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arth-Style Savior Archetype RAW novel - Chapter 206
208화. 규격 외(6)
* * *
오후 6시 4분.
총 다섯 사람이 두 필의 말과 호랑이 한 마리에 나눠 탄 채 공도 위를 내달렸다.
이들은 다름 아닌 정우 일행이었다.
대한민국 잔류자 신분으로 중국에 넘어온 구원자 박정우.
몽골족 전사 트무르와 아므라.
한족이자 중국의 49위 구원자인 진모용.
딩싱 유곽의 종업원 당천애.
현재 이들의 목적지는 몽골족이 ‘대장채’로 지정한 딩저우 시였고, 그다음엔 진모용이 구원자 채널을 통해 들었다던 ‘검은 바다’를 보러 갈 계획이었다.
“그 바다라는 게, 문자 그대로의 의미인가?”
정우가 냄새의 등 위에서 이렇게 묻자 아므라의 말에 함께 타고 있던 진모용이 뒤를 돌아봤다.
“그럴 겁니다. 구원자들은 은유적인 표현을 거의 하지 않아요. 바다라고 했다면 정말 바다인 겁니다.”
진모용의 말에 따르면 중국의 내륙지 중 하나인 청두를 시작으로 각지의 진입로에서 시커먼 바닷물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사실이 채널을 통해 전파됐고, 이에 따라 문제가 된 진입로 일대의 구원자들이 일시적인 연합을 결성했다는 거다.
물론 어디까지나 ‘일시적’일 뿐, 접선 장소에서 만나자마자 연합이 깨질 가능성도 상당했다. 그래서 정우가 그리로 직접 가려는 것이다.
“그래서 가장 가까운 ‘바다’가 어디지?”
“딩저우 기준으론 스자좡이 가까울 겁니다.”
“스자좡?”
외지인인 정우가 딩저우와 스자좡 간의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알 리 없었고, 이에 대화를 듣고 있던 아므라가 슬쩍 말을 거들었다.
“스자좡이면 딩저우에서부터 말을 전력으로 몰아도 6시간은 걸릴 겁니다. 여기서부턴 족히 8시간 이상이죠.”
“오늘 안엔 닿기 어렵다는 말이군.”
“경로상 어차피 딩저우를 거쳐야 합니다. 더 빠르게 갈 방법은 없는 걸로 압니다.”
착각일까? 정우는 아므라가 일종의 보좌관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
정우가 말없이 아므라를 바라보자 녀석도 정우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그리고 이 장면을 당천애 역시 놓치지 않고 봤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그녀가 묘한 기류에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 정우의 고개가 전방으로 홱 돌아갔다.
습관처럼 주시하고 있던 발치의 정수 표식이 그리로 움직였기 때문이다.
“뭡니까, 또?”
정우의 기색을 느낀 트무르가 불안한 얼굴로 물었고, 반면 진모용은 주변을 둘러보며 조용히 보호막을 두껍게 둘렀다.
“앞쪽에 뭔가 있어. 곧 시야에 들어올 거다.”
“패스파인더에 걸리는 놈이라면 어차피 인간이나 동물 아니겠습니까? 큰 문제는 아닐 텐데요.”
정우와 마찬가지로 구원자 신분인 진모용이 뭐가 대수냐는 듯한 말투로 이야기했다.
정수를 8억 개나 들고 있는데 노상에서 맞수를 만날 일이 있겠냐는 거다.
그러나 정우는 동의하지 않았다.
“애초에 인간인 건 나도 마찬가지 아닌가? 나와 비슷한 놈이야 얼마든지 있을 수 있지. 이제야 네가 왜 49위인지 알 것 같군.”
“…….”
표정이 싸늘하게 굳는 진모용.
하지만 정우는 놈의 안색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대신에.
“아.”
저 멀리서부터 드러나기 시작한 기현상에 시선을 줬다.
그러자 나머지 일행도 정우를 따라 고개를 돌렸고, 곧 하나같이 멍한 표정을 짓게 됐다.
“어……?”
“뭐죠?”
현재 진행 방향, 다시 말해 서쪽 하늘의 일부가 시커멓게 변해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점점 이쪽으로 가까워지는 느낌까지.
“응?”
일행 중 마지막으로 아므라가 미간을 찌푸리며 문제의 까만 하늘을 바라보더니 눈을 크게 떴다.
“새… 인데?”
“새?”
“날아다니는 새 말씀이세요?”
그리고 거의 같은 순간에 익숙한 소리가 밀려들어 왔다.
그건 바로 까마귀 소리였다. 그것도 수백 마리가 번갈아 가면서 내는.
