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arth-Style Savior Archetype RAW novel - Chapter 143
145화. 신세기(2)
* * *
“에이…….”
명일이 그럴 리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면서도 그의 동공은 쉼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냄새가 다짜고짜 저 사내들을 공격한 것도 다 설명이 되지 않는가. 정말 이들이 식인을 해 왔다면 말이다.
동족을 먹는 존재에게 굳이 대화의 여지를 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아니,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었을까요? 그거 생각처럼 그렇게 쉬운 일 아니에요.”
수의사 김경채는 말도 안 된다며 강하게 부정했다.
대다수의 포유류는 기본적으로 동족을 먹이로 삼는 것에 강력한 거부 반응을 보인다는 게 그의 설명.
“이제야 고작 4일 째고, 설령 그간 내내 굶었다고 해도 사람이 사람을 먹겠다는 생각은 할 수 없어요.”
경채는 끔찍하다는 표정으로 사방에 널린 시체들을 둘러봤다.
식인자가 존재할지 모른다는 생각만으로도 온몸에 소름이 돋는데 그런 자가 이렇게나 많이 모여서 공동생활을 하고 있었다? 사실이 아니어야만 했다.
“음…… 글쎄요. 마침 생존자가 하나 있으니 저쪽에 직접 물어보면 되지 않겠습니까?”
광수대 출신의 이성태가 홀로 남은 사내를 흘겨보며 말했다.
이에 모두의 시선이 그리로 모였고, 사내 역시 긴장한 모습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하나같이 끔찍한 모습으로 찢겨 나간 동료들. 그리고 사연이 짐작조차 되지 않는 인간과 호랑이의 연합체.
사내의 입장에선 명일 일행이 식인을 끔찍해하는 것만큼이나 두렵고 괴이한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다, 당신들 대체 뭐야……?”
사내가 바닥에 엎어진 채 뒷걸음을 치자 성태가 한 발자국 다가가며 제법 힘이 실린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리 봐도 그쪽이 먼저 대답해야 맞는 것 같은데.”
그러자 냄새가 때맞춰 어금니를 드러냈다.
크릉……!
지금 냄새는 먼저 죽은 녀석들의 정수를 흡수해서 무려 58만 개짜리 구원자가 된 상태였다.
그렇다 보니 ‘정수의 맛’에 취한 상태였고, 눈에서는 어마어마한 살기가 뻗쳐 나오고 있었다.
그나마 명일 일행을 배려해서 대번에 상대의 목을 물지 않고 있는 것이다.
“우린…… 그냥 살아가고 있었을 뿐이야. 너희야말로 대체 왜 여기까지 와서 행패인 거냐고.”
사내가 냄새의 눈을 피해 옆으로 물러나면서 정말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아까 그쪽이 하던 식량 얘기는 뭡니까? 당신들 정말 사람을 먹어요?”
이건 명일의 질문. 너무나도 직설적이어서 몇몇 사람이 부담스러운 기색을 내비칠 정도였다.
“그건…….”
사내의 입에서 바로 부정하는 말이 나오지 않자 장내의 분위기가 확 싸늘해졌다.
그러니까, 여기 있던 일곱이나 되는 사내들이 다른 사람을 데려다가 어떤 식으로든 고기로 가공해서 섭취했다는 게 아닌가.
“아니 이 씹……!”
성태도 막상 사태가 현실로 와닿자 기가 막히는지 뒤로 물러섰다. 그러곤 날숨을 세게 내뱉으며 건물 바깥으로 걸어 나갔다.
“……정말이에요? 왜요? 진짜 이해가 안 가서 그래요.”
반면 김경채는 수의사답게 비위가 상당히 좋았다.
그는 낯빛 하나 변하지 않은 채로 사내를 추궁했다.
“당신들 정도면 어렵지 않게 식량을 구할 수 있잖아요? 다른 그룹에서 빼앗으면 그만이지 그 사람들을 직접 먹을 필요까지는…….”
경채도 여기까지 이야기하다가 자신의 대사가 너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는지 헛웃음을 지었다.
“씨발, 어떻게 돼 가는 거야.”
끝내 자조적인 웃음을 짓고 마는 경채.
하지만 이어진 사내의 답변은 앞서 명일 일행이 나눈 모든 대화를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사람을 먹는 게, 죽이는 것보다 더 나빠? 우리가 사람을 산 채로 먹는 것도 아니고.”
이때 사내의 눈빛이 너무나도 강렬해서 태연함을 유지하고 있던 경채조차도 몸을 부르르 떨었다.
“뭐라고요……?”
“당신들도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죽이잖아? 저걸 보라고. 느껴지는 게 없어?”
