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arth-Style Savior Archetype RAW novel - Chapter 216
219화. 전문가(3)
오후 11시 31분, 딩저우 서부 어딘가의 지하 주차장.
이곳에 한 남자가 가만히 누워 있었다.
실 한 오라기조차 걸치지 않은 완전한 나체로 말이다.
창저우 태생인 이 사내의 이름은 장당래.
37세, 전직 에어컨 설치 기사.
그리고 그가 누운 곳에서부터 약 3미터 떨어진 곳엔 또 다른 사람이 멍하니 앉아 있었다.
64세 여성, 원문혜. 장당래의 친모이자 1급 시각 장애자.
초점이 없는 그녀의 눈은 실제로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벌써 20년 째다.
“이제 좀 주무세요. 한동안은 이리로 올 사람도 없어요. 내일도 일찍부터 깨어 있어야 하고요.”
당래가 이렇게 말했지만 문혜는 여전히 지하 주차장의 출입구를 하염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출입구에서부터 불어오는 바람의 흐름을 느끼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물론 그녀도 한동안 찾아올 사람이 없을 거란 아들의 말이 사실임을 잘 알았다.
녀석이 오늘 밤을 무사히 보내기 위해 이 도시의 생명체를 다 죽여 버렸으니까.
그래서 더욱 잠들 수 없었다.
깊은 슬픔이, 그녀를 계속해서 각성 상태로 있게 했다.
“내일은 어디로 가니.”
그녀가 힘없는 음성으로 묻자 당래가 고개를 돌려 쳐다봤다.
“글쎄요, 일단은 남쪽으로 내려가서 도시들을 찾을까 싶은데.”
가장 가까운 대도시로는 베이징이 있지만 거긴 일찍이 박살이 났을 거라 헛걸음만 하게 될 거라고, 당래가 덧붙인다.
그리고 이를 들은 문혜는 더욱 슬픈 눈을 하고서 허공에 시선을 걸었다.
아들이 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이기 위해 머리를 굴리고 있지 않은가.
스윽.
믿고 싶지 않은 현실에 그녀는 당래 몰래 자신의 배를 어루만졌다.
여전히 자궁이 있는 자리. 수십 년 전 장당래를 품고 있던 그곳.
만일 일찍이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면 아이를 포기할 수 있었을까?
“…….”
덧없는 생각이다.
지금만 해도 문혜는 오로지 당래를 위해 숨을 붙이고 있었다.
홀몸이었다면 진즉에 자살을 했을 것이다.
살아가기 위해 남을 무참히 죽여야 하는 정신 나간 세계.
문혜는 이런 세계에서 굳이 살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구나.”
그녀는 결국 이 한마디에 수십, 수백 줄의 문장을 파묻었다.
그러곤 아무것도 볼 수 없는 눈을 아들이 누운 방향으로 돌렸다.
바깥에서부터 계속 흘러 들어오는 대량의 공기가 특정 지점에서 흩어지는 게 느껴졌고, 바로 그곳이 아들이 있는 자리일 터였다.
새까만 머릿속에 녀석의 실루엣이 그려지는 듯하다.
“그래, 자야지.”
수 시간 뒤면 지구 폐쇄 6일 차가 시작된다.
이것이 산 자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문혜 역시 충분히 알고 있었다.
스슷.
그녀가 몸에서 힘을 빼며 상체를 뒤로 눕히자 당래도 비로소 안심이 된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도로 눈을 감았다.
“후우…….”
당래가 심호흡을 하며 잠을 청한다.
충분히 피곤한 하루였고, 내일은 더 고된 하루가 될 터였다.
머릿속, 아니 영혼이 시뻘겋게 부식된 느낌이다. 쉬어야만 했다.
“…….”
그는 눈을 감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잠에 빠져들었다.
그러다가.
“우억……!”
난데없이 바로 옆자리에서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려오기에 눈을 번쩍 떴다.
어머니에게서 난 소리임을 알았기에 이미 온몸에 소름이 바짝 돋아 있었다.
“무, 무슨 일…….”
당래는 반사적으로 튀어 나간 대사를 끝까지 읊지도 못했다.
어머니의 얼굴이 온통 누런 토사물에 적셔져 있었기 때문이다.
“악! 아악……!”
어머니, 원문혜는 겁에 잔뜩 질린 얼굴로 허공에 손을 휘적거리고 있었다.
초점이 없는 눈 때문에 당래는 지금 어머니가 악몽을 꾸는 중인지 실제로 어떤 이상이 생긴 건지조차 쉽게 가늠할 수 없었다.
그러다 이내 어머니의 흰자위에 붉은 핏발이 거미줄처럼 잔뜩 올라오는 걸 보고서 이게 일반적인 발작 증상이 아님을 직감했다.
“이……!”
딩저우의 모든 생명을 앗아 간 자, 장당래가 자신의 어미와 마찬가지로 겁에 질린 표정을 짓는다.
그는 심장 박동 소리가 귓불까지 올라오는 걸 느끼며 주변을 미친 듯이 둘러봤다.
그러자 마침내.
사아아앗.
