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arth-Style Savior Archetype RAW novel - Chapter 170
172화. 귀빈(6)
* * *
오후 7시 11분.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개금동 633-165.
이곳에 우의를 걸친 세 남자가 우두커니 섰다.
물론 개금동이니 뭐니 하는 주소는 이제 의미가 없었다.
더는 이곳을 다른 지역과 구분 지을 필요가 없게 됐으니까 말이다.
“……씨팔.”
세 남자 중 머리 위에 ‘포식자’란 문구를 붙인 자가 건조하게 욕을 뱉었다.
이 사내가 보고 있는 황무지는 한때 인제대 의과 대학이 있던 자리였다.
그리고 이 사내는 다름 아닌 대성 그룹 부산 지부의 특수전단 2팀장 강성오.
46세, 기혼, 아내 사망. 서울로 휴가를 갔던 외동딸은 행방불명됐으나 사실상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는 상태.
정수는 311만 개를 가졌다.
“어쩌죠? 여기가 마지막인데.”
이번엔 또 다른 사내가 걱정스럽다는 말투로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2팀의 히트맨이라고 할 수 있는 황현수였다.
39세, 미혼, 편모 가정 출신. 강원도의 어머니와는 연락 두절.
눈이 살짝 사시라 시선을 맞대고 있기 조금 부담스럽다는 게 거의 유일한 특징이었다.
그 외엔 무색무취. 대신 전투 감각이 정말 뛰어나서 성오가 팀원을 정리할 때 살아남을 수 있었다.
보유한 정수 총량은 252만 개.
“…….”
한편 세 번째 사내는 나머지 둘의 대화에 전혀 끼질 않고 있었는데,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아무래도 서울 쪽으로 올라가 봐야겠는데. 문기야, 괜찮겠냐.”
성오가 이렇게 묻자 문기라고 불린 사내가 숨을 힘겹게 내뱉으며 가까스로 대답했다.
“……어쩔 수 없지요.”
불에 덴 것처럼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 쌕쌕거리는 숨소리.
원인불명의 질병에 걸려 있는 특수전단 2팀의 조종사, 최문기였다.
이들이 계획에 없던 의사 찾기에 나선 것도 문기 때문이었다. 이 녀석이 죽어 버리면 헬기를 조종할 사람이 없었으니까.
최문기, 37세, 미혼. 다른 사연은 나머지 팀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문기도 자신의 생존이 최우선 과제였고, 이 때문에 정수를 더 얻자고 동료들을 살해한 팀장을 따르고 있는 처지였다.
하지만 끝내 천벌을 받게 된 걸까.
어제 점심 식사 직후부터 얼굴이 붓고 빨개지더니 종래엔 호흡 곤란과 간헐적인 경련 증상이 찾아왔다.
매우 불쾌할 정도의 복압과 가슴 통증은 죽음의 공포마저 느끼게 했고 말이다.
‘여기까진가. 이 시국에 병으로 죽을지도 모른다니 정말 우습네.’
문기는 헛웃음을 지으려고 했으나 안면 근육이 너무 경직되어 있어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그럼 빨리 출발하죠. 벌써 일곱 시가 지났는데요.”
현수가 서두르자는 이야길 했고, 이에 성오가 서울이 있는 북쪽 하늘을 묵묵히 바라봤다.
‘일이 꼬이는구만.’
끔찍한 기억만 가득한 부산이지만 아직 이곳에서 할 일이 남은 상태였다.
다름 아닌 부산을 박살 낸 구원자를 찾아내 죽이는 일.
더 정확히 말하자면 놈을 죽이고 구원자 역할을 뺏어오는 거다.
그간 특수전단 임무를 해 오면서 수집한 정보에 의하면 이 세상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두 가지뿐이었다.
자신이 구원자가 되거나, 그 구원자의 수하가 되거나.
그러나 이미 백만 단위의 정수를 확보한 탓에 정말 훌륭한 구원자를 만나게 되더라도 놈이 이쪽을 살려 줄 리 없다는 걸 잘 알았다.
그러니 유일한 길이 무엇이겠는가. 직접 구원자가 되는 것뿐이다.
각성자와의 전투는 질릴 정도로 많이 해 본 터라 성오는 자신이 준비를 마쳤노라고 생각했다.
순위권 구원자를 해치우고 놈의 자리를 꿰찰 준비 말이다.
그런데 재수 없게도 헬기 조종사가 발목을 잡았다.
‘그렇다고 걸어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고. 정말 어쩔 수 없나.’
이쯤에서 문기와 작별하는 것도 생각해 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 효율적이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또 어쩌면 서울을 헤집다가 우연찮게 그 지역의 구원자를 만나게 될는지도 모르고.
“가자. 많이 늦었다.”
이윽고 결론을 내린 성오가 축축해진 땅바닥을 신발코로 푹 찌르고서 헬기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러더니 이내 다시 뒤를 돌았다.
“……?”
성오의 묘한 행동에 현수가 고개를 갸웃했고, 문기만이 먼저 허공으로 시선을 옮겼다.
