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arth-Style Savior Archetype RAW novel - Chapter 16
16화. 행운동 ( 4 )
고양이들의 행군.
이게 꿈이거나 하다못해 영화의 한 장면 이었다면 ‘동화 같은 상황이다’ 라는생각을 했을 것이다 .
그러나 더운 날씨 와 점점 가빠지는 호흡이 이게 전부 현실임을 매순간 일깨웠다.
‘어디까지 가는 거지?’
정우는 땀에 젖은 뺨 을 손으로 문지르며 , 약 10미터 앞에서 달리고 있는 고양이들을 쳐다 봤다.
놈들은 저마다 하나에서 세 개 사이의 정수를 가지고 있었다 .
그래서 처음 에 녀석들을 공격해서 정수를 빼앗으려고 했다.
하지만 정작 고양이 떼는 정우와 선웅의 기척을 느꼈으면서도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
대신 이렇게 말했다.
* 따라와.높은.곳으로.
놈들 은 쉬지 않고 달리는 중이었기에 정우로선 어느 고양이가 말을 한 건지 알 방법이 없었다 .
또한 자기들끼리 하는 이야기인지 , 아니면 두 사람에게 건넨 이야기인지도 알수 없었다.
다만….
‘뭔가 있구나. 인간 보다 이 녀석 들이 먼저 알아챈 거야 ‘
정우는 심상치 않은 문제가 발생했음을 직감하고, 그때부터 고양이들을 쫓기 시작했다.
한 5분쯤 달렸을까.
드디어 이 동네에서 유일한 아파트 단지인 ‘아너빌’이 나타났다.
이건 행운동에서 가장 높은 지대까지 올라왔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리고 두 사람이 쫓던 고양이 무리가 멈춰 선 순간.
“헉…….”
정우와 선웅 모두 제자리에 얼어붙었다.
여태 본 고양이들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이미 천여 마리의 고양이가 아너빌 진입로를 새까맣게 채우고 있었다.
‘뭐, 뭐야. 공성전이라도 하겠다는 건가?’
정우가 아파트 쪽으로 시선을 옮기자 각층의 복도에 나와 밖을 내려다보고 있는 주민들이 보였다.
거리가 상당히 멀어서 그 사람들의 표정까진 볼 수 없었지만, 겁에 질려 있을거란 걸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주택가를 놔두고 굳이…….’
문득 의구심이 생긴다.
결국 사람을 공격하려고 이렇게 모인 거라면, 놈들이 아직까지도 이쪽을 살려 두고 있는 게 말이 안 되지 않은가?
그러던 중 여태 양전히 대기하고 있던 고양이들이 일제히 울기 시작했다.
갸아아앙!
하아악!
단, 소통 수단으로써의 울음이 아니었다.
이건 감정의 표출이었다.
화가 났다. 무섭다 등의.
인간인 정우가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명확한 의미가 담긴 울음을 뱉고 있는 건 아주 극소수였다.
그런데 그 내용이 귀에 쐐기처럼 박혀 들어왔다.
*막아라!
*온다!
‘막는다고? 월 막는다는 거야……?’
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소리에 더 집중하려는 순간.
“정우 씨. 저것 좀 보십시오. 고양이들이 전부 같은 방향올 보고 있습니다.”
곁에 있던 선웅이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의 말대로 이 자리에 모인 모든 고양이가 전부 어느 한 지점을 노려보고 있 었다.
그리고 녀석들이 보고 있던건 아너빌이 아니었다.
그건 이 아파트 단지 앞에 세워진 놀이터.
정확히는 그 놀이터 중앙에서 어른거리고 있는 ‘무언가’였다.
“저게 무슨……?”
투명한 그것은 수면에 일어난 파문 그 자체 같았다.
허공의 일정 부분이 통째로 일렁이는 것처럼 보인다.
정우는 곧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저게 바로 진입로군요.”
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평가관이 확인 사살을 해왔다.
-곧 활성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 지역올 떠나야 합니다.
회사 주차장에서 도망쳐 나올 때와 같은 멘트다.
이에 정우가 표정올 구겼다.
‘제가 구원자라면서요? 그리고 5위 이내에 들면 진입로를 닫을 수 있다면서요. 그런데 또 도망치라고요? 언제까지? 대체 월 하자는 겁니까?’
심지어 이 자리엔 진입로 개방의 전조를 알아차리고 달려온 고양이들마저 있다.
이 녀석들이 인간보다 나은 셈이다.
