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arth-Style Savior Archetype RAW novel - Chapter 228
231화. 가이드라인(1)
전투의 내용에 따라 가이드라인의 방향성이 결정된다…….
정우는 안내 문구를 거듭 읽으면서도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니까, 전투 과정을 보고서 맞춤 가이드를 제공하겠다는 건가?’
이건 무려 지구의 제안이다. 결코 간단히 넘겨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봐, 내 말 못 들었나?”
그사이 정우에게 창을 던졌던 천만 개짜리 각성자가 몹시 불쾌하단 얼굴로 말을 걸어왔다.
상대가 지구의 환대를 받으며 파견 온 22억 개짜리 구원자인 줄은 꿈에도 모르고서 말이다.
물론 일반적인 강자들은 대개 두말없이 실력 행사부터 시작하니 당연한 반응이긴 했다.
하지만 정우는 ‘일반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 어려운 존재이지 않은가.
“……살고 싶은 자가 있나? 자신이 그 누구와도 대체가 불가능하며 인류에 큰 기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가 있다면 손을 들어. 너희에게 앞으로 5초를 더 할애하겠다.”
이윽고 흘러나온 정우의 말에 저편의 사내가 헛웃음을 지었다.
“뭐?”
“사.”
“대체 뭐라는 거야?”
“……삼.”
“또라이 새끼.”
“이.”
이건 대열에서 조금 떨어져 나온 ‘강도’ 측 리더와 정우 둘만의 대화다.
이 대화에 끼지 못한 나머지 각성자들은 막상 정우의 카운트가 끝나 가기 시작하자 왜인지 불안해졌다.
호랑이에게 몸을 묶은 채 잠을 자고 있던 모습이 너무 우스워서 경계심이 풀어졌던 것일 뿐, 다시 잘 생각해 보니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시팔……. 그러고 보니 아까 대장의 공격을 막은 것도 저놈이 아니라 호랑이였잖아?’
누군가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 정우의 카운트가 끝나고 말았다.
“……일.”
그러곤 그의 몸에 둘러져 있던 보호막에서부터 시퍼런 가시 한 줄기가 빠르게 쏘아져 나갔다.
쫴애애애액!
정수로 빚어진 가시 특유의, 소름 끼치는 소리.
“억……!”
대열의 누군가 신음을 내질렀고, 이때 정우와 대화를 나누던 강도 측 리더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이마에 엄지손가락만 한 구멍이 뚫린 채 멍한 눈으로 허공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었으니까.
스릅.
마침내 사내의 이마 속에서 가시가 도로 빠져나왔고, 이와 동시에 녀석의 뒤에 장벽처럼 늘어져 있던 각성자 대열이 무너졌다.
“대장……?”
“사, 살려 줘!”
자신들이 설마 하던 그 최악의 경우에 걸리고 말았음을 깨달은 거다.
파팟! 타앗!
다급한 발소리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고, 곧 그 뒤를 예의 끔찍한 소리가 뒤따랐다.
쫴애애애액!
정우가 가시를 상대의 머릿수에 딱 맞춰 쏘아 보낸 것이다.
총 21개.
“크흡!”
“흐엑!”
그러나 이번엔 목숨을 빼앗기 위함이 아니었다. 공포를 극대화해서 혹시 남아 있을지 모를 정보를 빼낼 생각이었다.
그가 쏘아 보낸 가시는 탈주자들의 허벅지나 발목 등을 꿰뚫었고, 삽시간에 땅바닥이 피바다가 됐다.
“으…….”
“아악…….”
간신히 신음만 흘리며 바닥에 널브러진 21명의 사내.
정우는 그 사이로 천천히 걸어 나가며 정수를 실은 음성으로 나지막하게 말했다.
「이 안에 쓸 만한 녀석이 있을 것 같진 않군. 대신 다른 걸 묻겠다.」
그러자 고통에 몸부림치던 사내들이 일제히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비로소 체득한 것이다. 상대가 내뱉는 소리라면 그 무엇도 쉽게 흘려 보내선 안 된다는 걸.
「너희들의 본대나 거점, 창고 같은 게 따로 있나? 이동 수단으론 뭘 쓰고 있지? 허페이에 가 본 적은? 무엇이 됐든 대답할 수 있는 자는 손을 들어라.」
“……!”
이에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촤라락!
바닥을 구르던 사내들이 단 하나도 빠짐없이 손을 든 거다.
“…….”
그리고 마차 근처에서 이를 보고 있던 아므라와 정영륜을 입을 쩍 벌릴 수밖에 없었다.
채 10초도 사용하지 않고 이 악랄한 살인자들의 ‘진심’을 끌어낸 거 아닌가.
슥.
정우가 가장 가까이 있는 한 사내를 손으로 가리킨다.
그러자 지목당한 사내가 위, 아랫니를 딱딱 부딪치며 목의 핏줄을 바짝 세웠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세 음절조차 제대로 발음하지 못했다.