슥.
사내가 손을 들어서 여전히 피를 쏟고 있는 망자를 가리켰다.
뱃가죽이 사정없이 찢긴 사람의 시체 말이다.
“식량? 양측이 목숨을 걸고 싸우면 살아남은 쪽이야 얻을 수 있겠지. 하지만 사실 널린 게 고기인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사내는 언제부턴가 화가 난 것 같았다. 결국엔 살아 나갈 수 없을 거라고 판단한 걸까.
그는 사실상 명일 일행을 조롱했다.
“어차피 필요한 말을 다 듣고 나면 날 저 짐승에게 던져 줄 거 아니야? 이왕이면 쓸모라도 있게 사료 대신 먹여. 왕년엔 호랑이들도 사람을 잡아먹었다더만.”
사내가 악의 가득한 웃음소리를 내자 갑자기 건물 바깥에서부터 거친 발소리가 났다.
타탓!
잠시 밖으로 나갔던 이성태였다.
그는 입술을 꽉 깨문 채로 달려와서는 누가 말리기도 전에 권총을 들어 격발했다.
타앙!
명사수답게 상대의 이마를 정조준한 사격이었으나 사내는 발소리를 들은 직후부터 보호막을 감고 있었다.
덕분에 모두가 봤다.
찌그러진 탄두가 사내의 이마 근처에서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는 것 말이다.
딸각.
얄팍한 소리와 함께 누런 쇳조각이 땅바닥에서 튕겨 올랐고, 이를 멍하니 보던 경채가 사내에게 질문을 하나 더 던졌다.
“처음부터 이러진 않았을 거잖아요? 갑자기 왜 이런…….”
그러자 사내가 한심스럽다는 얼굴로 경채를 바라봤다.
“이 일이 시작된 그날, 마트에 가 본 적이 있나?”
그러더니 왼팔을 몸쪽으로 구부리며 무언가 안는 시늉을 했다.
“우리는 아기를 안은 채로 칼부림 중인 남자를 봤지. 처음엔 아기를 집에 두고 오는 게 현명하지 않았을까 싶었지만 알고 보니 남자가 똑똑한 거였더라고. 우리도 거사를 마치고 돌아오니 온 집안이 난장판이었거든. 강도가 들었던 거야. 그리고 어머니는.”
사내는 얼굴을 찡그리며 바닥에 침을 뱉더니 대사를 건너뛰었다.
“우리는 엄밀히 말해서 먹기 위해 사람을 죽이진 않아. 살기 위해 맞서 싸울 뿐이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시체를 식량으로 활용할 뿐이지. 너희들처럼 식량을 구한답시고 남의 가족과 친구를 도륙하는 것보단 이쪽이 더 낫다고 생각했으니까.”
“…….”
이 말에 비로소 명일 일행의 시선이 넝마가 된 시체들에게 향했다.
저들이 다름 아닌 이 마지막 사내의 아버지, 형제, 친구들이었던 것이다.
“너희가 정말 옳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당당하나?”
사내의 언성이 높아지자 성태가 바닥을 발로 세게 찍어 누르며 분노에 찬 음성을 냈다.
“닥쳐! 아무리 그래도 지켜야 할 선이 있는 거다!”
타탕!
2연속 격발. 그러나 너무 흥분한 탓에 두 번째 사격은 사내의 머리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꽂혔다.
물론 첫째 탄두 역시 보호막에 막혀서 곤두박질쳤다.
“이……!”
사내가 아무리 패잔병이라지만 겨우 총알 따위에 목숨을 내줄 수준은 아니었던 거다.
성태의 능력으론 죽었다 깨어나도 통제할 수 없는 존재였고, 이에 그가 냄새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죽여요! 저렇게 숨을 쉬게 놔두는 것조차 아까운 괴물입니다!”
그러나 조금 전까지만 해도 털을 바짝 세우고 있던 냄새는 어느새 제자리에 웅크리고 있었다.
그러곤 명일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네게 결정을 맡기겠다는 듯.
“…….”
마침내 책임자로서 무언가를 결정하게 된 명일이었지만 그도 혼란스러운 건 마찬가지였다.
사내의 말에 일부분 동의하면서도 동시에 결코 동의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구리시 전반적으로 이런 겁니까? 이런 식의…… 연명 말입니다.”
어찌 됐든 이자들에게서 일반적인 식량을 구할 수 없다면 구리시의 다른 곳으로 또 이동해야 했다. 그래서 물은 것이다.
그런데 만약 구리시의 모든 생존자가 식인을 하고 있는 거라면 대체 식량은 누가 가지고 있는 걸까?
