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s Medicine Sucking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98
98화 거미 여왕 아라흐네 (1)
인간의 성벽은 드높았지만, 거대 거미에게는 소용없었다.
체구와 달리 가벼운 몸으로 성벽을 쉽게 타고 오를 뿐만 아니라, 멀리서 성벽을 향해 거미줄을 쏴서 공격하기도 했다.
그 탓에 올렉 백작가의 닐바성은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순식간에 점령당했다.
그 와중에도 올렉 백작은 이고르 백작에게 거대 거미의 공격 소식과 그 대처법을 전했다.
그 정보를 바탕으로 고로드성은 함락되는 것만은 겨우 막아 낼 수 있었다.
성벽과 외성을 포기하고 폐쇄적인 내성으로 대피해서 문을 걸어 잠그고 버틴 거였다.
위험하다고 이고르 백작이 만류하는 와중에도 일부 기사들은 병사들을 이끌고 거대 거미와 싸워 공을 세우겠다고 나섰다.
모두 처참하게 죽고, 거대 거미의 숫자를 늘려 주는 데 일조했을 뿐이었다.
내성에 틀어박혀 살아남은 사람들도 상황이 그리 녹록지 않았다.
“백작님! 백작님!”
“무슨 일이냐?”
부스스한 모습의 이고르 백작이 자신을 찾는 시종장에게 평소와 달리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거대 거미의 습격 이후 자신을 찾는 이들이 하는 건 시답잖은 불평불만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동쪽 탑 쪽 귀족들의 불만이 상당합니다.”
“무슨 불만?”
“그게… 이렇게 좁은 곳에 불결한 하층민과 함께 몰아넣어서는 더는 이렇게 지낼 수 없다고요.”
“배부른 소리 하는군.”
이고르 백작이 혀를 차는데, 다른 시종이 찾아왔다.
“백작님,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
“또 무슨 일이냐?”
“피난민들이 먹을 식량이 모두 떨어졌습니다.”
이번에는 단순 불평이 아니라 심각한 일이었다.
“벌써? 비축분이 1년 치는 될 텐데?”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예상보다 인원이 많다 보니…….”
눈치 보며 보고하는 부하를 보며 이고르 백작은 내심 한숨을 쉬었다.
‘일이 이렇게까지 꼬일 줄이야.’
내성에 귀족과 평민을 가리지 않고 모두 수용했는데, 그 탓에 모두 누워 쉴 자리도 모자라고 식량도 부족한 거였다.
그래도 후회하진 않았다.
영주로서 보호를 요청하는 영주민을 보호하는 건 의무!
평소에 영주라고 거들먹거리다가 위기 시에 외면한다면 영주로서 자격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고르 백작은 연달아 지시를 내렸다.
“귀족들더러 싫으면 문을 열어 줄 테니 나가라고 해!”
“비상식량 말고도 군량으로 비축해 둔 것도 모조리 풀어서 하루 한 끼는 먹이도록. 굶어 죽는 사람은 없어야지.”
“백, 백작님, 그랬다가는 오래 못 버틸 텐데요.”
“괜찮다. 우리가 굶어 죽기 전에 왕실이나 동맹인 브리운 가문에서 도움이 올 거다.”
이고르 백작은 레오폴드 왕자와 카엘에 대해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신뢰는 곧바로 보답받았다.
“백작님! 백작님.”
“음? 또 무슨 일이냐?”
“밖이 소란스럽습니다.”
“설마 공격이 시작된 건가? 다들 겁먹지 말고 단단한 성벽 안에서 버티는 것만 하면 된다.”
“그게 아니라, 누가 외성 서쪽에서 거대 거미들과 싸우고 있습니다.”
그 말에 주변의 분위기가 밝아졌다.
“그래?! 드디어 원군이 나타난 건가!”
이고르 백작은 기뻐하면 밖이 잘 보이는 서쪽 첨탑으로 단숨에 뛰어 올라갔다.
그러나.
밖의 상황을 본 이고르 백작은 곧바로 실망했다.
“…원군은 아닌 모양이군.”
원군이라기에는 겨우 넷이 다인 데다가 깃발을 들고 있지도 않았다.
“그래도 실력은 뛰어나지 않습니까?”
부하의 말대로 넷이서 수백 마리의 거대 거미를 상대하는데도, 밀리지 않았다.
심지어.
우웅.
그중 둘은 검에 푸른빛을 두른 채 거미줄을 베어 냈다.
그걸 본 부하들이 깜짝 놀랐다.
“저건 오러를 쓰는 거 아닙니까?”
“호, 혹시 소드 마스터가 도와주러 온 걸까요?”
그랬으면 좋았겠지만, 이고르 백작은 실제로 소드 마스터를 본 적이 있었다.
소드 마스터라면 훨씬 더 강했다.
“안타깝게도 아니다. 그래도 매우 실력 있는 모험가인가 보군. 혹시 거대 거미를 뚫고 오면 맞을 준비를 해라.”
