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arth-Style Savior Archetype RAW novel - Chapter 142
144화. 신세기(1)
* * *
오전 9시 34분.
남양주 다산 신도시 중심부.
명일은 몇 번씩 휴대폰을 껐다가 도로 켰다.
“…….”
인터넷은 물론 전화 신호도 잡히지 않아서였다.
일대의 기지국과 통신 허브들이 파괴됐거나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산 넘어 산이네.’
명일이 인터넷을 쓰려고 한 이유는 다름 아닌 등 뒤의 호랑이 때문이었다.
이 맹수의 습성 같은 걸 좀 알아 두면 어떨까 했던 것인데…….
크릉.
여느 때처럼 ‘냄새’가 또 콧김을 내뿜으며 낮게 울었고, 이에 제3차 수색조 사람들이 몸을 움찔했다.
성역에서 진행됐던 오늘 조례에서 중성이 발표한 수색조 구성원은 다음과 같았다.
호랑이, 냄새.
서기, 강명일.
수의사, 김경채.
형사, 이성태.
4만 개짜리 각성자, 정한일.
이를 결정한 중성으로선 냄새를 믿고 제법 큰 투자를 한 셈이었다. 사람을 넷이나 투입했으니까.
이 중에서 각성자인 한일은 사실상 짐수레를 끌기 위한 자원이었고, 수의사인 김경채는 냄새의 환부를 지속적으로 살피기 위해서 붙였다고 봐야 했다.
성태는 총을 워낙 잘 다루고 사람을 제압하는 데도 능해서 전투를 보조하는 역할이었다.
각성자와 겨루진 못하겠지만 민간인들을 붙들거나 할 때엔 큰 도움이 될 거다.
그리고 명일은.
“으음.”
그는 자신이 실질적인 책임자 신분으로 뽑혀 온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초대 투표자 중 하나였고, 그나마 원년 멤버에 가까운 사람이었으니까.
즉, 이 사내의 실제 능력과 별개로 상징성을 띠는 것이다.
가문의 깃발이나 왕의 혈통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따라서 명일에게는 중성 같은 카리스마나 결단력이 없지만 그럼에도 현재 리더 신분이기에 모두가 그의 지시에 복종할 터였다.
그래서 지금 명일은 부담감에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었다.
‘너무 긴장하지 말자. 전력상으론 크게 위험할 일이 없어.’
그는 스스로를 격려하며 뒤편의 호랑이, 냄새를 힐끔거렸다.
성역이 부여한 ‘정통성’의 영향권 바깥에 있는 유일한 존재였으니까.
그래도 중성과 이야기가 잘됐으니 여기까지 따라 나온 것이겠으나…….
‘이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긴 한 걸까? 저 녀석 딴엔 그저 나들이를 나왔다고 생각할지도 모르는데.’
명일의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사이, 권총을 든 채 선봉을 맡고 있던 성태가 너무 크지 않은 목소리로 모두에게 알렸다.
“여기부터 미개척지입니다.”
박민구가 이끌었던 2차 수색조가 한 번도 와 보지 않은 곳이란 뜻이었다.
지도상으론 다산동의 서쪽 끝자락.
여기에서 조금만 더 가면 구리역이 나오고, 곧 구리시 외곽으로 진입하게 된다.
“…예, 다들 조심합시다.”
명일은 긴장한 목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주변 풍경은 여태 보아 온 것과 다를 바 없이 흔한 도심지였지만 미개척지에 들어왔다는 이야길 듣고 나니 모든 것이 달라 보였다.
민간인은 물론 언제고 살기등등한 각성자들과 마주칠 수 있다는 소리 아닌가.
그만큼 은닉된 자원도 많겠지만 말이다.
드르륵, 드륵.
정한일이 담당한 수레에선 바퀴 소리가 계속 요란하게 났다.
개활지도 아닌 도심지에서 이렇게 소음을 달고 다닌다는 건 사실상 자살행위.
