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arth-Style Savior Archetype RAW novel - Chapter 22
22화. 살인 메카 (3)
이번엔 혼자여야만 했다.
상대가 몇이나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동료를 커버할 여유까진 없을 것 같 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웅을 길 건너편으로 보냈다.
스타벅스와는 약40미터 떨어진 지점.
저 거리면 매장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대략적으로나마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
이제 남은 건 부딪혀 보는 것뿐.
정우는 매장 정문에 자신이 비치는 걸 보며 천천히 걸어 나갔다.
스패너와 그 외의 무기들은 전부 가방 안에 있고, 만년필만 오른쪽 주머니 속 에 넣어 둔 상태다.
방어막은 상대방의 눈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만 살짝 감고 있었다.
그래도 아까 그 4인조 수준의 상대에겐 생채기조차 나지 않을 거다.
‘1층에 전부 모여 있는 것 같으면 일격에 정리하고, 좀 흩어져 있으면 방어막 부터 제대로 감자.’
어쩌면 수십 명을 홀로 상대해야 할지도 모르는데, 전혀 긴장되지 않았다.
오히려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정수 방출의 완급 조절을 체득할 기회.
최소한의 방어막을 유지하는 것만 잊지 않으면 된다.
압도적인 힘을 가진다는 것…….
정우는 비로소 먼치킨 소설 속의 주인공들이 조금씩 이해됐다.
‘저쪽도 슬슬 움직이는 건가.’
매장 유리창 너머로 무언가 언뜻 보이기 시작했다.
저 안에선 바깥 풍경이 여과 없이 비친다.
홀로 접근 중인 외부인 역시 진즉에 발견했을 것이다.
슥.
정우는 4인조를 만날 때 했던 것처럼 양손을 머리 높이까지 들었다.
스타벅스 코스터 같은 건 갖고 있지 않으니, 그가 보일 수 있는 최선은 ‘맨손’이었다.
그러나 여긴 겨우 정수 31개로 조장 역할을 맡을 수 있는 그룹이다.
현재 정우의 정수는 1466개.
이들에게 천 개 단위의 각성자에 대한 방어책이 있을 리 없고, 그런 자가 찾아 오리라고 상상해 봤을 리도 없다.
끼익.
역시나 대번에 매장 입구가 열렸고. 건장한 사내 네 명이 나타났다.
길거리에서 봤던 그 4인조와는 전혀 다른 인물들이었다.
보유한 정수는 평균 11개.
‘아까 본 사람들보다도 못하네.’
정우는 이들이 주력 전투원이 아님을 직감했다.
보통은 상대방의 정수를 볼 수 없으니, 겉으로 보기에 위협적인 자들을 먼저 내보낸 것이다.
그리고 이게 의미하는 것은.
‘여긴 구원자가 없다.’
정우가 두 손을 든 채 좀 더 다가가자 마중 나온 사내 중 하나가 멈추라는 신호를 보내왔다.
그러더니 문 안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곧 매장 안에서부터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어.”
정우가 짐짓 놀란 듯한 소리를 냈고, 상대도 눈을 동그랄게 떴다.
“맞습니다. 이사람.”
밖에서 마주쳤던 4인조의 리더였다.
장신에 짧은 머리.
“여길 어떻게 알고 오셨죠?”
아까와 달리 대사에서 불쾌감이 팍팍 묻어 나온다.
물론 그럴 만했기에 정우는 그가 주변을 둘러보는 걸 잠자코 지켜보다가 천천히 말을 꺼냈다.
“죄송합니다. 아주 솔직히 말씀드리면, 아까 일행분이 들고 있던 코스터를 봤 어요. 바로 쫓아가면 기분 나빠 하실 것 같아서 일부러 좀 기다렸습니다.”
들키지 않을 거짓을 말하려거든 90%의 진실에 10%의 거짓을 섞으라던데. 지금이 딱 그랬다.
이미 몸속에선 천사백 개의 정수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새삼스럽지만, 정우는 이 점이 다소 유감이었다.
이젠 ‘욕망’만으로도 정수가 활성화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까.
