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s Medicine Sucking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90
90화 세계수의 힘 (1)
카엘이 제일 먼저 한 일은 대륙 전역에 공고문을 붙인 거였다.
클리페우스성으로 이주할 사람을 모집하는 공고문이었다.
사실 이주민 모집 공고는 클리페우스성뿐만 아니라, 가끔 다른 영주들도 했다.
대규모 화재나 역병, 전쟁 등으로 농노나 주민이 모자라 빈 땅을 놀리고 세금을 못 걷으면 큰 손실이었으니까.
‘그래 봐야 대부분 굶는 걸 면할 수 있는 정도지만.’
반면에 예전부터 클리페우스성의 공고는 훨씬 조건이 후했다.
거주할 집과 1년 치 식량, 정당한 보수가 보장되는 일자리까지 준다고 했다.
물론, 그 일자리라는 건 대부분 몬스터와 싸우는 거였기에 원래 찾아오는 이는 드물었다.
‘굶어 죽기 직전의 사람 정도나 올까.’
그러나 이번에 카엘이 거기에 한 가지 조건을 더 걸었다.
5년 거주 시에 보수와 별개로 1인당 금화 3닢을 준다고 한 거였다.
서민 가정의 10년 생활비를 준다는 말에 대륙 각지에서 클리페우스성으로 오는 사람들이 제법 된다고 했다.
당연히 5년 안에 몬스터 대침공이 이뤄질 가능성이 커서 내건 조건이었다.
‘실제로는 3년도 안 남았지만. 그보다 더 일찍 일어날 가능성도 있고.’
진상을 아는 이는 이주민들에게 곧 들이닥칠 대규모 전투에 휘말리게 하냐 비난할 수 있겠지만, 어차피 클리페우스성이 무너지면 왕국 내에서 안전한 곳은 없었다.
한편 카엘의 제안을 들은 티겔 공작은 얼떨떨한 얼굴을 했다.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냐?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을 거 같은데.”
“필요합니다. 안 그래도 병사와 레인저가 많이 부족하지 않습니까?”
이쪽이 장벽 안쪽에서 수성하는 처지라고 해도 주기적으로 이어지는 전투에 사망자가 아예 없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새롭게 충원되는 인원이라고는 훈련병이 전부.
아무래도 병력이 모자랐다.
필수적인 경비와 정찰 임무만으로도 빠듯해 충분한 휴식을 보장하거나 따로 훈련할 시간이 부족했다.
지금이야 라이칸스로프를 비롯해 엘프와 드워프가 도와줘서 한결 형편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여유가 있는 편은 아니었다.
“그건 알고 있다만.”
티겔 공작이 쓴웃음을 짓자, 큰형 브란이 대신 항변해 줬다.
“아버지도 사람들이 모이고 병력이 생기면 좋지만, 돈이 많이 드는 일이라 걱정하시는 거지.”
“돈은 걱정 안 하셔도 되는데, 오면 잘 적응하도록 신경 써 주십시오.”
“그거야 맡겨 둬.”
덕분에 가장 바빠진 건 드워프들이었다.
새로운 이주민을 위해 성 외곽을 확장하고 건물을 지어야 했으니까.
그래도 드워프들은 매우 기뻐했다.
카엘에게 보답할 수 있는 데다가 재료 걱정 없이 마음껏 망치질하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기 때문이다.
맥킨더 상단이 사서 보내는 것도 보내는 거지만, 이고르, 올렉 백작 측에서 보내오는 철광석 덕분에 재료가 부족할 일도 없었다.
그런 바쁜 와중에도 블렌트는 브로칸의 무기를 완성했다.
* * *
블렌트에게 연락을 받은 카엘은 브로칸을 드워프의 공방으로 데려갔다.
“우와! 제 선물을 준비하셨다고요?”
브로칸은 입꼬리를 올린 채 헤실거렸고, 다른 라이칸스로프들도 무슨 선물을 받나 싶어서 잔뜩 구경하러 왔다.
