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arth-Style Savior Archetype RAW novel - Chapter 103
103화. 지옥에서 온 적임자(3)
대성 그룹의 서울 본부 지하 4층.
정장 차림의 세 남자가 대회의실 중앙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다름 아닌 특수전단 1팀장 장태원과 그의 심복인 2번, 3번 요원.
역사가 오래되지 않은 조직이라 팀 넘버가 꼭 전투력 순위를 의미하진 않았지만 1팀만큼은 예외였다. 특수전단에서 처음으로 출범시킨 팀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장태원은 특수전단을 어느 부서 직할로 넣을지 의견이 분분하던 때부터 학살을 저질러 온 인물. 그런 만큼 결단력이나 현장에서의 과감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사내에서의 입지 역시 무시 못할 수준이었고 말이다.
어디까지나 대성의 더러운 일을 처리하는 ‘해결사’에 불과하긴 했지만 지금 세상이 어떤 세상인가. 장태원의 위상은 일찍이 회사가 부여한 직급을 초월해 있었다.
그에게 상사라고 부를 만한 존재가 있다면 서울 본부장 최두호 정도일 터.
그러나.
“…….”
툭.
태원이 의자 다리만 남은 본부장석을 구둣발로 밀어내자 그 밑에 널브러져 있던 발목 두 개가 나타났다.
“잔치를 거하게 벌였네.”
빈집털이를 당한 기분.
태원의 얼굴에 쓴웃음이 어린다.
두툼한 발목에 끼워져 있는 구두가 영락없는 본부장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최두호는 선천적으로 발등이 두꺼워서 기성화를 신지 못했다. 그래서 항상 맞춤 구두를 주문했는데, 이때마다 본인의 이니셜을 구두 측면에 새겨 넣었다.
지금 보고 있는 적갈색 구두처럼 말이다.
슥.
태원이 핏물 고인 발목에서 구두를 빼내자 나머지 두 요원이 움찔하며 뒤로 물러섰다.
“새끼들아, 나름 기념비적인 인물이시다.”
태원은 구두 두 짝을 한 손으로 들고서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회의실 탁자에 둘러앉아 있었을 나머지 임원들은 하나같이 목이 떨어졌거나 몸통이 2분할 돼서 여기저기 흩어진 채였다.
“보통 악취미가 아닌데요.”
2번 요원이 미간을 찌푸리며 자신의 감상을 이야기했고, 이에 태원이 휴대폰을 꺼내 들며 덤덤하게 말했다.
“그게 다냐? 내 생각엔 우리 숙소도 박살 났을 거 같은데.”
“……!”
이 말에 비로소 2번과 3번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뒤늦게 깨달은 거다. 본부장과 임원들이 도륙당했다는 건, 자신의 가족들 역시 무사할 리 없다는 의미라는 걸.
그사이 태원의 휴대폰에선 통화 연결음만이 반복적으로 흘러나왔다.
뚜르르르.
뚜르르르.
“씨발 새끼…….”
태원이 습격자를 향해 욕을 내뱉었다.
2번, 3번 요원도 황급히 가족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팀장과 마찬가지로 연결음만 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탓.
이윽고 태원이 전화를 끊더니 다른 곳으로 통화를 시도했다.
그러자 대번에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
-예. 팀장님.
4팀장 백성한이었다.
운이 좋다고 해야 할까, 나쁘다고 해야 할까. 각자 임무 때문에 본부를 떠나 있던 이 두 개 팀만 살아남은 것이다.
“지금 서울인데, 빈집털이를 당했네. 모조리 작살났다. 본부장이고 뭐고.”
-……쿠데타입니까?
독립을 원하던 팀장 중 하나가 기어코 일을 벌인 게 아니냐는 물음이었다.
“아니다. 잃어버린 헬기가 돌아와 있더라고.”
-02호요?
02호 백색 의료 헬기. 블루 리스트의 구원자A가 강탈해 간 대성의 자원.
-아니…….
말문이 막히는지 백성한이 거친 날숨을 뱉었다.
“두 시간 뒤에 남부 게이트에서 보자. 우리가 늦으면 뒈진 줄 알고 처신해라.”
남부 게이트. 경기도 남쪽에 있는 대성 소유의 물류 창고를 의미했다.
-저희도 30분이면 도착합니다.
“됐어, 등신들아. 30분이면.”
태원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상대가 헬기를 여기 두고 간 걸로 봐선 멀리 나가지 않았을 터. 그러니 앞으로 30분이면 놈과 조우해서 전투까지 치르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이쪽이 놈과 싸워서 이긴다면 문제없겠지만 만에 하나 지기라도 하면 30분 후에 도착할 4팀은 놈의 디저트가 되는 것이다.