“2차 때도 수레를 끌고 나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때는 어떻게 돌아다녔죠? 지금 우린 너무 눈에 띄겠는데.”
초조해진 한일이 명일에게 대책을 요구하자 2차 당시 현장에 있었던 성태가 대신 대답해 줬다.
“그때도 지금과 마찬가지였습니다. 다만 찾아오는 사람을 민구 씨가 전부 정리해 주셨죠.”
“아…….”
이내 한일이 멍한 표정을 지었고, 곧이어 모두의 시선이 이번 수색조의 화력 담당, 냄새에게 쏠렸다.
“그럼 저분이…… 민구 씨 정도로 활약해 주실 수 있는 겁니까?”
한일의 이 말에 냄새가 귀를 쫑긋 세웠다.
인간들이 자신을 가리켜 종종 ‘저분’이라는 표현을 쓴다는 걸 그새 체득한 탓이었다.
“글쎄요, 저도 호랑이와 다녀보는 건 처음이라…… 당사자가 알겠죠.”
성태가 지극히 당연한 대답을 내놓으며 입꼬리를 움찔거렸다. 이 모든 게 왜인지 우스꽝스러워서였다.
하지만 이 우스운 상황에 목숨이 달렸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됐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을 미리 좀 보호해 둘 필요는 있지 않을까요?”
성태가 냄새를 향해 에둘러 말했다. 당장 적이 없더라도 보호막을 전개해 두는 게 좋지 않겠냐는 말이었다.
만약 어디서 총알이라도 날아온다면 대번에 구성원 하나를 잃지 않겠는가.
그러나 짐승을 상대로 돌려 말하는 게 썩 현명한 일이 아니라는 것까진 미처 몰랐다.
크릉.
냄새가 또 콧김을 내뿜더니 고개를 들었다.
이에 다들 드디어 호랑이의 비호가 시작되는 줄 알았으나.
* 움직인다.
녀석은 이렇게 말한 뒤 어딘가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갈 뿐이었다.
“뭐죠?”
한일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수색조 리더인 명일을 바라봤다.
“일단 따라가 봅시다. 뭔가 감지한 것 같아요.”
애초에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냄새가 없다면 이 수색조는 구리시 쪽으로 단 한 걸음도 더 나아갈 수 없었으니까.
드르륵, 드륵.
다시 수레가 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명일을 포함한 네 사람은 정신없이 냄새의 뒤를 쫓았다.
“자, 잠깐!”
한 1분쯤 지났을까. 갑자기 냄새가 속도를 내기에 명일이 볼품없는 목소리로 외쳤다.
그러나 이미 뭔가에 관심이 끌린 맹수를 저지하기엔 호소력이 부족했다.
파앗!
몸을 파랗게 빛내기까지 하며 땅을 박차는 냄새.
“미친……!”
네 사람은 순식간에 시야에서 멀어지는 맹수의 뒷모습을 보면서 경악했다.
지구의 생물이 맞나 싶을 정도의 이동 속도를 보고서 놀란 게 아니었다.
“우리더러 어쩌라는 거야……?”
이쪽은 겨우 4만 개짜리 각성자 하나만을 데리고 있지 않은가.
일방적으로 무방비 상태에 놓이게 된 이 상황에 놀란 것이다.
“아무래도 저희와 이렇다 할 유대가 없다 보니 본능에 더 충실한 것 같습니다.”
수의사 김경채가 패닉에 빠진 사람들을 향해 나지막하게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번 일은 단순히 ‘짐승이라 그렇다.’라며 넘어갈 수 없는 일이었다.
앞으로도 이런 일이 계속 벌어진다면 누가 저 짐승과 수색조에 편성되려 하겠는가? 이건 신뢰도의 문제였다.
캬오오!
멀리서부터 냄새의 성난 울부짖음이 들려온다.
“엇.”
소리가 들린다는 것 자체가 의외로 멀지 않은 곳에 녀석이 있다는 뜻이었다.
“서두릅시다.”
명일이 얼굴을 굳히며 얼른 가자는 듯 손짓했다.
