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arth-Style Savior Archetype RAW novel - Chapter 118
118화. 파동(1)
오후 2시 39분. 남양주의 성역.
두 사람이 팽팽하게 맞섰다.
다름 아닌 박민구와 김중성이었다.
중성이 민구의 일행인 정혜와 세준을 받아 줄 수 없다고 하자 언쟁이 시작된 것이다.
“정신 나갔군. 그런 이유로 멀쩡히 살아 있는 사람을 내치겠다고?”
“그런 이유…… 가 아니라 원칙이지요.”
진노한 민구와 달리 중성은 매우 침착했다.
중성이 상대가 누군지 알면서도 대립각을 세우기로 마음먹었다는 건, 그만큼 이 사안이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일 터.
“주제넘은 말인 줄은 알지만…… 이번만은 예외처리하면 안 될까요? 이대로라면 수색 활동을 더 할 수 없게 될 텐데요.”
이번엔 수색조 소속이자 선희의 남편인 강성호가 조심스럽게 발언했다.
본인의 안위와 관련된 일이라 잠자코 있을 수가 없었던 거다.
그러나 중성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앞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이 나타날 때마다 그들의 요구 사항을 다 들어 줄 겁니까? 심지어 이건 성역의 근간을 뒤흔드는 일입니다. 저 두 사람을 들이면 여태 죽여 온 사람들은 뭐가 되지요? 잘 생각해야 합니다. 규칙이라는 건, 엄중히 지키지 않으면 반드시 무너집니다.”
약속하지 않았는가.
방주 좌석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필수적인 인재만 영입하자고.
그래도 최소한의 인의를 지키고자 임산부의 남편까지는 받아 주는 것이다.
그런데 수색조 화력을 위해 잉여 인력을 둘이나 들인다? 이건 규칙을 중히 여기는 중성으로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고, 부당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물론 민구 일행은 외부에서 쭉 생활해 온 만큼 이 상황이 황당할 수밖에 없겠지만 말이다.
“저희와 지내시려면 민구 씨도 성역의 룰에 따라야만 합니다. 이건 우리가 예외 사항을 받아 주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민구 씨가 우리 룰에 동의하는가 여부의 문제인 겁니다.”
중성이 딱딱한 어조로 이야기하자 결국 민구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미친 새끼들이군.”
그가 이를 꽉 물면서 살의를 뿜었으나 역시 정수는 활성화되지 않았다.
만약 이곳이 성역 바깥이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몇몇은 끔찍한 상상에 진저리 쳤다.
“어떤 말씀을 하셔도 저 두 사람을 성역에 들이는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중성이 쐐기를 박자 민구가 나머지 주민을 둘러보며 너희들도 같은 생각이냐는 눈빛을 보냈다.
“…….”
이에 가장 불편해진 것은 대리자인 선웅.
중성이 ‘두 사람을 성역에 들이는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라고 했지만 엄밀히 따지면 사실이 아니었다.
선웅이 마음만 먹으면 지금 당장 민구의 일행들을 방주에 태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성 씨 의견을 묵살하고 내가 행동하는 순간, 이 공동체는 끝이야.’
규칙이 실권자에 의해 어느 때고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면 어떻게 규칙이 힘을 가질 수 있겠는가.
또한 언젠가 다가올 평화로운 시대를 대비해서라도 규칙은 바로 세워져야만 했다.
“그럼 우리로선 여길 떠나는 수밖에 없겠구려.”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한 민구가 아까보다 풀이 확 죽은 음성을 냈다.
“그렇다면 저 호랑이의 치료도 도와드릴 수 없습니다. 바로 떠나 주십시오. 사실 민구 씨를 여태 살려 두고 있는 것도 엄청난 호의니까요.”
중성이 계속해서 ‘민구 씨’라고 하며 상대와의 거리를 벌린다. 자신에겐 박민구도 그저 ‘외부자1’에 불과하다는 걸 일부러 드러내는 것이다.
“……씨발. 어지간히 해야지.”
성난 민구는 입술에 힘을 주며 냄새가 누워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사실 그도 중성의 입장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었다.
다만 자신이 직접 구했고 짧게나마 여정을 함께 해 온 자들을 ‘입장권’으로 소비해 버린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이다.
‘여전히 좆같은 세상이군.’
