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arth-Style Savior Archetype RAW novel - Chapter 121
121화. 파동(4)
‘미친 새끼들……!’
정우의 앞에 엎드려 있던 선우는 몸을 바짝 웅크린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내 위로 저런 머저리들이 버티고 앉았으니 이런 괴물이 나올 수 있었던 거구나……!’
48위, 김선우의 통찰력이 생애 최대치까지 치솟는다.
눈앞의 구원자는 그 누가 와도 잡을 수 없는 존재였다.
선우도 1위를 직접 보기 전까진 ‘설마 100만 개 이상 가지고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나름 최상위 채널에 속한 자신이 17만 개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러니 30위권은 대략 20만 개 후반, 20위권은 30만 개 정도, 10위권은 또 얼마…… 이런 식으로 추산했던 거다.
인간으로서 지극히 자연스러운 사고이긴 했으나 그가 간과한 사실이 있었다.
그건 바로 이 모든 일은 인간 차원의 사건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어느 분야든 1위는 상식의 범주를 벗어난다는 점이었다.
쉬아아앗!
3인조가 거리를 더 좁혀 오면서 정수 창을 또 날렸다.
양측의 거리는 아직 20미터 이상이었다.
그럼에도 자신 있게 저격을 시도한다는 건 저쪽도 상당한 양의 정수를 지녔다는 의미이리라.
그러나 아무리 날고 기는 구원자라 해도 정우의 손바닥 위일 수밖에 없었다.
‘장석표가 여전히 4위를 유지하고 있어. 그러니 너희가 아무리 발악해 봐야 날 이길 순 없을 거다.’
채널에 집결 공고를 낼 당시, 정우에게 힘을 실어 준 장석표가 여전히 ‘4’라는 숫자를 붙이고 있지 않던가?
다시 말해 4위 밑으론 전부 40만 개 이하의 각성자라는 거다.
따라서 한꺼번에 열 명쯤 연합하지 않는 이상 중하위권에겐 가망이 없었다.
파치칫!
세 줄기의 정수 창이 정우의 보호막을 두드렸고, 이쯤 해서 양측의 거리가 10미터 밑으로 줄어들었다.
“……?”
이윽고 3인조의 표정이 굳는다.
2,445,742개.
정우의 정수 총량을 드디어 본 것이다.
“2백…….”
누군가 맥이 풀린 목소리로 1위의 정수량을 읊는 순간, 정우의 뒤편에서부터 거친 기척이 일었다.
타앗!
또 다른 구원자가 반대편에서부터 접근 중이었다.
‘셋이 아니라 네 명이었군.’
자기들 딴엔 히트맨을 숨겨 놓은 것이었겠지만 정우로선 고마울 따름이었다. 알아서 목숨을 쾌척해 주니 굳이 ‘심사’를 할 필요도 없고 얼마나 편한가.
정수 칼을 빼 든 채 맹렬하게 다가오는 사내의 정수량은 31만 개. 제법 실력자였다.
그리고 나머지 셋은…….
“쪼, 쫄지 마! 어차피 도망치기엔 늦었어!”
이 대사를 친 녀석을 포함해 평균 20만 개 수준이었다.
얼추 짐작건대 40위 중반의 구원자 셋과 10위권 하나가 도원결의를 맺은 것 같았다.
파아앗!
너무 당황해서인지 4인조 중 한 명이 이 짧은 거리에서 정수 파동을 뿜었다.
이에 정우가 보호막을 확장시켜 파동을 막아 냈다.
자칫하면 김선우가 데려온 세 기술자까지 휩쓸릴 뻔했기 때문이다.
“어……!”
이를 보고 가장 놀란 건 역시 수의사를 포함한 비각성자 셋.
엄밀히 말하면 정우가 본인들을 보호해 주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 게 아니었다.
딱 봐도 전부 괴물들뿐인데, 이 와중에 1 대 4의 싸움이 가능하다는 것 자체에 놀란 거다.
‘아예 수준이 다르구나.’
수의사는 비로소 깨달았다.
수십 분 전, 김선우가 왜 그리도 비장한 표정으로 ‘이제 구원자 1위를 만나러 갈 겁니다.’라고 이야기했는지 말이다.
퀴기긱!
날이 잔뜩 선 정수 칼날이 푸른 다면체를 할퀴었으나 흰 균열이 생긴 것은 도리어 칼날 쪽이었다.
정우는 압도적인 정수량을 바탕으로 네 구원자의 공격을 전부 받아 내며 선우 일행에게 일렀다.
“이제 정리를 시작할 테니까 제 뒤로 붙어요. 잘못하면 같이 죽을 수 있습니다.”
