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arth-Style Savior Archetype RAW novel - Chapter 147
149화. 신세기(6)
* * *
“엉……?”
구리 시청의 출입부 외벽 위에서 보초를 서던 남자는 잠시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웬 커다란 호랑이가 이쪽을 향해 여유롭게 걸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철컥.
남자는 즉시 품속의 소총을 장전한 뒤 조심스럽게 호랑이의 머리를 조준했다.
“머, 멈춰……!”
그러나 이 울긋불긋한 네발짐승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고, 이에 남자의 시선이 그 뒤를 졸졸 따르고 있는 인간 무리에게 옮겨 갔다.
“…….”
허공의 어딘가에서 남자와 명일의 시선이 맞닿는다.
우습게도 남자는 눈빛으로 호소해 오고 있었다. 제발 이 말도 안 되는 상황 좀 설명해 달라고.
“……아.”
명일은 난처해하는 상대의 얼굴을 보면서 입만 뻥긋거렸다.
우리 호랑이가 배고파해서 밥을 좀 먹이러 왔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성역에서 여러분을 구제하러 왔으니 기술자와 자원을 내놓으라고 윽박질러야 할까?
머릿속에 하나같이 비현실적인 생각만 맴돌았다.
그런데 더 웃긴 것은 저게 모두 사실이라는 거다.
“억? 뭐야?”
이윽고 맞은편 외벽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던 또 다른 보초가 뒤늦게 호랑이를 발견하고선 기겁을 했다.
철컥!
여지없이 이어지는 장전 소리.
그러더니 목에 걸고 있던 무전기를 입 근처로 가져다 댔다.
“거수자 발견! 1번 게이트입니다!”
이게 일종의 지원군 호출이라는 걸 알아듣지 못한 사람은 이 자리에 아무도 없었다.
“이제 어떻게 되는 거죠……?”
경채는 겁에 질린 소리를 내면서도 허공을 휘젓고 있는 냄새의 꼬리 근처로 얼른 달라붙었다.
아까 그 저격 사건을 통해 냄새의 곁이 가장 안전하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생각이 있다면 다짜고짜 공격하진 못할 겁니다.”
여전히 수레 손잡이를 붙들고 있는 한일은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외벽 위의 보초들을 노려봤다.
그사이 냄새는 제집에 온 듯 자연스럽게 좌우 외벽 사이의 출입부를 향해 계속 들어갔다.
출입부는 철책으로 만들어진 미닫이문으로 막혀 있었는데, 아무도 열어 주지 않자 냄새가 강제로 몸을 들이밀었다.
끼긱, 끼기긱.
꽤 두꺼워 보이는 철제 프레임이 통째로 구부러졌고, 곧 철책과 외벽을 연결하고 있던 경첩이 떨어져 나가며 요란한 소리가 났다.
콰악, 팅!
이에 외벽 안쪽에서부터 사람들이 몰려나온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무슨 일이에요?”
“헉.”
“호, 호랑이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먼저 나타난 건 민간인들이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명일이 고개를 쭉 내밀어 내부 상황을 보자 수십 명씩 몰려든 민간인들 뒤로 커다란 국통과 식판 더미가 늘어져 있는 게 보였다.
시청 앞마당에서 배식이 진행 중이었던 거다.
또한 온 사방이 둥글게 말린 모포 천지인 걸로 봐선 여기서 잠을 자기도 하는 듯.
명일은 비로소 두 아들을 데리고 사냥을 나왔던 사내가 말한 내용이 서서히 이해되기 시작했다.
가족들을 이런 길바닥에서 재우고 싶지 않다면 강도짓이라도 해서 시청이 반길 만한 물건을 조달해야 하는 것이다.
‘그럼 저 안에 사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구성원 중 하나가 상당한 각성자라는 소리겠구나.’
명일은 저 앞에 요새처럼 버티고 있는 6층짜리 청사를 쳐다봤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청사 정문에서부터 살기등등한 사내들이 우르르 몰려나오는 게 보였다.
“저게 그 실무자들인가요?”
명일이 뒤를 돌아보며 묻자 중년 사내가 아들들의 손을 꽉 붙든 채 초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는 해결사라고 부릅니다.”
“그렇군요.”
해결사. 상당히 호전적인 호칭이다. 시청에 몸을 의탁하고 있는 자들도 저들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떻게 할까요? 일단 대화부터 하셔야죠……?”
중년 사내가 제발 그렇게 해 달라는 듯한 표정으로 명일의 눈치를 본다.
그에겐 여기가 삶의 터전이나 다름없으니 일이 가급적 원만하게 해결됐으면 했던 거다.
그러나 명일은 사내의 질문에 바로 대답하는 대신 오히려 질문을 던졌다.
