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arth-Style Savior Archetype RAW novel - Chapter 222
225화. 초월자(5)
주영환은 죽기 전 이렇게 이야기했다.
1급 경보를 울리면 도시 내 모든 민간인이 동문(東門)으로 탈출을 시도할 거라고.
그러니 인재를 구하고 싶다면 경보가 울리도록 한 뒤 도시의 동쪽으로 가라고 했다.
그리고 당시 이를 들은 정우는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그럼 공안부 요원들은? 지금 네 말은 동문에 각성자들이 없을 거라는 것처럼 들리는데.”
“……맞습니다.”
“내가 지금 맞다는 소리나 듣자고 다시 물은 것 같나?”
정우가 눈을 파랗게 태우며 살기를 내뿜자 비로소 주영환이 제대로 된 답을 내놨다.
“으음…… 요원들은 경보가 울린 방향의 반대편으로 이동할 겁니다.”
“경보가 울린 방향은 어떻게 확인하고?”
“검문소나 도시 외곽의 경계조가 신호탄을 쏘아 올립니다. 적색은 1급 경보, 황색은 2급 경보, 자색은 3급 경보입니다. 녹색은 수색조 복귀 신호인데, 이걸 쏘면 도시 외곽에서 근무 중인 요원 일부와 민간인들이 마중을 나올 겁니다.”
그러면서도 영환은 인재 손실을 보지 않으려면 꼭 1급 경보를 울리라고 재차 당부했다.
도시 안에 민간인과 각성자가 뒤섞여 있는 탓에 경보를 울리지 않고 전투를 시작해 버리면 그 여파로 상당수의 민간인이 사망할 거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1급 경보가 울리면 공안부 요원들이 민간인들을 내팽개치고 전속력으로 탈주할 거란 이야기군.”
“…….”
정우의 말에 영환이 표정을 굳혔다.
“1급 경보는 불가항력의 재앙을 의미합니다. 어차피 사람들을 살릴 수 없다면 조직의 명맥이라도 잇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저희 입장에선 이게 ‘최악 대신 차악’인 겁니다.”
정우가 영환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받아치는 거였다.
이에 정우도 녀석의 입장을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좋다, 너희로선 그게 최선의 판단이라는 걸 인정하지. 그 외에 더 남길 말은 없나?”
지체 없이 작별을 준비하는 정우.
그러자 주영환이 입을 우물거리다가 정우의 눈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민간인 그룹에 연천희라는 여자가 있을 겁니다. 가능하다면 그 사람부터 바로 죽여 주십시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모르도록, 신분이 확인되자마자 처리해 주셨으면 합니다.”
“뭐……?”
의외의 청탁에 정우가 미간을 찌푸리자 영환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제 아내입니다. 찾고 계신 인재상에 부합하진 않을 겁니다. 그러니 사태를 파악하기 전에…….”
영환은 말을 끝까지 맺지 못하고 입을 닫았다. 아마도 목이 메어 온 것일 터.
정우는 그런 그를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정보 값으론 싼 편이군. 최대한 빨리 죽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그러곤 곧장 손을 뻗어 주영환을 지웠다.
이게 불과 약 3시간 전의 일.
정우는 이제 지난 시의 북쪽 진입부에서 1급 경보 그 자체가 왔음을 이르고 있었다.
물론 정우의 전언을 들은 지난 측 초병이 사태를 바로 알아채지 못했지만 말이다.
“무슨 소리야? 1급 경보라고……? 경독께선 어디에 계신가?”
여전히 감을 잡지 못한 초병은 검문소에 설치된 등명기로 마차를 이리저리 비추기만 했다.
이에 결국 정우가 어둠 속에서 가시를 쏘아 보냈다.
쫴애애애액!
소름 돋는 파공음과 함께 허공을 가로지른 가시는 눈 깜짝할 사이에 초병의 이마를 꿰뚫었다.
촤앗!
그러더니 곧 마차를 비추던 불빛이 흐려졌다.
초병이 붙잡고 있던 등명기에 핏물이 뿌려진 거다.
“으…….”
이 장면을 모두 지켜본 전태천이 끔찍하단 표정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렸고, 그사이 마차에서 내린 아므라가 초병의 시체에서 신호탄과 격발기를 꺼내 들었다.
“1급 신호탄입니다.”
“쏴.”
“옙.”
정우의 지시가 떨어지자 아므라가 곧장 허공으로 격발기를 들어 올렸고.
타앙!
이내 1급 경보를 알리는 신호탄이 시뻘건 빛을 내뿜으며 허공으로 쏘아져 올라갔다.
지난의 북부 경비 초소에서 공식적으로 ‘1급 경보’를 발동한 것이다.
그런데 정말 이것만으로 저 커다란 도시 전체가 반응을 할까?
이때까지만 해도 정우 일행은 신호탄의 효력을 반신반의하고 있었다.
“어……. 조용한데요? 하기야 이 시간이면.”
아므라가 아직은 고요한 지난 시 전경을 눈으로 훑으며 목을 긁적인다.
