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arth-Style Savior Archetype RAW novel - Chapter 196
198화 악인(1)
“장군! 이럴 수 있습니까?”
애타게 자비를 구걸하는 태경의 목소리엔 적잖은 분노 역시 섞여 들어가 있었다.
전직 북부전구 사령원인 송두원은 전형적인 중국의 관료다. 당연히 중국 내에선 매우 보수적인 편에 속했고, 자국의 이득에 반하는 대상은 이유 불문하고 적으로 규정하는 게 상식인 인물이었다.
따라서 외부에서 온, 심지어 자국인도 아닌 저 박정우란 사내에게 적의를 보이리란 건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추영이가 인질로 붙잡혀 있는 데도 손을 쓰려 하다니…….’
믿기지 않았다. 추영이 죽게 되면 구원자인 자신과도 척을 지게 될 텐데,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뜻일까?
태경은 혼란스러운 얼굴로 더욱 속도를 냈다.
그러자 저 앞에서 수하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는 송두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앞뒤로 포위해라! 이곳을 떠나지 못하게 해!”
이에 그의 수하들이 두원에게 되물었다.
“저희가 달려들면 시장님이 위험해질 수도 있을 텐데요.”
“적당히 거리만 유지합니까?”
그리고 곧 떨어진 두원의 대답.
“시장이 무사하도록 최선을 다해라. 하지만 저 녀석이 밖으로 나가는 건 용납하지 못한다.”
사실상 추영이 죽어도 어쩔 수 없다는 뜻이었다.
“……!”
이 소릴 들은 태경의 얼굴이 악마처럼 변했음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파아아앗!
곧 그가 전력을 다해 두원의 바로 옆까지 접근했고, 이어서 상대의 어깨를 거칠게 붙들며 멈춰 세웠다.
“추영이를 해치면 저도 정말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습니다……!”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 아닌가? 시장 하나 때문에 창춘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지 않소.”
“우리의 정수 합이 훨씬 높으니 바깥에서도 충분히 처리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게다가…….”
태경은 저 외지인이 추영에게 자비를 베풀었다는 점을 이야기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어차피 두원에게 그런 건 중요치 않을 터였으니까.
“이전에 저만한 상대와 싸워 본 적이 있는가? 어떻게 승리를 장담하지? 저자를 바깥에서 상대한다면 시장 대신 내 부하들이 죽게 될 걸세. 그걸 알면서도 가만히 보고 있을 순 없네.”
두원의 정수 총량은 1억 8천만 개.
그러니 자신보다 정수를 1억 개나 더 보유한 정우를 두려워 할 수밖에 없었던 거다.
“진로를 막아라!”
그사이 저 앞에선 성역군들이 정우를 포위하기 시작했고, 이를 본 태경이 끝내 결단을 내렸다.
홰액!
성역군들이 있는 방향으로 정수 창을 쏘아 보낸 것이다.
“이 미친……!”
깜짝 놀란 두원이 정수를 최대한도로 끌어올렸지만 상대가 이미 자리를 벗어난 뒤였다.
「아무도 움직이지 마라! 이번엔 정말 죽일 테니까!」
솨아아아아앗!
태경이 번개 같은 속도로 달려 나가며 성역군들에게 경고한다.
정수와 어마어마한 독기가 실린 음성이었다.
그리고 이 틈을 타서 정우가 성역군의 포위망을 뚫고 나갔다.
성역군 개개인의 정수 보유량은 대략 700만 개에서 1,000만 개 사이.
정우로선 문자 그대로 사선을 드나드는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장태경!」
이윽고 송두원이 굵직한 음성으로 정우가 아닌 태경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태경은 이를 들은 체도 하지 않고서 어느덧 성역의 경계면에 거의 닿아 가는 냄새와 정우 그리고 추영의 곁으로 바짝 따라붙었다.
“여길 벗어나는 순간 추영이를 놔줘. 그다음엔 알아서 처신해라. 나는 최선을 다했으니까.”
보유한 모든 정수가 활성화된 태경의 모습은 푸른빛 덩어리처럼 보였다.
“…….”
이에 정우는 그를 힐끗 바라본 뒤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자 이를 ‘거래 성사’로 받아들인 태경이 보호막을 넓게 펼쳐 정우를 보호했다.
그러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보호막 위로 날카로운 기척 대여섯 개가 일제히 날아들었다.
