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s Medicine Sucking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99
99화 거미 여왕 아라흐네 (2)
카엘은 거대 거미가 뜸한 틈에 내성 바깥으로 나왔다.
밖은 이미 빼곡하게 쳐진 거미줄로 봉쇄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카엘은 그걸 자르거나 불태우는 대신 손을 갖다 댔다. 그러자 곧바로 손이 거미줄에 달라붙어 버렸다.
손을 떼기 위해 뒤로 젖히는 순간.
디잉! 하며 진동이 거미줄을 타고 퍼져 나갔다.
거대 거미들이 순식간에 사방에서 나타나 카엘의 팔과 허벅지를 물었다.
마비 독을 주입해 쓰러지게 만드는 거였다.
털썩.
카엘은 그대로 쓰러졌다.
마비 독을 주입한 인간이 꼼짝 않는 걸 본 거대 거미들은 거미줄을 인간의 발에 붙이고 질질 끌고 갔다.
‘역시 멀지 않은 곳에 있나 보군.’
원래라면 거미줄로 고치를 만들어 옮길 텐데, 곧바로 사용할 작정이라 이대로 옮기는 게 분명했다.
사실 카엘은 마비된 게 아니었다.
미리 해독약을 먹고 마비된 척해서 거미 여왕 아라흐네에게 자신을 데려가게 만드는 작전이었다.
문제는 마구잡이로 끌고 가는 탓에 여기저기 부딪히는 중이라는 거였다.
카엘이 갑옷을 입고 튼튼하지 않았다면 옮겨지는 와중에 크게 다쳤을지도 몰랐다.
‘이건 좀 괴롭군…….’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아라흐네의 앞에 도착했다.
‘음,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나.’
아라흐네는 다른 거대 거미보다 작은 체구였지만, 배 부분만은 두세 배는 더 컸다.
무엇보다 주위로 거대 거미 여러 마리를 호위로 두고 있었다.
아까 카엘 일행이 공격해 온 것 때문에 경계를 강화한 거였다.
아라흐네는 새로운 먹잇감을 해치우기 위해 천천히 다가왔다.
‘지금이다!’
카엘은 자신의 손을 묶은 거미줄을 털어 냈다.
빙한목의 냉기로 얼려 버린 거였다.
태워 버리진 못해도 신체에 붙은 거미줄을 제거하는 데는 충분했다.
카엘은 손이 자유를 찾은 동시에 아조트를 뽑아 휘둘렀다.
아라흐네를 노렸지만, 호위를 서던 거대 거미들이 가로막았다.
거대 거미들은 단칼에 쓰러졌지만, 그 틈에 아라흐레는 저 멀리 달아나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눈앞의 인간이 위험하다는 걸 깨달은 모양.
‘판단력은 좋지만. 이미 늦었어.’
카엘이 아조트를 내던지면서 소리쳤다.
“쫓아가!”
-칫, 역시 내가 나서 줘야 하나? 맡겨 두라고! 그보다 너무 빠른…….
투덜대던 아조트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카엘의 괴력 때문에 지금까지 느껴 보지 못했던 쾌속으로 날아가고 있어서였다.
놀란 거대 거미 한 마리가 뛰어올라 막아섰지만, 그대로 꿰뚫고 아라흐네의 배를 관통했다.
푹!
털썩.
아라흐네의 다리에 힘이 사라지며 그대로 무너지듯 쓰러졌다.
‘…이렇게 쉽게 잡힐 줄이야.’
카엘도 살짝 놀랐다.
스스로 움직이는 게 가능한 아조트의 힘으로 도망치는 아라흐네를 쫓아가라고 한 거였는데, 단번에 해치운 거였다.
물론 이거로 끝은 아니었다.
어미이자 거미 여왕을 잃은 거대 거미들이 카엘에게 복수하기 위해 달려들기 시작한 거였다.
“아조트, 어서 돌아와!”
다른 검을 뽑아서 휘두르던 카엘이 소리쳤다.
거대 거미가 공격해 오면서 거미줄을 쏴 대는 바람에 검이 거미줄에 붙어 봉쇄당한 거였다.
그렇다고 빙한목의 냉기를 쓸 수도 없었다.
