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arth-Style Savior Archetype RAW novel - Chapter 160
162화 브레멘 음악대(2)
“아아…….”
그러다 정우가 일격으로 미처 지우지 못한 ‘형’의 신발 일부를 발견했다.
발목도 아니고 발등 밑의 일부만 살짝 남았을 뿐인 신발을.
털썩.
사내가 복잡한 표정으로 바닥에 주저앉자, 정우가 그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이름이 뭡니까?”
“……아. 시, 신정택입니다.”
정택은 정우가 존대를 해 오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경황이 없었다.
방금 본 걸 납득하기 어려워서였다.
수십만 개의 정수. 그것도 다리가 불편한 동생을 형이 보호한다는 ‘스토리’를 가진 형제가 아니던가.
이 시점까지 살아 있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일을 겪었을까. 그런데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간단히 죽어 버렸다. 마치 구둣발에 밟힌 개미처럼.
“저 소를 헬기에 태울 방법이 있겠습니까? 내 생각엔 안 될 것 같은데.”
정우는 상대가 느끼고 있는 감정에 아랑곳하지 않고 당장 해결해야 할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자 정택이 눈을 몇 번 껌뻑거리더니 아까 자신들이 헬기를 공격했던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헬기에……?”
“그럼 달려서 따라오게 할 겁니까? 그런데 정말 그래야 할지도 모르겠고.”
“…….”
정우는 진지했고, 정택은 여전히 현실 감각을 잃은 상태였다.
이에 정우가 갑자기 정택의 뺨을 후려쳤다.
짜악!
“컥!”
난데없이 뺨을 맞게 된 정택은 비로소 정신이 든 눈빛으로 상대를 쏘아 봤다.
하지만 이내 기세를 죽일 수밖에 없었다. 정우가 자신의 처지를 상기시켜 줬으니까.
“대체 지금 뭐 하는 거야? 남은 녀석들이라도 살리려면 내 앞에서 빌빌 기어도 시원찮지 않나? 심지어 보호막도 안 감았고. 정신 못 차렸군.”
정우의 말대로 정택은 얇은 보호막 하나 감지 않고 있었다.
쏟아지는 감정에 모든 신경이 매몰돼 정작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던 거다.
오히려 지금 그를 보호하고 있는 건 정우가 전개한 돔형 보호막이었다.
“죄, 죄송합니다……!”
정택이 바닥에 납작 엎드리며 사죄하는 사이, 정우는 개와 소 사이를 지나 헬기 추락지를 향해 걸어갔다.
용헌을 불러 짐승들을 어떻게 태울지 상의하기 위해서였다.
‘만약 태울 방법이 없다고 하면, 이 자리에서 죽이든지, 제 발로 따라오게 해야 할 텐데.’
만에 하나 저들이 헬기를 따라 오겠다고 한들, 부산까지 쉬지 않고 달릴 수 있을까?
아무리 모든 정수를 신체 강화에 쏟는다고 해도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
정우가 생각에 잠긴 채 헬기 방향으로 걷고 있자, 그의 뒤편에서 크고 작은 기척이 부스럭대며 따라붙었다. 다름 아닌 정택과 짐승들이었다.
벌써 정우를 자신들의 새 주인으로 받아들였다기보다는 그가 전개해 둔 보호막 안에 계속 있으려는 이유가 더 컸다.
서석, 서석.
개와 소, 인간이 무성하게 자란 수풀을 헤치는 소리.
정우는 말도 안 되는 장면을 등에 업고서 헬기 앞에 도착했다.
“어…….”
아니나 다를까, 망원경을 든 채 정우가 오는 걸 보고 있던 용헌이 멍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 옆에 나란히 선 거창 검사 동호와 비뇨기과의 동훈도 마찬가지.
“뭐…… 뭡니까?”
너무 놀란 용헌이 자신도 모르게 퉁명스러운 소리를 냈고, 이에 정우가 뒤를 흘깃 돌아보고선 다시 헬기를 바라봤다.
“혹시 소를 태우고 갈 수 있겠습니까?”
“예? 뭘 태운다고요……?”
* * *
오후 4시 11분, 창원시 서부.
결국, 용헌은 소를 태우고 날았다.
아니, 정확히는 매달았다.
한때 강남 세브란스에서 커다란 의료 기기들을 매단 채 비행한 적이 있지 않던가.
이번에도 같은 접근 방식이었다. 구조용 크랭크와 밧줄로 단단하게 소를 붙들어 놓고, 헬기로 끌어 올린 것이다.
두두두두…….
덕분에 좌우 출입문을 활짝 연 채 움직여야 했고, 바람에 기체가 기울 때마다 모두의 신경도 곤두섰지만, 어쨌든 성공적이었다.
물론, 지금 저 밑에 매달린 소의 의견은 반영되지 않았다.
