘어, 이러면 성기사가 하나가 아니라, 여섯이나 되겠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