빗소리에 가려 아주 작았지만 분명히 들렸던 것이다.
두두두두…….
프로펠러 특유의 회전음이.
“뭐지?”
성오는 황급히 우의 모자를 젖힌 뒤 비를 그대로 받아 내며 상공을 바라봤다.
‘육감’이 발동된 그의 시야는 지금 전에 없이 새빨갰다.
언젠가 한 번 주황색을 본 적은 있어도…….
‘붉은 건 뭐지? 나보다 강하다는 소린가?’
그러곤 곧 어떤 직감이 성오의 머릿속을 날카롭게 찔러 왔다.
“그놈이다, 그놈. 분명해. 다른 지역으로 넘어갔다가 다시 수확을 하러 오는 걸 거다.”
성오의 얼굴엔 기대감이 가득 차 있었다.
마치 오랜 시간 추적해 온 사냥감을 마주친 사냥꾼처럼.
하지만 예상했던 대로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육감의 붉은색 경고……. 성오는 이를 부득 갈며 팀원들에게 명령했다.
“드디어 천운이 따르네. 여기서 놈을 잡고 서울로 이동한다.”
“예.”
성오의 대사에 현수가 비장한 표정으로 화답하며 천천히 몸을 풀었다.
‘히트맨’ 황현수의 특기는 물체화를 이용한 일격필살이었다.
마침 날씨가 궂어 근거리 습격에 최적화된 상황.
정말 팀장의 말대로 천운이 내린 것인가.
“문기는 헬기 근처에 있어라. 곧 돌아오마.”
“…….”
성오가 사냥감이 오는 방향으로 달리며 명령을 내렸으나, 문기로선 빗줄기를 뚫어 낼 만한 소리를 내는 것조차 여의치 않았기에 고개만 끄덕였다.
탓!
그사이 현수도 성오를 따라 움직이면서 기습 위치를 물색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저편 상공에서부터 백색 헬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와……!’
헬기의 모습을 직접 보니 느낌이 또 다르다.
성오는 이 공교로운 상황 자체에 연신 감탄하며 헬기를 향해 정수 창을 쏘아 보냈다.
촤아아아앗!
기세 좋게 내던진 그의 창은 주변을 파랗게 밝히며 빗줄기를 헤쳐 나갔고…….
‘엇?’
잠시 뒤엔 헬기 아래 매달려 있는 큼지막한 소의 모습까지 드러냈다.
‘뭐, 뭐야?’
믿기지 않는 광경에 성오가 눈을 껌뻑이는 사이 헬기 표면을 찌르던 정수 창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성오 딴엔 200만 개나 되는 정수를 담은 회심의 공격이었으나 헬기를 감싼 보호막을 부수기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심지어 저쪽의 보호막엔 이렇다 할 손상도 없는 것 같았다.
‘비…… 때문인가?’
성오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빗줄기 때문에 시야가 좋지 않아 보호막의 균열 따위가 잘 보이지 않는 거라고.
어찌 됐든 방금 공격으로 상대는 습격자들의 위치를 명확히 인지했을 터였고, 따라서 성오는 다음 계획을 실행에 옮겨야만 했다.
지금부터 대략 2초를 버는 것이다.
탓!
그가 까만 우의를 뒤집어쓴 채 어둠 속으로 숨으려는 순간, 백색 헬기가 고도를 올리는 게 보였다.
“……!”
이에 성오가 탈주 시도인 줄 알고 미간을 찡그렸으나 찰나의 오해였다.
곧장 헬기에서 누가 뛰어내렸으니까.
“등신 새끼.”
성오는 빠르게 낙하하는 상대를 보면서 비웃었다.
얼핏 봐도 고도가 상당했는데, 땅에 충돌하며 받는 피해를 보호막으로 상쇄한다는 것 자체가 상당량의 정수를 손해 보는 짓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오해였다.
「혹시 이 근처에 비각성자가 있나? 있다면 당장 비명이라도 질러라. 어두워서 잘 안 보이니까.」
장내를 채운 환경음과는 전혀 다른 채널을 사용하는 것만 같은 기이한 음성.
빗소리를 무시하고 귓속, 아니 머리 안으로 직접 들이박히는 듯한 소리에 2팀의 모두가 몸을 꼿꼿이 세웠다.
그러곤 누군가 이렇게 생각했다.
‘이 녀석이 정말 우리가 찾던 자인가?’
물론 아니었다.
이들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국내 1위 구원자 박정우였으니까.
‘이 와중에 비각성자를 왜……?’
한편 현장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있던 문기는 방금 들은 대사의 의도를 되짚어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파앗!
사내가 낙하한 지점을 중심으로 반경 20미터가량이 정수 방출로 가득 차는 걸 보고 나서야 답을 알게 됐다.
마치 어두운 곳에서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듯, 전방위 방출을 이용해 시야를 확보한 것이다.
‘……세상에.’
당연히 비각성자는 저 ‘플래시’ 안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을 테고.
애초에 정수를 활용하는 방법, 그리고 전투의 스케일 자체가 달랐다.