저 멀리 지상과 연결된 통로 너머에서부터 푸르스름한 불빛이 밀려 나오는 게 보였다.
‘……정수!’
당래는 적이 왔음을 깨닫고서 서둘러 보호막을 펼쳐 자신과 어머니를 보호했다.
그리고 이때에 이르러서야 한 가지를 생각해 냈다.
이게 만약 2일 차 침입자였던 ‘농부’처럼 모종의 정신공격이라면 이 보호막이 어머니의 증세를 멎게 할 수 있을 거란 추측 말이다.
그러나.
파아앗!
빠르게 전개된 보호막은 어머니의 상태를 호전시키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하아아악!”
그사이 속에 든 걸 모두 게워 낸 문혜의 입에서 바람이 새는 것 같은 기이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눈은 이제 검은자위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바짝 뒤집혀 있었고, 코에선 핏물이 흘러나왔다.
어머니가…… 망가지고 있는 것이다.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이 씨파알! 그만둬!”
당래는 눈시울이 시뻘겋게 된 채로 전신을 파랗게 태웠다.
다음엔 어머니를 덮고 있던 보호막이 사라지는 걸 감수하고서 전방으로 뛰어나갔다.
어차피 이대로 있어 봐야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을 입게 될 거란 걸 직감한 탓이었다.
파악!
그가 땅을 박찬 자리의 콘크리트가 모래처럼 흩어지면서 잿빛 구름을 만들었다.
「누구냐, 나와라!」
눈 깜짝할 사이에 수십 미터를 주파한 그는 아까보다 한층 가까워진 지상 통로를 향해 정수가 실린 음성을 쏘아 보냈다.
그러자 거의 같은 순간에 응답이 왔다.
당래가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말이다.
쐐애애액!
심상치 않은 파공음.
당래는 이게 투사체 형태로 빚어진 정수가 날아오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정작 그가 보게 된 것은…….
“억!”
살기로 곧 불타 버릴 것만 같던 당래의 눈이 휘둥그레지며 일순 기세가 죽었다.
믿기지 않는 속도로 지상 통로를 통과한 푸른 물체가 다름 아닌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시커먼 구름 같은 게 놈의 좌우에 딱 붙어서 다가오고 있었다.
‘저게 대체.’
당래는 자신도 모르게 속도를 늦췄고, 그 순간 문제의 불청객이 반짝였다.
문자 그대로다. 불이 꺼져 있던 전등을 갑자기 켠 것처럼 한 차례 반짝였다.
그리고 그다음엔 놈의 얼굴이 당래 자신의 코앞에 와 있었다.
‘우, 움직이는 걸 못 봤어.’
구원자, 포식자, 미분류자.
어떤 역할을 가지고 있든 대량의 정수를 보유한 각성자는 자신이 죽을 것이라고, 패배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실제로 현시점까지 단 한 번의 패배도 겪지 않은 자들이니까. 그러니 앞으로도 패배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는 거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 당래만큼은.
“헉!”
난데없이 나타난 이 사내를 이길 수 없을 거란 걸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문제는 자신이 죽으면 어머니 역시 살아남지 못할 거라는 점이었다.
그리고 때맞춰.
“하아아아아악!”
뒤편에 남겨두고 온 어머니가 단말마가 아닐까 싶을 정도의 끔찍한 소리를 내며 허리를 기묘한 형태로 구부렸다.
“아……!”
이에 당래가 그리로 고개를 돌리는 사이 불청객을 따라왔던 까만 구름들이 지하 주차장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
이것들이 정수 발현의 일종이 아니라 또 다른 존재라는 걸 당래가 느낀 것도 이때부터였다.
어머니의 발작 원인이 저것들이라는 걸 깨달은 것도 이때였고 말이다.
“다 뒈져……!”
눈이 완전히 뒤집힌 당래는 눈앞의 불청객을 놔둔 채 구름을 향해 달려들었고, 이를 본 불청객, 정우는 막 뻗으려던 손을 도로 거뒀다.
이거야말로 자신이 기다리던 순간이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정우가 구원자의 눈으로 확인한 상대의 정수 총량은 5억 개.
그리고 지금 상대가 달려들고 있는 구름의 정체는 다름 아닌 관찰자들이었다.
검은 바다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자 다시 무형에 가까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간 것이다.
‘5억 개라면…….’
저 정도 각성자라면 충분한 샘플이 되어 줄 것이다. 관찰자의 전투력을 측정하기에 적합한 샘플.
타아앗!
이윽고 당래가 이를 악문 채 허공으로 몸을 날렸고, 곧이어 실력 행사를 시작했다.
“……!”
정우의 눈이 커질 정도로 색다른 방식의 정수 발현.
촤아아아앗!
장당래가 사용하는 정수의 형태는 수십 갈래의 촉수였다.
정우의 ‘가시’와 달리 마치 각각이 살아 있는 것처럼 유연하게 움직였고, 심지어 제각기 다른 목표물을 향해 정확히 날아들었다.
정우와 그 뒤편으로 달려오고 있는 아므라, 당위삼에게까지 말이다.
“헉?”