그리고 그의 대사엔 ‘우리를 위해서.’라는 뒷말이 생략되어 있었다.
* * *
“헉, 허억……!”
진땀을 뻘뻘 흘리며 달리던 네 사람이 심상치 않은 기척을 느낀 것은 약 3분이 지난 뒤였다.
다산동과 구리시 외곽 사이에 놓인 다리를 건너자 한산해 보이는 동네가 나타났는데, 바로 정면으로 보이는 공업사 건물 안쪽에서 굉음이 연이어 터져 나오고 있었다.
투타탕!
쇠 파이프 더미 같은 게 한꺼번에 무너지는 듯한 소리였다.
보나 마나 냄새가 저 안에서 난동을 부리고 있는 것일 터.
“맙소사.”
명일과 세 사람은 휑한 도로를 무단횡단해서 공업사를 향해 부리나케 달려갔다.
철판을 대충 덧대어 만든 외벽은 이미 흉물스럽게 찌그러졌고, 그 안에선 무언가 정신없이 날아다니고 있었는데…….
“헉.”
좀 더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다름 아닌 냄새였다.
움직임이 워낙 빨라서 뭔가가 좌우로 날아다니는 것처럼 보였던 거다.
그리고 미친 듯이 날뛰는 이 짐승 사이엔 예닐곱 정도 되는 사내들이 악을 쓰고 있었다.
“뒤쪽으로! 뒤쪽으로 빠져!”
“왼쪽으로 몰아!”
“아니, 이 병신들!”
서로를 향해 욕지거리를 내뱉기도 하고, 냄새의 발톱을 피해 몸을 구르기도 하면서 난리가 아니었다.
‘이 사람들은 대체……?’
아직 구원자 신분을 유지하고 있던 명일은 냄새와 교전 중인 사내들의 정수량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겉보기엔 그저 평범한 아저씨들인 것 같았지만 이들이 가진 정수는 각자 6만 개 수준.
박정우가 북악산의 벙커에 난입했을 때 가지고 있던 것과 비슷한 양이었다.
물론 수준급 구원자들에게 비할 바는 못 되겠으나 이들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살인자들이었던 거다.
“다, 다들 물러서요.”
위험을 직감한 명일이 일행들을 물리려는 찰나.
콰아앗!
드디어 첫 피해자가 발생했다.
후문 쪽으로 도망가려던 사내 하나가 냄새에게 뒷덜미를 물린 것이다.
“으, 으으으!”
이때까지만 해도 사내는 숨이 붙은 채로 괴이한 신음을 내뱉고 있었지만 곧 냄새가 등골을 경련하듯 튕기며 거대한 턱을 두어 번 움직이는 바람에 그대로 목뼈가 부러져 버렸다.
카악.
이어서 냄새가 입에서 뱉어 낸 사내의 모습은…… 문자 그대로 걸레짝이었다.
“…….”
장내 분위기가 순식간에 싸늘해진다.
“이 씨발 새끼들……. 우리한테 왜 이러는 거야?”
제자리에 뻣뻣하게 굳은 사내 중 하나가 냄새와 명일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이에 명일은 무거운 침을 간신히 삼키며 입을 천천히 열었다.
“저, 저희는…….”
그러나 아직 입장 정리가 안 됐기에 제대로 된 대사가 나올 리 없었다.
이렇게 일방적으로 공격해 본 것도 처음이고, 냄새가 왜 갑자기 이런 돌발 행동을 했는지도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러자 성태가 사내들을 향해 총구를 겨누며 대신 대답했다.
“어차피 당신들도 사람을 해쳐 왔으니 여태 살아 있는 거 아닙니까?”
그러더니 명일이 들고 있던 수집 리스트를 곁눈질했다.
“음식, 그리고 몇 가지 자원을 찾고 있습니다. 순순히 협조해 주시면 일부는 살리도록 노력해 보죠.”
성태라고 해서 사태 파악을 끝낸 건 아니었다.
