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ngeon Cleaning Life of a Once Genius Hunter RAW novel - Chapter 366
365. 에필로그 4화 은퇴 (4)
“취직을 하셨다고요?!”
작전 본부, 집무실.
책상 정리를 하고 있던 김민주가 화들짝 놀라며 되물었다.
“그렇대요. 이번 주까지 교육받고, 다음 주부터 출근이라던데.”
한유빈은 소파 팔걸이에 턱을 괸 채로 담담하게 대답했다.
“어, 어떤 회사인데요?”
“……청소 파견 업체.”
“…….”
김민주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골 때린다는 말을 그 표정으로 대신한 것이었다.
“다른 일도 있는데 왜 굳이……?”
“왜 없겠어요. 그런데 뭐, 본인이 했던 일이 편하다는데 어쩌겠어.”
한유빈은 어깨를 으쓱이자, 김민주가 슬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그 회사도 용케 선생님들을 받아줬네요. 곧 해체한다고 해도, 아직까진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분인데.”
“모르고 받아준 거 같던데요?”
“네?”
“저도 좀 궁금해서, 슬쩍 조사를 좀 해봤는데, 악명이 꽤 높더라고요. 월급 적지, 복지 없지, 갑질이다 뭐다 아주 개판이던데.”
“…….”
한유빈은 기지개를 쭉- 피며 말을 이었다.
“그쪽 사장은 보아하니 WDSO가 뭔지도 잘 모르는 것 같고요,”
“아, 아니, 선생님은 왜 굳이 그런 곳을…….”
“뭐, 오히려 좋대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저도 몰라요. 본인이 그렇다는데 뭐. 그리고 어차피 다른 데는 다 떨어져서, 거기밖에 갈 데 없었어요.”
“…….”
김민주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기도 잠시, 이내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영 씨도 알고 있어요? 선생님 취직한 거?”
“글쎄, 아직 모를걸요? 뭐, 때 되면 본인이 직접 말하겠죠.”
김민주 또한 레스토랑 사건 이후로 둘의 기류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더이상은 말을 아꼈다.
그저 결혼은 앞둔 커플이 으레 지나가는 관문이겠거니, 김민주는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던 중 한유빈이 슬쩍 다른 주제를 꺼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민주 씨는 은퇴 계획 있어요? 내일이면 우리 죄다 백수 신세인데.”
“네, 네?”
“뭐야, 설마 아직도 준비 안 해뒀어요? 꽤 계획적인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 그게…….”
“아, 그래도 민주 씨는 크게 걱정 없긴 하겠네. 이번에 경찰이랑 군대에서 헌터 특채 공지했잖아요. 나야 뭐 헌터 면허 짤려서 해당 사항 없지만.”
“아, 아뇨. 사실 생각해둔 게 있긴 한데…….”
한유빈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그녀를 바라봤다.
김민주는 두 손을 꼼지락거리기 잠시.
“거, 검도 학원 차리려고요…….”
“…….”
한유빈의 턱이 순간 떡 벌어졌다.
“거, 검도 학원이요?”
“……네.”
“WDSO 작전 본부장에 세계 랭킹 1위 헌터가?”
“어차피 지금 사태도 종식되면 다 의미 없는 타이틀이잖아요. 저 원래 헌터 되기 전에도 검도 사범이 꿈이었어요.”
“허…….”
한유빈은 기가 찬다는 표정을 짓기도 잠시, 이내 고개를 끄덕거렸다.
머릿속으로 초등학생들을 모아놓고 검도 시범을 보여주는 그녀의 모습을 상상해보니…….
붕붕-
검풍이 휘날리고.
휘이익-
검기가 날아다니고.
‘으아아아!’
아이들은 혼비백산 도망치고.
푸욱. 서겅.
건물이 점점 무너지고 있고.
나름 잘…… 어울리려나.
“그래! 뭐… 하고 싶은 거 하며 사는 거지.”
그 말과 함께 두 사람은 누구랄 것 없이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아무 말 없이 잠시 서울의 하늘을 바라봤다.
서울 하늘은 유난히도 파랬고, 그 아래 길거리는 유난히도 조용했다.
“끝이 나긴 하네요.”
한유빈이 나지막한 한마디를 던졌다.
“그러게요.”
“이래저래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제 보니 그렇게 목숨 걸고 살 일이었나 싶고.”
“그렇게 산 덕분에, 저희가 여기 있는 거 아니겠어요.”
“그럼 뭐해요. 어차피 이렇게 다 끝날 일이었는데.”
“그것도 그렇긴 하네요.”
많은 의미가 담긴 그 대화를 끝으로 기분 좋은 정적이 내려앉았다.
여태껏 느껴볼 수 없었던….
혹은 느끼기 힘들었던 여유.
그 어느 때보다 평화로운 오후임을, 두 사람 모두 느낄 수 있었다.