“비행을 시작한지 거의 20분이 되어 갑니다. 30분쯤엔 한번 착륙해서 저 소…… 의 상태를 살피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용헌이 뒷좌석의 정우를 향해 소견을 밝혔다.
그러자 정우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맞은편 좌석에 앉은 정택에게 물었다.
“소도 이름이 있습니까?”
“어…… 그것이.”
정택이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다. 이름이 있긴 있는 듯.
하지만 정작 대답은 다른 입에서 튀어나왔다.
컹!
* 상두!
잡종견 ‘봉남’이 경쾌하게 짖으며 인간의 언어를 쏘아 낸다.
“……으.”
도저히 적응되지 않는 분위기에 동호가 입꼬리를 좌우로 길게 늘이며 끔찍하단 표정을 지었고, 동훈은 창가에 시선을 박아 둔 채 소리 없이 웃었다.
반면 정우는 지나치게 진지한 눈을 하고서 봉남과 얼굴을 맞댔다.
“아. 이름이 상두입니까. 그럼 저 올빼미는?”
그러자 이번엔 정택이 얼른 답을 올렸다.
“추…… 춘자입니다. 암컷이거든요.”
“그럼 앞으로 상두, 춘자 씨라고 불러야 하나.”
이것 역시 지금의 눈빛만큼이나 진심일 거다.
“흐흠.”
정우의 말에 동호가 신음에 가까운 소리를 살짝 흘리다 얼른 입을 틀어막았다.
이 구원자가 짐승들의 이름을 불러 주고 존대까지 사용하기로 결정했다면, 동호 본인도 똑같이 해야 할 게 아닌가?
그래서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해 봤더니 낯이 시뻘겋게 달아오르고 만 것이다.
“저쪽에 보이는 게 아마 마산일 겁니다.”
때마침 화제를 돌린 용헌.
동호가 감사하다는 눈으로 조종석을 바라봤고, 정우는 발치로 시선을 옮겼다.
패스파인더의 정수 표식은 여전히 남동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경상남도청과 시청이 있는 창원 중심부가 있는 방향이다.
“아뇨. 바로 창원시 안쪽으로 들어갑시다. 상두 씨의 상태도 거기에서 점검하는 걸로.”
“예.”
여느 때처럼 정우는 긴 고민 없이 결론을 내렸고, 용헌도 곧장 직진했다.
두두두두…….
다시 정적이 찾아왔지만 이전처럼 프로펠러 소리만 헬기 안을 채우진 않았다.
이따금씩 봉남이 몸을 터는 소리가 났고, 정택의 몸에 올라탄 춘자도 계속해서 그의 어깨와 팔 사이를 오가며 깃털 스치는 소리를 냈다.
이젠 정말 기구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다는 정도론 이야깃거리도 안 될 지경에 이른 것이다. 말을 할 줄 알고 이름까지 가진 짐승들마저 합류하게 됐으니까.
“그나저나.”
묘한 분위기가 아무래도 좀 불편했는지, 조종석의 용헌이 운을 뗐다.
“부산에서 도로 빠져나온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는 조금 이상하네요.”
“무슨 말씀이십니까?”
정우가 간단히 되물으며 말을 받았고, 이에 용헌이 어깨를 으쓱했다.
“대성이 주도권을 잡았다면, 오히려 영역을 계속 확장해 나갔을 거거든요. 지금쯤이면 최소한 창원은 이미 전초 기지가 되어 있어야…….”
머릿속의 말을 술술 꺼내던 용헌이 갑자기 말을 멈춘다.
그리고 이건 이전에도 종종 있던 일이기에 다들 표정을 굳혔다.
용헌은 기내에서 시야가 가장 넓은 사람이 아니던가. 그가 말을 끊었다는 건 심상치 않은 무언가를 봤다는 뜻이었다.
“이번엔 또 뭡니까.”
동훈이 말을 꺼내기 무섭게 용헌이 기수를 크게 틀었다.
디디디디딕!
프로펠러의 회전축이 살짝 비틀리며 소음을 냈고, 동시에 기체 아래에서부터 애처로운 울음이 울려 퍼졌다.
으우우우……!
줄에 묶인 채 매달려 있는 상두의 목소리였다.
“아.”
용헌은 잊고 있었다는 듯한 소리를 내면서도 기수를 더욱 틀었다.
왜냐하면.
쐐애애액! 쐐애액!
십여 발의 정수 창이 창공을 가로질러 곧장 날아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국내 1위 구원자인 박정우를 태우고 있으니 무엇이 두렵겠냐만, 여기가 어디인가.
2위가 체류 중일지도 모르는 부산의 인접 지역인 데다가 실제로 조우해 온 각성자의 수준도 차원이 달랐다.
따라서 용헌으로선 가장 안전한 선택을 한 셈이었다.