도저히 사람에게 정수를 뿜어내지 못하는 선응과 비교하면…… 천박해진 느 낌이라고 해야 할까.
“그래서 용건이 뭐죠? 그렇지 않아도 그쪽 덕분에 우리도 골치가 아파졌습니다.”
‘짧은 머리’의 말에 정우는 내심 안도했다.
의도대로 바로 옆 동네에서 괴물이 나타났다는 이야기가 잘 전파된 것이다.
“아무래도 이쪽은 사람이 둘뿐이라 걱정이 많아서요. 어차피 여길 떠날 생각이시라면 합류하고 싶습니다. 괴물을 정말 가까이에서 봤기 때문에 여러모로 도움을 드릴 수도 있을 것 같네요.”
“괴물을 가까이서 보셨다고요?”
“예. 놈들이 제 집을 덮쳤었으니까요. 저도 간신히 살아 나왔습니다.”
그러면서 은근히 슬픈 표정을 지어 보인다. 살아 나오는 과정에서 누군가를 잃은 척.
이것도 완전히 거짓은 아니었다. 아버지와 해어지긴 했으니까.
실제로도 아버지가 건조한 표정으로 이별을 고해 오던 순간을 떠올리고 있었다.
적당한 연기, ‘괴물’이라는 단어가 주는 위협.
정우는 자신이 원래 이렇게 영악했던가. 라고 스스로에게 물으면서도 이 방법이 먹힐 것으로 예상했다.
현 시점, ‘괴물’의 존재는 누구나 안다. 인터넷을 통해 영상이 우후죽순 올라오고 있었으니까.
단, 괴물을 직접 만나 본 사람은 여기 없을 것이다.
“허…….”
역시나사내들이 입을 쩍 벌린다.
그러더니 4인조의 리더였던 짧은 머리가 매장 문을 좀 더 열었다.
“일단 들어오시죠. 아까 그 동료분은 어디에……?”
“곧 이리로 을 겁니다. 근처에서 먹을 걸 좀 찾고 있거든요.”
“아, 그렇군요.”
더욱이 이쪽이 혼자여서 그런 건지. 이들의 경계심이 눈 녹듯 풀려 간다는 게 느껴졌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순진하다. 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다.
상대의 정수 보유량도 모르면서 외부인을 이리 쉽게 들인다는 건, 여태 제대로 된 위협을 마주해 본 적이 없다는 뜻이리라.
정우는 왜인지 미안한 마음을 붙든 채 문 너머를 향해 발을 내디뎠다.
에어컨이 돌아가고 있어서 공기부터가 확 다르다.
사아…..
발목을 휘감는 냉기.
그리고 요란한 기척이 정우의 감각을 자극했다.
매장 안에 사람이 가득 차 있었다.
“그 사람 맞네요. 어쩌자고 여기까지 왔대.”
이 와중에 귀에 들이박히는 음성.
4인조의 홍일점이었던 여자의 목소리였다.
그녀는 매장 계산대 안쪽에 선 채 의심 가득한 눈빚으로 정우를 쏘아보고 있었 다.
그러나 정수 4개짜리 여자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맙소사…… 예상보다 대단한데.’
정우가 보고 있는 건 엄청난 양의 자원이었다.
어디서 가져온 건지. 카트 안에 잔뜩 쌓인 온갖 가공식품.
바닥에 한가득 포개진 수건은 아마도 매장 창고 안에 있던 물품일 것이다.
또한 1층에만 삼십 명 가까이 되는 사람이 있었는데, 저마다 배낭을 꾸리는 중이었다.
정말로 이곳을 떠나야겠다고 마음먹은 것 같다.
벌써‘회의’가 끝난 걸까.
“아……떠날채비를 하고 계시군요.”
정우가 조금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하자 짧은 머리가 바깥으로 시선을 돌리며 나지막하게 이야기했다.
“지금 짐을 챙기는 분들은 원래 떠날 생각이었습니다. 그게 조금 앞당겨졌을 뿐이죠. 이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아니거든요.”
사내의 말에 따르면, 정부가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여기에 남아 있겠다고 결정한 사람이 더 많다고 했다.