“네!”
잘하면 이곳의 소식을 바깥에 전하고 빨리 도와 달라고 요청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계속 몰려드는 거대 거미를 도저히 뚫을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모험가들은 결국 후퇴해 버렸다.
그걸 보며 이고르 백작은 한탄했다.
“이럴 수가! 외성을 뚫기만이라도 했으면 카엘에게 지원을 요청해 달라고 할 수 있었을 텐데.”
카엘은 자식의 목숨을 구해 준 은인에다가 제국의 음모를 밝혀내는 등 이미 여러모로 도움을 많이 받은 처지였다.
그래도 보답으로 섭섭하지 않게 광물을 잔뜩 보냈으니 위기라는 말에 분명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서서 도와주러 오리라 믿고 있었다.
그때 옆에서 누군가 초를 치는 게 아닌가?
“요청할 필요 없습니다.”
“필요 없다니 그게 무슨 소리… 어, 자네는?!”
이고르 백작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분명 금방까지 생각하고 있던 존재가 눈앞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카엘 아닌가?! 어떻게 여기 들어왔나?”
“제 동료들이 시선을 끄는 동안 비밀 통로로 들어왔죠. 마침 프리지 양이 길을 알더라고요.”
카엘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며 웃었다.
그제야 이고르 백작은 어떻게 된 상황인지 깨달았다.
“아, 그대의 동료였나. 어쩐지 강하다 했어. 이곳에 잠입하기 위해 양동작전을 벌인 거였군. 근데 프리지 양이 알려 줬다고?”
그제야 이고르 백작은 카엘 뒤편에서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다.
“프리지 경! 무사했군. 참으로 다행이로다.”
“백작님이야말로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올렉 백작 덕분에 겨우 대비할 수 있었지. 참, 올렉 백작은 지금 어떤지 알 수 있나?”
“…저도 모르겠습니다.”
“흠, 그렇군.”
프리지가 면목 없다는 듯 고개를 숙이는 것만 봐도 어떤 상황인지 짐작이 갔다.
자신이야 거미가 못 들어오는 곳으로 숨기만 하면 된다고 들어 대비했지만, 올렉 백작의 닐바성은 난데없이 습격당했으니 무사할 리 만무했다.
카엘은 무거워진 분위기를 탈취하기 위해 물었다.
“그보다 리온은요?”
“아, 그게… 거대 거미에게 당해서 쓰러져 있네. 신부님이 기도해도 어떤 약을 써도 깨어나질 않는군.”
“그렇습니까? 리온부터 치료해야겠네요. 안내해 주십시오.”
“고맙네. 어서 가지.”
이고르 백작은 자식을 낫게 해 준다는 말에 먼저 앞장섰다.
리온은 내성 구석의 작은 방에 누워 있었는데, 문이 쇠창살로 된 게 아무래도 감옥으로 쓰던 곳 같았다.
그 문 앞은 무장한 병사들이 지키고 있었는데, 외부의 적보다는 내부를 경계하는 느낌이 강했다.
“여긴…….”
“만에 하나 거대 거미가 튀어나올 걸 대비한 걸세.”
이고르 백작은 핼쑥한 얼굴로 얼른 변명하면서 그간 있었던 일을 풀어냈다.
거대 거미들은 쓰는 거미줄과 마비 독 때문에 까다로운 상대긴 하지만, 근력이 약했다.
그 때문에 돌벽을 박살 내기는커녕 두꺼운 나무 문도 쉽게 부수지 못했다.
다만, 잔머리만은 뛰어나 거미줄의 탄성을 이용해 돌 따위 등을 던져서 공격해 왔다.
그 결과 미처 보수하지 못했던 내성 외곽의 일부 구역이 무너져 버렸다.
리온은 그걸 막기 위해 호위병들을 이끌고 나섰다가 거대 거미에게 당한 거였다.
리온은 겨우 목숨만은 건졌지만, 몇몇 호위병들은 잡혔다가 시체로 돌아왔다.
거대 거미가 보란 듯이 내던진 거였다.
다들 그걸 보고 분노했다.
문제는 그 뒤에 벌어진 일이었다.
시체 안에서 거대 거미가 살을 찢고 튀어나오는 참혹한 모습에 다들 경악했다.
이고르 백작은 곧바로 함구령을 내렸지만, 그 끔찍한 소식은 금방 사방에 퍼졌다.
기사와 병사들의 사기가 바닥을 쳤고, 귀족과 평민 할 거 없이 모두 공포에 떨었다고 했다.
지금 리온을 저렇게 둔 건, 병사의 시체를 찢고 거대 거미가 나왔던 것처럼, 리온의 몸에서 거대 거미가 나온 걸 경계한 거였다.
‘그렇다고 해도 자식마저 저렇게 격리하다니…….’
카엘은 그 결단에 감탄하면서도 이고르 백작을 안심시켰다.
