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arth-Style Savior Archetype RAW novel - Chapter 214
217화. 전문가(1)
* * *
오후 9시 40분.
두 가지 일이 벌어졌다.
첫째는.
「1,196,372,405」
정우의 정수 총량이 마침내 11억 9천만 개에 달했다는 것이고, 둘째는…….
“공안에서 날 찾고 있을 걸세.”
손태광의 입에서 직접 ‘공안’이란 단어가 발음됐다는 거였다.
그러나 정우의 입장에선 손태광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민간인이나 다름없었기에 이렇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공안이 널 찾고 있다고? 왜지?”
“…….”
난감하다는 표정을 짓는 손태광. 그러더니 살이 도톰하게 오른 볼을 실룩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가 여전히 건재하다는 걸 세상에 보여줘야 할 테니까.”
이때 손태광이 말한 ‘우리’란 중국을 뜻했다. 중국이 무너지지 않았다는 걸 세상에, 그러니까 국제 사회에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자신이 살아 있어야 한다는 거다.
“공안의 존재 이유는 국가 안정화다. 경감급 인사들은 이미 자체적으로 행동하는 중일 거야. 그러니 베이징이 함락됐다는 걸 알아차린다면 날 찾으려 들겠지.”
현실을 부정하기 위한 자위질이라고 보기엔 손태광의 말투와 표정이 너무 엄숙했다.
‘……진심이군.’
여태 봐온 자들과는 또 다른 유형의 미친놈.
하지만 여기가 다른 나라도 아닌 중국이다 보니 아주 현실성 없는 이야기 같지는 않았다.
“그 정도로 충성스러운 인물이 그렇게나 많다는 건가? 난 잘 이해가 안 되는데. 힘을 가진다면 자기 잇속부터 챙기는 게 일반적이야.”
정우가 이렇게 말하자 손태광이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충성의 차원이 아니야. 존재의 이유인 거다. 인민과 국가가 없다면 공안도 더는 존재할 수 없지. 반드시…… 아니 이미 날 찾고 있을 걸세.”
“왜 꼭 너여야 하지?”
“……?”
정우의 이번 질문엔 손태광이 정말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숨을 쉬지 않으면 죽나요? 같은 당연한 질문을 받은 듯한 반응.
정우는 이를 보고서 비로소 깨달았다.
대한민국에서 가져온 상식을 이 나라에 그대로 대입해선 안 된다는 사실 말이다.
“어쨌든 네가 수하들을 바로 불러들일 방법은 없다는 거 아닌가? 게다가 난 공안이 아니니까 네가 살아 있든 죽어 있든 상관없잖아?”
“그건…….”
정우의 뉘앙스가 심상치 않자 단단해 보이던 손태광의 표정이 도로 허물어졌다.
국가가 건재하니 어쩌니 했지만 어디까지나 자신의 생존이 1순위였던 것이다.
“내가 있어야 공안부를 하나로 묶을 수 있고, 이 나라를 바로 세울 수 있네.”
“아까도 말했지만 난 이 나라 재건에 전혀 관심이 없고, 솔직히 말하자면 네가 없어도 누군가는 네 역할을 알아서 해낼 거라고 생각한다. 다른 의견이 없다면 이만 작별하지.”
슥.
정우가 다시 손태광을 향해 손을 들었다.
“……!”
이때만 해도 좌중의 한족들은 손태광이 정말 죽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루아침에 태양이 사라진다든지 바닷물이 다 말라버린다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으니까.
상식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일 말이다.
그러나.
“이런 놈을 위해 2억 개짜리 구원자가 목숨을 걸었다니, 한심하군.”
물론 정우가 한족이었고, 그중에서도 사회 주류 계층에 든 인물이었다면 전개가 완전히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우는 중국이 통째로 사라져도 크게 아쉬울 게 없는 입장이었기에 자신이 말한 바를 그대로 지켰다.
푸아아악!
이 나라의 모든 공안이 찾아 헤매고 있을지도 모르는 인물, 국가주석 손태광의 머리를 날려버린 것이다.
“어억!”
“헉.”
푸른 성역의 주민들은 물론 왕위삼마저 믿기지 않는다는 소리를 내며 각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고, 오로지 아므라만이 속이 시원하단 얼굴로 망자의 몸뚱어리를 바라봤다.
스륵.
이윽고 힘이 풀린 손태광의 시체가 뒤로 맥없이 넘어가더니 땅바닥에 처박혔다.