두원의 지시에 따라 성역군이 맹공을 퍼붓기 시작한 거다.
「안 돼!」
정우가 성역 끄트머리에 닿기 시작한 걸 본 두원이 처절한 소리를 내며 엄청난 속도로 접근해 왔고, 태경은 그런 그에게 정수 창을 던지며 경로를 흐트러뜨렸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게 뭐요? 최소한의 신의도 지키지 못한다면 대체……!”
“의라는 것도 결국 자국민을 지키기 위함이다! 자네는 지금 엄청난 실수를 하고 있는 걸세!”
정수 억 단위의 두 존재가 ‘의’를 어느 선까지 행해야 하는지 논쟁하는 동안, 정우는 이미 성역의 경계면을 지나고 있었다.
파앗.
냄새의 코끝에서부터 시작해 순식간에 정우의 전신이 금빛 보호막을 지나쳤다.
“헉……!”
정우의 입에서 짤막한 탄식이 쏘아져 나온다.
2억 8천만 개나 되는 정수가 일제히 활성화되며 온몸의 세포를 들끓게 했기 때문이다.
“……세상에.”
여전히 정우에게 붙들린 채인 추영도 그의 몸에 엄청난 변화가 왔음을 깨닫고서 표정을 굳혔다.
그러다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서 정우에게 약속 이행을 요구했다.
“이제 날 보내 줘요. 더는 쓸모도 없잖아요.”
이렇게 말하는 추영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자신이 이자에게서 떨어져 나가는 순간 자신의 오빠와 성역군이 일제히 달려들 걸 잘 알고 있었으니까.
사실상 곧 망자가 될 사람과 마지막 대화를 나누는 셈인 것이다.
“물론이다.”
정우는 추영의 목소리가 떨리는 걸 들으면서, 이쪽을 향해 달려나오고 있는 태경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의 뒤를 바짝 따르고 있는 송두원과 성역군들의 모습도 말이다.
“유감이야.”
“……?”
뜬금없는 정우의 말에 추영이 눈을 휘둥그레 떴고, 곧이어 그녀의 몸이 허공으로 밀쳐졌다.
정우가 태경이 오는 방향으로 추영을 던진 거였다.
“악!”
추영의 입에서 비명이 쏘아져 나옴과 동시에 태경이 몸을 튕겼다. 여동생의 몸이 땅바닥에 닿아 부러지기 전에 받아 내기 위함이었다.
이에 따라 그의 정수 중 일부가 신체 강화에 분배됐고, 자연스레 전신을 덮고 있던 보호막의 밀도가 내려가게 됐다.
그리고 이때.
쿠드드득.
정우의 몸을 덮고 있던 보호막이 다면체 형태로 바뀌었다.
“……!”
이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아마 추영만이 어렴풋하게 예상했을 것이다.
피슈우웃!
정우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보호막에서 한 줄기의 가시를 뿜어냈고, 이 가시는 태경이 인지하기도 전에 그의 이마를 뚫고 지나갔다.
“……?”
슈룩.
오빠의 이마에 시퍼런 가시가 박혀 있는 걸 본 추영이 멍한 표정을 짓는다.
태경은 이때 추영을 막 받아든 때여서 두 눈으로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오빠……?”
추영이 불안한 목소리로 태경을 불렀으나, 창춘을 지켜 온 이 사내의 동공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에.
스윽.
온몸에서 힘이 풀리며 품에 안고 있던 추영을 그대로 놓아 버렸다.
“헉!”
추영은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면서도 오빠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래서 보게 됐다.
장태경의 몸에서 ‘사망’의 증거인 정수 구체가 솟아오르는 것을.
그리고 자신을 박정우라고 소개했던 사내가 기다렸다는 듯이 날아드는 장면을.
티틱, 스아아…….
구체들이 도로 떨어지기도 전에 현장에 도착한 정우는 태경이 뿜어낸 정수 구체 7개 중 2개만을 먼저 흡수했다.
대량의 정수를 흡수할 때 나타나는 후유증을 막기 위해서였다.
2억 8천만 개였던 정수가 즉시 3억 4천만 개까지 불어났다.
‘이걸로 됐다.’
정우는 자신의 정수량을 점검한 뒤, 그대로 고개를 들어 불과 백여 미터 앞에 멈춰선 송두원과 성역군을 응시했다.
“아……!”