평범한 검에 빙한목의 냉기를 불어넣었다가는 검이 먼저 박살이 나 버리기 때문이다.
-윽, 붙잡혔어.
아조트가 우는 소리를 냈다. 이쪽으로 날아오는 중에 거미줄을 맞은 거였다.
본래 힘이라면 스스로 오러를 발할 수도 있었지만, 현재 아조트는 그걸 베어 낼 정도의 마력이 없었다.
“이쪽으로 못 오면 내가 가는 수밖에.”
카엘은 거미줄에 붙은 검을 내던지고 샐러맨더의 불꽃 꼬리를 꺼내 휘둘렀다.
화르르륵.
거미줄이 불타기 시작하자 거대 거미들이 주춤했다.
그 틈을 타 카엘은 불꽃 꼬리를 아조트에게 갖다 댔다.
-아뜨드드!
그래도 거미줄은 말끔히 털어 낼 수 있었다.
-이것들… 다 죽었어.
아조트가 분노하며 소리치는데, 이미 거대 거미들이 카엘을 포위하고 있었다.
얼마나 많이 모였는지 새까만 게 어림잡아도 수백 마리는 되어 보였다.
“그래 누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
카엘은 조금도 주눅 들지 않고 한 손에는 아조트를, 다른 한 손에는 샐러맨더의 불꽃 꼬리를 들고 거대 거미와 맞서기 시작했다.
한 번 검을 휘두를 때마다 거대 거미가 쓰러지고, 샐러맨더의 불꽃 꼬리가 거미줄을 태워 버리자 거대 거미들은 다가올 엄두를 못 냈다.
이렇게 무리해 보일 정도로 혼자서 싸우는 것도 카엘이 의도한 거였다.
‘이 틈에 최대한 수를 줄여야 해.’
더는 번식 못 한다고 해도 거대 거미가 도망쳐 버리면 퇴치하느라 골치 아팠다.
실제로 회귀 전 제국은 아라흐네가 출몰해 고통받는 섬나라를 구원하러 갔다.
거기서 아라흐네를 토벌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거대 거미들을 내쫓기만 한 탓에 그 후로도 몇 년 동안 시달렸다고 했다.
한참을 싸운 결과, 거대 거미의 사체가 잔뜩 쌓였다.
거대 거미들도 이미 눈앞의 인간이 지금껏 상대해 본 인간 중에서 가장 강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거대 거미들도 강한 인간을 처음 상대해 보는 것도 아니었다.
얼마 전에 상대한 머리털이 긴 인간도 결국에는 지치게 만들어 쓰러트렸었다.
그 뒤에 다른 인간들이 쫓아오는 바람에 놓쳐 버려 거미 여왕에게 진상 못 하긴 했지만.
반면에 이 인간은 혼자였다.
주위의 다른 인간들의 기척도 안 느껴졌다.
피해가 크더라도 지치게 만들면 충분히 거미 여왕의 복수가 가능해 보였다.
그렇게 판단한 거대 거미들은 계속해서 인간에게 몸을 던졌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거대 거미들은 이상함을 느꼈다.
눈앞의 인간이 도저히 지칠 기미가 안 보이는 거였다.
정확히는 지치는 거 같다가도 금방 회복하는 거였다.
어떻게 된 거지?
거대 거미들은 그 의문을 해소하지 못한 채 하나둘 죽어 나가다 결국 공격을 멈췄다.
저 인간을 지치게 만드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인정한 거였다.
그걸 본 카엘은 속으로 혀를 찼다.
‘치, 여기까진가?’
카엘의 체력이 워낙 강해진 탓에 잘 지치지도 않았지만, 조금 지치면 회복 포션을 먹었다.
회복 포션만 있으면 밤낮없이 며칠 내내 싸울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이 정도 약효를 내는 건 나 아니면 힘들겠지만.’
문제는 거대 거미들이 슬금슬금 물러나는 게 이제 도망치려는 것처럼 보인다는 거였다.
‘생각보다 영악하단 말이야. 하지만.’
카엘은 샐러맨더의 불꽃 꼬리를 거대 거미의 사체에 집어 던졌다.