생경한 형태의 정수에 아므라가 낮은 신음을 흘렸으나 이내 정우가 보호막을 확장시켜 촉수를 간단히 막아 냈다.
그러곤 이제 막 관찰자들과 부딪치기 시작한 당래에게로 눈을 돌렸다.
「계약을 제안한다.」
아직 계약자를 찾지 못한 다홉은 예상대로 당래에게 계약을 권했고, 반면 도르는 상대를 죽여 정수라도 건지려는지 다홉보다 먼저 실체를 갖췄다.
드드드득…….
이전에 본 그 괴이한 모습으로 육체를 빚은 것이다.
단, 70미터에 달하던 신장이 지금은 주차장의 천장 높이에 맞춰 2미터 수준으로 줄어 있었다.
‘이 상황에서 굳이……? 육체가 없으면 싸울 수도 없는 건가.’
정우는 이 광경을 보면서 나름대로 정보를 수집했다.
앞으로 만날 관찰자가 몇이나 더 있을지 모르는 일이니까.
그리고 그사이 당래가 뿜어냈던 촉수들이 다홉과 도르를 덮쳤다.
이때도 둘의 반응이 크게 차이 났는데, 다홉의 경우 여전히 구름 내지는 안개 형태인 몸을 뒤로 물리며 피했고…….
「그만.」
도르는 제자리에 꼿꼿이 선 채로 팔을 세차게 휘둘렀다.
그러자 녀석을 향해 매섭게 쏘아져 나가던 촉수들이 일시에 흩어져 버렸다.
아무리 당래의 전력이 분산된 상태였다지만 팔 동작 하나만으로 정수 5억 개짜리 각성자의 공격을 무효화한 셈인 거다.
‘대체 어떻게 돼 먹은 놈들이지?’
첫 합을 목도한 정우가 낙담하려는 순간, 그의 눈에 무언가 포착됐다.
‘저건…….’
분명했다.
조금 전 허공을 갈랐던 도르의 오른팔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저건 아마도.
‘출혈이구나. 그러니까 공격을 막았다기보다는…….’
‘피지컬’로 버텨 낸 것이다.
물론 상처가 금세 회복됐는지 방금까지만 해도 피어오르던 연기는 이제 사라지고 없었다.
‘문지기와 비슷한 개념인 것 같군. 내구력이 좋고 회복도 빠르지만 무적까진 아닌 거야. 회복 시도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박살을 내면 죽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관찰자를 어떻게 하면 죽일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이 ‘관찰자를 죽일 수 있을 것 같다.’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간만에 심장이 요동친다.
그러나 정우가 베팅을 해야 할 시간은 예상보다 빠르게 다가왔다.
“크, 크악!”
기세 좋게 관찰자들에게 달려들었던 당래가 어느새 도르에게 붙잡힌 것이다.
아마도 도르의 육체를 직접 타격하기 위해 칼날을 뽑아 접근했다가 사달이 난 것 같았다.
「아아.」
도르는 머리통에 붙은 촉수들을 정신없이 꿈틀대며 자신이 지금 흥분했음을 알린 뒤 지체 없이 당래의 오른팔을 잡아 뜯었다.
오른팔 끝에 정수 칼날이 붙어 있지 않던가. 생선을 먹기 전에 가시를 제거하는 행위와 비슷한 것이었다.
뜨득!
그러자 시퍼렇게 빛나던 당래의 눈동자가 툭 꺼지더니 놈의 머리가 어딘가로 돌아갔다.
여전히 바닥에서 경련을 일으키고 있는 자신의 어머니에게로 말이다.
“으……!”
그러곤 정체불명의 소리를 내며 다시 눈을 파랗게 태웠다.
압도적인 상대 앞에서 잠시 수그러들었던 전의가 다시 점화된 것이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쐐애애애액!
언젠가 들어 본 것 같은 파공음이 당래의 귓가를 찔렀고, 이내 그의 머리가 허공으로 튕겨 올라갔다.
시퍼런 정수 칼날이 목을 베고 지나간 탓이다.
사태를 관망하던 정우가 드디어 난입한 거다. 계속 기다리고 있다간 도르에게 5억 개나 되는 정수를 빼앗길 상황이었으니까.
게다가 관찰자가 가져간 정수는 회수할 수도 없지 않은가.
「……!」
손에 쥐고 있던 먹잇감의 머리가 날아가 버리자 도르가 당황한 기색을 내비쳤고, 정우는 그사이 당래의 몸뚱어리에서 튀어 오른 정수 구체를 흡수했다.
총 일곱 개나 되는 구체 중 세 개만 흡수.
그러자 2억 개가량의 정수가 그에게로 흘러들면서 전신에 싸늘한 기운을 흩뿌렸다.
「다홉.」
이를 본 도르가 꿈틀거리는 머리를 들어 여전히 육체를 갖추지 않은 다홉을 바라본다.
상대의 이름을 불렀을 뿐이지만 정우는 이게 지원을 요청한 것임을 바로 알아차렸다.
그래서.
사앗!
당래의 목을 벴던 칼날을 또 한 번 휘둘렀다.
이번엔 도르의 머리를 향해서였다.
‘지, 지금 바로 싸운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