명일은 초조한 마음으로 사내의 답변을 기다렸다.
그러자 사내가 남서쪽 벽면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럴 리 있나. 식량은 시청에 산처럼 쌓였지. 그런데 그 사람들을 다 죽일 건가?”
* * *
오전 10시 4분, 철원의 검은 안개 앞.
한 사내가 안개 속으로 어렴풋이 보이는 진입로를 살피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누군지 몰라도 창의적이네.”
그러곤 몸에 보호막을 두르며 천천히 걸음을 내디뎠다.
사각, 사가각.
안개가 정수를 갉아대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났지만 사내는 태연자약하게 진입로를 향해 곧장 걸었다.
저벅, 저벅, 따각, 따닥.
언젠가부터 발소리가 딱딱해지더니 주변의 풍경도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돌기 내지는 암석 같은 것들이 잿빛 바닥에 솟아 올라와 있던 것이다.
진입로 또한 아주 육중한 몸집을 자랑하고 있었는데, 정작 사내의 시선을 잡아끈 것은 상대적으로 작은 것들이었다.
이를테면 여기저기 널린 사람들의 시체라든가.
좀 더 걸어가니 수십 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괴물체가 누워 있는 게 보였지만 이때도 사내는 그리 놀라지 않았다.
다만 처음 보는 존재이니만큼 잠깐 관심을 보였을 뿐이다.
그러더니 어둠 속에 대고 누군가에게 말을 걸듯이 대사를 읊었다.
“남조선 놈이 아니랄까 봐 무척 비겁하군. 예의라는 걸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나?”
슥.
사내가 마치 시위하듯 진입로를 향해 팔을 들어 올린다.
수십 미터나 떨어진 이곳에서도 진입로를 폐쇄할 수 있을 정도로 전력에 자신 있다는 의미.
그러자 어둠 속에서 기척을 죽이고 있던 정우가 눈을 크게 떴다.
‘드디어 왔군.’
방금 사내가 보인 행동은 순위권자가 아니고선 발상 자체가 불가능한 유형이었다.
그 어떤 구원자가 진입로 폐쇄를 가지고 상대를 협박한단 말인가? 방주를 직접 운용해 본 사람이 아니고선 진입로 ‘새치기’ 같은 걸 상상조차 해 볼 리 없었다.
파아앗.
마침내 정우가 전신에 다면체 보호막을 두르며 빛을 뿜어내자 상대도 목을 좌우로 까닥이며 근육을 이완시켰다.
“이름이?”
“박정우다.”
둘의 사이가 점점 좁혀지면서 서로의 정수량이 머리맡에 드러났다.
“……!”
거의 같은 순간에 흠칫 놀라는 두 구원자.
남측 1위 박정우의 정수량은 9,765,460개였고.
‘아, 귀인이 왔구나. 대단한데.’
정우가 보게 된 상대편의 정수량은 무려…….
「7,821,071」
780만 개.
기대를 한참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당신, 대체 몇 위쯤 되는 거지?”
정우는 이렇게 물으면서도 어쩌면 이자가 북의 1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제만 해도 이쪽의 세 배에 달하는 정수를 가지고 있었다지만 그사이 더 흡수할 상대를 찾지 못했다면 성장이 느렸을 수도 있는 거다.
그러나 상대의 입에서 나온 답변은 정우의 예상을 한 번 더 건너뛰었다.
“강두형. 3위다. 통성명을 하자는데 또 순위부터 묻나? 어지간히 급한 녀석이구만.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죽을 텐데, 좀 더 즐겨 두지 그러나.”
이제 둘의 사이는 대략 10미터.
강두형이란 사내는 50대 초반 정도 되어 보였고, 여태 보아 온 북의 인물들과 달리 연륜미가 넘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풍채 좋은 김중성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그래서 왜인지 정감이 갔지만, 또 그렇기에 더욱 경계했다.
‘정수 차이가 200만 개나 되는데도 전혀 위축되지 않고 있어. 뭔가 있는 사람이다.’
780만 개가 3위…….
그렇다면 2위도 최소 800만에서 1,000만 이상을 보유한 괴물일 테니 사실상 눈앞의 남자를 포함한 3인에게 북의 정수 대부분이 모여 있다는 뜻이 된다.
스윽.
정우가 서서히 전투 자세를 취하자 사내가 그의 다면체 보호막을 흥미롭다는 듯 바라봤다.
‘아.’
이에 정우도 비로소 깨달았다.
이 남자의 정수도 본인의 특질을 반영해서 변이했을 거라는 사실 말이다.
문제는 그게 뭔지 아직 모른다는 점이었다.
파아앗.
이윽고 강두형이 눈을 빛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