“그래, 블렌트 님, 보여 주세요.”
“어.”
블렌트가 사람 모형 위에 덮어 놓은 천을 걷었다. 그러자 일전에 카엘에게 보여 준 강철 갑옷이 모습을 드러냈다.
“음? 갑옷이네?”
“저게 우리한테 필요가 있나. 거추장스럽기만 하고.”
“그래도 나름 움직이기에는 편하게 만든 것 같긴 한데. 굳이…….”
막상 강철 갑옷을 본 라이칸스로프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그래도 브로칸만은 뛸 듯이 기뻐했다.
“와아! 정말 감사합니다. 바로 입어 봐도 되나요? 본모습으로 입는 게 좋겠죠?”
브로칸이 빈말을 하는 게 아닌 것이 라이칸스로프의 본모습으로 돌아가자 꼬리를 세차게 흔들고 있었다.
“입고 변해도 될 텐데, 어쨌든 어서 입어 봐. 시험해 볼 것도 있고.”
“앗! 그래도 안 불편하겠네요. 근데 시험이라니요?”
브로칸은 블렌트의 도움을 받아 갑옷을 입으면서도 고개를 갸웃했다.
“블렌트 님이 설명해 주실 거야.”
“갑옷에 복원의 룬을 새겨 놨다. 그 효과로 일반 갑옷보다 방어력도 뛰어나고 정비도 쉬워졌지만, 이런 것도 가능해졌지. ‘에피테시스.’라고 말해 봐.”
“에피… 테시스요?”
철컥, 철컥, 철컥.
브로칸이 중얼거리자마자 갑옷에 붙은 철판이 움직이면서 전신에 날카로운 칼날이 섰다.
“오옷!”
“저거 뭐야?”
“신기하네.”
갑작스러운 변화에 라이칸스로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브로칸도 놀라서 물었다.
“이게 다 뭐예요?”
“육탄전 할 때 도움이 되게 칼날이 자동으로 세워지게 만든 거야.”
“오옷, 그렇군요!”
브로칸이 신기해하며 자신이 입은 갑옷을 살펴보는데, 라이칸스로프들도 관심을 보였다.
“확실히 유용할 거 같긴 해.”
“철컥철컥 변신하는 거 보니까 멋있긴 하네.”
“그래도 좀 거추장스러울 거 같지?”
아직 뜨뜻미지근한 반응이었지만, 블렌트는 개의치 않아 하며 설명을 이어 나갔다.
“이건 어디까지나 부가 기능이고, 진짜는 따로 있어.”
“진짜요?”
“응. ‘아르마.’라고 해 봐.”
“네! 아르마!”
힘차게 대답한 브로칸이 외쳤다.
그러자.
철컥. 철컥철컥. 철컥.
금방처럼 갑옷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갑옷이 조금씩 벗겨지는 게 아닌가?
“어, 어. 어.”
브로칸이 당황하는 사이에 벗겨진 갑옷은 하나로 뭉치더니 길게 이어졌다.
이내 변환이 끝난 모습을 본 브로칸이 화들짝 놀랐다.
“엇! 이건?! 월도 아닌가요?”
“맞아. 월도야.”
월도는 브로칸이 거인섬에서 히드라를 상대할 때 썼던 무기.
당시 대장장이들이 급하게 만드느라 크기만 커서 히드라를 공격하느라 망가졌었다.
그걸 거인에게 줘 버렸는데, 드워프에게 부탁해 새로 만들어 준다는 약속을 지킨 거였다.
“가, 감사합니다. 설마 월도를 새로 만들어 주실 줄은 몰랐어요.”
“약속했으니까.”
감격한 브로칸에게 카엘이 웃으며 말했다.
“이야, 멋진데.”
라이칸스로프들도 월도의 모습에 감탄했다.