근방에 괴물이 있다는 소문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거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 2층에 있다고…….
‘지금 이것보다 더 많은 사람이 위에 있다고?’
순간, 정우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걸 느꼈다.
그럼 대체 몇 명인가. 두 개 층을 합치면 칠십 명쯤 되나?
닥치는 대로 다 죽여서 정수를 모으겠다고 다짐했지만. 상대해야 할 사람의 머릿수가 늘어나니 부담감 역시 커졌다.
솔직히 겁이 났다.
이건 정말로 대량 학살이다.
당신은 지금 자신이 뭘 하는지 모르고 있는 거라던 선웅의 말이 떠오른다.
‘그렇다고 이만한 정수를 버리고 갈 순 없어. 내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다 죽는다. 청소부들이 오든. 편의점을 박살 냈던 그 녀석이 여길 찾아내든 간에.’
우습게도 방금까지 터질 듯이 끓던 정수가 차갑게 식어 있었다.
“……”
일시에 의욕을 잃은 탓이다.
으득.
정우는 어금니를 꽉 깨물면서 투지를 도로 일으켰다.
턱 근육이 먹이를 씹는 짐승의 것처럼 거칠게 실룩인다.
이미 영혼마저 악하게 변질됐는지, 어렵지 않게 정수를 재점화할수 있었다.
몸속이 활활 타오르는 상태에서 매장 1층을 천천히 훑었다.
‘계획 변경이다. 우선 저 카트들이랑 음식을 살리자. 쓸모가 있을 것 같아.’
모든 정수를 내뿜은 뒤 전력올 되찾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3초.
따라서 그가 원한다면 일격에 1층 인원을 정리한 다음 2층으로 올라가는 게 가능했다.
문제는 이럴 경우 눈앞의 모든 생필품도 소멸한다는 거다.
그렇다면 어떻게 싸워야 이 물건들을 최대한 보존할 수 있을까.
‘창가 쪽으로 정수 파동을 좀 넓게 쏘고, 나머진 투창으로 죽여야 돼.’
정우는 머릿속으로 전투 상황을 그려 봤다.
1층에만 대략 서른명.
평균적인 정수 보유량은 인당 13이었지만, 개인별 편차가 심해서 40?50개를 보유한 사람도 몇 있었다.
한때 사당역 근처에서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었다고 하니, 각성자가 꽤 많이 끼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2층에서 지원을 오는 것까지 고려하면…….
‘방어막만 잘 유지하자. 그럼 죽을 일은 없어.’
만약 이번 싸움을 잘 마친다면, 이 경험은 엄청난 자산이 될 것이다.
다대일 전투 데이터를 확보하는 생이니까.
이들의 평균 정수량이 백 단위가 아닌 것에 감사하자고, 정우는 스스로를 격려했다.
현재 구원자의 순위권 허들올 고려했을 때. 어딘가에는 백 단위의 각성자 그룹이 있을 것이다.
이건 언젠가 그들을 흡수하기 위한 연습 단계인 거다.
‘……어차피 일격에 죽이면 고통도 없을 거야.’
흔한 자기합리화 과정이다.
다만. 대량 학살을 합리화하는 건 결코 쉽지 않았다.
이미 오른손이 벌벌 떨리고 있어서, 그는 얼른 양팔을 몸통에 바짝 붙였다. 그러자 정우를 안내했던 짧은 머리가 이상하다는 듯한 시선을 보내왔다.
“왜 그러세요?”
정우의 콧등엔 이미 땀방울이 맺히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 사내는 정우가 장내의 모든 이를 죽이려 한다는 걸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정말로 어디 몸이 아픈가 싶었을 뿐이다.
“감기나 복통에 드는 약은 좀 있으니까요.”
약을 권해 오는 사내. 정우는 필요 이상으로 고개를 저었다.
“괘,괜찮습니다…….”
트흡, 하면서 정우의 코에서 뒤틀린 호흡이 새어 나왔다.
그는 어느새 인중까지 젖은 상태로 입을 꽉 다물고 있었다.
“쇼크 증세 같은데. 갑자기 이러는 거죠?”