무려 천 마리나 되는 놈들이 목숨을 걸고 진입로 앞에서 대기 중이었으니까.
기야아아앙!
고양이들의 울음소리가 한층 거세졌다.
진입로 쪽을 다시 쳐다보자 아까보다 파문이 더 강하게 일어나고 있는 게 느껴졌다.
크기 또한 한참 늘어났다.
처음엔 일렁이는 공간이 직경 2미터 수준이었는데, 지금은 놀이터에서 가장 큰 기구인 미끄럼틀보다도 더 커진 상태였다.
정우는 바로 자신의 상태를 점검했다.
I박정우 님의 소속 지역 내 순위는 ‘4’입니다.
I폐쇄권능 보유자.
그새 구원자 순위가 또 밀렸지만, 아직 폐쇄 권능을 가지고 있다.
그는 작심을 하고서 평가관에게 물었다.
‘진입로 폐쇄는 어떻게 하는 거죠?’
이에 평가관이 잠시 침묵하다가 하는 수 없다는 듯이 설명했다.
-진입로 근처의 이계 존재들을 제거한 뒤 적정량의 정수를 방출하면 됩니다. 쉽게 말해서, 힘으로 진입로를 찌그러뜨리는 셈입니다. 보유한 정수가 ‘적정량’을 훨씬 상회할 경우엔 진입로와 근처의 존재를 한꺼번에 정리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잠깐만요. 그적정량이 뭔데요?’
정우는 이렇게 되물으면서도 은연중 눈치를 챘다.
현재 보유한 정수는 128개.
이걸론 진입로를 닫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평가관이 자꾸 도망가라고 하는 것일 테고.
-진입로마다 크기가 다른 만큼, 폐쇄에 필요한 정수의 양도 전부 다릅니다.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지금 확보하신 정수론 그 어떤 진입로도 폐쇄할 수 없다는 것뿐입니다. 늦기 전에 지역을 이탈하십시오.
그 어떤 진입로도……?
정우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에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그사이 고양이들이 본격적으로 악올 쓰기 시작했다.
하아아악!
히아악!
입을 좌우로 쫙 찢으며 털을 바짝 세운다.
동시에 투명하던 진입로가 중앙부터 새까맣게 물들었다.
스아아아…….
처음엔 검은 부분이 사람 주먹 크기였지만. 곧 소름 끼칠 정도로 빠르게 팽창
했다.
직경 2미터. 4미터, 8미터…… 계속 커진다.
이어서 이것과 닿은 모든 것이 깔끔하게 지워졌다.
미끄럼틀. 철봉. 구름다리…… 진입로에 너무 가까이 있던 고양이 무리까지도.
팟!
이윽고 십여 마리의 고양이가 사라지면서, 그 자리에 정수 덩어리가 떨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그것’이 나타났다.
“어……!”
선웅의 탄식.
직경 15미터까지 벌어진 진입로 안쪽에서부터 시커먼 깔때기가 튀어나온 것이다.
이미 오늘 아침에 만나 봤던 청소부의 주둥이였다.
놈은 진입로 근처의 정수들을 단번에 빨아 먹더니, 지구를 향해 길쭉한 팔을 내밀었다.
그 뒤의 어둥에서부터 수십 개의 팔이 더 나타난 것도 이때였다.
숙, 스숙, 스스숙.
길고 마른 까만 팔.
십여 마리의 청소부가 앞다뤄 기어 나왔다.
현재 시각, 오후 1시 47분.
하얀 모래가 깔린 놀이터에 나타난 진입로에서 칠흑의 청소부들이 기어 나오는 광경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혹과 백의 대비.
지구가 어둠의 존재들에게 침략당하고 있었다. 상징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눈앞의 상황이 실로 그랬다.
*공격!
*막아라!
천여 마리의 고양이 사이에 우두머리급이 몇몇 끼어 있는 게 확실해 보였다.
정우는 그들이 명령을 내리는 걸 분명히 들었고, 정말로 장내 모든 고양이가 청소부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아아아앙!
퀴아아악!
포유강 식육목 고양잇과의 작은 짐승들.
고양잇과의 특징은 육식을 하고. 발톱을 사용 유무에 따라 숨길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자리에 있는 짐승 중 발톱을 숨긴 녀석은 단 하나도 없었고, 전부 자신이 맹수라도 된 것처럼 행동했다.
고양이의 몸길이는 대체적으로 60센티미터 수준이지만. 이런 녀석들이 백 마리 단위로 뭉쳐서 움직이니 대지가 통째로 뒤틀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정우와 선웅은 전황을 낙관할 수 없었다.
