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arth-Style Savior Archetype RAW novel - Chapter 233
237화. 항상성(2)
세 번.
냄새는 과장을 하지 않는다.
녀석이 세 번이라고 했다면 정말 세 번이 최대치인 것이다.
‘그럼 세 번 이후론 제대로 뛸 수조차 없을 거다.’
조금 전의 그 ‘구출’만으로도 냄새의 호흡이 가빠진 상태다.
몸에 상당한 무리를 주는 동작인 게 분명했다.
하지만…….
“돌아가자. 놈을 죽여야 해.”
정우가 냄새의 이마를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하자 녀석이 걸음을 완전히 멈췄다.
* 위험해.
짧지만 진정성 있는 경고.
심지어 이미 정우를 사선에서 건져 오는 길이 아닌가.
냄새도 두 번째 기회가 있으리라곤 장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물론 그건 정우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대로 도망가 봐야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어. 오히려 상황이 더 악화될 뿐이다.’
일단 피신한 뒤 힘을 더 키워서 온다면 그때는 테르가를 해치울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다음엔?
이쪽이 도망 다니는 사이 테르가가 빨아들인 정수는 어떻게 복구할 것인가? 불가능한 일이다.
관찰자들이 가져간 정수는 영구적 손실로 남고, 여기에 더해서…….
‘내가 확보할 수 있는 정수 총량도 줄어드는 셈이다. 행성 폐쇄를 막아 낼 확률 자체가 줄어드는 거야.’
놈의 무지막지한 힘을 직접 본 이상 이대로 도망가는 건 직무 유기이기도 했다.
맞서 볼 여지가 있다면, 반드시 싸워야 한다.
‘물론 반드시 이겨야 해. 담보로 너무 많은 게 잡혔다.’
엄청난 스트레스에 관자놀이 안쪽이 저릿했다.
만약 자신이 패배한다면 그것 역시 지구에 엄청난 손실을 입히는 셈이 될 테니까.
상당량의 피해를 감수하고 후일을 기약할 것인가, 아니면 모든 걸 걸고 도박을 할 것인가.
“…….”
정우는 오래 지나지 않아 결론을 내렸다.
“돌아가자. 두 번 안에 승부를 낼 테니까.”
이건 냄새에게 목숨을 함께 걸어 달라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이 사실을 냄새도 잘 아는 것 같았다.
크릉.
녀석이 수염을 실룩이더니 몸을 정면으로 향한 채 고개만 돌려 뒤를 돌아본 것이다.
콰아아아…….
그새 제법 멀어진 ‘현장’에서 테르가가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머리는 이미 이쪽을 향하고 있는 상태.
장내에서 가장 큰 정수 덩어리가 탈주 중이니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이제 곧 이쪽을 쫓아 엄청난 속도로 달려올 터.
냄새로서도 이대로 쭉 도주를 할지 지옥 속으로 다시 뛰어들지 결정을 내릴 때였다.
* 두 번.
냄새가 코를 찡그리며 다짐을 요구한다.
“두 번.”
정우도 고개를 끄덕이며 녀석과 약속을 했다.
그러나 냄새와 정우 모두 잘 알았다. 무의미한 약속이라는 거 말이다.
트득.
이윽고 냄새가 땅을 강하게 누르며 몸을 반대편으로 돌렸다.
그러자 그새 이쪽을 향해 엄청난 기세로 달려오기 시작한 테르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바르르, 하고 냄새의 몸이 가늘게 진동한다.
본능적으로 떨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의외로 녀석의 항상성이 51%까지 올라 있었다.
“……?”
정우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너는 왜 이 싸움에 목숨을 걸었지? 얼마든지 도망갈 수 있잖아.”
냄새를 신뢰하는 건 사실이었다. 녀석의 곁에서라면 비교적 마음 편히 잠을 잘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냄새 또한 이쪽에게 목숨을 흔쾌히 맡길 정도인가, 라고 묻는다면…….
“……흠.”
정우가 대답을 기다리고 있자 냄새가 수염을 실룩였다.
그러더니 짧게 답했다.
* 민구.
“……민구?”