“아, 이젠 결혼만 하면 되는데…. 결혼은 개뿔, 남자친구도 없네.”
분위기를 환기하고자 한유빈이 김민주를 바라보며 농담을 던졌지만.
“그래도 동료가 있어서 외롭진 않네요. 크크.”
“…….”
어째선지 김민주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다.
“뭐, 뭐예요? 왜 말이 없어?”
“…….”
“아, 하하. 설마 아니죠?”
벌떡 일어나서는 떨리는 눈으로 김민주를 노려봤다.
그녀의 대놓고 제발 아니라고 하라는 표정이었지만.
“…전 남자친구 있어요.”
“말도 안 돼!!‘
조심스럽게 내놓은 그 대답에, 한유빈은 그 자리에서 거품을 물어버렸다.
***
“취직했다고?”
저녁 식사가 끝난 평범한 가정집.
전 WDSO 이사, 이두식은 설거지하던 중 들려온 충격적인 소식에, 손을 멈추고는 되물었다.
“그렇더라고요.”
이아영은 티비 채널을 넘기며 대수롭지 않은 듯 대꾸했지만, 이두식은 기어이 고무장갑을 벗으며 그녀 옆으로 다가왔다.
“그래, 뭐, 내일이면 종식인데, 새 직장 잡는 거 나쁘진 않지. 그래서 어디로 갔대? 한별? GT? 하성일 회장이랑 의형제 수준이던데, 그 정도면 새 계열사 하나 받는 거 아니냐?”
“…….”
이두식은 제멋대로 자신이 아는 범위 내의 말을 쏟아냈고, 이아영은 작은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저었다.
“작은 청소 파견 업체 들어갔대요.”
“…….”
이두식은 말을 아끼길 잠시.
“내가 일을 오래 쉬긴 했나 보다. 그 새끼가 어떤 새낀지 잊어먹고 있었네.”
그 말을 뱉으며 피식 실소를 지었다.
“그런데 넌 표정이 왜 그러냐. 예비 신랑 직업이 마음에 안 들어?”
“제가 그런 거 따지는 사람으로 보여요?”
“……아니면 아닌 거지, 애비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야.”
이아영은 한숨을 푹 내쉬길 한 차례.
“한 번 다퉜다고 저한테 말도 없이 면접 보러 가서는 말도 없이 취직했잖아요. 하루종일 전화도 한 통 없고.”
“뭐야, 그래서 요즘 입이 대빨 나왔던 거야?”
“제가 언제…….”
“너무 섭섭해하지 마라. 그놈도 나름, 생각이 있었겠지.”
“무슨 생각이요?”
“원래 그런 놈이잖냐. 자기가 잘못했다고 생각하면 아무 말도 안 하고 혼자 해결하려고 말이야.”
“…….”
이아영은 대답을 아낀 채 잠시 기억을 되짚었다.
사실 딱히 오래 생각할 것도 없었다.
6년 가까운 시간 내내, 그는 늘 한결같던 인물이었으니.
‘잘못이라…….’
이두식은 그것이 레스토랑에서 결혼 이야기로 다툰 것이라 생각한 모양이었지만, 이아영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만약 그가 잘못해서,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직장을 잡았다고 하면….
그건 단순히 레스토랑에서의 실수가 아닐 것이다.
그가 말했던 것처럼, 그의 과거, 다른 세계에서의 잘못이겠지.
그때의 자신을 마주 보고,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아니, 그런다고 그가 결과적으로 지금 세계에서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이건 그저 스스로에게 주는 시련일 뿐이다.
그렇게라도 해야 자신에게 떳떳해질 수 있고, 그래야지만 비로소 자신과 결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하여간, 쓸데없는 생각만 많아서는.’
이아영은 입을 삐쭉 내밀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의 그런 성격과 기묘한 인생사까지 모두 포함해 그를 좋아하는 것을.
그가 어떤 행동을 취하고 있다는 것은, 결국 그 나름대로 답을 찾기 위한 과정이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그는 멋진 답을 찾아오겠지.
지금은 그저, 그가 스스로 답을 내놓을 때까지 잠시 기다리면 된다.
그럼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아무도 생각지 못한 답을 들고 다시 나타날 테니까.
“그런데 말이다.”
그때,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겨 있던 이두식이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김준우 그놈, 취직한 거 너한테 말 안 했다면서?”
“네.”
“그런데 넌 어떻게 알고 있는 거냐?”
이두식의 질문에 이아영은 당연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저 WDSO 협회장이에요.”
“…….”
“뒷조사 좀 했죠. 보통 다 하지 않아요?”
“…….”
아무렇지 않게 엄청난 이야기를 하는 이아영을 바라보며, 이두식은 지그시 눈을 감으며 생각했다.
그놈, 결혼하면 고생 좀 하겠다는 것을.
***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는 시각, 압구정의 어느 대형 쇼핑몰.
“이야, 이번에 아주 에이스가 들어왔네!”
