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arth-Style Savior Archetype RAW novel - Chapter 130
130화. 개벽(7)
오후 6시 43분.
효은 교회 본당 4층의 대예배실.
저녁 예배가 시작되려면 17분이나 남았음에도 벌써 대부분의 신도가 모여 있었다.
지구상에 몇 명이나 남아 있을지 알 수 없는 파이프 오르간 연주자가 계단식으로 배치된 건반을 두드리며 전주를 뿌려 댔고, 흰 가운을 입은 성가대원들도 속속 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우와 세용은 예배실을 내다볼 수 있도록 창이 나 있는 대기실에서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물론 여전히 피가 한 방울씩 떨어져 내리는 장석주 목사의 머리를 든 채로 말이다.
“…….”
세용은 창밖의 군중에게 꽂혀 있는 정우의 눈동자를 응시했다.
미동도 없는 검은자위. 지금은 또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제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장태호가 죽었으니 신도들과 정상적인 대화는 하기 어려울 겁니다.”
세용은 막연한 느낌으로 운을 뗐다. 뭐라도 말해야 할 것만 같아서였다.
“차라리 두 사람을 산 채로 끌고 와서 고해성사라도 시켰다면 상황이 좀 나았을지도 모르는데요…….”
이건 은근히 정우의 기만 행위를 비난하는 대사.
세용의 시선은 이제 정우가 들고 있는 장석주의 머리에 붙어 있었다.
그러자 정우의 무덤덤한 눈빛이 세용에게로 향했다.
“착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전 오로지 본인이 살기 위해서 성역에 헌신할 사람을 찾고 있는 겁니다. 종교적인 동기가 있는 사람은 마다하고 싶군요.”
이건 세용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당신이 성역에 무사히 입성하더라도 그곳에서 포교 활동 따위를 할 생각은 말라는 의미인 것이다.
또한 정우의 입장에서도 ‘생존 본능’ 이외의 다른 동기는 결코 신뢰할 수 없었다.
살고자 하는 욕구는 그 존재가 죽기 전까지 계속된다.
하지만 종교를 비롯한 수많은 동기는 변덕스러울 수밖에 없지 않은가?
심지어 방금 전에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는 광경까지 보고 오는 길이다. 그 탓에 정우로선 어떤 존재가 온전히 가족을 위해 살아갈 수 있다는 명제에도 동의하기 어려웠다.
타인을 향한 애정이 본인의 생존 본능보다 더 강력해질 수는 있지만 대상과의 관계, 상황 등에 따라서 마음이 바뀔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는 거다.
그러니 가장 일관성 있는 동기를 고른다면 결국 ‘자신의 생존’ 하나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성역에 들일 수 없습니다. 그게 종교 때문이라면 더욱 그렇고.”
정우는 이 말을 하면서 대기실에 비치된 무선 마이크 두 개를 집어 들었다.
‘왜 두 개를……?’
세용은 멍한 표정으로 정우의 뒤를 쫓았다.
곧 대기실 출입문이 활짝 열렸고, 설교자를 위한 널찍한 강단이 두 사람 앞에 나타났다.
장내의 모든 시선이 평소보다 일찍 열린 대기실 쪽으로 쏠린 건 당연한 일이었고 말이다.
“…….”
정우는 강단 중앙으로 천천히 나아가면서 말없이 객석을 둘러봤다.
강단을 꼭짓점으로 해서 부채꼴로 펼쳐진 자리들이 북악산 벙커의 대회의실을 연상하게 했다.
적갈색 장의자 위에 옹기종기 앉은 사람들은 저마다 불안한 표정으로 수군거리고 있었는데, 그러다 강단에 오른 두 인물 중 하나가 원세용 부목사라는 걸 깨닫고 탄성에 가까운 소리를 냈다.
“헉!”
“목사님?”
“저 사람이 왜 여기 와 있어?”
제법 호의적인 신도도 있었지만 날카로운 반감을 보이는 자도 상당수였다.
“보안팀은 어디서 뭘 하는 거야……?”
“끌어내야 하지 않아요? 저기가 어딘데.”
“곧 예배 시작인데, 이게 무슨.”
점점 장내가 시끄러워지기 시작했고, 여론 역시 원세용을 끌어내란 쪽으로 서서히 기울었다.
그리고 이때 갑자기.
찌이잉!
모두의 입을 단번에 막아 버릴 정도로 불쾌하고 위협적인 소리가 예배실을 쑤시고 들어왔다.
정우가 마이크 중 하나를 강단 위에 내던진 탓이었다. 전원을 켠 채로.
“아…….”
자신도 모르게 귀를 막으며 몸을 움츠렸던 세용은 눈앞의 구원자가 방금 무얼 한 건지 바로 알아차렸다.
‘……지구를.’
지구를 따라 한 거다.
이 모든 사태가 시작됐던 월요일 아침, 지구가 설문을 시작하기 전에 들려줬던 신호음 말이다.
“아아.”