민구가 성역의 대지에 얹어진 발가락을 꼼지락거린다.
정혜와 세준을 데리고서 여길 떠나면, 대신 냄새가 오늘 안에 죽는다.
운이 아주 좋아 멀쩡한 병원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기적이 그리도 적시적소에 찾아온다면 그걸 기적이라고 부르겠는가?
“저 녀석이 회복할 때까지만 시간을 줘. 그동안은 수색조인지 뭔지 하는 걸 내가 보호해 주지.”
결국 민구가 타협안을 내놨다. 그로선 자존심을 정말 많이 굽힌 결정이었다.
그러나 중성은 완고했다.
“안 됩니다. 어차피 수색 일을 계속 도우실 게 아니라면 저희로선 차선책을 빨리 진행하는 게 장기적으로 이익입니다.”
그리고 이건 민구에게 ‘딜’을 거는 것이기도 했다. 타협안을 받아 주면 민구는 호랑이가 회복하자마자 정말 여길 떠날 것이다. 하지만 이쪽이 타협안을 거부한다면?
‘그럼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수밖에 없겠지.’
호랑이를 포기하거나 일행 둘을 포기하거나.
중성은 죽은 듯 널브러져 있는 호랑이를 곁눈질했다.
명일의 말에 따르면 저건 정수 20만 개짜리 구원자. 민구에게도 다른 일행 못지않은 의미를 지닌 생물이리라.
‘같은 사람으로서 못할 짓이지만 어쩔 수 없어. 민구 씨는 캐릭터가 너무 강하다. 반드시 규칙에 종속되도록 만들어야 해.’
중성은 이제 민구를 보고 있었다.
만약 이 사내가 끝내 여길 떠나기로 결정한다면 그 즉시 수색조를 보호할 각성자를 육성해야 할 거다.
이리로 찾아오는 외부자들의 정수를 그에게 몰아주는 등의 방식으로 말이다.
‘사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선웅 씨에게 민구 씨를 죽이도록 하고…….’
그 정수를 새 히트맨 후보자에게 먹이는 것.
생각이 여기까지 이른 중성은 자신에게 놀라 눈을 번뜩 떴다. 팔엔 소름이 촘촘하게 돋아 있었다.
‘나도 미쳐 가는군.’
그럼에도 저것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데엔 이견이 없었다. 민구가 박정우의 아버지만 아니었어도 이미 결단을 내렸을 거다.
“그러면…….”
이윽고 민구가 착잡한 얼굴로 무언가를 이야기하려는 순간.
두두두두…….
요란한 소리가 성역을 덮쳤다.
“……?”
모두가 설마 하는 얼굴로 상공을 바라봤고, 곧 다들 흰색 의료 헬기를 보게 됐다.
“정우 씨……?”
명일이 이렇게 읊조리자 민구가 누구보다도 놀란 얼굴로 상공을 바라봤다.
‘정우가 왔다고?’
빠른 속도로 성역 중앙부까지 날아온 헬기는 다소 급하게 착륙을 시도했다.
투웅!
굉음을 내며 바닥과 맞닿은 백색 스키드.
이어서 헬기 출입문이 열렸고, 그 안에서부터 성역의 주인이자 국내 구원자 1위가 나타났다.
척.
성역을 떠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셔츠에 정장 바지, 운동화 차림.
반면 그 뒤로 나타난 동훈은 온몸에 피를 뒤집어쓴 상태였다. 강남 세브란스에서의 전투 때문이었다.
“무,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급히 마중을 온 선웅이 동훈을 보고서 놀라자 정우가 미간을 살짝 구기며 물었다.
“아뇨, 그것보다 비상 신호를 보내셨던데 뭐가 문제…….”
자연스레 장내를 둘러보던 정우가 갑자기 목을 뻣뻣하게 세웠다.
시야에 자신의 아버지, 박민구가 들어와 있었으니까.
그러다 이내 침착함을 되찾고서 선웅에게 다시 질문했다.
“다들 괜찮아 보이는데, 절 호출할 정도의 일이었습니까?”
그러자 선웅이 고개를 살짝 조아렸다.
“예, 일단 중성 씨와 이야기를 해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 * *
오후 2시 44분.
정우가 계속해서 시계를 본다.
그를 불러낸 선웅과 이 문제를 야기한 중성으로선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이 구원자가 무얼 하다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몹시 바빠 보였으니까.