상상도 못한 대답에 정우가 일순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아버지를 위해서라도 저놈을 살려 둘 수 없다는 건가, 아니면 이쪽이 박민구의 아들이기에 지켜 준다는 건가.
정우는 마저 질문을 하고 싶었지만 살을 에는 바람이 불어온 탓에 그럴 수 없었다.
쉬아아아앗!
테르가, 위험도 B급의 관찰자가 코앞까지 들이닥친 것이다.
숨이 턱 막힐 것 같은 기운과 함께 놈의 두 다리가 번갈아 가며 대지를 으깼다.
콰앙, 쾅!
발소리가 무슨 포격음 같다.
신장 백여 미터에서 내리 뻗친 그림자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거대했다.
정우는 새까맣게 변한 사위 속에서 눈을 파랗게 빛냈다.
“놈의 정면에 서. 주먹이 날아오는 순간에 저 사이로 파고들 거다.”
슥.
정우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저 사이’는 다름 아닌 테르가의 두 다리 사이였다.
놈의 주먹이 날아올 때 정면으로 가속해서 회피해 달란 주문을 한 거다.
끄릉.
냄새가 잠시 앓는 소리를 내더니 이내 이를 드러내며 외쳤다.
* 그래!
팟!
냄새가 정우를 태운 채 내달리는 사이, 두 존재를 사정거리에 넣었다고 판단한 테르가가 등판을 부풀렸다.
촉수들을 다시 땅 밑에 박으려는 거다.
취아악!
아까처럼 수천 개의 촉수가 허공에 포물선을 그렸고, 곧 테르가가 상체를 활처럼 구부렸다.
‘지금이다……!’
정우가 냄새의 목덜미를 꽉 쥐자 녀석이 용케 알아듣고서 전방으로 급가속을 했다.
파아앗……!
그러자 아까 테르가의 주먹을 받아 냈을 때와 비슷한 압력이 정우를 후려쳤다.
‘허억!’
호흡이 강제로 끊기고 온몸이 압착되는 듯한 기분.
그러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풍경이 바뀌었다.
커다란 터널 밑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테르가의 가랑이 사이에 들어온 거다. 그러곤 뒤편에서부터 지축이 뒤흔들리는 듯한 진동이 느껴졌다.
투웅!
놈의 주먹이 땅을 후려친 거였다.
이와 함께 촉수들이 꽂혀 있던 자리에서 흙먼지가 튀어 올랐다.
“……!”
이를 보고 정신을 차린 정우가 소리친다.
“쭉 달려! 날 저 위로 올려 보내라!”
팟.
정우가 손가락을 들어 찌르듯 가리킨 지점은 테르가의 촉수들이 거미줄처럼 펼쳐져 있는 허공이었다.
그릉……!
이에 냄새가 마치 자동차 엔진음 같은 걸 내며 땅을 박찼다.
홰액!
또 한 번 주변 풍경이 뒤로 밀려나며 정우의 몸에 압력이 가해졌고, 다음엔 그를 받치고 있던 냄새의 몸이 크게 들썩였다.
녀석이 하체를 튕겨 정우를 쏘아 올린 거였다.
쐐애애앳!
정우는 총알처럼 상공으로 튀어 올라갔다.
고도가 순식간에 수십 미터에 이르렀고, 곧 테르가의 골반 언저리까지 닿게 됐다.
여전히 놈의 촉수들에 닿으려면 한참 더 올라가야 했지만 방법도, 시간도 없음을 잘 알았다.
‘헛스윙’을 한 테르가가 뒤를 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만 잘라 내도……!’
정우는 상승 최고점에 이른 순간 머리 위를 향해 오른팔을 휘두르며 정수 칼날을 뽑아냈다.
착지를 위한 정수를 제외하고 모든 역량을 쏟은 공격이었다.
정수 22억 개짜리 정수 칼날 말이다.
이만한 공격을 해 볼 일이 없었기에 정우로서도 실험적인 시도였고, 곧 그 결과가 백 미터에 이르는 초대형 칼날로 나타났다.
“……!”
정우는 물론 그를 따라 달려오고 있던 지상의 냄새조차 기겁했다.