아무리 머릿수가 많아도 정수의 활용 없이는 청소부들을 쓰러뜨리기 어렵다고 생각했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고양이 군단이 진입로를 덮치자마자 녀석들의 사체가 허공에 흩뿌려졌다.
퍼버버벅!
듣기 거북할 정도의 타격음.
청소부들이 2 미터 가까이 의는 팔을 이용해서 고양이 떼를 쓸어 내고 있는 거였다.
승용차도 간단히 내팽개치는 놈들이다.
잘해야 체중이 5 킬로그램이나 될까 싶은 고양이가 상대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가아아앙!
캬아악!
휘발성 울음.
고양이 군단의 선두는 거의 매초 물갈이 됐다.
각 청소부의 휘둘러치기 한 번에 열 마리씩 찌그러졌기에 뒤편의 전투 대기열위론 먼저 죽은 녀석들의 몸뚱어리가 포탄처럼 날아들었다.
그아아앙!
정우는 공격 대기 증인 고양이들이, 전우의 시체가 날아들 때마다 귀를 납작하게 접으며 몸을 숙이는 걸 봤다.
놈들은 그러면서도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이건……그야말로 전쟁이다. 사람도 이렇게 할 수 있을까?’
파아앗!
진입로 바로 앞에서 또 한 더미의 정수가 허공으로 솟아올랐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청소부들이 바닥의 정수를 챙기지 못하고 있었다.
고양이들이 사방에서 쉬지 않고 덤벼드는 탓에 위치를 옮기거나 아가리를 펼칠 틈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이건 무의미한 소모전이야…… 결국 다 죽을 거라고.’
정우는 점점 쌓이기 시작한 고양이들의 사체를 쳐다봤다.
그러곤 다시 진입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고양이들의 물량 공세가 적어도 한 가지 효과는 내고 있었다.
청소부가 진입로 근처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도록 만든 것이다.
정우는 진입로 안쪽 정체불명의 어둠 속에, 지금 눈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많은 청소부가 있음을 느꼈다.
실제로 진입로 표면에 또 다른 청소부들의 손과 발이 보이기도 했고 말이다.
단지 먼저 나간 녀석들이 길을 비켜 주지 못하고 있어서 행군이 정체된 것뿐이었다.
“너희, 제대로 싸워 본 경험도 없이 여길 온 거야? 누가 됐든 저 정수를 주워 담아! 정수를 이용해서 싸우라고!”
정우가 고양이 떼를 향해 소리치자 개중에 누군가가 분명히 말을 걸어왔다.
*네가.해라.정수.덩어리.
“뭐……?”
정수 덩어리.
이전에도 들어 본 표현이다.
구원자 역할을 받은 비둘기에게서 말이다.
*인간. 달려라.
*달려라!
*길.열린다.
이번엔 두 사람 근처의 고양이들이 구호를 옮듯이 외쳐왔다.
정수 감응력이 아주 높진 않은 선웅으로선 부분적으로만 알아들을 수 있었으나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충분히 알았다.
“정우 씨, 지금고양이들이.”
협조를 요청해 오고 있는 거죠?라는 뒷말은 생략했다.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고양이 군단이 좌우로 쫙 갈라지면서 진입로로 가는 길을 열어 줬으니까.
홍해의 기적…….
정우는 믿기지 않는 장면에 입올 쩍 벌렸다.
그러면서도 이미 두 다리는 고양이들이 마련해 준 좁은 통로를 달리고 있었다.
-잘못된 결정입니다. 현재 이 진입로의 폐쇄는 불가능합니다. 지금 즉시 지역을 이탈하십시오.
여전히 그를 만류하는 평가관.
하지만 정우는 이미 오른손에 만년필을 꽉 쥐고 있었다.
‘지금 기어 나온 놈들만이라도 박살 내고 갑시다. 이대로 도망가면 고양이들 이 무슨 생각을 하겠어요.’
정말 평가관의 말대로 진입로를 닫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냅다 도망가기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청소부와의 첫 전투에서 가지고 있던 정수 총량. 25개.
그리고 현재 128개.
진입로 앞에서 고양이들과 전투 중인 청소부는 약 열두 마리다.
각도를 잘 잡으면 일격에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은 고양이들이 몸으로 막아 주고 있잖아. 충분히 할 수 있다.’
파팍!
땅을 박찬 다리에 힘이 잔뜩 들어간다.
정우는 평가관이 당혹스러워하는 기색을 느끼며, 격전지를 향해 달려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