“거대 거미에게 다친 정도로는 우려하시는 일이 벌어지진 않을 겁니다.”
“그런가? 다행이로군.”
이고르 백작은 정말 안도한 듯했다.
“바로 치료할 테니, 편안한 곳으로 옮기죠.”
카엘은 그러면서 리온의 상태를 확인한 뒤, 회복 포션과 해독 포션을 마시게 했다.
“으음.”
“리온! 정신이 드느냐?”
의식이 돌아온 리온이 몸을 움츠리는 걸 본 이고르 백작이 기뻐했다.
정작 리온은 겨우 눈을 뜨더니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카엘 님?”
“허허, 자식 키워도 소용없다니까.”
카엘부터 찾는 걸 본 이고르 백작이 허탈하게 웃었다.
그래도 리온이 깨어난 게 기쁜 기색이었다.
“도와주러 왔습니다. 아직 몸 상태가 온전치 않으니 걱정하지 마시고 쉬시죠.”
“…네.”
그 말에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리온이 다시 누웠다.
“다들 뭣들 하느냐. 리온을 어서 침실로 옮기거라!”
그걸 본 이고르 백작이 지시를 내리자 시종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리온이 의식을 되찾자 한숨 돌렸는지 이고르 백작이 은근슬쩍 물었다.
“혹시 지원군도 함께 왔는가?”
물을 수밖에 없는 게 카엘과 함께 온 자들도 프리지를 포함해 넷밖에 안 됐는데, 밖에서 주의를 끌던 동료도 겨우 넷.
도와주러 왔다고 해도 아무래도 불안해할 수밖에 없었다.
“아, 브란 형이 지원군을 이끌고 왔습니다. 지금 인근 마을에서 주둔 중입니다.”
“오! 그렇군. 고맙네!”
곧바로 거대 거미를 몰아낼 걸 기대하는 눈치길래 카엘이 곧바로 덧붙였다.
“당장은 움직이지 않을 겁니다.”
“그, 그런가?”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괜히 일반 병사들을 내세웠다가는 거대 거미의 숫자만 늘리는 일밖에 안 돼서 그렇습니다.”
“하긴 그렇지. 이해하네. 나도 충분히 겪은 일이니까.”
이고르 백작은 얼마 전에 봤던 호위병들의 시체서 나온 거대 거미를 떠올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래서 호위병들의 시체는 잡혀가서 얼마 만에 돌아왔습니까?”
“음? 거의 곧바로였지.”
이고르 백작의 대답에 카엘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는 건 예상대로 아라흐네가 근처에 있겠군.’
시체를 고로드성으로 옮긴다는 마을 주민의 말에 아라흐네가 이곳에 있으리라 짐작했다.
한창 공격 중인 곳에서 바로 알을 까서 거대 거미를 충원하는 게 합리적이니까.
“그래서 저 거대 거미들을 어떻게 상대할 생각인가? 그대가 아무리 강자라 해도 거미줄 때문에 상대하기 어려울 텐데.”
“거기에 대해서는 이미 해결책을 들고 왔습니다.”
“들고 왔다고? 정말인가?”
“여기 샐러맨더의 불꽃 꼬리로 거미줄을 제거할 수 있습니다.”
카엘은 단지 안에서 여전히 불타고 있는 샐러맨더의 불꽃 꼬리를 슬쩍 보여 줬다.
“오! 그거면 우리도 충분히 싸울 수 있겠군. 우리도 함께 싸우겠네!”
이런 위기 상황에도 아직 전의가 충만한 이고르 백작을 보니 든든했다.
하지만.
“싸우시기 전에 거미 여왕인 아라흐네부터 제거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싸우면서 계속 거대 거미들이 늘어날 테니까요.”
“그런데 저 수많은 거대 거미를 뚫고 어떻게 찾으려고 그러나?”
“안 찾아도 됩니다. 알아서 데려다줄 테니까요.”
그 의미를 눈치챈 이고르 백작이 눈을 부릅떴다.
“서, 설마 미끼를 이용하자는 건가?”
“네, 제가 미끼가 되어서 아라흐네를 직접 상대하겠습니다.”
“안 된다. 만약 잘못되기라도 하면 브리운 공작님을 어떻게 보란 말인가? 차라리 시체를 쓰지.”
카엘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시체를 주고 뒤쫓아 가면 눈치챌 겁니다. 작전대로 하면 문제없을 겁니다.”
그러자 잠자코 있던 브로칸이 나섰다.
“차라리 제가 하겠습니다. 제게 맡겨 주십시오!”
“브로칸에게는 따로 부탁할 게 있어.”
“부탁이요?”
“그래, 아라흐네를 잡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야.”
“중요한 일…….”
브로칸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난데없는 소리에 다들 의아해하는 틈을 타서 카엘이 쐐기를 박았다.
“그럼, 한시가 급하니 곧바로 움직이겠습니다.”
카엘은 작전대로 순조롭게 아라흐네 앞까지 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