그러다 마침내.
타아앙!
저 멀리, 지난 시의 북부 외곽에서 아므라가 쐈던 것과 똑같은 붉은 신호탄이 격발됐다.
정말 주영환의 말대로 외곽지를 순찰하던 경계조가 있었던 거다.
그리고 이를 기점으로 도시의 북부 곳곳에서 신호탄이 쉴 새 없이 터졌다.
타아앙!
타앙, 타앙!
이 정도면 깊은 잠에 들어 있던 자들도 일어날 수밖에 없을 터였다.
“헉…….”
기대 이상의 경보 확산 속도에 아므라가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고, 조금 더 지나자 도시 안쪽 어딘가에서 길고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위이이이이이잉!
다름 아닌 사이렌 소리였다.
과연 공안부가 관리 중인 도시라고 해야 할까.
여태 봐 온 공동체 중 가장 체계적인 느낌이었다.
문제는 이제 곧 정우에 의해 박살 날 예정이란 점이지만.
“정말 여길 공격하실 겁니까? 각성자들만 쳐 내고 도시는 보존해도 될 것 같은데요.”
사방을 가득 채운 사이렌 소리 속에서, 전태천이 안타깝다는 얼굴로 이렇게 물었다.
알다시피 지구 폐쇄 개시 직후 인간 사회의 모든 질서가 무너졌다.
그런 와중에 이만한 체계를 다시 세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겠는가.
하지만 정우는 이미 한국에 나름의 체계를 갖춘 성역을 남겨 두고 온 입장이었고, 중국을 그저 성장 거점으로만 여기고 있기에 별다른 미련이 없었다.
“이곳에 시간을 계속 쏟을 순 없어. 마차에 태울 만한 자만 고른다.”
“…….”
정우의 단호한 어조에 전태천은 더 이상 말을 붙이지 않았다.
그리고 이때쯤 해서 도시 방향을 가리키고 있던 패스파인더의 정수 표식이 서서히 기울었다.
각성자들, 그러니까 공안부의 요원들이 이동을 시작한 것이다.
“아므라.”
“예.”
“네가 동문으로 가라.”
“……?”
아므라가 무슨 말이냐는 듯한 표정을 짓자 정우가 도시의 동쪽을 가리키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연천희라는 여자를 찾아서 바로 죽이고, 나머지는 내가 도착할 때까지 붙들어 놔. 만약 죽음을 불사하고 도망치려는 놈들이 있다면 그 자리에서 바로 죽여도 좋다.”
“……알겠습니다.”
연천희. 주영환의 아내다.
아므라도 영환과 정우의 대화를 함께 들었던 터라 지금 무슨 지시를 받은 건지 명확히 이해했다.
“그럼 마차도 제가 가져갑니까?”
“아니, 마차는 내가 가져간다.”
“……?”
또다시 의문형으로 변하는 아므라의 얼굴.
그러나 정우는 그에게 시선을 주는 대신 여전히 마차 위에 앉아 있는 전태천에게 지시했다.
“저 녀석을 마차에 묶어. 1분 뒤 출발한다.”
정우가 말한 ‘저 녀석’이란 바로 냄새. 말들 사이에 호랑이를 묶어서 마차를 함께 끌게 할 거란 이야기였다.
그리고 이 말인즉슨.
“어……. 이걸 타고 공안들을 쫓으실 겁니까?”
전태천이 설마 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물었고, 곧 정우의 답이 떨어졌다.
“아무리 1급 경보라고 해도 국가 재건을 한다는 놈들이 길바닥에 기술자들을 다 쏟아 낼까? 일부는 공안이 직접 데리고 움직일 거다.”
이 도시에서 단 한 명의 기술자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겠다는 말이었다.
“……알겠습니다.”
전태천은 두말없이 마차에 연결된 마구(馬具)의 위치 조정을 시작했다.
다만 정우의 명령을 이해했다기보다는 어차피 거스를 수 없는 상대니 머리를 비우고 따른다는 쪽에 가까웠다.
정우와 대화를 하다 보면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지기만 했으니까.
크릉.
태천이 두 필의 말 사이에 호랑이가 들어갈 자리를 만들자 냄새가 스스로 그 자리에 몸을 집어넣으며 고개를 앞으로 쭉 뺐다.
그러면서도 영 자존심이 상하는지 콧등과 수염을 쉬지 않고 실룩거렸다.
이에 정우가 녀석의 이마에 손을 얹으며 어르듯이 말했다.
“네 역할은 좌우의 두 놈을 지키는 거다. 너무 빠르게 달리진 말고, 적당히 속도를 맞춰.”
그러자 냄새가 정우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이를 드러내며 낮게 으르렁댔다.
* 출발.
아무리 네가 그렇게 말해도 이 작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사이 태천이 가늘게 떨리는 손으로 냄새의 몸통과 목덜미에 마구를 걸었고, 마차의 출전 준비가 끝났다.
“다…… 됐습니다.”