“저, 저, 저희는……! 저희…… 크읍!”
“……?”
이에 의아한 표정을 짓던 정우는 상대의 다리를 보고 나서야 무슨 연유인지 알아차렸다.
‘내가 실수했군.’
정우가 지목한 자는 가시에 의해 발목이 꿰뚫린 상태였다. 덕분에 발목의 힘줄이 끊겨서 어마어마한 고통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목숨이 걸린 진술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할 정도로.
푸악!
정우는 사내의 머리에 대고 정수를 짧게 뿜은 뒤 다음 진술자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정우가 쳐다본 상대는 물론 근처의 모든 각성자들까지도 기겁을 하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몇몇은 비참한 표정으로 바지에 오줌을 지리기까지 했는데, 멀리서 이 장면을 보던 마차의 사람들마저 오금이 저려 오는 듯했다.
특히 정우의 지시를 받아 직접 마차를 만든 전태천은 그 감상이 남달랐다.
‘저, 저 남자 앞에선 각성자들도 그저 한낱 벌레구나.’
바지를 검게 적신 사내들의 모습은 마치 인간의 손에 붙들린 벌레 같았다.
생명의 위협을 느껴 정액 따위를 쏟아 내는 벌레 말이다.
「말해.」
정우가 두 번째 진술자에게 발언을 지시하자 가여운 얼굴을 한 사내가 허겁지겁 혀를 움직였다.
“저, 저희는 이틀 전부터 유목을 하고 있었습니다. 거점이나 창고 같은 건 따로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어제까진 차를 타고 다녔지만 이제 기름이 다 떨어져서 두 발로 직접 움직입니다…….”
그러면서 사내는 자신의 다리를 흘깃 봤다.
가시에 꿰뚫려 더는 제 기능을 할 수 없게 된 다리 말이다.
물론 앞서 망자가 된 자보단 형편이 훨씬 나았다. 발목 대신 허벅지가 뚫린 상태였으니까.
「허페이엔 가 본 적이 없나?」
“거…… 거긴 저희가 가기엔 너무 멉니다. 쉬저우와 화이베이는 들러 본 적이 있습니다. 텅 비었더군요. 그래도 빈 도시에 계속 머물러 있으면 유랑 중인 자들을 가끔 만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진술자는 상당히 명민한 편에 속했다. 정우가 다음에 물을 내용까지 짐작해서 먼저 대답해 줬으니까.
그러더니 정우의 눈치를 슬쩍 보며 이렇게 물었다.
“허페이에는 왜…… 가십니까? 혹시 길잡이가 필요하시다면…….”
“그것 말고 다른 정보는?”
슬슬 마무리를 하기 위해 정우가 음성에서 정수를 걷어 냈다.
이에 녀석이 잽싸게 눈을 굴렸다.
“…….”
정우를 따라 움직이던 마차를 보는 거였다. 그 안에 민간인이 타고 있다는 사실도 함께.
“인재까진 모르겠지만 사람이 많이 모인 곳이라면 알고 있습니다.”
“그게 어디지?”
“그야…….”
사내의 얼굴에 영악한 빛이 떠오른다. 정우와 거래를 하려는 거다.
그러나 상대는 유력한 행성 구원자. 그것도 22억 개나 되는 정수를 한데 모은 규격 외의 괴물이었다.
정우는 사내의 눈을 빤히 바라본 뒤 어렵지 않게 결정을 내렸다.
“필요한 정보는 다 얻은 것 같군.”
놈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간파한 것이다.
“예……?”
깜짝 놀란 사내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상체를 일으켰고, 이와 동시에 정우의 팔이 허공을 갈랐다.
화앗.
전방으로 아주 가볍게 휘두른 손.
그러자 부채꼴의 정수 파동이 바닥에 누워 있던 사내들을 일시에 덮쳤다.
푸아아아악!
사방에서 살점이 파열하는 소리가 났고, 곧 푸른 정수 구체가 솟아올랐다.
“아…….”
마차 안에서 이 장면을 지켜보던 의사 4인방이 기가 질린다는 표정을 짓는다.
박정우와의 여정이 어떤 방식이 될지 슬슬 감이 온 것이다.
“이봐.”
“예, 옙?”
정우의 부름에 정영륜이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수그리며 대답했다.
“말에게 이것들을 먹여. 그리고 바로 출발한다.”
정우가 말한 ‘이것들’이란 강도들이 떨어뜨린 정수였다.
직접 흡수하기엔 변변찮은 소득이라 마차 기능을 강화하는 데 사용하겠다는 거다.
“……알겠습니다.”
이윽고 영륜이 ‘정수 밭’으로 마차를 몰았고, 냄새도 다시 정우를 태우기 위해 몸을 낮추며 다가왔다.
* * *
오전 11시 57분.
정우는 다시 밧줄에 묶인 채 눈을 감고 있었다.
하지만 제대로 잠들어 있던 시간은 모두 합쳐도 1시간이 되지 않았다.
