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arth-Style Savior Archetype RAW novel - Chapter 230
233화. 가이드라인(3)
“어우.”
제아무리 5천만 개짜리 각성자라 해도 승용차보다 빠르게 달리는 호랑이의 등 위로 뛰어들어 22억 개짜리 구원자를 묶어 둔 밧줄을 푸는 건 결코 쉬운 임무가 아니었다.
아므라가 쩔쩔매며 밧줄의 매듭을 살피고 있자 여전히 냄새와 묶여 있는 정우가 전방으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
“저쪽의 속도도 만만치 않군.”
“옙……?”
왜인지 모르게 불안해진 아므라가 정우를 따라 고개를 든 순간.
쐐애애애액!
매서운 파공음과 함께 정수 창 세 발이 날아들었다.
“억!”
아므라가 몸을 움츠리는 사이 정우의 보호막이 간단히 막아 내긴 했지만 말이다.
츠츳, 츳!
“…….”
마찰음이 멎은 뒤 고개를 든 아므라의 시야엔 역시나 흠집 하나 나지 않은 푸른 보호막이 드리워져 있었다.
“아…….”
“서둘러.”
정우가 아므라를 재촉한다.
이에 아므라는 자신이 전과 같지 않게 자꾸 위축되고 있음을 느끼며 22억 개짜리 구원자를 붙든 매듭을 서둘러 풀었다.
‘이, 이제 내가 활약할 수 있는 레벨이 아니야. 여긴…….’
정수 5천만 개. 며칠 전만 해도 절대 뚫리지 않는 갑주를 두른 것 같은 기분이었으나 지금은 길바닥에 헐벗은 채로 나와 있는 느낌이었다.
물론 길에서 마주치는 생존자들의 평균 정수량이 오른 탓도 있을 거다. 하지만 그것 이전에 박정우란 사내가 고르는 일과의 난이도 자체가 말도 안 되게 높았다.
매일 선택 가능한 경로 중 가장 험한 것만 골라서 움직인다고 해야 할까.
지금만 해도 중국의 공안부, 그것도 일찍이 상하이를 접수하고 관찰자와 계약까지 맺은 녀석들이 점거한 도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지 않은가.
아므라가 멍한 표정으로 착잡한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저 혼자 부지런히 움직이던 그의 손이 마침내 매듭을 완전히 풀었다.
팟.
“다, 다 됐습니다!”
“좋다.”
아므라가 임무 완수를 보고하는 순간, 냄새에게 매달려 있던 박정우의 신체가 새파랗게 빛났다.
“차 위로 올라가서 대기해.”
“예?”
자신에게 한 말인 줄 알고 아므라가 눈을 휘둥그레 떴으나 정우의 이번 지시는 냄새에게 내린 것이었다.
크릉!
곧 냄새가 명을 받들어 측면에서 달리고 있는 차량 지붕을 향해 몸을 날렸다.
홰애액!
성인 남성 둘을 태운 큼지막한 호랑이가 허공을 가른다.
그러자 저쪽에서도 커다란 그림자가 드리워진 걸 보고서 황급히 핸들을 꺾었는데, 각성자가 아닌 운전수여서 그런지 반응이 한참 늦었다.
콰앙!
냄새가 지붕 위에 내려앉은 뒤에나 방향을 틀은 것이다.
키기긱…….
험악하게 찌그러진 차량 지붕에서 위태로운 소리가 났으나 당장 차가 박살 날 것 같진 않았다.
“둘 다 여기서 기다려. 그리고 너희도.”
그사이 몸을 완전히 일으킨 정우가 발아래에 놓인 운전석 창틀을 손가락으로 까뒤집으며 말했다.
“히, 히익……!”
이에 운전수로 추정되는 어느 사내의 비명이 흘러나왔고, 곧바로 차가 멈췄다.
‘호위대는 세 놈이군.’
정우는 저 멀리, 대략 200미터 거리에 정장 차림의 사내 셋이 서 있는 걸 봤다.
걸음을 완전히 멈춘 채 말이다.
자신들이 마중을 나가던 차량 위에 호랑이가 내려앉는 걸 보고서 잠시 당황한 것일 터.
귀빈이 인질로 붙잡힌 셈 아니겠는가.
“…….”
이젠 차량도 제자리에 멈춘 상태라 일시적인 정적이 찾아왔다.
그럼 이제 무얼 해야 할까.
정우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다시 발밑의 차량으로 눈을 돌렸다.
그러곤.
탁.
지붕에서 뛰어내린 뒤 흙먼지가 잔뜩 낀 뒷좌석 창문을 두드렸다.
“열어.”
그러자 한동안 아무 반응이 없더니 누군가 마지못해 문을 열었다.
“하, 항복입니다…….”
무력한 음성을 내며 양손을 들어 보인 자는 아까 분말 주머니를 던졌던 그 40대 남성이었다.
그리고 이 사내의 뒤편에 정우가 찾던 인물이 있었다.
패스파인더의 정수 표식이 자꾸 이 차량을 가리키던 이유 말이다.
