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arth-Style Savior Archetype RAW novel - Chapter 219
222화. 초월자(2)
띠디딕, 띠디딕.
지하 주차장 한복판에서 경쾌한 전자 알람이 울려 퍼진다.
다름 아닌 설계자 전태천의 손목에서 나는 소리였다.
디지털 시계의 정각 알람 말이다.
“……?”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쏠리자 전태천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자신의 손목을 들어 보였다.
“자, 자정……. 그러니까 12시가 됐습니다.”
뭐라도 말을 해야 할 것 같아 시간을 알리는 태천.
이에 왕위삼이 표정을 굳히며 지하 주차장의 출구를 바라봤다.
또 하루가 지나가 버린 것이다.
날짜상으론 지구 폐쇄 개시 6일 차.
선두 특혜 투표와 진입로 변이까지는 약 8시간이 남았다.
5일 차에 나타난 관찰자만 해도 박정우급의 초특급 괴물이 아니고서야 상대할 수가 없는 수준이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6일 차엔 과연 ‘생존 허들’이 어디까지 올라갈까?
“…….”
다들 침울한 표정으로 저마다 허공에 시선을 걸어 두는 사이 아므라가 뭔가를 발견했다.
“그런데 저건 뭐…… 죠?”
이제야 안 거다. 지하 주차장에 또 다른 인물이 있었다는 걸.
정우 일행이 있는 자리에서부터 약 20미터 떨어진 지점. 바닥에 누군가 누워 있었다.
그러더니 마치 이때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처럼 푸른 구체를 툭, 하고 뱉어 냈다.
방금 죽은 거다.
“……!”
깜짝 놀란 아므라가 황급히 그리로 달려갔고, 곧 보게 됐다.
어느 여자가 깡마른 몸뚱어리를 기이하게 뒤튼 채 죽어 있는 모습을 말이다.
장당래의 친모 원문혜였다.
“아…….”
아므라가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침음을 흘린다.
망자의 상태가 여태 보아 온 것들과는 차원을 달리했기 때문이다.
입과 코가 피범벅이 되어 있는 것은 물론이고, 두 눈 안쪽에서 시작된 출혈이 뺨을 타고 내려와 목 아래쪽에 잔뜩 고여 있었다.
더군다나.
“읍…….”
아므라는 여자의 앞니가 전부 으스러져 있는 걸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박정우가 두 관찰자를 처리하는 동안…… 아니, 자신의 아들이 관찰자에게 찢겨 죽는 동안 엄청난 고통에 시달리고 있던 흔적이었다.
슬프다.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듯한 감정이었다.
인간성의 많은 부분을 포기했지만 어머니란 존재는 여전히 애틋했으니까.
“…….”
아므라는 망자에게 잠시 애도를 표했다.
이때만큼은 상대가 한족이든 아니든 상관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뒤.
“바로 이동할 거다. 마차를 제작할 공업사부터 찾아야 해. 잠은 그다음이다.”
정우가 다가와 시체를 눈으로 훑으며 다음 일정에 대한 이야길 했다.
이에 아므라가 시체의 얼굴을 보라는 듯 슬쩍 고개를 까닥이자 정우의 입에서 상상도 못한 말이 튀어나왔다.
“제자리에서 꼼짝도 못할 정도였나 보군. 엄청난 위력인데.”
혈흔을 보고 한 말이었다. 통증을 느끼는 도중에 만약 몸을 뒤집었거나 했으면 피가 저리 한곳에 모이지 않고 사방으로 흩어지지 않았겠는가.
“각성자 중에서도 관찰자에 대한 내성이 없는 놈이 많아. 지금쯤 어마어마한 양의 정수가 유출되고 있을 거다. 근처에 있기만 해도 이렇게 된다면 말이야.”
‘내성이 없는 놈’이란 먼저 죽은 트무르와 진모용 같은 경우를 이르는 거였다.
즉, 정우는 자신의 어머니뻘 되는 사람이 처참하게 죽어 있음에도 이에 충격을 받기보단 이 현상으로 인한 손실을 우려하고 있던 거다.
“……그렇겠죠.”
이젠 꽤 익숙하다.
아므라는 묘한 위화감을 느끼며 정우에게서 한 발 뒤로 물러섰다.
그러곤 고개를 돌려 왕위삼을 바라봤다.
썩 궁합이 맞는 녀석은 아니지만 그래도 박정우보단 좀 더 인간적인 반응을 보일 거라 기대해서였다.
슥.
이윽고 왕위삼이 문제의 현장에 도착했다.
다음엔 끔찍하게 망가진 여자의 몰골을 보고서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아므라의 기대와 달리 슬픈 기색을 비치거나 하진 않았다.