“이제 끊는다. 남부로 가라.”
태원은 건조하게 당부하고서 통화를 마쳤다.
그러곤 좌중의 두 요원을 향해 물었다.
“저격조는 다 내보냈나?”
이에 2번이 고개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예. 연구동 쪽에 둘, 본부 3층에 셋. 나머지는 지상 로비에서 대기 중입니다.”
“준비 보고받아.”
“예.”
태원의 지시에 2번이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
“저격 1조부터 준비 보고 해라.”
치직.
그러나 즉각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1조.”
칙.
여전히 무응답.
“이 새끼들이.”
2번 요원이 미간을 구기려는 순간.
치직.
-1조입니다. 연구동에 누가 와 있는 것 같습니다.
연구동에서부터 특이 사항 보고가 날아들었다.
* * *
같은 시각, 연구동 5층.
“그거 진짜 쏠 생각은 아니시죠? 쏘는 순간 우리 위치 발각입니다.”
용헌의 이 말에 동훈이 뒤를 돌아봤다.
“이미 발각됐을 걸요. 1층부터 시체가 즐비하잖아요.”
“그거랑 우리 위치가 정확히 알려지는 건 또 다른 문제…… 어?”
용헌이 말을 하다 말고 갑자기 표정을 굳혔다.
저 앞쪽, 블라인드가 처진 사무실 창문 안쪽에서 무언가를 본 것 같았기 때문이다.
“……?”
동훈도 용헌의 시선을 따라 사무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왜요?”
“뭔가 봤어요. 블라인드 사이로.”
“그럼 사람이겠죠.”
그러더니 동훈이 시계를 확인했다.
대략 3분이 지났다. 정우가 시간 계산을 잘못한 게 아니라면 2분 뒤 그가 이곳에 도착할 것이다.
“열어 봅시다.”
동훈은 용헌이 만류하기도 전에 사무실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러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문고리를 돌렸다.
턱.
“잠겼네.”
“무, 무슨 짓입니까? 일단은 우리도 숨어야…….”
용헌이 당황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는 사이 이곳 5층과 4층을 연결하는 층계 쪽에서 꽤 날렵한 기척이 났다.
“억.”
용헌의 낯빛이 창백해진다. 저건 아무리 봐도 대성 측 추격자들이었으니까.
각성자들인만큼 눈 깜짝할 사이에 들이닥칠 거다.
설마 이렇게 어이없이 죽나?
찰나였지만 머릿속에 전 부인 조선희의 모습이 스쳐 갔다. 이어선 왜인지 모르겠지만 강성호의 근육질 몸매가 그려졌고 말이다.
박정우의 과업 완수를 마저 돕지 못할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든 건 그다음이었다.
조종사를 잃은 구원자는 앞으로 어떻게 처신할까?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헬기를 포기할까?
아니다. 아마 이곳에 새로 온 요원 중 하나를 어떻게든 구워삶아서 새 조종사로 쓸 거다.
“…….”
생각이 여기까지 이른 용헌은 피식 웃게 됐다.
자신의 부채 의식이 생각보다 강하다는 자각도 하게 됐고.
하지만 같은 순간, 동훈은 죽을지 모른단 생각 따위는 좁쌀만큼도 하고 있지 않았다.
캉, 카앙!
오히려 위치 발각을 감수하고서 소총의 개머리판으로 문고리를 박살 내고 있었다.
“어?”
상상도 못한 그의 돌발 행동에 용헌이 경악했고, 때맞춰 문짝에서 떨어져 나온 문고리가 바닥으로 박혀 들어갔다.
티잉!
청명한 마찰음.
이쯤이면 허공에 대고 총을 갈겨 댄 것과 별반 차이가 없을 터.
“제길……!”
층계 쪽을 홱 돌아본 용헌의 시야에 정장 차림의 두 사내가 들어왔다.
그사이 동훈은 총구를 전방으로 한 채 호기롭게 사무실 문을 박찼다.
콰앙!
그러자 여태 어떻게 기척을 죽이고 있었나 싶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그의 눈앞에 나타났다.
“동훈 씨! 저것 좀…….”
사색이 되어 동훈의 옷깃을 붙들던 용헌도 사무실 내부를 보고선 순간 말을 잃었다.
4평 남짓한 공간에 20명 가까이 되는 사람이 꽉 차 있었기 때문이다.
슥.
동훈이 시계를 다시 확인한다.