퍽!
질펀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고꾸라진 시체에선 피가 쉬지 않고 흘러나왔다.
“…….”
그리고 다들 숨을 죽인 채 손태광의 혈액이 흙바닥에 스며드는 걸 지켜봤다.
여전히 현실감이 없지만, 어쨌든 실제로 벌어졌다.
이 나라의 우두머리가 눈앞에서 죽은 것이다.
“다음은.”
정우가 정적을 깨고 입을 열자, 좌중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 모였다.
“내 입장부터 빠르게 밝히도록 하지.”
정우는 이 말을 하면서 어느새 여덟 명으로 줄어든 생존자 후보들을 눈으로 훑었다.
남자 여섯에 여자 둘.
그런데 하나같이 이전에 마주쳤던 중국인들과는 안색부터가 달랐다.
귀티가 난다고 해야 할까. 그렇다고 손태광과 함께 도망쳐 나온 정치인들이라고 보기엔 대체로 나이가 어렸다. 한 명을 제외하곤 전부 2,30대였으니까.
“의사, 그리고 마차 만드는 걸 도와줄 사람을 찾고 있다.”
“……?”
정우의 말이 끝나자마자 장내가 술렁였고, 그러다 한 사내가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푸른 성역의 주민 중 유일하게 50대로 보이던 남자였다.
“말해.”
“저…… 방금 마차라고 하셨는데, 정확히 어떤 형태를 원하시는 건지 알 수 있겠습니까?”
“의사와 호랑이, 그리고 대여섯 명이 삼 일 이상 먹을 수 있는 식량을 싣고 달릴 수 있는 크기여야 한다. 말은 네 마리 정도를 붙일 생각이야. 각각은 승용차보다 빠르게 달릴 거다.”
“……말이 승용차보다 빠르다고요?”
사내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서 반문하더니 정우가 농담하는 게 아님을 알고서 뒷머리를 긁어댔다.
“그럼 일반적인 마차로는 버틸 수가 없겠고, 버스나 트럭을 개조하는 쪽이 맞겠군요. 애초에 대형 마차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넌 누구지?”
“아.”
정우의 눈길을 단독으로 받게 된 사내가 황망하단 얼굴로 고개를 조아린다.
“전태천이라고 합니다. 자동차 설계 일을 하다가 지금은 정비소를 차려…….”
사내는 말을 하다 말고 입을 다물더니 객쩍은 표정을 지었다.
생각해보니 ‘지금은’이라는 말 자체도 성립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운영하던 정비소는 오늘 아침부로 바다에 휩쓸려 사라졌을 테니까.
“자동차를 설계했었다고?”
“예. 그렇습니다……!”
정우가 흥미를 보이자 전태천의 표정이 한층 밝아졌다.
차는커녕 도로조차 사라져 가는 시국이지 않은가. 사실상 이 자리에서 자신이 가장 쓸모없는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그다.
그런데 난데없이 나타난 미치광이가 마차 만들 사람을 구한다니…… 적어도 태천에겐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그럼 차량과 적당한 작업도구를 구할 수만 있다면 내가 원하는 형태로 마차 제작이 가능하겠나?”
“으음……. 가능합니다. 하지만 도면도 없이 눈대중으로 만드는 거라 계속해서 보강을 해야 할 겁니다.”
언젠가 헬기 조종사 용헌을 영입했을 때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태천 역시 본능적으로 자신이 앞으로 계속 필요할 거란 사실을 주시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럼 네게 필요한 도구를 구하려면 어디로 가야 하지? 여기에서 가깝고, 남서쪽 방향의 지역일수록 좋다.”
이건 정우가 여전히 딩저우로 향하는 중이기에 덧붙인 말이었다.
그러자 전태천이 긴장한 얼굴로 허공에 시선을 걸더니 가늘게 떨리는 입술로 천천히 말했다.
“디, 딩저우가 어떨까요? 여기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이기도 하고, 일대의 교통 중심지라 공업사가 많을 겁니다.”
물론 검은 바다가 아직 딩저우를 덮치지 않았다는 전제하에서다.
어쨌든 정우로선 가장 기대하던 답변이 나온 셈이었다.
“좋아. 네가 만약 쓸 만한 마차를 완성한다면 목숨을 보장해주지.”
구원 승인 완료.
정우의 말이 끝나자, 이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나머지 주민들이 앞다퉈 손을 들었다.