박정우의 손에서 뻗어 나온 푸른 검신이 테르가의 촉수 대부분을 잘라 냈기 때문이다.
촤아아앗!
마침내 정우의 몸이 다시 낙하하기 시작했다.
무게 중심을 잃고 머리가 밑으로 돌아가는 중이었기에 제아무리 정우라고 해도 칼날을 다시 휘두를 순 없었다.
「아아……!」
고속으로 곤두박질하는 정우의 귓속에 진노한 테르가의 음성이 파고들었다.
땅에 박힌 주먹을 꺼내 곧장 다시 휘두르려 했으나 촉수가 전부 잘린 탓에 몸이 옆으로 무너진 것이다.
쿠웅!
둔탁한 충격음이 허공에까지 쩌렁쩌렁 울렸고, 때맞춰 땅에 닿으려던 정우의 몸뚱어리를 냄새가 받아 냈다.
하악……!
벌써 지치기 시작했는지 냄새의 입 양쪽이 벌어져 있다.
‘앞으로 한 번.’
정우는 냄새의 등 위에 아슬아슬하게 몸을 걸친 채로 테르가를 바라봤다.
기대한 그대로의 전개였다.
드디어 놈의 머리가 지상과 한층 가까워져 있었으니까.
테르가는 200미터 정도 떨어진 지점에 주저앉아 있었고, 보아하니 촉수가 바로 재생되지도 않은 것 같았다.
따라서 한동안은 그 무지막지한 주먹을 사용할 수 없을 것이다. 기껏해야 자신의 무게 이동을 감내할 수 있는 선에서 팔을 휘둘러 오는 정도.
체중을 온전히 이용할 수 없으니 그만큼 위력이 떨어질 테고, 냄새의 부담도 덜할 거다.
‘몸을 노리는 건 의미 없을 거야. 바로 머리를 잘라야 한다.’
지난 전투 경험들이 상당한 도움이 되고 있었다.
4일 차 침입자였던 문지기와의 대결 덕분에 초대형 상대와의 전투법을 체득한 상태였고, 관찰자의 특성은 도르와 다홉을 통해 배우지 않았는가.
“이번엔 목을 딸 거야. 한 번만 더 부탁한다.”
정우가 냄새의 목을 쓰다듬자 녀석이 낮게 울며 뒤로 물러났다.
“……?”
심상치 않은 반응에 정우가 다시 테르가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곧 숨이 멎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됐다.
「…….」
어느새 놈이 제자리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개구리처럼.
‘뭐야, 설마 이 녀석.’
정우가 눈을 치켜뜨려는 찰나 구부러져 있던 놈의 다리가 활짝 펴졌다.
테르가의 신장은 백 미터가 넘는다.
화아아아악!
놈의 전방 도약 한 번에 200미터나 되던 거리가 증발했다.
“피해!”
정우가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내는 사이 냄새는 이미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탓.
방금 정우의 뺨을 스치고 지나간 물방울은 아마도 냄새의 침일 거다.
녀석의 체력이 빠르게 바닥나고 있었다.
콰과과곽!
뒤편에선 테르가가 내려앉은 지점이 박살 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굳이 뒤를 돌아볼 필요가 없었다.
스으…….
갑자기 주변이 어두워졌으니까.
‘맙소사.’
정우가 고개를 살짝 들어 올리자 그를 내려다보고 있는 테르가의 머리통이 눈에 들어왔다.
놈이 달리고 있었다. 마치 네발짐승처럼 말이다.
정우와 냄새는 이미 놈의 가슴 아래에 놓인 상태였다.
압도적인 기동력……. 정우는 애초에 이놈에게서 벗어나는 게 불가능했음을 이제야 깨달았다.
프아아아앗!
정우가 이를 악물며 정수 칼날을 뽑자, 놈이 밑을 내려다보던 고개를 거두고서 갑자기 몸을 비틀었다.
홰애애액!
강풍이 불어닥친다 싶더니 정우를 덮고 있던 테르가의 그림자가 반쯤 벗겨졌다.
“오른쪽, 공격이다!”