문기는 대략 1초 간격으로 번쩍이는 전장 안에서 성오와 현수가 미꾸라지처럼 빠르고 현란하게 움직이는 걸 봤다.
백만 단위 각성자들답게 플래시 안에서도 용케 전투를 개시한 거다.
그러나 상대가 두 사람보다 두어 배는 빨라 보였고, 여느 때처럼 또 플래시가 터져야 할 타이밍에 다른 일이 벌어졌다.
파앗!
이 거리에서 봐도 질릴 정도의 밀도가 느껴지는 정수 파동.
부채꼴을 한 이 파동은 전장 한 면을 먹어 치웠고, 곧 다시 플래시가 터졌다.
팟!
그리고 이때부턴 성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멀거니 선 현수의 모습만 보였다.
거리가 꽤 되는 탓에 그의 표정을 볼 순 없었으나 자세만 봐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지독한 절망감을.
“…….”
결국 문기는 다음번 플래시가 터질 무렵에 헬기의 조종석 안으로 몸을 들였다.
자신을 강제로 끌어내더라도 헬기 손상을 피할 수 없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후.’
조종석에 앉아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니 어느새 사위가 잠잠해졌다.
현수도 아마 죽었을 것이다. 더는 강원도에 계시다는 어머니와 그곳에서 진행됐던 정부의 진입로 방송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될 터.
“우윽…….”
잠시 잊고 있던 원인 불명의 복압이 다시 찾아왔다.
몸을 앞으로 수그리자 반쯤 닫아 둔 조종석 출입문 밑으로 푸르스름한 빛이 보였다.
고개를 드니 언제 왔는지 모를 젊은 사내가 헬기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박정우, 31세, 미혼, 어머니 사망. 아버지는 북한의 순위권 구원자, 그리고 본인은 남한의 1위 구원자.
보유한 정수량은 48,225,081개.
물론 문기는 상대의 정수량을 볼 수 없었지만, 적어도 이건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이 남자는 자신들이 찾던 그놈이 아니라는 거. 그리고 어설픈 짓거리는 이자에게 통하지 않을 것 같다는 점.
“아…….”
정우의 눈을 응시하던 문기는 잠시 생각한 뒤 문을 마저 열고 헬기에서 내렸다.
그러자 이번엔 정우가 문기의 모습을 꼼꼼히 살폈다.
“상태가 안 좋은 것 같은데. 조종사인가?”
“……예.”
문기는 말을 하는 것조차 힘겨운 상태였기에 한 음절의 대답으로 두 가지 질문을 모두 해결했다.
“2위는? 너희가 이렇게 돌아다닐 수 있는 걸 보면 여기에 없는 건가?”
이어진 정우의 두 번째 질문.
문기로선 눈을 휘둥그레 뜰 수밖에 없었다.
이쪽이 쫓고 있던 게 2위 구원자였다는 건 둘째치고, 굳이 2위를 찾아다니는 이 사내는 그럼 누구겠는가.
‘……당신이 1위란 말이야?’
너무나 놀라운 사실이었지만 막상 큰 동요가 일어나진 않았다.
아마도 조금 전 그 증거를 직접 봤기 때문일 것이다.
홰액!
그사이 정우는 문기가 아닌 허공을 향해 정수 창을 쏘아 보내고 있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예의 그 프로펠러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고, 용무를 마친 정우가 다시 문기 쪽을 돌아봤다.
“날 위해 일해. 그럼 계속 살 수 있게 해 주지.”
살고 싶나? 같은 상투적인 질문은 이제 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실제로 문기의 앞에 놓인 선택지도 하나뿐이었다.
“무, 물론…… 입니다. 다만…….”
건강에 큰 문제가 있노라고, 문기는 정말 가까스로 문장을 뱉어 냈다.
하지만 거래 상대는 성역의 주인이 아니던가.
정우는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의사를 한 명 데려오긴 했지만 당장 제대로 된 처치를 해 줄 순 없을 거다.”
그러곤 뒷말을 덧붙였다.
“그러니 하룻밤은 아무런 도움 없이 버틴다고 생각해라. 난 오늘 해야 할 일이 정말 많으니까. 네가 도중에 죽는다 해도 어쩔 수 없다.”
그 어떤 감정도, 숨겨진 의도도 없는 말.
스윽.
지나칠 정도로 투명하고 또렷한 통보에, 문기는 천천히 고개를 조아렸다.
‘그럼 이제 남은 건 정공법밖에 없나.’
정우는 그새 또 숨을 헐떡이는 문기를 보면서, 동시에 시야 구석의 채팅창을 살폈다.
최초의 채널.
이 나라 구원자 중에서도 상위 50인만 들어올 수 있는 공간.
부산을 떠나 어딘가로 자리를 옮긴 2위도 지금 이 공간을 들여다보고 있을 것이다.
“…….”
정우는 작게 들숨을 쉰 뒤 채널에 문장을 박아 넣기 시작했다.
[1] 인간 : 아직 멀었나? 난 부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