“여기에 아드님들 말고 다른 가족도 있습니까?”
“……예?”
“아내분이나, 형제라거나. 더 챙겨야 할 사람이 있냐고 여쭙는 겁니다.”
“예, 저희 안사람이 저기…….”
별생각 없이 배식장 쪽을 가리키던 사내가 뒤늦게 불길한 예감이 들었는지 눈을 급하게 깜빡였다.
“잠시만요, 지금…….”
“그럼 아내분 모시고 당장 여기서 빠져나가세요. 우리 아직 서로 이름도 모르지만요, 아드님들을 위해서 제가 월권하는 겁니다.”
“……!”
명일이 지금 진지하다는 걸 깨달은 중년 사내는 제자리에 뻣뻣하게 굳어서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곧 닥쳐올 상황이 두렵기도 했으나 정말 명일의 말대로 여길 빠져나가야 할지 이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할지조차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만에 하나 저 호랑이와 명일 일행이 해결사들에게 도륙당한다면?
그럼 이들을 여기까지 끌고 온 데다가 탈주마저 감행한 자신과 가족들은 수배자 신세가 될 터였다.
또한 지금이야 벌이가 거의 없어도 시청의 기초 배식 덕분에 근근이 연명할 수 있지만 온전히 저 바깥에서만 지내라고 하면 생존할 자신이 없기도 했고 말이다.
“아니, 이대로 나가면 우린 어차피 죽어요. 굶어 죽든 강도를 당해 죽든. 이럴 거면 우릴 그 성역이란 곳에 넣어 주시오.”
비록 대단한 기술자도 아니고 그저 타율 낮은 강도에 불과하다만 사내로선 명일에게 최선의 선택지를 요구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두 아들과 아내가 딸린 가장이었으니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명일은 자신이 제시할 수 있는 최선책을 이미 꺼낸 상태였다.
“제가 해 드릴 수 있는 건 여기까지입니다. 만약 다른 분이 왔다면 아예 이런 대화가 있지도 않았을 겁니다.”
명일이 떠올리고 있는 건 박정우였다.
성역의 절대자가 고수하는 원칙은 방주에 들여서 살려 둘 사람이 아니라면 모두 공평하게 지워 버린다는 것.
그런 점에서 성역의 룰을 따르는 명일 역시 사내를 이곳에 붙들어 둬야 했으나 왜인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설령 이번 일이 중성이나 정우에게까지 보고가 되어 모종의 징계를 받게 된다고 해도 말이다.
“…….”
명일은 자신의 독단을 목격한 성태, 경채, 한일을 천천히 둘러본 뒤 다시 사내에게 일렀다.
“사정은 이해 가지만 여기 있으면 채 1시간도 살아 있지 못할 겁니다. 나가서 희박한 기회라도 붙잡으세요.”
명일이 해 줄 말은 이것뿐이었다.
이에 사내는 자신에게서 시선을 완전히 거둬 버린 명일을 노려보다가 발코로 땅바닥을 툭 찼다.
“씨팔…….”
그러곤 마침내 결심했는지 잽싸게 배식장 쪽으로 달려갔다. 아내를 데려오기 위해서였다.
그러자 이 모든 장면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정한일이 수레에서 손을 놓으며 조심스레 말했다.
“이건 진짜 월권 행위 아닌가요? 괜찮을지 모르겠는데.”
정확히 무엇이 괜찮고 무엇이 괜찮지 않다는 걸까.
명일은 상관없다는 듯 한일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반면 성태는 그새 10미터 앞까지 다가온 해결사들을 보면서 허리춤의 권총을 만지작거렸다.
“저희가 무조건 이기는 싸움입니까?”
명일이 구원자라서 상대의 정수량을 볼 수 있다는 걸 알고서 묻는 거다.
“예, 정수 합은 저쪽이 더 높지만…….”
명일은 성태의 예상대로 해결사들의 전력을 일찍이 파악한 상태였다.
일곱 명으로 구성된 이들의 평균 정수량은 약 12만 개.
정수 총합으로 치면 64만 개를 지닌 냄새보다 더 강하다고 볼 수 있었으나 한때 정우를 따라다닌 적이 있는 명일은 잘 알았다.
정수는 모일수록 강해지고, 흩어지면 총합만큼의 힘을 결코 내지 못한다는 사실 말이다.
크릉.
이 와중에 냄새는 해결사들이 도열하든 말든 배식장에 놓인 국과 찬 그릇에 코를 가져다 대고 있었다.
그러더니 명일 쪽을 힐끗 돌아보곤 국통에 머리를 통째로 집어넣었다.
촤아아악!
끝내 냄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앞쪽으로 엎어진 국통.