그러자 시커먼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브로칸과 디오네, 프리지를 비롯해 이고르 백작의 기사와 병사들이 뛰쳐나와 공격에 가담했다.
카엘이 기사와 병사들에게 외쳤다.
“다들 무리하게 공격하지 마세요! 도망치기 힘들게 다리만 공격해 둬도 됩니다.”
기껏 번식 못 하게 여왕 거미를 해치웠는데, 괜히 희생자를 낼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프리지는 울분을 토해 내듯 거대 거미를 공격해서 기어코 두 마리를 잡았다.
브로칸도 신나게 뛰어다니며 거대 거미를 대여섯 마리는 잡아 놓은 듯했다.
기사와 병사들도 카엘의 당부대로 방패로 몸을 가린 채 기다란 창으로 다리를 찔렀다.
디오네는 그 사이에서 화염의 정령으로 적절히 지원했다.
한편 성벽 쪽에서도 카엘의 일행이 나타나서 거대 거미를 공격했다.
패색이 짙다고 여겼는지 거대 거미들은 성을 탈출하기 시작했다.
다들 분투했지만, 천여 마리가 넘는 거대 거미가 고로드성을 탈출하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
그래도 이고르 백작은 매우 기뻐하며 카엘에게 감사를 표했다.
“고맙네! 덕분에 내 성에서 저 괴물들을 몰아낼 수 있었네.”
“당연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보다 아직 끝이 아닙니다. 닐바성으로 도망친 거대 거미들을 해치우지 않으면 또 언제 습격을 당할지 모릅니다. ”
“음, 그렇지. 어떻게 하면 좋겠나?”
닐바성은 거대 거미들이 이곳을 쳐들어오기 전에 미리 점령해 자신들의 영역으로 삼은 곳.
거미 여왕 아라흐네를 잃었지만, 그곳도 수천의 동족들이 지키고 있었다.
그 둘이 뭉치면 여전히 위협적인 숫자였다.
어쩌면 인간의 공격이 와도 할 만하다고 여긴 걸지도 몰랐다.
‘오판이지만.’
카엘은 이고르 백작에게 말했다.
“쫓아가겠습니다. 최대한 숫자를 줄여야죠.”
“그래도 불리하면 이번처럼 도망칠 텐데.”
“제가 생각해 둔 방법이 있습니다. 다만…….”
카엘은 말을 하다 말고 프리지를 쳐다봤다.
아무래도 프리지에게는 불편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걸 눈치챈 프리지가 말했다.
“괜찮으니까 어떤 방도인지 말씀해 주세요.”
“음… 그러지. 닐바성을 통째로 태워 버리는 게 거대 거미를 박멸할 유일한 방법입니다.”
“헉! 성을 불태우다니.”
예상보다 과격한 제안에 다들 충격을 받았다.
프리지는 어느 정도 짐작한 듯 놀라진 않았지만, 심각한 얼굴로 고민했다.
당연했다.
수백 년 동안 내려온 가문의 성을 불태워 버린다니, 결정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고르 백작도 그것만은 막아야겠다 싶은지 카엘에게 물었다.
“다른 방법은 없나?”
“수천 마리를 직접 잡으려 들었다가는 지금처럼 반의반도 못 잡을 겁니다. 그렇게 되면 사방에 거대 거미가 싹 퍼지겠죠.”
그런 일을 막으려면 모인 김에 단번에 불태워 버려야 했다.
하지만 그전에.
카엘은 프리지에게 말했다.
“일단 근처로 가서 생존자가 있는지 확인부터 하자.”
“그, 그래야지. 어쩌면 우리처럼 숨어 있을지도 모르니. 그걸 확인하고 결정해도 늦지 않을 거다.”
“…네.”
이고르 백작의 말에 프리지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카엘 일행은 프리지와 함께 닐바성으로 향했다.
카엘은 큰형 브란이 이끌고 온 클리페우스성의 병사들도 불러 닐바성을 포위하도록 했다.
‘거대 거미의 거미줄을 얻으려면 몇 마리 생포하도록 부탁해야지.’
그사이 디오네와 모르타가 정령들을 이용해 닐바성에 생존자가 있는지 확인했다.