그저 찌푸린 얼굴 그대로 몸을 돌려 제자리로 복귀할 뿐이었다.
이미 죽어 버린 자의 사연 따위는 생각조차 하기 싫다는 걸까.
“…….”
아므라는 왜인지 몸이 무거워진 기분에 날숨을 픽, 하고 쉬었다.
그리고 정우의 지시에 따라 떠날 채비를 했다.
* * *
오전 12시 16분.
좋은 일 한 가지와 나쁜 일 두 가지가 정우 일행을 찾아왔다.
이 중에서 좋은 일 하나는.
파아앗!
“엇! 저깁니다!”
마침내 전태천이 공업사를 발견해 냈다는 거였다.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방금 전 정우가 정수 창을 날려 불을 밝혔던 도로변.
날이 너무 어두운 탓에 이렇게 하지 않으면 수색 속도를 낼 수 없었다.
일일이 모든 건물 앞까지 다가가서 살펴볼 순 없지 않은가.
“움직여. 가능하면 바로 작업을 시작해라.”
“예, 옙.”
정우의 말에 전태천이 공업사를 향해 허겁지겁 달려 나갔다.
올해 51세. 서서히 녹슬기 시작한 그의 몸은 누가 봐도 더디게 움직였고, 아므라와 왕위삼은 각자 속으로 혀를 차며 주변을 둘러보다 우연찮게 서로를 쳐다보게 됐다.
하지만 결코 완전한 우연은 아니었다.
두 사람 모두 알게 모르게 ‘나쁜 일 두 가지’를 계속해서 염려하고 있었으니까.
그중 첫째는 더 이상 왕위삼이 관찰자 시야를 사용할 수 없게 됐다는 점.
그와 계약했던 관찰자 도르가 사망하면서 시야 혜택 역시 사라졌고, 이에 따라 왕위삼은 그저 2억 개짜리 정수 덩어리에 지나지 않게 됐다.
정우의 입장에선 더는 살려 둘 필요가 없게 됐다는 거다.
그리고 두 번째 나쁜 일은.
‘사실 내 목숨도 안전하지 않아. 이 상황에서 굳이 날 살려 두면서까지 위험을 안고 가려 할까?’
아므라는 정우 몰래 그의 뒷모습을 흘깃 봤다.
지금이야 16억 개나 되는 정수를 온전히 운용할 수 있으니 대범하게 앞장서서 움직인다만 잠이 들면 정우 역시 무방비 상태가 되지 않는가?
아므라는 자신이 박정우였어도 이쯤에서 일행들을 정리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민되고, 두려웠다.
그는 정우가 허락만 해 준다면 여태 해 온 것처럼 수하 역할을 충실히 할 의향이 있었으니까.
단순히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박정우가 몸소 보여 준 구원자로서의 자격에 감탄한 탓이었다.
이 사내를 따라가면 정말 지구가 구원되는 순간을 맞이할 수 있을 것 같단 직감이 든 거다.
그리고 실은…….
“이, 이봐.”
한동안 침묵을 유지하던 왕위삼이 갑자기 정우를 불렀다.
이에 정우가 뒤를 돌아봤고, 곧 왕위삼의 입에서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대사가 튀어나왔다.
“……살려 줘. 부탁이다.”
박정우의 하수인을 자청하고 싶은 건 왕위삼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타국의 2억 개짜리 구원자를 탄복시키다. 정말 놀라운 일이었지만 정우는 그런 것 따윈 아랑곳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그럴 이유가 없었다.
“상황 판단은 빨라서 좋다만 내가 널 살려 둘 필요가 없지 않나? 널 여기서 죽이면 잠을 편하게 잘 수 있고, 정수도 18억 개로 늘어. 그런데 널 살리면 당장 오늘 밤이 위태롭고 정수 2억 개를 손해 보게 된다.”
정우는 이렇게 말한 뒤 비로소 전등에 불이 들어온 공업사를 쳐다봤다.
전태천이 공업사에 도착해 장비들을 둘러보고 있는 것이다.
큰 문제가 없다면 이곳에서 마차를 제작할 수 있을 터였다.
“자, 그럼 이제 말해 봐. 널 살려 두면 내게 어떤 이익이 있지? 내가 파악한 것 외에 더 대단한 재주가 있나?”
“…….”
오래전부터 수많은 사람의 ‘목숨 영업’을 받아 오던 정우다.
그는 왕위삼이 자신에게 더 내어 줄 것이 없음을 일찍이 파악하고 있었다.
그러자 왕위삼이 곤란하단 표정을 지으며 한층 더 낮은 자세로 나왔다.
“우리가 협업한 지 아직 하루가 채 안 됐어.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이르지 않나? 정말 쓸모가 없다 싶으면 그때 가서 죽여도 되잖아?”