“억?”
이 말에 소방관이 가장 먼저 움직였고, 이어서 수의사와 배관공이 정우의 뒤편에 바짝 붙었다.
이들은 잘 몰랐지만 이 구도는 사실 정우가 행운동에서 민간인들을 데리고 진입로에 접근할 때와 똑같았다.
마지막으로 48위 구원자, 선우가 은근슬쩍 정우 뒤로 붙을 무렵.
휙.
박정우의 팔이 허공을 갈랐다.
그러자 시퍼런 정수 파동이 전방을 부채꼴로 가르며 구원자 둘을 순식간에 동강 냈다.
어이가 없을 정도의 화력 차이.
“씨이발……!”
결국 히트맨 역할을 맡았던 ‘31만 개’가 잽싸게 뒤를 돌았고, 그사이 남은 구원자가 무(無)로 돌아갔다.
저마다 본인의 출신 구역에선 최강자로 군림했을 자들이건만 1위 앞에선 ‘잡몹’에 불과했던 것이다.
심지어 정우는 히트맨의 탈주를 허락하지도 않았다.
놈이 채 5미터를 움직이기도 전에 뒷덜미를 붙잡아 바닥에 메다꽂았다.
콰득!
31만 개짜리 각성자답게 재빨리 보호막을 감긴 했지만 이미 정우의 손이 목을 붙들고 있는 상태라 곧 보호막에 균열이 일어나며 산산이 부서졌다.
“이……!”
최후의 방어 수단까지 박살 나자 사내의 눈에서 투기가 걷히고 공포가 자리 잡았다.
그는 구원자가 넷 정도 모이면 당연히 1위를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연합원의 정수를 합하니 무려 90만 개가 넘었으니까.
게다가 살인 기계인 구원자들이 힘을 합했다는 사실도 놀랍지 않은가?
하지만 모든 게 착각이었던 거다.
‘고,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였군. 어떻게 이런 자가 존재할 수 있지?’
사내는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최상위 구원자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바라봤다.
그러자 정우의 입에서 선우에게 했던 것과 같은 질문이 흘러나왔다.
“넌 몇 위지? 그래도 한 자릿수는 되나?”
이건 현재 4위인 장석표의 입지를 확실히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당장은 정수 43만 개로도 순위권을 차지하고 있지만 정우의 생각엔 오늘 중으로 추월당할 것 같았다.
“……10위입니다.”
사내가 정우의 시퍼런 눈빛을 이기지 못하고 본인의 순위를 밝힌다.
‘제길, 역시나.’
정우는 눈을 꾹 감았다 뜬 뒤 다시 상대에게 물었다.
“이제 널 죽일 건데, 내가 알아 둬야 할 사항이 있나? 성역으로 꼭 데려가야 하는 인재를 어디 숨겨 두고 왔다든가.”
“…….”
이에 사내가 허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여태 일행 없이 혼자 다녔거나 모종의 이유로 사람들을 전부 잃었다는 뜻일 거다.
정우는 알겠다는 듯 머리를 끄덕인 뒤 천천히 서너 걸음 물러섰다.
‘10위’는 그 모습을 보고서 곧 자신에게 닥칠 일을 예감했다.
아마도 최대한 흔적을 남기지 않고 죽이려…….
푸아아악!
또 한 명의 구원자가 사라졌다.
이 여파로 기존 11위가 10위로, 12위는 11위로, 최초의 채널에 대격변이 일어났다.
또한 앞서 구원자가 셋이나 더 죽었으니 하위권 입장에선 4단계씩 도약하게 된 셈이었다.
[12] 악몽 : 어? [23] 빛 : 세상에. [32] 기사도 : 끝내 이렇게 되네요. [46] 적안 : 와…… 뭐지 이거. [42] 청해 : 순위가 갑자기 엄청 오르지 않았어요? 방금 한두 명 간 게 아닌 거 같은데?대번에 채널의 구원자들이 동요하기 시작했고, 이어서는 기가 막힌 일이 벌어졌다.
| 47위 구원자가 채널에 접속했습니다.
| 48위 구원자가 채널에 접속했습니다.
| 49위 구원자가 채널에 접속했습니다.
| 50위 구원자가 채널에 접속했습니다.
넷이나 되는 ‘신입’이 나란히 입장한 것이다.
[7] 음양 : 제가 경고했잖습니까. 순위권자가 다른 구원자를 살릴 이유가 없다고.그러자 사정을 모르는 신입 중 하나가 7위를 보고서 깜짝 놀라 채팅을 했다.