상대와 마주치기도 전에 보호막 밀도가 낮아져서 좋을 게 없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또한 이건 정우와 함께 온갖 현장을 겪어 본 용헌이기에 가능한 판단이기도 했다.
“괜찮아요. 아주 위협적인 수준은 아닙니다. 빠르게 착륙하죠.”
정우는 엄청난 속도로 헬기를 비껴간 정수 창의 밀도를 눈으로 가늠한 뒤, 용헌에게 착륙 지시를 내렸다.
마침 상두를 위해 저공 비행 중인 상태였기에 헬기가 지상과 가까워지는 데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문제는 창을 날려 온 상대도 일찍부터 이쪽의 위치를 알고 있었다는 점.
“…….”
정우는 발치의 정수 표식이 팽이처럼 미친 듯이 도는 걸 봤다.
이건 사방에 수준급의 각성자가 퍼져 있다는 뜻이었고, 정황상 포위됐음을 의미하기도 했다.
현재 정우 일행의 위치는 창원 도심지에 조성된 올림픽 공원 상공.
용헌은 더 고민할 것 없다는 듯 공원의 한가운데에 빠르게 착륙했고, 곧이어 헬기가 녹지 위로 미끄러지듯 내려앉았다.
투두두둑!
바닥과 맞닿은 스키드에서부터 굉음이 나자 몸을 잔뜩 움츠리고 있던 정택이 뒤늦게 고개를 번쩍 들었다.
“상두 씨!”
헬기 바닥에 매달아 둔 소가 생각난 것이다.
다행히 크랭크는 기체에 단단히 붙어 있었고, 여기에서부터 뻗어 나온 밧줄은 헬기 뒤편으로 팽팽하게 당겨진 상태였다. 꼬리 로터에 갈리지만 않았다면 무사하리라.
“전 내립니다.”
정우는 이렇게 말하고서 헬기 바깥으로 발을 내밀었다.
그러자 대번에 육중한 몸집의 ‘상두’가 눈에 들어왔다.
* 도와줘.
녀석은 마구잡이로 꼬인 줄 사이에서 신음을 내며 허우적대고 있었는데, 어딜 다치거나 한 게 아니고 스스로 줄을 풀지 못해서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정수를 뿜으면 간단히 해결될 텐데. 저 줄이 없으면 다음 이륙 때 자기가 버려진다는 걸 알아챈 건가?’
정우는 열심히 발버둥 치는 상두를 잠시 감상하다가 헬기 쪽을 향해 짤막하게 말했다.
“상두 씨 좀 풀어 줘요.”
* 도와줘!
그사이 상두가 한층 다급한 울음을 길게 뺐다.
사방에서 예사롭지 않은 기척이 느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 정우 씨.”
헬기 안에 머물고 있는 용헌도 긴장한 목소리를 냈고, 이에 정우가 뒤를 돌아보니 그쪽에서도 예닐곱은 족히 되어 보이는 사내들이 천천히 접근 중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소야……?”
“진짜 소가 있는데?”
사내들이 상두의 모습을 육안으로 확인하고서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뭐지 여긴? 창원에도 제법 큰 공동체가 있나?’
정우가 고개를 갸웃하는 동안 헬기 주변으로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모여 들었다.
남자와 여자가 섞인 건 물론 고등학생쯤 될까 싶은 어린 녀석들도 있었고, 머리가 희끗한 자도 더러 보였다.
다만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건 바로 전원 각성자라는 것.
‘31만, 52만, 44만, 58만…….’
정우는 가시거리 내로 들어오기 시작한 자들의 정수량을 빠르게 훑었다.
하나같이 타 지역에선 수준급으로 분류될 각성자들이었다.
* 저리 가!
헬기에서 뛰어내린 봉남이 상두 곁을 지키며 으르렁댔고, 어느새 헬기를 완전히 포위한 창원의 각성자들은 간만에 재밌는 일이 생겼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들이 주목하고 있는 건 소.
개야 평소에도 흔히 볼 수 있는 동물이지만, 소는 그렇지 않잖은가. 또한 이 시점엔 귀하디 귀한 고기이기도 하고.
“너희 뭐야……? 왜 소를 끌고 다녀? 어디서 온 거야?”
이윽고 한 사내가 눈을 희번덕거리며 상두와 정우를 번갈아 봤다.
그러자 정우가 미간을 살짝 찡그린 채로 보호막의 밀도를 대폭 높였다.
투드득.
여느 때처럼 다면체 형태로 쪼개지기 시작한 보호막.
이를 본 창원 측이 움찔하자, 정우가 대답 대신 도로 질문을 던졌다.
“누가 이 지역 사정에 가장 밝지? 빠르게 손을 든 녀석들만 잠시 살려 두마.”
“……!”
이 소리에 대다수는 코웃음을 쳤지만 극히 일부는 왠지 모를 불안감에 사로잡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