“어때?”
“생존자는 전혀 없는걸. 안 그래, 모르타?”
“네. 정령들이 살아 있는 사람은 없어 보인다고…….”
그 보고에 프리지는 바로 앞의 닐바성을 노려봤다.
이미 가문의 깃발은 보이지 않았고, 새하얀 거미줄로 뒤덮인 성은 거대한 고치처럼 보일 뿐이었다.
그 안에서 아버지 올렉 백작을 비롯해 가족들, 그뿐만 아니라 기사와 병사들 수많은 주민까지.
이미 죽어 거대 거미를 만드는 먹잇감이 되어 버린 모양이었다.
그 아찔한 상황에 눈물이 나오려고 하는 걸 억지로 눈에 힘을 줘 막았다.
그리고 카엘에게 말했다.
“…주십시오.”
“음?”
“태워 버려 주십시오! 저건 더는 저희 가문의 성이 아닙니다!”
프리지는 단호하게 재차 내뱉었다.
카엘은 고개를 끄덕이고 디오네를 쳐다봤다.
디오네도 고개를 끄덕이고 불의 정령을 통해 불길을 일으켰다.
화르르륵!
닐바성을 빙 둘러서 내려놓은 샐러맨더의 불꽃 꼬리를 통해 화염은 순식간에 커졌다.
그 화염은 그대로 닐바성을 집어삼키며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거대 거미들이 놀라서 뛰쳐나왔다.
그냥 불이면 거미줄을 치고 안에서 버틸 텐데, 불의 정령이 일으킨 불길에 닿자마자 전신이 타올라서였다.
그 거대 거미들은 카엘 일행과 클리페우스 전사들의 몫이었다.
특히 클리페우스성의 기사와 병사들은 처음 상대하는 몬스터임에도 침착하게 상대했다.
“아이고, 흉해라. 꿈에서 볼까 무섭네.”
“무섭기는, 난 내 마누라가 더 무섭거든.”
“시끄럽다! 방패병은 거미줄 막고 다리를 노려. 그거면 끝이다.”
“몇 마리 생포해야 하는 것도 잊지 마라!”
다소 시끄러운 모습으로 싸우는 클리페우스성 전사들의 모습을 지켜본 이고르 백작이 감탄했다.
“우리 가문의 병사들도 제법 전투에 익숙하다 했지만, 역시 클리페우스성의 병사들은 정예구나.”
그러나 프리지는 그거에 감탄할 겨를도 없이 처연한 표정으로 닐바성을 바라봤다.
태우라고 했지만, 실제로 불타는 가문의 성을 보니 넋이 나가 버린 거였다.
‘이대로는 안 되겠군.’
그때였다.
“카엘 님! 카엘 님!”
다른 임무를 맡겼던 브로칸이 저 멀리서 돌아오고 있었다.
그런데 등 뒤에 웬 사람을 짊어지고 있는 게 아닌가?
“카엘 님, 말씀하신 마법사의 행방을 아는 자를 잡아 왔습니다.”
“그래? 잘했다.”
“헤헷.”
칭찬을 들은 브로칸이 꼬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카엘은 단도직입적으로 브로칸이 잡아 온 사내에게 물었다.
“이곳에 아라흐네를 푼 마법사는 어디로 갔나?”
“이곳에 아라흐네를 풀었다고?!”
카엘의 말을 들은 프리지가 정신이 번쩍 들었는지 눈을 치켜떴다.
“카엘 님, 그게 무슨 소립니까?”
“여기에 갑자기 저런 끔찍한 몬스터가 나타날 리가 있겠어? 몬스터를 다룰 줄 아는 제국의 마법사가 푼 거지.”
“그, 그런 악독한 짓을…….”
“그래서 그 마법사는 어딨지?”
프리지의 서슬이 시퍼런 탓인지 사내는 순순히 불었다.
문제는 그 내용이었다.
계략이 실패한 뒤, 도망치는 게 아니라 아라흐네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끔찍한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게 아닌가?
그건 바로 회색산맥에 잠들어 있는 드래곤을 깨워 브레프니 왕국을 혼란에 빠트린다는 음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