거품을 내서 기둥을 닦고 있던 유 반장이, 이제 막 바닥 청소를 끝낸 나를 바라보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하하, 감사합니다.”
나는 머쓱한 표정으로 인사를 전했지만, 그 모습을 안 좋게 보는 시선도 있었다.
“참나, 하루 이틀 하다가 도망치는 놈들이 한둘이여? 유 반장. 일찌감치 신경, 꺼.”
“에헤이, 들어오는 신입마다 그렇게 거리 둬서 쓰겠어? 강씨는 좀 유하게 살 필요가 있구먼.”
“…….”
유 반장의 오랜 동료로 보이는 강씨.
그는 반장의 말에도 여전히 나를 한껏 경계하는 눈빛으로 노려봤다.
“그나저나 전에 무슨…… 회장이었다면서?”
“아, 네, 뭐, 그렇죠. 하하하.”
그때, 유 반장이 뜬금없이 던진 질문에 나는 눈치를 보며 대답했다.
“대단하네, 그려! 아직 젊은 것 같은데 회장도 하고. 그래서, 무슨 회장이었던 겨?”
“회장은 무슨 회장! 해봤자 동네 회장이었겠지!”
“에잇, 강씨! 그러지 말라니까!”
유 반장의 만류에도 여전히 강씨는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잘 대해줘도 금방 나가버리니, 아예 정을 붙이지 않으려는 것이니.
나 또한 굳이 더 말하지 않았다.
모르면 몰랐지, 알아봤자 서로 불편하기만 할 테니까.
그렇게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는 것을 뒤로 하고, 대걸레와 물통을 들고 2층으로 향하던 중.
따르릉―
주머니 깊숙이 찔러 놨던 핸드폰이 울렸다.
이내 장갑을 벗고 전화를 받으니.
「사, 사무총장님! 다른 회사에 취직하셨다는 게 정말입니까?」
“…….”
다짜고짜 귀가 얼얼해질 정도의 소리가 들려왔다.
한별 그룹의 젊은 총수.
하성일 회장이었다.
나는 핸드폰을 손으로 감싼 채, 슬쩍 주변 눈치를 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건 또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걸 어떻게 모릅니까. 지금 기업들 사이에서 사무총장님 이력서가 돌아다닌다고 소문 쫙 퍼졌는데.」
“…….”
「듣자하니 긴급 이사회 소집되고, 아주 난리도 아니랍디다. 사무총장의 경고장이 돌고 있으니 다들 조심해야 한다고.」
이건 또 뭔…….
「아무튼! 취직이라니, 저 섭합니다. 미리 말씀해주셨다면 어떻게든 조처를 했을 텐데요!」
“무슨 말입니까. 애초에 저 데려갈 생각도 없었다면서요.”
「그건 당연히……, 정계로 가시는 줄 알고…….」
“하아.”
「다른 회사를 구하신다는 걸 알았으면 당연히 제가 모셔갔죠! 아, 아니!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까 이쪽으로 오시는 게 어떻습니까? 안 그래도 이번에 새로운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하 회장님.”
「네, 네…?」
나는 그의 말을 끊은 뒤, 작게 숨을 들이쉬고는 대답을 이어갔다.
“신경 써주셔서 고맙습니다만, 전 이게 편합니다.”
「…….」
그는 대답을 아끼길 잠시, 이내 차분해진 목소리로 다시금 말을 이었다.
「제가 너무 제 생각만 밀어붙였군요. 알겠습니다. 사무총장님 뜻이 그러시다면.」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도 형님, 혹시 생각이 바뀌신다면…….」
“끊자, 성일아.”
「넵!」
그 한마디를 남기곤 그는 뒤도 안 돌아보고 통화를 종료했다.
다시 핸드폰을 주머니에 찔러놓고 일에 집중하려던 그때.
따르릉―
소문이 퍼지는 건 빛보다 빠르다고 했던가.
하성일 회장의 연락을 시작으로, 계속 전화가 들이닥쳤다.
편창현 통제팀장, 차석현 길드장을 포함한 협회 내 각 작전 팀장들, 그리고 조현민 전 대통령까지.
거의 10분간 연이어 쏟아지는 전화를 받으며 같은 말을 반복하길 몇 차례.
“하아…….”
마지막 통화가 끝나고 나는 진이 쪽 빠진 채로 한숨을 내뱉었다.
이제 올 사람에게선 다 온 것 같으니, 다시 일에 집중하려던 찰나.
따르릉―
“빌어먹을…….”
곧바로 또다시 울린 핸드폰.
발신자 이름을 보자마자 순간 숨이 턱 막혀오는 기분이었다.
현 WDSO 협회장이자 현 여자친구.
이아영이었으니.
한참을 고민하던 끝에, 전화를 받았고.
“……여보세요.”
조심스레 한 마디를 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