까악, 까악!
깍, 깍, 까악!
수백 개의 울음이 한데 뭉치자 소리의 질감이 느껴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커먼 그림자가 정우 일행의 위에 드리워졌다.
“……!”
정수 보유량을 떠나 보고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압도적인 느낌이 드는 광경.
다들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긴장한 모습으로 까마귀 떼를 바라봤고, 이들을 태운 짐승들도 자기 모르게 제자리에 멈춰 섰다.
“저러다 더, 덤벼드는 거 아닐까요?”
좌중에서 정수량이 가장 적은 당천애가 겁에 질린 목소리를 낸다.
갖가지 형태의 죽음을 각오했던 그녀였지만 까마귀 떼에게 쪼여 죽는 것까진 미처 상상해 본 적이 없는 탓이었다.
그러나 정우의 관점은 다소 달랐다.
‘이 뒤쪽엔 먹을 게 더 없을 텐데, 왜 이리로 도망 오는 거지?’
일찍이 행운동에서 비둘기 떼를 만나 본 정우는 잘 알았다.
이런 새 무리에겐 반드시 리더가 있다는 사실 말이다.
그리고 대개 그 리더는 구원자다. 즉, 동족의 존속을 목표로 무리를 이끌고 있을 거란 거다.
‘설마 이미 바다를 보고 오는 길인가.’
정우는 이제 이쪽의 머리 위까지 다다른 까마귀 떼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예상대로 놈들은 가던 길을 마저 가는 게 더 중요하다는 듯 정우 일행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고 있었다.
까악, 깍!
귀가 따가울 정도로 온 사방을 들쑤시는 날카로운 울음.
각각의 까마귀 머리맡에 정수가 표시되고 있긴 했지만 수가 워낙 많아서 누가 리더인지 가리기 어려웠다. 아마 대열의 앞쪽 어딘가에 있긴 할 거다.
그래서 정우는 더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행동했다.
홰액!
정수 파동을 뿜어 까마귀 떼의 허리를 끊은 것이다.
푸아아아악!
시퍼런 빛이 번쩍이며 순식간에 백여 마리의 까마귀가 소멸했고, 난데없는 선공에 당천애가 기겁하며 정우를 노려봤다.
“무슨 짓이에요?”
“무슨 짓이라니? 여태 해 오던 일을 똑같이 하고 있을 뿐이다. 설마 짐승에겐 좀 더 관대할 거라 생각한 건가.”
“아니, 그건 아니지만…….”
정우의 답을 들은 당천애는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조차 까마득하게 잊고 말았다.
그리고 그새 다수의 동족을 잃은 까마귀 떼의 선두가 선회를 시작했다.
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확인하려는 거다.
까아악! 까악!
아까보다 한층 성난 느낌의 울음들. 그리고 그 사이로 아주 이질적인 소리 하나가 튀어나왔다.
* 그만둬!
정수 번역된 어느 까마귀의 음성이었다. 이 무리의 우두머리 말이다.
‘거기 있었군.’
정우는 까마귀 떼의 선두가 이쪽으로 날아오는 걸 보면서 다시 팔을 휘둘렀다.
홰애액!
이번에는 무리의 꼬리를 노린 공격이었고, 여지없이 백여 마리의 까마귀가 또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자 조금 전 그 목소리가 한층 더 날을 세운 채 쏘아져 나왔다.
* 제발! 죽인다……!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문장.
간곡히 부탁은 하지만 말을 듣지 않으면 싸우는 수밖에 없다는 뜻일까?
정우는 하늘을 가득 채운 까마귀들이 일제히 파란색으로 물드는 걸 봤다.
이제야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어… 그냥 다 죽이면 됩니까?”
까마귀들의 기세가 바뀌었음을 느낀 아므라가 이렇게 물어 왔고, 정우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놈들의 선두를 응시했다.
그러자 역시 선두 중 한 마리가 유난히 진한 색을 띤 걸 볼 수 있었다.
저게 우두머리인 거다.
“기다려. 놈들이 어떻게 싸우는지 좀 보자고.”
정우는 이 말을 하며 눈을 파랗게 빛냈다. 그리고 때맞춰 까마귀들의 공세가 시작됐다.
까아아악!
허공을 어지럽게 맴돌던 놈들이 갑자기 몸을 뾰족하게 만들더니 그대로 정우 일행을 향해 고속 낙하하기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 놈들은 전신을 파랗게 태우고 있어서 마치 파란 빛깔의 포탄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쐐애애액!
제법 매서운 파공음이 허공을 꿰뚫었고, 이에 정우 일행은 저마다 보호막을 두르며 살아남을 준비를 했다.