올 게 오고야 말았다는 듯한 표정의 두원은 제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더니 이젠 화마저 가라앉았는지 초연한 얼굴로 정우에게 말을 건넸다.
“설마 그 정도까지 타락했을 줄은 몰랐다. 여러 의미에서 대단하군.”
“죽이지 않으면 죽게 될 뿐이야. 조금만 기다려. 확인해야 할 게 있으니까.”
“……?”
정우의 말에 송두원이 미간을 찌푸렸으나 곧 정우가 이야기한 그 일이 벌어졌다.
두아아아앙…….
성역을 덮은 보호막 꼭대기에서 울려 펴진 거대한 소리.
뱃고동처럼 들리기도 한 이것은 그 누구도 들어 본 적이 없는 경고음이었다.
하지만 소리의 크기와 별개로 음색은 낮고 힘이 없었다.
왠지 슬픈 느낌마저 든다.
“…….”
정우는 이 소리가 완전히 사라짐과 동시에 성역의 보호막이 공기 중으로 흩어지는 걸 봤다.
사아아아아…….
마치 유리판 위에 뿌려 둔 고운 모래가 바람에 쓸려 나가듯, 육중한 보호막이 통째로 지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성역도 절대적 안전지대는 아니라는 걸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하…….”
송두원은 헛웃음을 지으며 뒤편을 돌아봤다.
현시간부로 더는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게 된 창춘 전경을 보는 것이었다.
장태경의 미련한 선택 하나 때문에 창춘이 통째로 불타게 생긴 건 물론 두원 자신과 성역군의 미래마저 매몰됐다.
“우리에게 저 사람들의 목숨을 구걸할 권한은 있나? 자격은 갖췄다고 생각하는데 말일세.”
마침내 두원이 정우에게 자비를 청했다.
그러나 정우의 눈빛은 더없이 싸늘했고, 심지어 두원을 제대로 쳐다보고 있지도 않았다.
그는 지금 자신에게 전시안 표식을 꽂았던 터키 출신의 구원자를 찾아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중국의 인구가 몇이나 되지? 어림잡아도 14억 아닌가?”
“…….”
“미안하지만 그 부탁은 들어줄 수 없다.”
14억을 다 죽일 생각이라, 창춘의 주민들 역시 살려 두기 뭣하다는 이야기다.
정우가 이렇게 말하며 발치에 흩어진 정수 구체 하나를 더 건드리자, 그의 정수 총량이 3억 4천만 개에서 3억 7천만 개까지 솟아올랐다.
“……그럼 최대한 지저분한 싸움을 하는 수밖에 없겠군. 어차피 다 죽게 될 마당에 말이야.”
두원은 낙담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러곤 수하들을 돌아보지 않고 입만 움직여 지시했다.
“다들 당장 도망가라. 운이 좋다면 한두 놈은 가족과 함께 죽을 수 있겠지.”
“……!”
이에 숨을 죽이고 있던 성역군 전원이 사방으로 몸을 날렸으나.
촤아아아아앗!
이내 정우가 수십 줄기의 가시를 뿜어낸 바람에 단 한 명도 현장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이건 그 누구도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정우와 성역군 사이의 거리는 무려 백 미터 가까이 됐기 때문이다.
“이…….”
두원은 이제 소리를 낼 기력조차 남아 있지 않은지, 자신의 시야를 갈가리 찢어 놓은 정우의 가시들을 멀거니 봤다.
두 눈엔 본인도 모르게 차오른 눈물이 글썽였고, 곧 수용량을 초과해 눈 바깥으로 흘러넘쳤다.
뚜르륵.
뜨거운 눈물이 우둘투둘한 뺨을 따라 어지럽게 흘러내린다.
그리고 두원이 이 눈물을 닦아 내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푸악!
백 미터 밖에서 날아온 정수 창이 그의 머리를 꿰뚫었다.
푸슉, 츠으으읏.
두툼한 머리통이 있던 자리에서 얼마간 피가 솟구치더니 그것조차 금방 멎었고, 다음엔 의식을 잃은 몸뚱어리가 천천히 흔들거렸다.
쿵.
이윽고 바닥에 처박힌 두원의 신체.
다음엔 먼저 간 창춘의 구원자처럼 정수 구체를 뱉어 냈다.
크릉.
더없이 비열한 역전승을 본 냄새가 낮은 울음을 낸다.
이에 정우는 녀석의 이마에 손을 얹고서 침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