이윽고 정우가 손에 들고 있던 또 다른 마이크의 전원을 켜며 입을 열었다.
“나쁜 소식부터 전하겠습니다. 우선 이곳 8층에 살던 목사는 여러분을 구할 능력이 없는 자였고…….”
다음엔 손에 쥐고 있던 장석주의 머리를 객석 방향으로 던졌다.
휙.
다소곳한 자세로 앉아 있던 신도들은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감도 잡지 못한 채,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드는 무언가를 따라 고개를 움직였다.
그러곤 ‘그것’이 객석 첫째 줄의 바로 앞에 코를 처박은 뒤에야 사태를 깨달았다.
“억!”
“이 씨발!”
“모, 모, 목사님……?”
다음엔 너 나 할 것 없이 튕기듯 일어나더니 강단의 반대편으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육중한 장의자가 빼곡하게 들어찬 예배실에서 마음처럼 쉽게 움직일 수 있겠는가?
“비, 비켜요!”
“나와!”
“조심해, 제발! 넘어진다고!”
장내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여러분, 잠시 진정하고 기다려 주십시오……!”
재앙을 직감한 세용이 바닥에 떨어진 마이크를 얼른 주워 들며 외쳤으나 이미 정우가 움직이고 있었다.
슥.
예배실의 출구 방향을 향해 손을 뻗더니 그대로 정수 파동을 뿜어낸 거다.
취아아앗!
장내를 사선으로 가로지른 파동은 예배실 출구는 물론이고 비교적 빠르게 탈주에 성공했던 신도 수십 명마저 삼켜 버렸다.
덕분에 세 사람 정도 드나들 수 있던 출입문이 전차가 지나가도 될 정도로 널찍하게 바뀌었으나 그 누구도 감히 그리로 달려가지 못했다.
대신 각자 몸부림치던 자리에 그대로 굳어서 고개만 뒤로 돌렸다.
“…….”
시뻘건 느낌의 정적.
정우는 이들이 비로소 대화할 준비를 마쳤다고 생각하고서 다시 마이크를 입가에 가져갔다.
“보셨다시피 장석주는 제가 죽였지만 장태호는 직접 죽일 수준조차 되지 않아서 장석주가 처리하도록 지시했습니다. 그랬더니 정말 죽이더군요.”
“……?”
믿기지 않는 대사가 대예배실의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자 신도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사실 여부를 떠나서 내용 자체만으로도 역겨운 마음이 든 거다.
“우리를 모욕하지 마라! 차라리 죽……!”
대번에 어떤 중년 남성이 정우를 향해 몸을 돌리며 고함을 쳤고, 말을 끝까지 맺기도 전에 정수 창이 머리를 꿰뚫었다.
푸악!
짤막한 파열음과 함께 사내의 몸뚱어리가 비틀거리다 뒤로 맥없이 넘어갔다.
그러자 더는 정우에게 맞서는 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훅, 훅, 후욱.”
대신 이때부터 누군가 거친 숨소리를 계속 내기 시작했는데, 뭔가 해서 고개를 돌려보니 오르간 연주자가 건반 앞에 앉아서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쇼크로 인해 호흡 곤란이 온 거다. 여태 자리를 지키고 있던 것도 아마 너무 무서워서 다리가 굳어 버린 탓이었을 터.
“…….”
정우가 점점 창백해져 가는 연주자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고 있자 세용이 마이크에 대고 애처롭게 말했다.
“으, 응급조치 같은 게 가능한 분 안 계십니까? 저대로 두면 죽을지도 모르잖아요.”
다소 아이러니한 대사였으나 어쨌든 누군가 세용의 부름에 응했다.
슥.
“그럼 제가 좀 봐도 될까요?”
까치발을 하며 손을 들어 보인 건 3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어느 여성이었다.
“예. 나오세요, 얼른.”
세용은 이 말을 하면서도 본능적으로 정우의 눈치를 봤다.
그러나 의외로 정우가 그를 제지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의사입니까? 그쪽은.”
잰걸음으로 인파를 헤쳐 나오는 여자에게 질문을 던지기까지 했다.
그런데 상상도 못한 답변이 돌아왔다.
“아니요.”
“그럼?”
“조종산데요.”
조종사. 일순 정우는 자신의 위치가 절대적 ‘갑’에서 ‘을’로 곤두박질친 것 같다는 직감이 들어 표정을 굳혔다.
상대는 아직 모르겠지만 그에게 조종사란 더없이 소중한 인재였기 때문이다.
“헬기를 몰 줄 안다는 소립니까?”
정우가 계속 질문을 던지자 여자가 지금은 바쁘다는 듯한 제스처를 했다.
오르간 연주자의 눈이 거의 뒤집혀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
일방적으로 대화를 거부당한 정우가 입을 다물자 객석 쪽의 누군가가 대신 설명해 줬다.
“정소희 씨는 외국 항공사 부기장이십니다.”
“부기장……?”