덕분에 약간의 고기와 다량의 뼈를 넣고 삶던 국이 바닥으로 쏟아졌고, 이를 본 시청 측 사람들이 경악했다.
백여 명분의 점심 식사가 방금 눈앞에서 사라진 것이다.
“이 미친…….”
이 멀건 고깃국은 시청에서 제공하는 기본 배식의 하나였기에 이곳에서 아직 자리를 제대로 잡지 못한 약자들에겐 거의 유일한 식량이나 다름없었다.
따라서 몇몇 민간인이 상대가 호랑이라는 것도 잊고서 이를 드러냈고, 냄새도 이에 맞서 두툼하게 부푼 양 볼을 일그러뜨리며 성질을 냈다.
그러면서도 이곳에 온 목적인 고기 섭취는 잊지 않았다.
투둡, 찹, 찹.
몸길이가 3미터를 훌쩍 넘는 커다란 짐승이 바닥에 머리를 처박고 고기를 골라 먹는다.
장내의 모두가 정말이지 넋 나간 표정으로 그걸 지켜봤고, 명일 일행도 이때만큼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아직 상처가 완전히 나은 게 아니라서 스스로 기력 회복을 꾀하는 겁니다. 어떻게 보면 저것도 본능적인 행동이죠.”
수의사 김경채가 명일에게 조근조근 이야기했다.
이걸 조금 틀어서 보면, 성역에서 냄새에게 걸맞은 식사를 대접하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저 커다란 몸집을 유지하려면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겠는가.
그런데 성역에서 내줄 수 있는 거라곤 사람이 대충 끼니나 때우기 위해 먹는 가공 식품 정도였으니 냄새는 여태 너무나 부실한 식사를 해 왔던 거다.
찹, 찹, 챱!
이윽고 냄새가 뼈에 붙은 자그마한 고기까지 빼먹기 위해 머리를 마구 흔들어 대자 해결사 쪽에서 더는 두고 못 보겠는지 얼굴을 찡그리며 명일 일행을 쳐다봤다.
“여긴 어떻게 오셨습니까? 아니, 그것보다도 저 짓거리에 대한 보상부터 톡톡히 해 주셔야겠는데.”
리더로 보이는 정장 차림의 깡마른 남자가 벌써 바닥에 스며들어 자취를 감추고 있는 고깃국을 가리켰다.
“아, 저건…….”
명일이 무어라 변명이라도 하려 했으나 해결사들이 곧장 말을 끊는 바람에 그럴 수 없었다.
“그리고 저건 대체 뭐지요? 목줄이라도 채우고 다니든가.”
리더가 별 미친놈들을 다 보겠다는 듯한 얼굴로 여전히 식사 중인 냄새를 물끄러미 봤고, 그사이에 다른 해결사들이 명일 일행이 끌고 온 수레를 검사했다.
물론 수레는 텅 비어 있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완전히 빈털터리인데요.”
“뭐? 그럼 여길 왜 온 거야?”
리더가 역정을 냈고, 이때 마침 중계자 역할을 하기로 했던 중년 사내가 아내를 데리고서 시청 출입부 쪽으로 바쁘게 움직였다.
“어이, 뭔데 저건 또.”
나름 시청의 보안팀이랍시고 눈치가 상당히 빨라서, 리더가 대번에 중년 사내를 불러 세웠다.
그러나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을 한 사내로선 걸음을 멈출 수 없었고, 뭔가 이상함을 느낀 해결사들이 바로 눈을 시퍼렇게 빛내기 시작했다.
“저것들 잡아 와. 분위기가 많이 이상한데.”
리더는 수하들에게 이렇게 지시하고서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냄새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챱, 챱, 차잡!
조금만 더 있으면 냄새의 식사가 끝날 예정이었으나 리더가 그런 걸 고려할 턱이 없었다.
그는 보호막을 두껍게 두른 채 냄새의 머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하, 요상한 새끼. 겁나게 처먹네.”
아무래도 10만 개 단위의 각성자다 보니 호랑이도 그저 거대한 고양이로만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스윽.
리더의 까무잡잡한 손이 냄새의 이마에 새겨진 왕(王)자에 닿으려는 순간.
츠팟!
아주 이질적인 마찰음이 났다.
이건 바로 리더가 두르고 있던 보호막이 종잇장처럼 찢겨 나가는 소리였고, 곧이어 그의 팔뚝에 커다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콱.
냄새가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그의 손을 문 것이다.
아니, 정확히는 팔꿈치 바로 밑까지를 입안에 집어넣었다.
“어어……?”
놀라울 정도로 크게 벌어진 리더의 두 눈.
그러더니 그의 몸이 통째로 허공에 들렸다.
냄새가 보양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