의식을 잃은 채 뒷좌석에 널브러져 있는 20대 여성. 무려 1억 1천만 개짜리 각성자.
“저건 누구지?”
정우가 턱 끝으로 여자를 가리키자 남자가 운전수의 눈치를 봤고, 다음엔 운전수가 조수석에 앉은 또 다른 사내의 눈치를 봤다.
슥.
정우의 고개가 조수석으로 향한다.
“그게…….”
조수석의 사내는 손에 쥐고 있던 총을 천천히 바닥에 떨어뜨린 뒤 뒷좌석의 여자를 곁눈질하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겨, 경감님의 차녀 되시는 분입니다.”
“경감의 차녀? 무슨 소리야?”
정우가 미간을 찌푸리자 이번엔 처음에 문을 열어 줬던 40대 남성이 부연했다.
허페이의 실질적인 주인이 된 성원룡 1급 경감의 둘째 딸, 정확히는 현시점 그의 유일한 혈육이라고.
“……여긴 경감급이 각성자인가?”
1급 경감이면 경찰청장급.
정부 조직의 고위 간부가 수준급 각성자인 경우는 정우도 처음이었다.
“그…… 그렇습니다.”
정우의 물음에 남성이 고개를 수그리며 눈을 내리깔았다. 그러면서도 경감의 딸이란 여자를 계속 곁눈질했다.
‘뭐지?’
남성의 거동을 수상하게 여긴 정우가 비로소 차량 내부를 꼼꼼히 훑어보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원인을 발견했다.
뒷좌석 바닥에 흩어진 수많은 약병과 주사기, 그리고 용도를 알 수 없는 자그마한 비닐 봉투 등을 말이다.
‘약쟁이였군. 한심한 새끼.’
정우의 시선이 주사기에 한동안 머물러 있자 이를 알아챈 남성이 아주 자그마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발작이…… 끝나고 지금은 휴식기입니다. 깨어나려면 수십 분은 더 걸릴 겁니다.”
“발작? 네가 저 녀석의 주치의인가? 그리고 약을 끊은 것 같지는 않은데 무슨 발작이야?”
정우는 상대가 말한 발작이라는 게 약을 끊은 부작용을 이야기하는 줄 알았으나, 남자가 이내 고개를 가로젓는 바람에 입을 다물게 됐다.
“그게 아니고…… 한꺼번에 여러 약을 사용해서 그렇습니다. 일종의 쇼크 현상이라고 보시면.”
“쇼크가 올 때까지 약을 처먹게 놔뒀다고?”
“그, 그야…….”
당황한 남자가 말을 더듬거린다. 하기야 고작 정수 41개를 가졌을 뿐인 이 사내가 무슨 수로 정수 1억 개짜리 각성자의 투약을 막았겠는가.
게다가 정우로선 저 여자가 약을 얼마나 투여했든 상관없었다.
다만 이 묘한 상황에 대한 진술을 본인에게 직접 듣지 못하는 게 아쉬웠을 뿐.
아, 그러고 보니 남자의 정수가 41개라는 건.
“너도 완전히 순정품은 아니군. 의사가 맞긴 하나?”
무려 1급 경감의 딸을 보살피는 자가 아닌가. 정말 의사라면 이 남자 정도는 살려서 데려갈 의향이 있었다.
그런데.
“아? 저, 저는 아닙니다. 의사가 아니고…….”
남자는 잠시 망설이더니 이내 자신이 브로커라고 밝혀 왔다.
이 모든 일이 터지기 직전, 경감의 딸에게 마약을 팔고 있었다고 말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쭉.
“뭐……?”
여태 들어 본 것 중 가장 독특한 사연에 정우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22억 개짜리 구원자를 놀라게 할 수 있는 사연이라니……. 이를 함께 듣던 아므라도 입이 쩍 벌어진 건 마찬가지였다.
“네가 경감의 딸에게 마약을 팔아 온 장본인인데, 지금까지도 저 녀석에게 약을 투여해 주고 있다는 소린가?”
“어…… 이야기가 좀 복잡하지만, 일단 다 맞는 말씀입니다.”
“……그렇군.”
경감의 딸을 단골로 두고 있던 마약 브로커.
정우는 이 사연에 대해 더 알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신경 쓸 일이 산더미 같았으니까.
게다가 아까부터 저 멀리 있던 공안부 요원 3인방이 슬금슬금 다가오고 있었다.
“그럼 저놈들이 저 여자를 마중 나온 건가?”
“그렇습니다.”
“저 여자가 호위도 붙이지 않고 혼자 밖으로 나온 이유는?”
“어…….”
40대 브로커가 다시 머뭇거리기 시작하기에 정우가 눈을 파랗게 빛냈다.
그러자 놈이 몸을 부르르 떨며 차량이 달려온 방향을 멀거니 바라봤다.
“약을 가지러 갔었습니다.”
“슬슬 짜증이 나려고 하니까 한꺼번에 말하지 그러나.”
정우가 재촉하자 브로커가 자신도 답답하다는 듯 표정을 구겼다.