정우는 입이 쩍 벌어지려는 걸 가까스로 참았다.
정소희, 38세.
유럽 항공사 TAL 소속의 항공기 조종사.
정우와 나름의 역사를 공유해 온 용헌을 완벽히 대체할 순 없겠지만 능력적으론 훨씬 뛰어날 게 자명한 인재였다.
‘맙소사, 그럼 헬기만 다룰 줄 아는 게 아니겠군.’
경비행기부터 대형 항공기까지 웬만한 비행체는 어지간하면 조종할 줄 안다고 봐야 할 거다.
그사이 소희는 연주자를 정우에게서 멀리 떨어뜨려 놓은 뒤 호흡을 유도하고 있었다.
아마 저런 요령도 조종사 생활을 하면서 기본기로 익힌 것이리라.
“저런 사람을 찾고 계시던 게 아닙니까?”
아니나 다를까, 세용이 다가와 나지막하게 물었다.
“정확히는 통제가 가능한 인재를 찾고 있는 겁니다.”
정우는 모호한 말로 대답한 뒤 다시 신도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스윽.
“……!”
그가 마이크를 들어 올리기 무섭게 신도들이 움찔거린다. 이젠 반사적 반응에 가까웠다.
“두 번은 이야기하지 않을 테니 잘 들으십시오. 저는 현 시점 이 나라에서 가장 유력한 구원자입니다. 유일한 안전지대인 성역을 직접 만들었고, 여러분을 그곳까지 살려서 데려갈 힘도 가지고 있습니다.”
구원자, 안전지대, 성역.
하나같이 정우가 이곳에서 보여 준 모습과 대치되는 단어들이었다.
무려 몇 사람은 자신이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 살며시 팔을 꼬집어 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자리의 모두를 살려서 데려갈 수는 없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성역 운영에 필수적인 인재만 살릴 겁니다.”
정우가 말을 마치자 신도들이 앞다퉈 손을 들었다.
그새 체득한 것이다. 난데없이 나타난 절대자와 대화하는 방법을.
“예.”
정우가 맨 앞줄의 남성에게 발언을 허락하자 그가 벌벌 떨리는 목소리를 냈다.
“인재…… 라고 하시면 정확히 어떤……?”
이에 정우가 현재 성역의 상황과 이미 방주에 탑승한 자들의 특징, 차세대 할당제 등에 대해 간략히 이야기했다.
이건 그로써 엄청난 배려를 해 주는 셈이었는데, 이렇게까지 시간과 정성을 할애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정소희란 여자 때문이었다.
외항사의 부기장이 섞여 있는 수준의 그룹이라면 또 다른 인재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거다.
그러나 일부는 이 상황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정우가 성역에 대해 설명해 주는 사이, 인파 외곽을 구성하고 있던 20명 정도가 예배실 출구를 향해 내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기회조차 가지지 못한 채 죽느니 뭐라도 자기 가치를 어필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정우는 건조한 음성으로 말하며 두 번째 탈주자들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러곤 이번에야말로 쐐기를 박겠다는 듯 본 실력을 보였다.
뚜드득.
그의 몸을 감싸고 있던 보호막이 다면체로 바뀌더니 곧 수십 줄기의 가시를 뿜어냈다. 그것도 전방에 장벽처럼 늘어진 사람들의 사이로 말이다.
“헉!”
“으억?”
정우가 뿜은 가시들은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의 팔과 다리 등을 아슬아슬하게 지나서 아주 정확히, 탈주자들만을 꿰뚫었다.
“……세상에.”
세용마저 놀랄 정도의 정확도였으니 좌중의 신도들이 느꼈을 공포감은 부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아…….”
모두가 침음을 흘리며 아주 천천히 뒤를 돌아봤고, 그사이 구급 조치를 마친 정소희도 정우에게서 약 10미터 떨어진 지점에 우두커니 서서 정신 나간 광경을 목도했다.
머리 또는 가슴 중앙 따위가 무참히 꿰뚫린 탈주자들.
심지어 일부는 아직 숨이 붙어서 기괴한 신음을 뱉어 내고 있었다.
츠릅.
이어서 정우가 가시를 회수하자 허공에 맥없이 걸려 있던 사람들이 마치 줄 풀린 꼭두각시처럼 바닥에 널브러졌다.
날 설득하지 않으면 너희는 결코 여길 벗어날 수 없다, 라는 명확한 메시지.
객석의 신도들은 이미 통제 상태에 돌입한 상황이었고, 남은 건 정소희뿐이었다.
정우는 몸을 살짝 돌려 그녀를 바라보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헬기도 몰 줄 압니까? 만약 성역을 위해 일할 의향이 있다면 살려 주겠습니다.”
그러자 소희가 이마를 찌푸리며 손등으로 코를 막았다. 강단 밑쪽에서 굴러다니는 장석주의 머리통에서부터 비릿한 냄새가 올라오고 있어서였다.
그러더니 짧지만 굵은 대답을 내놨다.
“내가 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