[48] 항우 : 와……. 여기가 소문만 무성하던 1번 채널입니까? 정말 한 자리 숫자가 눈에 보이는군요.그래도 바로 아래 채널에선 상위권이지 않았겠는가.
그저 문자열일 뿐임에도 모종의 패기 같은 게 느껴졌다. 내가 언젠간 너희를 다 제치겠다는 투의.
물론 방금 하위권 4인이 줄지어 작살나는 걸 본 기존 인원들로선 가소로울 뿐이었다.
[9] 검 : 한 자리 순위뿐인가? 강남 세브란스로 가 봐. 1위를 직접 만날 수 있으니까. [48] 항우 : 예?이 와중에 위험한 장난을 치는 9위.
정우는 일련의 대화를 보면서 자신의 정수 총량을 점검했다.
파앗.
의식을 집중하자 머릿속에 복잡한 숫자가 하나 떠오른다.
「3,354,907」
‘330만 개. 아직 모자라.’
북에서 온 최충훈이란 구원자가 정우를 보며 가망이 없다고 했을 때가 대략 240만 개였다.
그만큼 북의 1위가 강력하다는 의미.
더군다나 북은 이쪽보다 진척도…… 그러니까 정수가 순위권자들에게 모이는 속도와 진입로 폐쇄 진도가 훨씬 빨랐다.
이대로라면 1위 유지는 고사하고 이 나라의 진입로를 다 닫기도 전에 북에 밀려 전멸할 거라는 이야기다.
슥.
정우가 뒤편으로 고개를 돌리자 미동도 없이 숨을 쉬고 있던 선우가 몸을 움찔했다.
“추, 축하드립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300만 개까지 몸집을 불린 상대에게 일개 하위권 구원자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
정우는 선우의 축하에 잠자코 그를 바라보다가 건조한 음성으로 운을 뗐다.
“아까 하던 이야기나 마저 하죠. 제가 당신을 성역으로 데려가야 하는 이유가 뭡니까?”
* * *
비슷한 시각, 성역에 마련된 임시 수술실.
최성재가 마스크에 가려진 입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으…… 씨발. 이미 지랄 났네.”
냄새의 상처를 들춰 보니 감염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진땀이 뻘뻘 난다.
이 짐승을 소생시키지 못하면 민구가 자길 죽이려 들 거란 걸 잘 알아서였다.
“이 씨발, 씨발.”
바닥에 비닐을 깔아 두긴 했지만 행여나 먼지가 날릴까 봐 땅바닥에 화풀이할 수도 없었다.
머리 위엔 나무토막을 붙여서 만든 프레임이 낡은 천막을 가까스로 받치고 있었고, 창문까진 만들 여력이 없었기에 사실상 암실이었다.
그래서 대안으로 천장 프레임에 온갖 조명을 매달아 놨는데, 제각기 광도가 달라서 불빛의 잔영이 서로 겹치고 갈라지고 난리도 아니었다.
“아오.”
현기증이 나는 듯해서 상체를 뒤로 살짝 젖히자 이 반동 때문에 오른손의 메스가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렸다.
“어어?”
푹.
번개처럼 비닐을 뚫고 땅바닥에 비스듬히 박힌 메스.
“…….”
성재는 심호흡을 크게 하며 마음을 가라앉힌 뒤 장갑을 벗고 잠시 나갈 준비를 했다.
아무래도 도우미가 하나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임시 수술실의 출입구는 총 세 겹의 천막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성재는 두 번째 천막까지 걷어 낸 뒤 바깥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저기, 이봐요! 명일 씨? 한 사람 더 있어야겠습니다! 민구 씨 말고 다른 지원자 좀 뽑아 주십시오!”
그러나 바깥에서 대기 중이어야 할 명일은 기척조차 내지 않았다.
대신 어떤 시끄러운 소리가 멀리서부터 들려왔다.
“아니, 이 시국에 자리를 비우고 어딜 간 거야……?”
설마 어마어마한 외부자가 나타나서 성역의 보호막이라도 깨부쉈는가?
아니면 선웅이 미처 막기도 전에 이 안으로 들어온 외부자들이 총기를 난사했다던가.
“…….”
덜컥 겁이 난 성재는 되는 대로 수술복을 벗은 뒤 천막 너머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그러자 갑자기 짙은 피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윽, 이게 무슨.”
반사적으로 미간을 찌푸리던 그가 희고 붉은 것들을 발견한 건 엉거주춤한 자세로 천막을 빠져나온 뒤였다.
“엉……?”
성재가 꿈을 꾸는 듯 몽롱한 표정으로 눈을 껌뻑인다.
울긋불긋한 가운. 뭐가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매우 커다란 상자.
강남 세브란스의 전문의들이 수술실 앞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