냄새의 승차감이 썩 좋지 않은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가이드라인을 최적화 중입니다.」
「순위 평가가 지연되고 있습니다.」
의식 속에 나타난 이 두 줄의 문구가 계속해서 번쩍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일종의 로딩 상태를 나타내는 것 같았다.
‘언제 끝나는 거지?’
참다못한 정우가 의식 속에서 이렇게 물었으나 문구는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마찬가지로 평가관 역시 묵묵부답이었다.
가이드라인 최적화야 그렇다 쳐도 순위 평가는 약속한 3시간을 한참 넘기지 않았는가?
그러다 마침내.
삐빅, 삐빅.
저편의 마차에서 전태천의 12시 정각 알람이 들려온 순간 변화가 생겼다.
「가이드라인 최적화 완료.」
「인간, 박정우 님의 순위 평가가 마감되었습니다.」
“……!”
정우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번쩍 떴다.
오랜 기다림이었으니까.
게다가 웬만한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그에게 이런 일방적 기다림이란 흔치 않은 일이었다.
뒤집어 보면, 이제 행성급 존재가 아닌 이상 박정우를 곤란하게 만들기 어렵다는 뜻인 거다.
‘그래서 내가 지금 몇 위지?’
박정우가 지구를 재촉한다. 심지어 그는 그럴 자격이 있기까지 했다.
왜냐하면.
「인간, 박정우 님의 중국 내 현재 순위는 ‘2’입니다.」
‘뭐?’
그는 이제 중국에서 두 번째로 강력한 존재였으니까.
중국의 인구수는 대한민국의 약 28배.
이런 자그마한 나라에서 온 자가 수십 시간 만에 중국의 최강자 자리를 넘볼 경지까지 이른 것이다.
‘왜지? 내가 벌써 2위를 차지할 정도라고?’
정우는 이렇게 말하면서도 자신이 2위에 등극한 이유를 어렴풋이 알아차리고 있었다.
그건 다름 아닌 이동 속도.
일찍이 한국에서도 헬기를 운용했고, 나중엔 번개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냄새를 타고서 국내에서의 일을 마무리 짓지 않았던가.
중국에 와서도 마차를 만들어 기동력을 확보했고 말이다.
물론 중국에도 그런 인물이 없진 않았겠으나 이 거대한 나라는 국토 면적이 대한민국의 96배나 된다. 동일 시간 대비 정수 획득량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을 터.
‘기가 막히는군.’
정우는 오랜만에 전율을 느꼈다.
예상보다 빠르게 파견지의 상위권자가 됐다는 사실이 첫째,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그럼 내 위에 있는 녀석은 대체 정수를 몇 개나 가지고 있는 거지?’
지금으로선 결코 알 수 없는 일이다.
중국의 인구수는 14억 3천만.
인당 평균 정수량이 다섯 개라고 가정하면 인간에게서 뽑아낼 수 있는 정수량이 대략 71억 5천만 개가 된다.
여기에 중국 전역의 생물 중 정수 부여 대상이 된 존재들까지 생각하면 중국의 정수 총량은 최소 100억 개 이상.
‘하지만 그건 정수가 자연 그대로 보존되어 있을 때의 이야기고.’
매일 아침 지구가 보고를 해 주지 않았던가? 침입자에 의해 지구의 정수 총량이 얼마나 줄어들었는지.
‘첫 보고가 있던 2일 차에 6%, 3일 차에 5%, 4일 차에 2%, 5일 차에 다시 5%, 그리고 오늘인 6일 차에 7%.’
워낙 중요한 정보이다 보니 정우는 일차별 정수 손실량을 외우고 있었고, 이 수치를 다 합하자 엄청난 결과가 나왔다.
‘……25%.’
간단히 말해서 중국의 정수 총량이 본래 100억 개였다면 지금은 75억 개밖에 남지 않았다는 소리다.
‘중국에 남은 정수량을 정확히 알 수는 없나?’
이건 평가관과 가이드라인 양쪽에 다 던진 질문이었다.
그러나 답은 돌아오지 않았고, 결국 정우는 혼자 생각하는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22억 개로 2위를 했다면 구원자 상위권들이 이 나라의 정수 대부분을 들고 있다고 봐야겠군.’
당장 1위가 23억 개를 가졌다 쳐도 이쪽과 합하면 무려 45억 개.
이 정도면 모르긴 몰라도 중국에 남은 정수 총량의 4할가량 될 터였다.
‘그럼 이제 남은 건.’
정우가 허페이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별안간 그의 시야에 또 다른 무언가가 나타났다.
‘아.’
잠시 잊고 있던 구원자 전형의 주요 시스템 중 하나.
| 닉네임 : 인간
| 순위 : 2
| 소속 지역 : 중국
「2차 지역 ‘중국’의 구원자 채널에 접속합니다.」
「배정된 채널 번호는 ‘1’입니다.」
다시 한번 최초의 채널에 입성하게 됐다.
그것도 이번엔 중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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