“저, 저도 쓸모가 있을 겁니다!”
“제가 먼저 말씀을 드려도……!”
정우가 정말 인재를 ‘픽업’ 중이란 걸 두 눈으로 확인하게 되니 마음이 급해진 거다.
상대가 조금 전 자신들의 주석을 죽였다는 사실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자리의 대다수는 베이징 출신의 상류층.
베이징이 함락될 당시 손태광이 간신히 경사 하나의 도움을 받아 탈출하는 와중에 합류하게 된 일반 시민이었다.
따라서 이들의 직업은 대체로 대기업의 사원이거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젊은 사업가 등이었고, 안타깝게도 정우가 필요로 하는 ‘실무자’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중에 의사 하나 없다니 유감이군. 대체 중국의 의사들은 다 어디로 간 거지?’
정우는 필사적으로 자신의 목숨을 영업해오는 사람들을 눈으로 헤치다 결론을 내렸다.
전태천을 제외한 나머지를 전부 정리하기로 말이다.
“아므라.”
“옙.”
호명을 받은 아므라가 말을 몰아 정우의 뒤편에 섰고, 곧 지시가 떨어졌다.
“설계자를 네 말에 태워라. 딩저우까지 쉬지 않고 달릴 거다.”
“알겠습니다.”
아므라가 명을 받들어 전태천을 자신의 말에 올려 태우자, 이를 빤히 바라보던 나머지 주민이 사색이 되어 달려들었다.
“안 됩니다! 제발!”
“사, 살려주십시오!”
자신들이 정우의 눈에 들지 못했다는 걸 깨달은 거다.
“이제 그만 거둘까요?”
아므라가 그새 말의 근처에 바짝 달라붙은 주민들을 흘깃 보더니 정우에게 물었다.
이에 정우의 고개가 조용히 위아래로 움직였고, 이를 신호로 아므라가 전개했던 보호막이 일시에 걷혔다.
팟.
그리고 같은 순간에 사위에서 넘실대던 바닷물이 정우 일행과 푸른 성역의 주민들을 덮쳤다.
촤아아앗!
“흐아악!”
삽시간에 시커먼 물이 온 사방을 채웠고, 정우는 이때가 돼서야 처음으로 보게 됐다.
검은 바다가 지구의 주민을 어떤 방식으로 집어삼키는지 말이다.
이 바다의 수위는 신장 175의 남성을 기준으로 허리까지 올라오는 수준이었다.
따라서 제자리에 꼿꼿이 서 있으면 매몰될 일이 없어야 정상이었겠으나…….
취리릭!
검은 바다는 무수한 ‘올챙이 떼’로 구성된 괴물 군집 그 자체이지 않은가.
먹잇감이 나타났음을 인지한 바닷물은 이내 수면 밑쪽에서부터 시커먼 촉수 같은 걸 뽑아 올려서 사람들을 옭아맸다.
“흐억, 으얽……!”
먹잇감에게 달라붙은 촉수들은 곧 상대의 모공과 콧구멍, 눈, 입 등을 통해 신체 안쪽으로 침투했고, 그 다음엔…….
“씨팔.”
주민들이 죽어가는 걸 보던 왕위삼이 자신도 모르게 욕을 내뱉는다.
촉수에 얽힌 사람들의 피부 안쪽이 새까맣게 변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결코 알고 싶지 않았다.
팟, 파팟.
희생자들의 동공마저 까맣게 변할 무렵, 드디어 푸른 정수 구체가 허공으로 치솟았다.
그리고 이걸 본 정우 일행은 여태 눈앞의 사람들이 살아 있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아아…….”
한족들에게 적지 않은 감정이 있는 아므라마저도 이때는 눈을 감아 애도를 표했다.
같은 인간으로서 미안한 마음이 든 거다.
반면 정우는.
‘8초 정도인가.’
인간들이 바닷물에 노출된 뒤 공식적인 사망 판정이 날 때까지의 시간을 재고 있었다.
그다음엔.
‘만약 사망하기 전에 도로 건져내면 어떻게 되지? 다시 되살리는 것도 가능한가?’
이런 생각이 들어 황급히 생존자를 찾아 눈을 돌렸으나, 이미 모든 주민이 바닷물 속으로 잠긴 뒤였다.
다시금 정적이 찾아왔고, 검은 바다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잔잔한 수면을 유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