근처에서 정우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던 또 다른 사람이 걱정스럽다면서 다가왔다.
그 누구도 이 남자가 뿔로 학살을 벌이려 왔다는 걸 알아채지 못했다.
숨이 막힐 정도의 위화감을 느끼고 있는 건, 이 안에서 유일하게 살의를 품은 정우뿐이었다.
견디기가 너무 힘들다.
이 사람들의 눈빛이. 말투가.
어차피 할 거라면, 얼른 해치우자.
“전…….”
발음이 공기 중에 흩어진다.
발 언저리의 공간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슥.
주머니에서 꺼내 든 만년필.
짧은 머리가 무어라 말을 걸어오고 있었지만, 정우는 그의 소릴 들을 수가 없 었다.
이미 모든 감각이 만년필 끝에 쏠린 상태였다.
날카로운 은빛 촉.
정우는 그 끝에 천여 개의 정수가 몰려드는 걸 봤고.
‘……아.’
촉의 바깥 면에 자신의 얼굴이 비치는 것도 봤다.
의도한 건 아니었다.
주머니 속에서 촉이 잘 닦여 버린 것 말이다.
반질반질한 작은 공간에 억지로 구겨져 들어간 얼굴.
완만하게 구부러진 표면 속에서, 박정우의 모습은 기이하게 뒤틀려 있었다.
더는 버틸 수 없게 됐다.
팔이 너무 뜨거웠다.
이제 뿜어내는 수밖에 없다.
***
스타벅스 매장으로부터 40미터.
뭐, 대단한 소리가 들리진 않았다.
현장에선 어떨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여기에선 그랬다.
도로변 가로수에 머리를 들이받고 멈춰 있던 차량 안.
“시작이구나.”
선웅은 스타벅스의 유리면이 통째로 사라지는 걸 보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정수의 파동이 아니고선 저런 장면올 연출할 수 없다.
정우의 말에 따르면, 그는 이미 천 개가 넘는 정수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즉, 저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희생자들을 애도해야지, 박정우를 걱정할 필욘 없다는 거다.
그래서 그는 오로지 죽은 자들을 위한 비애에만 젖어 있었다.
그러니 마침 근처를 지나던 사내가 말을 걸어왔을 때. 얼마나 놀랐을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뭐가시작이에요?”
“에……?”
반사적으로 대답한 선옹은 제대로 된 발음조차 하지 못했다.
조수석에 웅크리고 있던 그가 벌떡 일어나려다 천장에 머리를 찧는다.
쿵.
“억!”
정수리를 마구 짓눌러 오는 통증.
그러나 지금 그게 대수인가.
선응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곳엔 나이가 삼십 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사내가 멀거니 서 있었다.
인상은…… 피곤해 보였다.
문자 그대로다. 삼 일 방낮올 안자고 일하다 온 사람 같은 얼굴이 었다.
이 사람의 직업을 예상해 보라고 한다면 대번에 프로그래머 같은 걸 고를 것 같다.
등에 멘 가방이 터질 듯이 부풀었는데, 그 안에 든 내용물이 원지 충분히 짐작 할 수 있었다.
가방끈의 여유분에다가 초코바 따위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었으니까.
식량수집가…….
가방을 본 선응은 저런 단어를 떠올렸고, 곧 상대의 소속지를 가늠할 수 있게 됐다.
“아……!”
탄식 그리고 뒤이어 찾아온 걱정과 불안.
선웅의 동공이 흔들린다.
사내는 이미 고개를 돌려 스타벅스 사당점을 보고 있었다.
스륵.
갑자기 흉악하게 일그러지는 얼굴.
그러더니 날쌔게 뛰기 시작했다.
이때 선웅은 봤다.
사내의 오른손에서부터 푸르스름한 원가가 길게 뻗어 나와 있는 걸.
처음엔 정수 파동의 일종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것은 사내의 손에 붙어서 사라지질 않았다. 뭘까.
선웅은 얼핏 알 것 같으면서도 선뜻 답올 내리지 못했다.
확실한 건, 저자가 정우에게 위협이 되리란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