“1분.”
“예?”
용헌이 이렇게 되묻자 동훈이 소총을 장전하며 대답했다.
“약속을 잘 지키는 분 아닙니까. 분명 1분 안에 올 겁니다. 그러니까 우린 60초만 버티면 돼요.”
그러면서 사무실에 모여 있던 사람들에게 총구를 들이밀었다.
“어어…….”
겁에 질린 사람들이 총구를 피해 맞은편으로 종종걸음을 치자 동훈이 위협적인 목소리로 윽박질렀다.
“동작 그만! 지금부터 한 명이라도 움직이면 무차별 사격이다.”
그러고선 사무실 바닥을 향해 발포했다.
타앙!
“헉!”
“꺄악!”
사람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제자리에 석고상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이리 붙어요. 거기 있으면 죽습니다.”
상황 통제를 마친 동훈이 사람들에게 바짝 붙으며 용헌을 잡아끌었다.
대성 측 요원들이 사무실 앞에 도착한 것도 이때였다.
“……?”
상상도 못한 전개였는지 두 요원 모두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다들 나오십시오. 뭐하는 겁니까, 대체.”
요원 중 하나가 사무실 직원들에게 손짓하자 동훈이 총구를 위협적으로 움직이며 경고했다.
“말했지. 하나라도 움직이면 다 같이 뒈지는 거다.”
이를 빠득 갈며 눈을 번득이는 동훈의 모습은 정말이지 악귀 같았다.
이에 직원들은 특수전단 요원을 지척에 두고서도 발끝 하나 꼼짝하지 못했다.
“하, 씨발.”
또 다른 요원이 짜증 난다는 듯한 표정으로 동훈과 용헌을 노려봤다.
두 사람과 사무실 직원들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뭘 어떻게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단순 사무직들만 모여 있다면 또 모르겠으나 각자 목에 건 네임 카드를 보니 연구원급도 끼어 있어서 자체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무전기가 켜졌다.
치익.
“팀장님, 계십니까? 1조입니다. 5층에 와 있습니다.”
-어, 보고해라.
“조무래기들을 찾았는데, 상황이…….”
자신들도 이걸 무어라 보고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지 난감한 얼굴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자 무전기 너머의 목소리가 짧게 물었다.
-목표물은 확실히 아니고?
이에 무전기를 든 요원이 동훈과 용헌이 가지고 있는 소총을 슬쩍 봤다.
“……예, 아닙니다.”
-그럼 대기해. 곧 도착한다.
무전은 간단히 끝났다.
이내 찾아온 정적.
아까와 달리 두 요원의 얼굴엔 이유 모를 자신감이 깃들어 있었다. 아마 팀장이 와서 깔끔하게 해결할 거란 믿음이 있는 듯.
하지만 지원군을 부른 건 동훈과 용헌도 마찬가지.
동훈이 시계를 보며 광대를 실룩이자 아까 무전기를 들었던 요원이 표정을 구겼다.
“뭘 웃어?”
그리고 이때 용헌의 휴대폰이 울렸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
두 요원을 포함해 장내 모든 시선이 용헌에게로 쏠린다.
“받아요, 얼른.”
동훈이 직원들에게 소총을 더 가까이 겨누며 용헌을 재촉했고, 곧 통화가 시작됐다.
“저, 전화 받았습니다.”
-예, 지금 몇 층입니까?
박정우의 목소리였다.
왜 바로 오지 않고 전화를 걸었는가?
용헌은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일단 묻는 말에 대답했다.
“5층입니다.”
이쯤 오자 사무실 입구를 틀어막고 있던 두 요원도 통화 상대가 누구인지 깨달았다.
“저거, 혹시.”
두 사내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는 순간.
콰과과곽!
연구동 5층의 벽면 한쪽이 통째로 박살 나며 시퍼런 빛 덩어리가 날아들었다.
“이 씹……!”
타앗!
요원들이 정수 파동인 줄 오인하고서 각자 다른 방향으로 몸을 날렸을 정도다.
그러나 용헌과 동훈만큼은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정우 씨……?”
용헌의 음성 끄트머리가 가늘게 떨린다.
상대가 누구인지 확신은 했으되 자신이 보고 있는 것에 약간의 당혹감이 들어서였다.
“저건 또 뭔…….”
동훈도 눈을 껌뻑이며 박정우의 모습을 몇 번씩 다시 확인했다.
그새 무언가 일이 있던 게 분명해 보였다.
유리막처럼 매끈하던 그의 보호막이 지금은 마치 다이아몬드처럼 다면체가 되어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