“그럼 바로 출발해. 도시를 가로질러서 남문으로 간다.”
* * *
중국 산둥성의 지난 시.
일찍이 경공업이 발달해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고, 근대에 들어선 시멘트, 자동차 등의 중공업이 호황을 누리며 타지의 인구 유입으로 부성급 도시로까지 성장한 곳이다.
그런 만큼 구획별로 상업, 주택, 공업 지구가 나뉘어 있어 면적부터가 상당했다.
각성자가 아닌 이상 결코 수 분 안에 빠져나갈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꺄아아악!”
“사, 살려 줘……!”
오전 3시 50분.
맹렬한 기세로 지난 시에 들어선 정우 일행이 마주치게 된 것은 짐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길거리로 나온 수백 명의 민간인이었다.
잠들어 있다가 사이렌 소리를 듣고서 황급히 피신 중이었던 것이다.
이에 정우는 음성에 정수를 실어 쩌렁쩌렁 울리도록 말했다.
「의사나 기술자는 손을 들어라! 나머진 다 죽을 것이다!」
그러나 이 소릴 듣고서 대번에 손을 드는 자가 나타날 리 없었다.
지금 사람들의 시야에 들어와 있는 건 눈과 피부에서 시퍼런 빛을 뿜어내고 있는 말과 호랑이였으니까.
장내의 대다수는 방금 들은 문장이 무슨 뜻인지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고, 결국 마차 안쪽에서 뿜어져 나온 푸른 파동이 그들을 덮쳤다.
푸아아아악!
살점이 파열하는 소리가 온 사방에서 들려온다.
그러자 이를 본 전태천이 더는 견디지 못하겠다는 듯 정우에게 토로했다.
“이게 다 무슨 소용입니까? 지금 같은 상황에선 정말 의사라고 해도 손을 들 생각을 못할 겁니다!”
“…….”
하지만 정우는 전태천을 쳐다보지도 않고 냄새를 향해 바닥의 정수를 흡수하며 계속 나아가란 지시를 내렸다.
그러곤 전방의 어둠에 시선을 걸어 둔 채 건조한 말투로 이야기했다.
“그 정도로 흐리멍덩한 녀석이라면 어차피 오래 써먹을 수 없어. 바로 밀고 나가지 않은 것만 해도 큰 배려를 한 셈이다.”
“뭐, 뭐라고요……?”
하지만 종래엔 전태천도 입을 다물게 됐다. 방금 정우가 한 말이 자신에게도 해당한다는 걸 금세 깨달았으니까.
게다가 저 미친 사내는 지금 도시 저편으로 달아나고 있는 공안 요원들을 쫓고 있지 않은가?
이 바쁜 상황에 심기를 더 거슬렀다간 자신 역시 정수로 바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결국 태천도 정우를 따라 어둠 속으로 눈을 돌렸다.
그러자 또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무리의 민간인이 도로를 건너 어딘가로 도망 중인 게 보였다.
‘아…….’
조금 전에 본 광경을 또 목도하게 될 거라 생각하니 벌써부터 가슴 언저리가 저려 온다.
아니나 다를까, 곧장 정우 쪽에서부터 일방적인 선고가 쏘아져 나갔다.
「두 번 묻지 않는다! 의사나 기술자가 있다면 손을 들어라!」
말들의 요란한 발굽 소리 때문에 귀가 멍멍할 지경인데도 정우의 음성만큼은 아주 또렷하게 들렸다.
이건 저편의 민간인들도 마찬가지였는지 음성이 들리자마자 걸음을 멈추고 마차 쪽을 돌아봤다.
슥.
벌써부터 정우의 손이 허공으로 올라간다.
저쪽에서 어떤 인재가 나타나리라곤 전혀 기대하고 있지 않은 탓이었다.
그런데.
“엇!”
혹시나 하는 마음에 민간인 무리를 뚫어져라 보고 있던 전태천이 무언가를 발견했고, 그가 낸 소리에 정우도 미간을 좁히며 손을 거뒀다.
“멈춰.”
지난 시에 진입한 뒤 처음으로 떨어진 정지 명령.
이에 냄새가 낮은 울음을 흘리며 양쪽의 말들을 멈춰 세웠고, 곧바로 정우가 마차에서 뛰어내렸다.
한시가 급한 상황인 걸 감안하면 이건 파격적인 대우.
“……진심인가?”
정우가 전신에서 푸른빛을 아주 강하게 뿜자 푸르스름하던 사위가 일시에 밝아지며 민간인 무리의 모습을 완전히 드러냈다.
총 8인. 여태 본 사람들 중에서 가장 말끔한 차림을 하고 있는 자들.
심지어 일부는 커다란 가죽 가방을 손에 들고 있기까지 했다.
배낭을 짊어져도 모자랄 판에 손으로 들어야 하는 가방이라니…….
하지만 태천은 물론 정우조차도 저 비효율적인 형태의 가방을 우습게 여기지 않았다.
왜냐하면 여덟 사람 모두가 손을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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