하지만 한 가지만큼은 확실했다. 이 상황은 이미 되돌릴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거.
이미 저들 중 하나가 처참하게 살해당했고, 이 사내들의 앙금은 어떤 일이 있어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형사의 직감이라고 해야 할까. 그가 보고 있는 사내들의 눈은 하나같이 살인자 특유의 빛이 있었다.
단순히 살기 위해 살인을 해 온 그런 느낌이 아닌, 흉포한 특질을 가지고 살아온 흔적 말이다.
‘뭔가 너무 꺼림칙해. 그리고 어차피 다 죽여야 할 거야. 그럴 바엔 정보라도 최대한 얻어 내는 게…….’
성태가 긴장한 얼굴로 권총을 꽉 쥐고 있자 처음 말을 꺼냈던 사내가 픽 웃었다.
“음식? 여기 상황을 전혀 모르는구만. 어디서 온 거냐? 저 짐승한텐 여태 뭘 먹였고?”
“……?”
이에 성태를 비롯한 모두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런 유형의 반응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도시라면 널린 게 음식 아니겠는가. 당연히 약자들은 음식을 챙기지 못했겠지만 이 자리의 사내들은 누가 봐도 강자 축에 속했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겁니까? 그럼 당신들은 여태 어디서 식량을 구했는데요?”
이번엔 명일이 애써 용기를 내어 질문했다.
그도 그럴 게 사내들의 혈색이 며칠씩 굶은 사람은 결코 아니었으니까.
그러자 아까부터 계속 말을 하던 그자가 눈을 묘하게 빛냈다.
“우선 저놈 좀 얌전히 있게 해 줄 수 있겠나?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서 말이야.”
사내가 턱을 까닥여 가리킨 건 냄새였다.
여전히 온몸의 털을 빳빳이 세운 채 언제고 달려들 준비를 하고 있으니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을 터.
“…….”
제안을 받게 된 명일은 다시 고민에 빠졌다. 그에겐 냄새를 제어할 재주가 없었으니까.
그렇다고 녀석이 계속 날뛰게 놔두면 앞으로의 수색 작업에도 큰 차질이 생길 터였다.
사람을 볼 때마다 저렇게 달려들면 기술자를 어떻게 구한단 말인가?
또한 식량이나 자원이 숨겨진 위치도 알아낼 수 없을 것이다.
“그럼…….”
마침내 명일이 냄새를 달래기 위해 운을 떼자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홰애액!
네 말을 듣지 않겠다는 듯 냄새가 경고도 없이 사내들을 향해 뛰어든 거다.
콰자작!
명일에게 협상을 제안해 온 남자의 머리통이 너무나도 간단히 떨어져 나갔고, 나머지 사내들이 반격을 시도했으나 냄새가 너무 날쌔서 조준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어어…….”
논의도 없이 삽시간에 벌어진 살육에 수색조 4인은 멀거니 서 있기만 했다.
그러다 약 1분 뒤.
까드득, 까득.
냄새가 무명의 사내를 입에 넣고 씹으며 널찍한 공업사 실내 구석으로 눈을 돌렸다.
그곳엔 이 네발짐승에게 반항할 의지조차 잃어버린 유일한 생존자가 바닥에 엎드린 채 벌벌 떨고 있었다.
비로소 역할이 다 끝났다고 생각했는지 냄새가 입을 길게 찢으며 하품을 한다.
쩌억.
그러더니 뱃가죽이 통째로 찢긴 시체 하나를 일행 쪽으로 툭 쳐서 밀어 보냈다.
* 조심해. 사람 냄새.
“무슨……?”
네 사람은 냄새의 조언을 곧바로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다 성태가 설마 하는 얼굴로 고개를 번쩍 들었다.
“아니겠죠? 아무리 그래도요.”
“무슨 말씀이십니까?”
명일이 되묻자 성태가 말없이 손가락을 들어 시체의 배를 가리켰다.
정확히는 배 안쪽 어딘가에 있을 위장을 가리키고 싶은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