단 한 명, 당천애를 제외하고 말이다.
“헉, 허억……?”
정수 총량 11만 개인 그녀가 저만한 공격을 버텨 낼 수 있을 리 없지 않은가.
그녀가 황급히 정우를 향해 시선을 돌렸지만 이 무심한 구원자는 눈으로 우두머리 까마귀를 좇느라 정신이 없었다.
“저, 저는!”
당천애가 정우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까마귀들의 성난 울음에 묻혀서 제대로 전해지지 않았고, 이를 깨달은 그녀가 사색이 된 순간.
스아아앗.
어디선가 나타난 두툼한 보호막이 그녀를 감싸듯 밀려들어 왔다.
“어……?”
깜짝 놀란 당천애가 보호막이 나타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녀를 여태 말에 태우고 다니던 트무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가 본인의 몸에 두르고 있던 보호막을 팽창시켜서 당천애까지 덮어 준 것이다.
“여기서 죽게 되면 너무 어처구니없지 않겠습니까.”
트무르가 애써 무뚝뚝한 음성을 내뱉는다. 그러나 곧이어 까마귀 떼가 그의 보호막을 두드리는 바람에 천애의 답이 이어지진 않았다.
까아아악!
까마귀들은 마치 태풍 속에 빨려든 바위 파편처럼 움직였다.
정우 일행을 중심으로 나선형을 그리며 사방에서 공격을 시도했는데, 만에 하나 보호막이 튼튼하지 않았다면 대번에 전신이 찢겨 나갔을 거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실제로 천만 단위 각성자인 트무르의 보호막에 크고 작은 흠집이 났기도 했고 말이다.
“이제 이 세상에서 만만하게 볼 수 있는 건 단 하나도 남지 않은 것 같군요.”
트무르가 기가 질린단 표정으로 이 말을 하는 동안 잔뜩 겁에 질린 당천애가 그의 등 뒤에 몸을 바짝 붙였다.
그러자 트무르의 표정이 잠깐이지만 아주 묘하게 비틀렸다.
한편 정우는 냄새의 등에서 내려와 정신없이 날갯짓 중인 까마귀들을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작은 녀석들이 10만 개, 좀 강하다 싶은 놈들은 100만 개까지도 들고 있군.’
구성원 간의 전력 차이가 10배가 넘는 데도 분열 없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신기했다.
까마귀가 새 중에선 제법 머리가 좋은 편이라던데 이 때문일까?
‘오히려 반대일지도 모르지. 동족이든 뭐든 강한 놈을 위로 보내는 게 현명하지 않나?’
정우가 하늘을 보며 생각에 잠겨 있자 냄새가 머리를 들어 어딘가를 가리켰다.
* 대장.
까마귀의 우두머리를 찾은 거다.
이에 정우도 냄새를 따라 눈을 돌렸고, 곧 긴 궤적을 남기며 주변을 크게 돌고 있는 까마귀를 보게 됐다.
정수 보유량 1,200만 개.
다른 녀석들과 비교했을 때 가히 압도적이었다.
‘고작 까마귀가 정수를 1,200만 개나 가지고 있다고……?’
크릉……!
냄새가 이빨을 드러내며 우두머리를 향해 울음을 뱉었고, 놈도 이를 들었는지 방향을 바꿔 정우를 향해 날아들었다.
하지만 비행 속도를 봤을 때 공격을 하려는 건 아닌 것 같았다.
* 그만둬. 우릴. 보내 줘.
놈은 차마 정우의 앞에 멈춰 설 엄두를 못 내고 주변을 계속 돌며 애처롭게 외쳤다.
“그럼 내 질문에 대답해. 지금 바다를 보고 오는 건가? 그게 어디까지 침식해 있지? 거기서 다른 인간도 봤나?”
정우는 까마귀가 이 질문을 이해할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사람을 봤다는 답만 듣더라도 충분하리라 생각했다.
어찌 됐든 아직 바다 근처에 구원자들이 산 채로 몰려 있다는 뜻일 테니까.
그러나 정작 우두머리 까마귀의 입에서 흘러나온 답은.
* 산! 산이. 일어나! 바다에서!
녀석이 자그마한 부리를 크게 벌리며 날카롭게 외쳤다.
정수로 번역된 음성이었지만 놈이 겁에 질려 있다는 게 여실히 느껴졌다.
“산이 일어난다고……?”
정우가 의아하다는 얼굴로 되물었고, 이 순간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던 까마귀들이 일제히 솟아오르며 외쳤다.
* 온다!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