“내가 생각하기엔 지금이 그때다.”
“씨팔.”
왕위삼은 욕지거리를 하면서도 정우에게서 도망가거나 기습을 시도하지도 않았다.
직접 보고 있기 때문이다. 16억 개라는 상대의 정수 총량 말이다.
자신의 능력으론 이 존재 앞에서 어떤 변수도 발생시킬 수 없음을 잘 알았다.
“억울해하지 마라. 어차피 넌…….”
“알아, 안다고. 널 만나지 않았어도 언젠간 뒈졌겠지.”
체념한 왕위삼이 대범하게 정우의 말을 끊었다.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한 거다.
하지만 이 또한 왕위삼 역시 수많은 생명을 해쳐 온 존재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세계에선 무수한 죽음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지금까진 운이 좋아서, 또는 정말로 강해서 죽음을 피해 왔지만 이번엔 운이 좋지도, 충분히 강하지도 않았던 거다.
이 사실을 온전히 납득하려면 압도적 강자 위치에 있어 본 경험이 필요했다.
‘여기까지군.’
여느 사람들처럼 죽을 시기가 왔다.
왕위삼은 지난 일을 떠올리거나 후회하는 짓 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저 기다렸고, 곧이어.
푸아아아악!
정수 특유의 살점 파열음이 장내를 채웠다.
그리고 이때 왕위삼은 이미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머리를 잃은 그의 몸뚱어리만이, 천천히 뒤로 무너져 내릴 뿐이었다.
퉁.
또 한 구의 시체가 땅바닥에 닿았다.
팟!
이어서 푸른빛의 정수 구체들이 허공으로 튀어 올랐고, 아므라는 정우가 그것들을 흡수하는 걸 지켜봤다.
그러곤 구체들이 모두 사라졌을 때 조심스레 질문을 내밀었다.
“저는…… 살 수 있습니까?”
중요한 물음이었다.
정수가 2억 개든 5천만 개든 잠이 든 구원자에겐 같은 크기의 위협일 테니까.
그러자 정우가 어둠 속에서 아므라를 쳐다봤다.
시퍼런 동공. 마치 도깨비 같은 눈빛에 아므라는 가슴이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우리가 남쪽으로 꽤 내려왔지.”
“……그렇습니다.”
대화의 전개가 좋지 않다.
아므라가 살아 있는 주된 이유인 ‘마차에 쓸 말’들은 몽고족 자치구에 있는데 저긴 현재 위치에서 북쪽으로 다시 올라가야 했기 때문이다.
정우를 말 떼에게 인도하겠단 그의 공약이 무의미해진 셈이었다.
그리고 정우가 이 점을 상기시키고 있었다.
“아직 자치구에서 아주 멀어지진 않았습니다. 충분히 돌아갈 수…….”
“이 근처에 다른 몽골 부대는 없나?”
“예……?”
“너희가 베이징을 공격했듯 다른 도시를 노리기 위해 출격한 부대도 있을 거 아닌가? 그놈들도 말을 타고 다닐 텐데.”
또 다른 몽골 부대를 찾아내 그놈들에게서 말을 빼앗자는 말이었다.
“그건…….”
아므라가 머뭇거린다.
같은 몽골족의 죽음을 또다시 봐야 한다는 부담감이 첫째, 지금쯤 타 부대가 어디에 가 있을지 명확히 알 수 없다는 점이 둘째 이유였다.
이에 아므라의 눈을 들여다보던 정우가 낮게 한숨을 쉬었다.
“어찌 됐든 어렵다는 거군. 그럼 여기까지다.”
“잠깐……!”
아므라가 황급히 눈을 부릅뜨며 손을 내저었고, 정우는 이때 정말 아므라를 죽일 생각이었다.
발치의 정수 표식이 갑자기 뒤편으로 확 돌아가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
이 표식은 방금 전까지 아므라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 말인즉슨, 지금 반경 10킬로 이내에 정수 5천만 개보다 더 큰 존재가 들어왔다는 의미.
만약 방금 아므라를 죽였다면 알 수 없었을 정보였다. 아마 여느 때처럼 어딘가의 들짐승을 가리킨 줄 알고 무시했을 터.
‘뭐지? 이 시간에.’
정우가 손을 뻗으려다 말고 완전히 뒤편으로 고개를 돌리자 아므라도 뭔가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직감하고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하필 이때.
취이이이이이이잉!
어마어마한 소음이 딩저우 시내를 쩌렁쩌렁 울렸다.
작업을 하기 위해 공업사로 들어갔던 전태천이 어떤 기계를 작동시킨 모양이었다.
그러자 이에 화답하듯 하늘 어딘가에서 또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두두두두두…….
적어도 정우에겐 너무 익숙한 소리.
헬기가 날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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