심지어 이 난리통에 아버지를 다시 만나게 됐는데도 제대로 된 눈빛조차 주고받지 않고 있었다.
“그러니까, 원칙상으론 저 두 사람을 받아 줄 수 없는 건데 아버지가 이걸 용납하지 않는 상황이군요. 제 아버지라 임의 처리하지도 못하고?”
정우가 전해 들은 상황을 압축하자 중성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임의 처리라…….’
몇 번씩 곱씹게 되는 표현이다.
그사이 민구가 대성한 아들을 바라보며 타협안을 다시 제시했다.
“이곳의 규칙이 그렇다면 억지 부릴 생각은 없다. 다만 저 녀석은 당장 치료가 필요해. 원한다면 저놈이 회복할 때까지만 여기서 지내며 너희 일을 도우마. 그다음엔 조용히 떠날 거고.”
“…….”
정우는 아버지와 눈을 잠시 맞추고선 치료가 필요하다는 호랑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저 녀석, 20만 개나 가지고 있네요. 밖으로 내보내면 저희로선 상당한 손해죠.”
“뭐……?”
민구가 움찔하며 되물었으나 정우는 말을 계속 이었다.
“왜 여길 떠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죠? 성역에 보탬이 되지 않을 거라면 아버지를 살려 드릴 수 없어요. 원칙 이전에 여기서 보내드린다 해도 언젠간 죽게 되실 테니까.”
이계의 괴물들에게 정수를 빼앗기느니 차라리 여기서 죽으란 소리다.
“……!”
정우의 말에 민구는 물론 중성을 포함한 모든 주민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저, 정우 씨.”
민구를 회유하기 위해 과감한 딜을 걸었던 중성조차도 정우를 만류했다.
그러다가 중성의 머릿속에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쳐 갔다.
‘설마, 정우 씨도…….’
박민구를 여기 붙잡아 두기 위해 초강수를 둔 건 아닐까?
아들이니까, 직감적으로 알지 않겠냐는 거다. 웬만해서는 아버지의 고집을 꺾을 수 없으리란 걸.
하지만 이것 역시 그저 일방적인 추측에 불과했다. 지금 정우의 표정으로 봐선 순도 높은 진심 같았으니까.
“진심으로 하는 말이냐……? 도움이 안 되면 나도 죽이겠다고?”
민구가 얼이 빠진 표정으로 묻자 정우의 손이 초조한 표정을 짓고 있던 정혜를 향해 휘둘러졌다.
홱.
“억!”
“미친!”
마음을 졸이고 있던 일부 주민이 자신도 모르게 욕을 내뱉었고.
푸아아악!
이들의 음성이 허공으로 녹아듦과 동시에 정혜의 자리가 휑하니 비었다.
“너 이 새끼……!”
순간적으로 장내의 공기가 새빨갛게 달구어지는 듯했다.
박민구가 어마어마한 살기를 뿜어낸 것이다.
파악!
그가 바닥을 박살 낼 기세로 몸을 움직였고, 이를 보고 있던 성호와 선웅이 황급히 민구를 붙들었다.
“아버님! 잠시!”
선웅은 차마 진정하란 말까진 하지 못했다. 누가 봐도 방금 그건…… 많은 것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었다.
“박정우!”
잔뜩 조여진 민구의 성대가 아들의 이름을 아주 날카롭게 쏘아 올린다.
이미 정우는 저 멀리 물러서 있던 세준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김세준.
구세군 목사 김석환의 아들이자 광신도들에 의해 목이 매달렸던 소년.
이쯤이면 정수가 활활 타오르고 있어야 하건만 성역의 절대적인 힘이 세준의 정수를 차갑게 식혀 버렸다.
“아버지가 너희를 아끼는 것 같지만, 그래도 죽어 줘야겠다.”
“아…….”
세준은 정우가 내뱉은 대사의 의미를 조금도 이해할 수 없었다.
정혜가 이미 죽었다는 사실도 믿을 수 없었고, 자신 또한 이 세계에서 사라질 거란 예감 역시 꿈을 꾸는 듯 흐릿했다.
슥.
마침내 정우가 팔을 뻗는다.
그러곤 망설이지 않고 소년을 지웠다.
성역의 한 지점을 비춘 푸른빛.
작은 체구의 세준은 그 어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