놈이 팔을 들어 올렸음을 직감한 정우가 즉시 냄새에게 경고했고, 이에 냄새가 그대로 땅을 박차며 오른쪽으로 뛰어올랐다.
그러자 정말 간발의 차이로 둘이 있던 자리를 보랏빛 궤적이 휩쓸었다.
콰드드드드득!
단단해 보이던 대지가 젖은 모래처럼 층을 이루며 으깨진다.
“후욱.”
정우는 가까스로 날숨을 뱉으며 팽팽히 부푼 가슴을 진정시켰다.
심지어 놈은 아직도 뒤쪽에 바짝 붙어 있었다.
그러더니 이내 가속을 해서 거리를 좁혔다. 물론 이것도 놈의 모습을 직접 돌아본 게 아니라 그림자의 위치와 길이를 보고서 가늠한 거였다.
놈이 만약 이 행성의 법칙에 예속되지 않아 그림자조차 생기지 않는 상태였다면 필패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지구가, 이 행성의 환경을 구성하는 모든 것들이 간접적으로 구원자를 돕고 있는 셈이었다.
그리고 이 생각이 정우의 머릿속을 더욱 명료하게 만들었다. 홈그라운드에서 지고 싶지 않았다.
“촉수가 잘리는 걸 보면 목에도 칼이 들어갈 거다. 놈에게 닿기만 하면 돼.”
정우는 냄새에게 이렇게 말하며 아까 봤던 테르가의 머리 위치를 되새겼다.
놈이 사족보행 중일 때의 머리 높이는 대략 40미터.
칼날로 충분히 가를 수 있는 높이였지만 문제는 밀도였다.
일찍이 만났던 대형 괴물체인 문지기도 그랬고, 대체로 촉수 같은 보조 부위보단 몸쪽의 내구도가 훨씬 높았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칼날을 길게 뻗어 목을 노렸는데 칼이 박히지 않거나 반대로 부러진다면…….
‘그럼 끝이야. 이 녀석도 더는 버티지 못할 것 같고.’
굳이 냄새에게 상태를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정우를 받치고 있는 녀석의 등과 허리부터가 심하게 요동치고 있었으니까.
사람도 지치면 달리는 자세부터가 무너지지 않는가. 냄새도 마찬가지였다.
“놈이 다가올 때 날 다시 올려 줘. 그다음엔 여길 떠나. 나머진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작정한 정우가 이렇게 말하자 냄새가 귀를 쫑긋 세웠다.
* 죽어. 너.
“놈을 먼저 죽이면 그런 일은 없겠지. 할 수 있다.”
그사이 사위에 다시 어둠이 드리워졌다.
놈이 이쪽의 위까지 몸을 들이민 거다.
그러더니 아까처럼 한쪽 그림자가, 아니 이번엔 양쪽 그림자가 번갈아 사라졌다.
“아……!”
뭔진 몰라도 양팔을 이용해 공격해 오는 것처럼 보였고, 이에 정우가 급히 경고하려는 순간.
타앗!
냄새가 갑자기 정면을 향해 공중제비를 돌았다.
“이 미친.”
깜짝 놀란 정우는 냄새의 털을 꽉 붙들었고, 그사이 거꾸로 뒤집힌 시야에 보랏빛 궤적이 들이닥쳤다.
쐐애애애액!
힘이 잔뜩 들어가 매섭게 구부러진 손가락, 그 밑으로 이어지는 육중한 손바닥과 비늘 돋은 손목, 똬리 튼 뱀을 연상하게 하는 팔뚝.
지금 테르가의 팔을 똑바로 보고 있는 것이다.
계속 정면을 보고 달렸다면 결코 볼 수 없었을 장면이었다.
그렇다면 냄새는 굳이 왜…….
‘아.’
정우의 입이 쩍 벌어지려는 찰나, 냄새의 몸이 땅을 향해 곤두박질했다.
아니, 정확히는 시야에서 도로 사라지려 하는 테르가의 팔뚝을 향해 내달리는 중이었다.
그러더니 냄새가 승객을 위해 앞으로 벌어질 일을 함축해서 일러 줬다.
* 큰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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