실제로 만들어진 월도는 전보다 훨씬 예리하고 고급스러워 보였다.
“근데 브로칸이 쓰기에는 너무 크지 않아?”
“그치. 들고 휘두를 수야 있겠지만.”
라이칸스로프들이 의구심을 품자, 브로칸이 카엘을 쳐다봤다.
그 의미를 눈치챈 카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받은 김에 제대로 한번 써 봐야지.”
“헤헷. 감사합니다.”
카엘의 허락을 받은 브로칸이 기뻐하며 가지고 있던 포션을 마셨다.
“갑자기 뭘 마시는 거지?”
“이 냄새는 약?! 왜 갑자기 약을…….”
“어, 점점 커지는 거 같은데 내가 잘못 본 건가?”
한 라이칸스로프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비볐다.
그러는 순간에도 브로칸은 점점 커지더니 공방의 천장에 머리가 닿을 정도가 됐다.
“어? 라이칸스로프가 저렇게 커질 수도 있는 건가?”
“브로칸, 어떻게 된 거야?”
“카엘 님이 주신 거대화 포션을 마신 덕분이에요.”
그렇게 대꾸한 브로칸은 월도를 집어 들었다.
“손에 딱 맞아요!”
아무래도 이전 월도보다 조금 짧고 날도 좁았지만, 훨씬 가볍고 휘두르기 편리했다.
“오옷! 저러니까 그럴싸한데.”
“크, 멋지잖아. 전설로 내려오는 라이칸스로프 신 같아.”
“난 변신하는 게 마음에 들어.”
거대화한 브로칸이 월도를 든 모습에 라이칸스로프들은 언제 시큰둥했었냐는 듯 감탄했다.
‘솔직해서 좋군.’
“나도 갖고 싶은데, 저런 거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브로칸 봐. 따라다니면서 공을 많이 세웠잖아.”
“그럼 우리도 열심히 하면 받을 수 있겠네?”
심지어 브로칸이 받은 월도 갑옷을 갖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 소리를 들은 브로칸이 웃으며 말했다.
“맞아요. 여러분도 열심히 하면 카엘 님이 분명 만들어 줄 거예요.”
다행히 브로칸도 독점하기보다는 동족도 자신처럼 멋진 무기를 갖기를 원하는 듯했다.
‘착한 녀석.’
사실 브로칸에게 먼저 만들어 주긴 했지만, 다른 라이칸스로프들에게도 무기를 하나씩 줄 예정이긴 했다.
몬스터 대침공 때 거대 라이칸스로프 수십 마리가 무기를 들고 날뛰면 오크와 놀 천 마리는 족히 상대하고도 남을 테니까.
‘근데 저러면 급하게 만들 필요는 없을 거 같네.’
천천히 만들어 뒀다가 공을 세운 순서대로 줘 버리면 충분해 보였다.
당장 드워프들도 이주민들의 주거지를 건설하는 것뿐만 아니라, 각종 수성 병기를 개발하고 생산하느라 매우 바빴다.
현재 클리페우스성의 장벽에는 대포와 대형 석궁이 하나둘 설치되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장벽 아래로 뜨거운 기름을 붓는 장치, 좌우로 칼날이 오가면서 사다리나 밧줄을 떨어트리고 끊어 내는 장치까지 있었다.
카엘도 처음 보는 것이 있을 정도였다.
티겔 공작은 드워프들이 수성 병기를 시연하는 걸 보고 매우 기뻐했다.
그걸 사용함으로 병사들의 피로는 물론, 희생을 줄일 수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카엘도 동감했지만, 이것만으로 부족한 걸 알았다.
‘몬스터 대침공 때 대형 몬스터들의 돌격과 드래곤의 공격을 버티려면 장벽이 더 튼튼해야 해.’
당연하게도 카엘은 이미 장벽을 강화할 방법을 마련해 뒀다.
* * *
카엘은 엘프들을 찾아갔다.