“따님을 모시고 공안부를 따라올 때 들고 있던 약이 어제부로 다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따님과 함께 약을 가지러 나갔던 것이고…….”
그러다 경감의 딸, ‘약쟁이’가 여러 약을 연속으로 투여하는 바람에 저 꼴이 됐다는 게 브로커의 설명.
“호위가 붙지 않은 이유는 설명이 안 되는데. 내가 경감이었다면 나가자마자 약에 절을 게 뻔한 딸을 혼자 보내진 않았을 거야.”
“……일단 따님도 상당히 강하시니까요. 저희가 죽었으면 죽었지 따님이 다칠 일은 없었을 겁니다. 게다가.”
브로커는 경감과 딸의 사이가 썩 좋지 않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게 1급 경감으로서 약쟁이 딸을 둔 게 결코 자랑스러울 리 없지 않은가.
“하지만 이제 곧 다치게 생겼군.”
브로커의 말을 다 들은 정우는 도깨비처럼 변한 눈으로 경감의 딸을 노려봤다.
애초에 저런 넋 빠진 녀석이 1억 개나 되는 정수를 갖게 된 데에도 경감의 부단한 노력이 뒤따랐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브로커의 눈에나 사이가 나빠 보이지, 실제론 경감이 애지중지하는 자식이란 거다.
그렇지 않고서야 1억 개나 되는 정수를 양보할 리가.
‘아아.’
생각이 여기까지 이른 정우는 자신이 방금 큰 실수를 할 뻔했다는 걸 깨달았다.
‘이 녀석을 지금 죽여선 안 돼.’
정영륜이 그러지 않았는가. 허페이의 공안은 이미 관찰자와 계약을 한 상태라고.
다시 말해서 경감이나 그의 심복 중 하나가 관찰자 시야를 가지고 있을 거란 이야기다.
이쪽의 정수량을 파악하고 있다는 뜻.
어쩌면 이미 도망가고 있을지도 모르고, 또 어쩌면.
‘딸이 무사히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겠지. 그리고 요원들을 보낸 걸 보면 후자다.’
즉, 이 녀석을 살려 둬야 경감과 얼굴이라도 마주해 볼 수 있다는 거다.
‘흐음.’
정우는 여자를 끌어내린 뒤 나머지 민간인을 다 죽이려다가 이 생각마저 바꿨다.
“이봐.”
“예, 옙?”
“약이 얼마나 남았지? 네가 약을 가져오는 곳에 다른 약품도 있나? 사람을 살리는 데 쓸 수 있는 약 말이야.”
“어…… 그야 물론입니다.”
대화가 여기까지 진행되자 브로커의 눈빛이 은근히 날카로워졌다.
정우가 자신을 살려 두려 한다는 걸 알아차린 거다.
그리고 그건 사실이었다.
“아므라.”
“옙.”
“이 남자와 저 여자를 마차로 옮겨라. 의사들에게 여자의 명줄을 연장하라고 해. 그리고 남자와는 약이 든 창고 이야기를 좀 나누게 해라.”
“……예, 그럼 나머지는 어떡할까요?”
이에 정우가 운전석과 조수석의 두 사내를 빤히 바라봤다.
“이쯤 됐으면 너희도 무슨 재주가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지 깨달았겠지. 혹시 꺼낼 카드가 있나?”
그러자 조수석의 사내가 헐레벌떡 차량 바닥의 총을 도로 줍더니 정우를 향해 겨눴다.
아마도 지체 없이 격발할 생각이었겠지만.
쫴애애액!
정우가 쏜살같이 쏘아 낸 가시에 이마가 꿰뚫려 죽었다.
“…….”
이제 남은 건 운전석의 사내 하나뿐.
3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이 사내는 양손을 핸들에 올린 채 벌벌 떨고 있었다.
그는 차마 정우를 똑바로 바라볼 자신이 없었는지 룸미러를 통해 뒷좌석을 보는 중이었는데, 아무리 봐도 이쪽 역시 마땅히 가진 게 없는 듯했다.
종래엔 아이처럼 울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끕! 끄읍!”
그러더니 양손을 포개 기도하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아, 아내를 잃었고 자식도 누, 눈앞에서 다 죽었습니다……! 제, 제발!”
거의 경련을 일으키고 있는 턱으로 가까스로 발음해 낸 대사.
그러나 정우에겐 무가치한 사연이었다.
슥.
정우가 말없이 운전석 쪽으로 손을 뻗는다.
사내는 이제 핸들에 머리를 박은 채 통곡 중이었고, 아므라는 음울한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아마도 저 운전수 또한 한족일 것이다. 하지만 아므라에겐 더 이상 상관없는 문제였다.
이 세계에선 그런 게 무의미함을 깨달아 가는 중이었으니까.
푸아아악.
이윽고 초라한 파열음이 차량 안을 짧게 맴돌았다.
그러곤 머리가 사라진 사내의 몸뚱어리가 앞으로 기울며 핸들을 눌렀다.
빠아아앙…….
긴 경적이 또 한 생명의 소멸을 알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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