엘프들을 카엘을 보자마자 고개를 숙이며 예의를 표했다.
여전히 귀가 짧은 디오네만 그 상황을 어색한 듯 못 본 척했다.
자신의 동족이 일개 인간에게 고개를 숙이는 게 낯설었기 때문이다.
그런 디오네에게 카엘이 말을 걸었다.
“디오네 님, 오랜만입니다.”
“너는 다른 엘프들한테는 편하게 말하면서 나한테는 왜 이리 공손해.”
회귀 전 스승이다 보니 버릇이 된 거였지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여기까지 귀한 걸음을 해 주신 게 중요한 말씀을 하시러 온 거 같습니다만.”
디오네와 이야기하고 있었던 듯, 바로 옆에 있던 원로 엘프 모이라가 말했다.
“아, 세계수의 씨앗을 심는 걸 상의하려고요.”
“…세, 세계수의 씨앗을 심으신다고요?”
모이라가 떨리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주위의 엘프들도 카엘의 말에 감격한 눈치였다.
잃어버린 세계수를 재건하는 건 엘프 종족 차원의 염원이라 할 만한 일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계수의 씨앗이 필요한데, 문제는 종족의 은인인 카엘의 손에 있다는 거였다.
구원받고 아직 제대로 보답 못 한 주제에 세계수의 씨앗을 탐낼 수는 없었다.
그런데 카엘이 먼저 심자는 이야기를 꺼내다니!
카엘에게도 나름대로 의도가 있었다.
씨앗이야 다시 열매를 맺으면 회수할 수 있으니 손해 볼 건 없었다.
노리는 건.
“네, 세계수를 다시 보려면 심어야죠. 다만, 제가 원하는 곳에 심었으면 합니다만.”
“어디든지 상관없습니다.”
“사막에 심어도 저희가 반드시 싹 틔워서 세계수를 재건할 테니까요!”
어느새 옆으로 온 노아나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정령과 소통하는 엘프니 당연히 하고도 남았다.
“그런데 어디에 심을 생각이신지요.”
“클리페우스성의 장벽에 심으려고요. 괜찮겠습니까?”
카엘은 클리페우스성의 장벽 안쪽에 세계수를 심어서 장벽을 강화할 작정이었다.
세계수가 장벽의 기둥 역할을 해 주면 훨씬 단단해질 뿐만 아니라.
신성력과 비슷하게 정령의 가호를 받아 부정한 것들의 힘이 약해질 테니까.
“괜찮고말고요.”
“…좋은 생각.”
“정령의 힘이 더 강해질 테니 저희가 더 활약할 수 있겠네요.”
엘프 자매들의 말에 다른 엘프들도 이견 없이 찬성인 듯했다.
그때 잠자코 있던 디오네가 입을 열었다.
“잠깐만.”
‘무슨 소리 하려고 하는 거지?’
‘…혹시 반대?’
‘뭔가 마음에 안 드는 게 아닐까?’
엘프들은 다들 긴장한 기색으로 디오네를 바라봤다.
놀랍게도 모이라보다 디오네가 더 연배가 높았는데, 그런 디오네의 의견을 아무래도 무시하긴 어렵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막상 디오네의 입에서 나온 건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씨앗 심기 전에 엘릭서를 더 만들어 둬야지.”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그것 말고도 만들었으면 하는 포션도 있고요.”
“아, 그러고 보니 나도 생각나는 게 있네.”
“서로 같은 걸 생각하는 거 같은데요?”
카엘과 디오네가 주거니 받거니 하는 모습을 보고 모르타가 한마디 했다.
“왠지 두 분, 닮은 거 같아요.”
그 말에 서로 쳐다봤던 카엘과 디오네가 피식 웃었다.
며칠 뒤.
장벽을 순시하기 위해 나섰던 티겔 공작은 깜짝 놀랐다.
높고 긴 장벽 안쪽을 거대한 나무가 받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